Genius Idol’s Strategy to Conquer the Entertainment Industry RAW novel - Chapter (78)
천재 아이돌의 연예계 공략법 78화
잠시 굳어 있던 나는 ‘온라온’이 한 것처럼 도어락에 조심스럽게 지문을 인식시켰다.
옳은 행동이었다는 것처럼 매끄럽게 문이 열렸다.
왜인지 가슴뼈를 뚫고 튀어나올 것처럼 쿵쿵 뛰는 심장을 무시하고,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을 놓자 문이 천천히 닫혔다.
철컥. 어두운 내부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정체된 공기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옅게 났다.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최근에 아무도 살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처럼, 바닥이고 가구고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나는 캐리어를 현관에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발이 닿는 곳마다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여기는…….
‘너무 더럽다…!’
조금만 움직여도 하얗게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켁켁거리다가 상비하는 마스크를 착용한 나는 일단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구석에서 청소포와 밀대를 찾아 바닥을 대충 밀고, 걸레를 빨아다가 일단 소파나 식탁 같은 간단한 가구들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
청소나 할 때가 아닌 것 같기는 했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내 호흡기 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다 했다!”
그리고 단순 노동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한결 차분해진 상태로 소파에 앉았다.
청소를 하며 알아낸 것과 발견한 것이 있었다.
알아낸 것은 여기가 ‘온라온’이 살던 곳이라는 사실이고.
발견한 것은.
[온하제에게]바로 겉면에 한글로 내 이름이 또박또박 적힌 편지였다.
온라온 말고 온하제. 내 진짜 이름.
성씨도 그렇고, 이름도 그렇고.
온하제는 어디서 쉽게 볼 수 있는 이름은 확실히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나한테 보낸 편지가 맞겠지?’
온하제가 온라온의 가족 이름이 아닌 한에는 그럴 것이다.
나는 짧게 심호흡을 하고 봉투를 조심스럽게 뜯었다.
입구를 아래로 두고 봉투를 살살 흔드니 두툼한 편지지가 무릎 위로 툭 떨어졌다.
펼쳐 본 편지는 영어로 적혀 있었다.
흰색 편지지에 단정한 필체.
나는 신중을 기하기 위해 캐리어 한 구석에 있던 학생증을 꺼내 뒷면에 적힌 것과 글씨체를 대조해 보았다.
내가 필체 감정에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얼추 같은 사람이 쓴 글씨처럼 보였다.
[아득히 먼 곳의 나에게만약 이 편지가 무사히 주인을 찾아갔다면, 다른 모든 말에 앞서 나는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할 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뭔?’
편지 작성자도 쓰고 나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바로 밑에 조금 흐트러졌지만 여전히 보기 좋은 필체로 이런 말이 적혀 있었으니까.
[맙소사. 인사도 소개도 건너뛰고 대뜸 사과라니. 편지 예절을 예전에 배운 것 같은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글씨는 또 왜 이렇게 난잡한 거지? 나라는 사람은 정말 구제 불능이야….이 모든 불찰을 네가 너그럽게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요즘 정말로 정신이 없어서 그래.]
나는 ‘온라온’을 1분 PR 영상에 나왔던 것처럼 차분하고 정적인 녀석 정도로 여기고 있었는데.
뜬금없는 사과 뒤에 이어지는 편지는 생각보다 가벼운 어조로 적혀 있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전, 내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왔어. 정확히는 책상 위에 놓여 있었지. 네가 이 편지를 발견했을 바로 그 책상 말이야.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벌어진 일이라 처음에는 도둑이라도 들어온 줄 알았어.
집에 사라진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읽어본 편지 내용을 최대한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어.
멀리 떨어진 평행세계에 있는 우리는 영혼이 실수로 뒤바뀌었고, 그 때문에 그동안 영혼과 맞지 않는 몸으로 불행하게 살아와야만 했다…….
나는 그 허무맹랑한 말을 물론 믿지 않았어.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이 있다고 했지, 망상장애가 있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거든. 그 편지는 기분이 나빠서 바로 버렸어.]
말투는 도련님처럼 얌전한데 묘하게 신랄했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결국 인사랑 소개는 건너뛰었잖아…….’
[하지만 너도 예상했겠지만, 나는 그 편지에 적힌 말을 점점 믿게 됐어. 그들이 어떤 식으로 나를 설득했는지는 생략할게.]정황상 시스템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내 일이라 그런지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었다.
[그들은 뒤늦게 우리라는 오류(나는 이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아…)를 발견했고, 발견한 이상 바로잡아야만 한댔어.바로잡는다는 것은 물론 내가 온하제가 되고, 네가 온라온이 된다는 뜻이야. 그래. 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나는 우선 너는 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냐고 물어봤어. 그런데 우리의 세계가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너와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거야. 관측은 가능하지만 통신은 불가하다나.
그러니 결정은 오롯이 내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말했지. 이렇게나 무능한데 무슨 수로 우리의 영혼을 다시 돌려놓는다는 걸까?
다행히 그들은 내 집에 몰래 들어와 편지를 놓고 갈 정도의 능력이 있으면서도 나를 협박하거나 강제하지는 않아. 1분에 한 장씩 편지를 보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결정을 내려달라고 애원하기는 해도.
영혼이 뒤바뀌었다는 그들의 말을 믿게 된 것과는 별개로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처음에는 거절했어. 그들은 결코 그럴 리 없다고 무례하게도 단언했지만, 혹시라도 네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으면 어떡해.]
이어지는 문단은 유난히 꾹꾹 눌러 쓴 글씨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만약 네가 나와 같은 일들을 겪었다면, 그러니까 어느 곳에서든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일상적으로 받으며 살아왔다면, 그리고 우리의 자리를 바꾸는 것만으로 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나는 그들의 제안을 이만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내가 무엇을 사과했는지 알겠지?
다시 한번 이런 중대한 사안을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을 사과할게.
너의 이름을, 몸을, 가족을, 살며 네가 노력해 이루었을 성과를, 나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네 인생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평생 죄로 여기며 살아갈 거야. 그게 내 현실을 두고 도망쳐, 네 삶을 고스란히 약탈한 내 의무라고 생각해.]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애가 무슨…….’
들고 있던 편지가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왕 무도한 짓을 저지른 겸, 한 가지 더 부탁할게.행복하게 살아.
알아. 하루아침에 세상이 뒤집혔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냐고 하겠지.
이건 그들이 나를 설득하기 위해 해준 말인데, 한 번 다른 세계에 있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영혼은 한동안 행운이 따른대. 적어도 다른 차원에서 고생한 시간만큼은 말이야. 하나의 세계 전체가 잃어버렸던 자식을 찾은 부모처럼 군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나는 과장이라고 봐.
어쨌거나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로 벌어진 일을 ‘충분히’ 배상하겠다고 했어. ‘충분히’ 말이야. 무려 차원 이동까지 시킬 수 있는 집단의 ‘충분함’이란 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 잘 모르겠지만 그게 우리에게 정말 ‘충분’하기만을 바랄 뿐이야.
제기랄. 갑자기 낯선 세계에 떨어져 당황했을 네게 행복하라는 말이나 하고 있다니…. 내가 이렇게 뻔뻔한 인간이었나 회의감이 든다. 미안해.]
“하하….”
웃을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나는 지금 지구로 돌아오지 않는 편도 우주선의 티켓을 선물 받은 기분이야. 날이 갈수록 가슴이 미친 듯이 뛰는 걸 보니 이게 우주선 따위가 아니라 핵미사일 발사 스위치에 검지를 올리고 있는 기분인 것 같기도 해.이게 정말 옳은 일인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바뀌어. 확신 같은 건 없어. 어쩌면 의사가 내 망상증을 진단하지 못한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아, 그들이 또 한 장의 편지를 보냈어. 나는 망상증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야. 고맙기도 하지…….
어쨌든 이 편지를 읽은 사람이 하제 너라면 그들의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는 뜻이겠지.
새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침이 다 되었나 봐.
우리 이젠 새로운 태양을 보러 갈까.
반쪽짜리 우주선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라온
추신. 이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누군가에게 보낼 편지를 적는 건 오랜만인 것 같네. 어쩌면 처음일지도. 비교할 만한 편지가 있다면 좋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아…. 하긴, 누가 이미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겠어?
추추신. 그들은 우리를 원래 있어야 할 세계 밖의 인간, ‘외계인’이라고 칭했어. 외계인이라니? 우리가 E.T. 같은 거란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그동안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 단번에 알게 된 바람에 더 기분이 나빴어. 그래도 그들이 네게는 그러지 않았길 바라.]
아무리 편지라고는 해도 이렇게 긴 글을 한 번에 읽은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추추신까지 받기는 했지만, 봉투에 들어 있던 편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직 읽지 않은 게 더 많았다.
오래 집중하느라 뻑뻑해진 눈을 몇 번 깜빡이고 편지를 다음 장으로 팔락, 넘길 때였다.
요청이라는 건 어쨌거나 부탁의 일종 아닌가?
하지만 시스템이 나를 배불리 먹인 게 몇 시간 전의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어디론가 빨려 나가는 듯한 이상한 감각에 너그럽게 몸을 맡겼다.
마침내 개스템을 직접 만나 한 대 갈길 기회가 와서는 절대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관리자’와 책상 하나를 두고 앉아 있었다.
관리자는 사람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그인지 그녀인지 그것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존재였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겠냐?”
“못 하시군요.”
두 마디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빡치게 하다니, 이 새끼는 시스템이 확실했다.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차원관리국 귀환자전담관리부서 소속 관리자 14227호입니다. 본명은 보안상 밝힐 수 없기 때문에 고객님은 14227호나, 하시던 대로 이 새끼, 저 새끼, 개새끼 등등 마음대로 부르시면 됩니다.”
“미친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