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18
제갈세가로 (1)
“그럼 어머니,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옷은 따뜻하게 입었지?”
“네. 따뜻하게 입었어요.”
부모님께선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바라보듯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셨다.
그것은 내 곁에 제갈신이란 불세출의 기재가 함께여도 마찬가지였다.
“대협, 휘아를 잘 부탁드려요.”
“소공자가 워낙 영특하여 제가 도울 일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날이 추우니 이만 들어가시지요.”
“잘 부탁드리오, 대협.”
“휘아. 대협 말씀 잘 듣고.”
그렇게 우린 한참을 더 대문 앞에 붙잡혀 있던 끝에 간신히 여행길에 오를 수 있었다.
여행이란 거창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사실 조가장과 제갈세가 사이의 거리는 60리가량으로 제법 가까운 편이었다.
현대와 달리 비포장도로임을 감안해도 부지런히 걸으면 하루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정도, 거기에 무림인의 체력과 경신법까지 고려하면 그 시간은 더욱 단축된다.
때문에 제갈신은 언제나 도보로 조가장을 방문하곤 했으나 오늘만큼은 사정이 달랐다.
다그닥, 다그닥-.
부모님이 내어주신 말 위에서, 나는 뒷자리의 제갈신을 향해 물었다.
“맨 처음 우희와 조가장에 방문하셨을 때도 반나절 만에 오셨다고 들었어요. 그 때도 말을 타고 오셨나요?”
“그 때는 희아의 수련도 도울 겸 걸어왔지. 힘들다 하면 안고 달리면 그만이니. 혹시 소공자도 그 편이 좋았나?”
“아니요, 대협.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렇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말을 달리기를 한 시진, 우리는 점심 식사를 위해 근처 마을의 객잔에 들렀다.
“식사도 할 겸 잠시 쉬었다 가지.”
“네, 대협.”
“소공자는 무엇을 들겠나.”
“잠시 살펴봐도 될까요?”
“물론. 참고로 저번에 들렀을 땐 장우육이 괜찮더군.”
제갈신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난 목재 차림판에 빼곡히 적힌 글자들을 보며 한 쪽 눈을 감았다.
[gbhvjn : 무협은 죽엽청에 오리구이가 국룰이죠 ㅋㅋ] [야스퍼거 : 짜장면 없나요?]시청자들과 점심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제갈신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예의 그 구독신공인가.”
“아, 죄송합니다, 대협. 시끄러우셨죠. 이게 제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괜찮네. 강호인들에게 수련만큼 중요한 건 없지. 다만 계속 그래서야 소공자의 앞날이 고단하겠군.”
그러니까 내 말이.
이거 현대였으면 완전 정신병 취급 받는 거 아니야.
하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온갖 무공이 난무하는 세계.
해골에 손가락을 박거나 시체로부터 사기를 흡수하는 등의 괴이한 사파 무공들에 비하면, 아무 때나 구결을 웅얼거리는 정도는 애교수준이라는 듯했다.
한편, 나와 제갈신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채팅창은 해석을 요구하는 글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무림맹공지 : 제간지님은 뭐 드신데요?] [Banalake : 오향장육 같은 건가요?] [븝미정수리향기 : 현지인 추천 메뉴 ㄱㄱ]참고로 ‘제간지’라는 명칭은 제갈신의 훤칠한 외모와 중저음의 보이스에 반한 시청자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나한테는 ‘깐휘’따위나 붙여줬으면서···.
나는 투덜거림을 삼키며 제갈신에게 주문을 전달했다.
“그럼 전 대협께서 추천하신 장우육에 당초황과를 추가로 시킬게요.”
“음. 양이 제법 될 테니 거기에 미선 한 그릇만 추가하면 되겠군. 이보게, 소형제.”
제갈신의 부름에 마침 식탁 옆을 지나던 점소이가 걸음을 멈췄다.
“예, 공자!”
“여기 장우육과 당초황과, 미선 한 그릇만 가져다주게. 그리고 혹시 고정주가 있나?”
“네. 있습니다. 금방 갖다 드리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점소이가 주방으로 향하자, 우리는 다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협.”
“왜 그러지?”
“전부터 말씀드리고 싶었던 건데, 저와 우희가 친구 사이이니 좀 더 허물없이 대해주시면···.”
“흣. 그럼 앞으로는 희아를 대하듯 편히 대하도록 하마. 휘아라 부르면 되겠느냐?”
“네, 대협!”
포권하는 나를 보며 피식 웃던 제갈신이 문득 목소리를 낮췄다.
“음··· 잊을 뻔 했군. 휘아, 세가에 도착하거든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게 있다.”
“어떤···?”
“세가에서 지내는 동안 웬만하면 신산심적공을 연마하지 말거라. 특히 가주님 앞에서는 말이다.”
“어··· 저번에도 여쭤본 거지만, 이거 정말 제가 익혀도 되는 무공 맞나요?”
“그 때나 지금이나 내 대답은 같단다.”
두루뭉술한 말로 정확한 대답을 회피한 제갈신은 이어서 몇 가지 언질을 더 주었다.
“아마 이번에 세가에 가게 되면 제법 곤욕을 치를지도 모른다.”
“곤욕이요?”
“형님···. 그러니까 가주께선 느지막이 얻은 막내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지. 우희 위로는 아들만 셋이니까.”
“아, 오빠만 셋 있다는 건 우희한테 들었어요.”
“녀석들은 우희와 나이 차이도 제법 나지. 셋째 놈이 우희보다 일곱 살이나 많으니까.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이 거처까지 옮겨가며 웬 또래 남자 아이에게만 관심을 쏟으니, 아비 입장에서 어찌 심사가 안 꼬이겠느냐.”
정리하자면 딸바보 아빠가 딸의 남사친을 질투한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갖은 핑계를 대며 널 우희와 만나지 못하게 할 게다. 어쩌면 널 시험할지도 모르지.”
“그렇게까지···.”
“항간에는 그저 공명정대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만 딸이 관련된 일에는 무척이나, 음··· 귀찮은 사람이지. 괴팍하고.”
나는 딸바보 아빠의 원한이 담긴 ‘시험’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시험이라는 게 어떤 건지 귀띔이라도 주실 수 있을까요?”
“글쎄···. 가주님은 세가 내에서도 지모가 특히 뛰어난 분이니 나로서는 그 분의 생각을 알 도리가 없구나. 다만 혹여나 네 재주를 보일 일이 있거들랑 금기서화(琴棋書畵)만큼은 피하도록 하여라.”
각각 거문고, 바둑, 글, 그림을 뜻하는 금기서화는 이 시대 사대부들의 필수 교양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무림인들의 사고방식이 다소 유연하다고는 하나, 시대의 유행마저 거스를 수는 없는 법.
그것이 다른 무가와 달리 문사를 다수 배출하는 제갈세가의 가주라면 더욱 그러할 터였다.
“가주께선 금기서화에 자부심이 드높으신 만큼 타인에 대한 평가도 엄격하시지. 웬만한 실력으론 만족시키기 힘들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하하.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아무렴 세가의 손님을 문전박대하기야 하시겠느냐. 일단 식사부터 하자꾸나.”
전혀 위로가 안 되는데요···.
그저 친구 집에 깜짝 방문하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 나로선, 친구 아빠의 성격이 괴팍하다는 소식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나는 제갈세가주의 시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후···.”
나는 짙은 한숨과 함께 탁자 위의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제갈세가로 말을 몰았다.
별다른 일 없이 평안한 여행길이 이어졌다.
특별한 일을 겪기엔 워낙 짧은 거리이기도 했다.
“저기다.”
제갈신의 말에 고개를 들자 저 멀리 높이 솟은 전각들과 그를 둘러싼 담장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조가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원이었다.
잠시 뒤, 정문 앞에 도착하자 제갈신을 알아본 경비무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셨습니까, 외당주님.”
“음.”
“그런데 앞에 앉은 그 친구는 누굽니까?”
“조가장의 소공자일세.”
“아-. 소형제가 바로 그···?”
초면인 게 분명한 아저씨가 나를 보며 아는 체를 했다.
“반갑네, 소공자. 정문의 경비를 맡은 여당이네. 조가장에서 복귀한 녀석들로부터 소공자의 활약은 익히 전해 들었지.”
“아, 그래서 절 아셨군요. 반갑습니다, 여대협.”
“그래, 공자는 얼마나 머물 예정이지?”
“사나흘 정도요.”
“내가 비록 오늘은 바쁘지만 기회가 된다면 소공자에게 직접 그날의 무용담을 듣고 싶구만. 언제 시간 날 때 찾아가겠네.”
경비무사만이 아니었다.
정문을 지난 뒤에도 외당주가 갑작스레 데려온 낯선 소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나이 지긋한 문사부터 시작해서 코흘리개 꼬맹이들까지, 누구 하나 우리를 무심히 지나치는 이가 없었다.
개중에는 제갈세가의 외당주인 제갈신조차 허리를 숙여야 할 만큼 배분이 높은 어른도 끼어 있었다.
“신아. 어딜 그리 바삐 가는 게냐.”
나이 지긋한 노인의 부름에, 길을 재촉하던 제갈신의 걸음이 멈춰 섰다.
“백부님.”
“네게 아이가 있었던가?”
“아내도 없습니다.”
“아, 그랬던가? 네 애비가 죽기 전에 자식을 오죽 많이 남겼어야지.”
“짝이 생기면 백부님께 먼저 아뢰겠습니다.”
제갈신의 침착한 대응에 노인이 흥미를 잃고 툴툴거렸다.
“재미없는 놈. 그래, 누군가, 이 어린 형제는?”
“조가장의 가휘 공자입니다.”
“으응? 이 아이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노인이 이내 껄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으흐흐, 희아를 안 보내니 직접 행차한 게냐? 맹랑한지고···. 가주의 표정이 아주 볼만하겠구나. 그래, 가던 길 가 보거라.”
노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우리의 모습이 건물 귀퉁이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몇 사람이나 더 인사를 주고받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접객당’이라고 적힌 현판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제갈신은 나를 접객당 앞까지 마중 나온 시녀에게 인계했다.
“휘아, 예서 잠시만 기다리거라. 내가 직접 형님을 만나 뵙고 네가 온 소식을 전할 테니.”
“네, 대협.”
“희아가 얼마나 놀라고 기뻐할지 상상도 안 되는구나.”
입꼬리를 끌어올린 제갈신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공손히 시립해 있던 시녀가 나를 접객당 내부로 안내했다.
“안으로 모실게요, 공자.”
“부탁드립니다.”
시녀는 나를 고풍스러운 붓 그림과 장식물들이 놓인 방으로 안내했다.
이어서 차와 다과 몇 가지가 탁자에 올랐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사양 말고 불러주세요.”
“네. 아, 혹시 제가 못 알아들을 말을 중얼거려도 무공 수련 때문에 그런 것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알겠습니다, 공자.”
시녀가 떠난 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내부를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낯섦에서 오는 신선함은 잠시 뿐이었다.
2각이 지날 동안 밖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나와 시청자들은 점차 지루함에 지쳐갔다.
[샤인쿤 : 언제 오나 물어봐요.]결국 참지 못하고 시녀를 호출하려는 찰나, 아까와는 다른 시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녀치고는 다소 차가운 인상의 여인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공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아, 네. 그런데 제갈신 대협은···?”
“가주님과의 이야기가 길어지는 듯하여 저를 대신 보내셨습니다.”
아직도 얘기 중이라니, 기별도 없이 날 데려왔다고 형제끼리 다투기라도 하는 걸까?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따라 접객당을 나섰다.
10분 정도나 걸었을까, 시녀는 장자원이라 적힌 대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섰다.
“공자, 지금부터는 제가 밟는 곳을 정확히 따라오셔야 합니다. 또한 시선은 항상 정면을 향하되 절대 고개를 돌리시면 안 됩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대문 안쪽을 바라보자, 사방 1미터 정도의 돌이 빼곡히 깔린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정원 너머에는 또 다른 대문이 존재했으며, 그 안쪽 역시 돌이 잔뜩 깔려 있었다.
또 그 너머에도.
눈에 보이는 정원의 개수만 총 세 개였다.
그리고 대문과 대문 사이의 거리는 어림잡아 50미터.
이 많은 돌들을 규칙에 따라 밟아야 도착할 수 있다고?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진법?
나는 질린 얼굴로 시녀에게 물었다.
“다른 곳을 밟으면 어떻게 되나요?”
“길을 잃으실 테지요.”
“아, 예.”
화들짝 놀라 시녀의 뒤에 바짝 붙자 그녀가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러나 잠시 뒤, 고생 끝에 도착한 장소는 내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가주님께 데려다 주시는 게 아니었나요?”
아까 머물렀던 접객당의 풍경에서 그저 침상만 추가되었을 뿐, 결코 제갈세가주의 집무실이라고는 보기 힘든 공간에 난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시녀는 안색 하나 변하는 일 없이 차분히 답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식사와 목욕부터 하시지요.”
“저 혼자요?”
“가주께서는 공사가 다망하시어 식사시간이 불규칙하십니다. 먼저 준비를 마치시면 기별을 주실 겁니다.”
“······.”
난 한 번만 더 속아보자는 심정으로 그녀의 말에 따랐다.
목욕 후 대접받은 저녁 식사는 정갈하면서도 호화로웠다.
난 시청자들에게 맛 평가 따위를 들려주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1시간이 지나도록 바깥에서의 연락은 없었다.
“아직도 연락 없으신가요?”
“죄송합니다, 공자. 가주께서 오늘은 바쁘신 듯합니다. 공자께서도 여정의 피로가 쌓였을 테니 오늘은 이만 주무심이 어떠신지요.”
이번에도 기계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이쯤 되니 나도 눈치 채지 않을 수 없었다.
상대가 나를 엿 먹이고 있다는 것을.
때마침 제갈신과 낮에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아마 갖은 핑계를 대며 널 우희와 만나지 못하게 할 게다. 어쩌면 널 시험할지도 모르지.’
그렇다.
이것은 시험, 제갈세가주가 내게 내린 시험인 것이다.
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순서대로 밟지 않으면 길을 잃고 만다는 수 천 개의 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다시 방안으로 고개를 돌리자, ‘네가 뭐 어쩔 건데?’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시녀가 보였다.
난 가만히 입매를 비틀어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보였다.
“소저, 저랑 내기 하나 하실래요?”
스스로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차가운 목소리에, 시녀의 자신만만했던 미소에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