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Mythic creator is a regressed player RAW novel - Chapter 187
감금 (4)
“도둑고양이가 들었나 봐요.”
그녀를 바라보는 가휘의 표정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연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었으니.
“희야, 너 설마…! 빈아, 빈아는?”
“…글쎄요?”
다급한 그의 외침 속에 제갈우희는 조금 전 자신이 겪은 일들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
지금으로부터 이 각 전.
호출을 받고 가주실을 찾은 그녀를 맞이한 것은 걱정 가득한 부모님의 얼굴이었다.
“집에서 지내는 동안 기분은 좀 나아졌니?”
“…많이요. 엄마도 저 요즘 얼마나 잘 먹는지 들으셨잖아요.”
“그래. 처음 왔을 때보다 표정이 많이 나아졌구나.”
남궁지약에 이어 부친인 제갈기 역시 한 마디를 보탰다.
“그 땐 어찌나 창백했는지, 이제야 좀 사람 같구나.”
“…혹여 조가장에서 도착한 서신은 없었나요?”
“없었다. 가휘에 대한 소식이 도착하거든 가장 먼저 알릴 테니 염려는 접어두고 넌 요양에 전념하거라.”
“고마워요, 아빠.”
얼마 뒤, 이야기를 마치고 가주실을 나서는 그녀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애초에 가휘를 납치한 당사자인 그녀가 가휘의 생존 소식을 기다릴 리 없었다.
평소 모옥에서 두문불출하며 가휘와의 불장난을 즐기는 그녀가 이따금 이렇게 밖에 나와 조가장의 동향을 확인하는 이유는, 혹여 자신이 양가 부모님께 한 거짓말이 들통나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으니.
딸이 근래 얼마나 문란한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두 분께서 아셨다면 아마 기절초풍하셨으리라.
허나 씁쓸함이 맴돌던 그녀의 표정은 모옥에 당도한 순간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침입자?’
모옥 내부의 풍경은 겉보기엔 부모님을 뵙고 오기 전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뛰어난 눈썰미와 암기력을 지닌 그녀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진법 발동의 핵심이 되는 축인 화분의 위치가 종이 한 장 차이로 어긋난 것을 발견한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대체 누가….
자신이 마침 자리를 비운 틈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 과연 우연일까?
기관을 다시 작동시킨 걸 보면 실수로 모옥에 들어온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면 상대의 목적은….
“…가가!”
안색이 창백해진 그녀는 곧장 비밀통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쿵쾅쿵쾅-!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크다.
현재 가휘는 능력을 봉인 당한 상황.
더구나 팔다리까지 묶여 있지 않은가.
그런 상태로 누군에게 해꼬지라도 당한다면?
“안 돼!”
콰앙! 쾅! 쾅!
비밀통로에 펼쳐진 진법들을 반강제로 해제하는 그녀의 손짓에 평소의 섬세함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앞길을 가로막는 관문들을 몇 개나 돌파했을까.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
“……!”
소스라치게 놀란 것도 잠시,
침입자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의 입에서 안도 한숨이 터져 나왔다.
통로 한쪽 벽에 비딱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여인은, 이 세상에서 절대 가휘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사람 중 하나였으니.
“빈아….”
“안녕?”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뒤에 아무도 없으니까 그만 기웃대. 그리고 이거… 잊었어?”
약빈이 품에서 꺼낸 물건을 본 그녀는 바로 납득했다.
자신이 직접 선물한 진법 파훼용 보패에 신투의 비전까지 더해졌다면, 비밀통로에 펼쳐진 진법 정도로는 못 막는 게 당연했다.
애초에 이곳은 제갈세가의 비처도 아닌 부부의 밤놀이터에 불과했으니.
“…세가에는 어떻게 들어왔어? 설마 담을 넘은 거야?”
“그랬다가 들키면 일만 복잡해지지. 정식으로 방문했어.”
“엄마, 아빠는 아무 말 없으시던데.”
“너 기운 차리게 해준다고 비밀로 부탁했더니 흔쾌히 받아들이시던데?”
어쩐지 평소에 비해 말씀이 기시더라니.
진상을 깨달은 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긴 그 때, 약빈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그런데… 휘 랑 말로는 눈이 뒤집혔다고 하던데, 그런 것 치고는 멀쩡한데? 너 제정신이지?”
“…가가랑 만났어?”
“어. 귀엽더라? 허락 없이 맛 좀 봤어.”
그제야 제갈우희는 상대의 얼굴이 묘하게 붉은 까닭과 조금 전부터 코를 은은하게 자극하는 익숙한 향기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흘이나 독차지했으면서 이 정도로 화낼 건 아니지?”
“…가가를 데리고 갈 거야?”
“눈빛 변하는 거 봐. 걱정 마. 방해할 생각 없으니까.”
생각지 못한 답변에 그녀의 눈썹이 꿈틀했다.
“모처럼 단 둘인데 그간 쌓인 거 마음껏 풀어.”
“진심이야?”
“너 그동안 마음고생 하는 거 옆에서 다 봤는데,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고.”
“…넌 화 안 나? 내가 말 없이 가가를 독점했는데.”
“네가 양심이 있으면 나중에 나한테도 차례가 오겠지.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약빈이 그녀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교관님이나 홍 소저야 어쩔 수 없었다지만, 나도 여기서 더 느는 건 싫거든.”
“…손 안 대고 코 푸시겠다?”
“넌 말을 꼭 밉게 하는 재주가 있더라? 야, 너 맨날 네가 정실이라며. 원래 정실이 기강 잡는 거 몰라? 그리고 나까지 너처럼 굴면 휘 랑 숨 막혀 죽을걸?”
투덜거리던 것도 잠시, 이내 표정을 푼 약빈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적당히 하고 돌아와. 휘 랑한테 미움받지 않을 정도로만.”
“…고마워.”
“너, 휘 랑 금제 언제 풀리는지도 못 들었다며.”
“넌 들었어?”
“어. 너 무서워서 말 못했다던….”
“언제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묻는 그녀에게 약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앞으로 이레.”
“이레….”
“내가 꼬치꼬치 캐묻는 게 이상했는지 중간에 말을 돌리긴 했는데 그렇게 들었어. 그러니까 귀엽다고 괴롭히지만 말고 적당한 시점에 잘 풀어주고.”
이레란 정보를 가만히 곱씹는 그녀에게 약빈이 작별을 고했다.
“나 이제 간다?”
“돌아가는 거야?”
“바로 갈 건 아니고. 너 위로해주러 왔다고 말씀드렸는데 벌써 돌아가면 의아해하실 거 아냐. 이왕 왔으니까 며칠만 묵고 가려고.”
“응….”
“아, 그보다. 나 너랑 생사결 벌일 것처럼 하고 나왔는데 이대로 가면 휘 랑이 의심할지도 모르니까… 잠깐만 와봐.”
그 말에 귀를 쫑긋 세우며 다가간 그녀에게 약빈이 그을음을 묻혔다.
“싸운 척 좀 하자고.”
사악하게 웃는 약빈의 모습에 제갈우희는 깨달았다.
약빈 역시 자신 못지 않게 가휘에게 쌓인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이윽고 머리를 맞댄 채, 어떻게 가휘를 골탕먹일지 논의하는 두 여인의 얼굴은 짓궂은 장난기로 가득 찼다.
***
“희야, 너… 그 피는…?”
회상에서 깨어난 제갈우희는 조금 전 약빈이 묻혀준 가짜 피를 슥 닦아내며 가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도둑고양이가 들었나봐요.”
“너 설마…? 빈아, 빈아는?”
너무 심했나?
상상이상으로 창백해진 가휘의 모습에 아차 싶었던 그녀는 서둘러 그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걱정 마요. 그간의 정이 있는데…. 생채기 몇 개 난 게 전부예요.”
“후….”
“그래도 이번 일로 알았어요.”
“…뭘?”
“빈아에게도 교육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녀는 가휘의 한 쪽 손목에 덜렁거리는 수갑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가가처럼 빈아를 위한 방을 따로 준비할 생각이에요. 말 잘 들으면 종종 가가의 시중 정도는 들게 해주려구요.”
“아… 잠깐….”
“도망칠 수 있을 줄 알고 기뻤어?”
“아니야. 안 그랬어.”
질린 표정과 달리, 다가서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하반신은 기대로 불끈거렸다.
한 차례 입맛을 다신 제갈우희는 그의 나머지 수갑들을 풀어주며 속삭였다.
“빈아랑 잔 거 화 안 낼 테니까… 오늘은 가가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뭐?”
“날 어떻게 하고 싶어요? 제멋대로 구는 나한테 화났잖아. 복수하고 싶어?”
“아니야, 복수라니. 생각도 해본 적 없어.”
기겁하여 고개를 젓는 그의 앞에 제갈우희는 옷을 벗고 나신이 됐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무릎까지 꿇고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어서요. 날 사파나 마교의 악녀라고 생각하고 가가의 울분을 나한테 풀어요.”
“정말 그런 생각은….”
“혼내줘요, 가가. 아니면… 나한테 혼나는 게 좋아?”
“…….”
그제야 침을 꿀꺽 삼킨 그가 눈치를 보며 그녀를 침상으로 넘어뜨렸다.
“응….”
묵직한 무게감에 짓눌린 그녀의 입에서 황홀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앞으로…이레라고 했지.
그 정도면 처음 계획했던 보름에는 미치지 못해도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독점욕도 어느 정도는 해소되리라.
시댁에서 오는 연락들은 빈아가 맡아준다고 했으니까.
가가를 달랠 걸 고려해도 앞으로 오 일 정도는 더 즐겨도 되겠…지?
얼마 남지 않은 둘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람차게 활용할 지 고민하며,
그녀는 전신으로 쏟아지는 쾌락의 파도에 몸을 맡겼다.
***
“가가, 손.”
척-.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
일주일 간의 감금생활이 내게 남긴 흔적이다.
“착하다. 머리 쓰다듬어 줄게요.”
아… 어쩌다 내 신세가 이렇게 됐을까.
다가오는 손길에 순순히 머리를 내미는 게 그리 싫지만은 않아서 더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오늘로 끝이다. 왜냐하면 오늘은….
[뽀미 : 깐-하] [크래카라 : 깐휘 형 오늘도 시원하게 까는 거야?] [현아낏 : 복귀축!] [리더유라 : 복귀 방송까지 천장 인트로네 ㅅㅂㅋㅋㅋ] [Nishiken : 무슨 상황이에요?] [간장맛쇠주 : 낯선 천장이다]우희는 볼 수 없는, 감금실 천장에 펼쳐진 또 하나의 세상.
채팅창을 바라보는 내 눈이 감동으로 이글거렸다.
시청자들의 인사가 이리 반갑던 적이 또 있던가.
그러나 난 일주일 만에 재회한 그들을 또다시 홀대할 수밖에 없었다.
[조가휘 : 여러분, 오랜만에 죄송하지만 잠시 하늘 좀 찍을게요.]혹시 감금방 안의 적나라한 풍경이 송출되기라도 하면 이번엔 2주 간 방송정지다.
1주로도 메말라 죽을 뻔 했는데 2주?
내가 오늘부터 1인칭 캠을 켜고 자면 사람이 아니다.
이를 갈며 카메라를 하늘로 날리던 그 때,
“응?”
나도 모르게 당혹성을 내뱉는다.
화면에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비쳤기 때문이다.
“가가?”
우희의 부름마저 무시한 채 화면에 집중한다.
저 멀리 솟은 전각들과 그 사이사이를 지나는 무사들의 희고 푸른 복식.
그것이 주는 익숙함이 내게 한 가지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긴 설마… 처가댁?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내가 일주일이나 갇혀 있던 곳이 제갈세가였다고?
하지만 놀랄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아- 날씨 좋다. 그치?”
네가 어째서…?
우희한테 사로잡혀 온갖 고초를 겪는 줄로만 알았던 그녀가, 모옥 지붕에 누워 람쥐 자매와 한가로이 과일이나 뜯고 있는 모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가가, 내가 얘기하는데 어디 봐?”
“…….”
감았던 눈을 뜨고 밑을 내려다본다.
요망한 미소를 머금고 ‘혼날래요?’라고 속삭이는 우희의 얼굴이 보인다.
평소라면 잔뜩 위축되었을 테지만,
난 더 이상 어제까지의 내가 아니었다.
“해봐.”
“…네?”
“혼내보라고.”
“아…그, 가가, 왜… 그래요.”
우희의 가면이 벗겨졌다.
두려움 없이 바라본 그녀는 더 이상 여왕님이 아니었다.
“가가, 지금 반항하는 거예요?”
뒤늦게 실수를 깨달은 그녀가 황급히 여유로운 미소를 가장했지만, 한 번 불붙은 의심을 진화하기엔 역부족.
그러니까 다 연기였다 이거잖아.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과 함께 단전에서 내공이 솟구친다.
철컹, 철컹-.
지난 일주일 간 날 구속했던 수갑들이 맥없이 풀린 순간,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우희가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뒷걸음질 쳤다.
“왜 벌…써.”
“뭐? 벌써?”
그 말은 곧 내가 언젠가 내공을 회복할 것이며 그 시기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
그리고 내가 그것을 알려준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으니.
-휘 랑,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리는데?
-아마 이레면….
그 순간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그러니까 너희 두 명이 짰다 이거지?
내공 회복까지 총 일주일 걸린다는 말을 앞으로 남은 기간이 일주일이라는 뜻으로 착각하기라도 한 걸까?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다행히 내 앞엔 그 추측을 확인시켜줄 당사자가 존재했다.
“둘 다 죽었다.”
“가…가?”
“난 너랑 빈아 잘못된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아…으….”
“이제 누가 혼날 시간이지?”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얼굴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제갈우희.”
“네, 네?”
겁에 질린 눈망울을 보며 난 씨익 웃어 보였다.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