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19
119. 바실란도 (Vacillando, 흔들리면서) -4
웃기지도 않는 소리.
서울대 음대의 수석 교수직을 역임하고 있는 강성욱 교수는 생각했다.
전혀 웃기지도 않은데, 헛웃음을 허, 허, 내뱉을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의 손끝이 건반에 닿은 그 순간,
딩-
[Schubert – Moment Musicaux No. 3](슈베르트 – 악흥의 순간 3번.)
‘호오? 준수하군.’
강성욱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원전연주’ 이론적으로 배워도 곧잘 시도되지는 않는, 학습적으로는 터득할 수 있어도 몸으로 익히는 수준으로는 대부분의 연주자가 갈고 닦을 일이 없는 연주방식이 바로 그것이었다.
누구나 배우지만, 갈고 닦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M스튜디오의 이성현은 달랐다.
그의 나이는 어렸다.
고등학교 1학년,
심지어 미향예고는 실기를 중시하는 학교이기에 이론보다는 실전을 공부한다는데, 정작 ‘원전연주’는 중학교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사실상 ‘첫 원전연주’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퍽 잘했다.
소문은 들었다.
천재라지?
하지만 천재도 1을 배우면 10을 아는 것이 천재지 아무것도 배운 적이 없을 진데 이 정도로 준수한 연주를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강성욱 교수는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퍽 준수한 연주자.
허나, 아직 ‘한국 종합 콩쿠르’의 본선을 밟을 수준은 아니었다.
좋게 봐서 2차 예선에 합격한다 해도 거기까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음대에서 젊은 나이부터 교수직을 역임하면서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수없이 봤다.
매스컴은 너무나도 쉽게 ‘천재’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그 때문에 천재가 너무 하향 평준화되지 않았던가.
진짜 천재라면 현재 대한민국에서 떠난 김정석 정도는 되어야 천재라고 부를 수 있다.
‘아쉽군. 딱 1년만 더 차분히 기다렸다가 왔다면 그의 팬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안타깝지만 이성현 참가자는 여기서···.
그렇게 강성욱이 마음속으로 결론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1분.
성현이 연주하는 악흥의 순간, 그 절반부가 지나가는 순간 이변이 있었다.
딩-!
이전보다 선명해지는 음색과 간결한 타건.
‘…!’
강성욱은 자기도 모르게 벙찐 눈을 뜨고 말았다.
곧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이 자리에 앉은 심사위원들 모두가 휘둥그렇게 눈을 뜬 모습이 보였다.
안개가 짙게 끼어있던 숲에 시원한 바람이 불 듯, 시야가 탁 트인다는 감각을 귀로 느낄 만큼 확연히 드러나는 음색.
변모하는 음감.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는 모르겠다만, 성현의 연주는 실시간으로 더 듣기 좋게, 더 아름답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한 발짝 늦게 변화의 정체를 알아채는 강성욱.
그는 다시금 성현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성현의 손끝을 날카롭게 노려보기 시작하는 강성욱 교수.
불투명하게만 들려오던 선율이 급격히 맑게 물든 까닭은 단순했다.
성현은 ‘원전연주’로 악흥의 순간 3번을 연주하다가 한순간에 ‘통상적 연주’로 연주 방식을 바꾼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이런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 단순하면서도 위험천만한 묘기에 ‘프로’를 수십년간 보아왔던 심사위원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한 이유는 단순했다.
‘저 피아노는 지금 원전연주에 맞춰 조율돼 있을 텐데?’
대체 어떻게 의도적으로 다르게 조율된 피아노로 통상적인 연주를 해낼 수 있다는 말인지.
강성욱 교수는 성현의 손끝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에 자신의 미간을 검지로 문지르던 교수는 또 한 번 놀랐다.
분명 성현의 연주는 악흥의 순간 3번을 연주하고 있었을 텐데, 들려오는 선율은 지극히 선명한 4번.
즉, 이 자리에 모인 심사위원 모두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성현은 자신이 준비해온 다음 곡을 잇따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참···. 당돌하기로는 사제가 똑같군.’
피식,
강성욱 교수는 멋대로 연주를 이어가는 성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심사위원단에서 평가 방식을 분명 공지했거늘, 그걸 뒤엎고 자신만의 색을 다채롭게 뽐내는 성현의 연주.
하필 평가 기준이 ‘원전연주’였던 터라 다소 심심하고 먹먹한 연주들만 1시간 넘게 듣고 있던 터라 성현의 이러한 패기는 좋게만 보였다.
어리기에 내지를 수 있는 패기.
그 용기가 강성욱 교수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다.
‘더 듣고 싶구나.’
어느새 강성욱은 성현의 연주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성현의 연주에 심취한 이는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던 듯, 심사위원들은 모두 멍하니 성현의 연주를 듣고만 있었다.
그런 그들은 잠시 후, 너무 놀라게 된다.
성현의 연주는 악흥의 순간 4번··· 뿐만이 아니라 무려 6번까지 이어졌음에도, 심사위원들은 그 누구도 성현의 연주를 끊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
성공이었다.
1차와 2차로 나누어진 예선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지는 서울대 음대 교수 강성욱, 그의 미소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니 그 순간, 1차 예선 통과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아마, ‘신인 죽이기’의 곽재윤은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1차 예선에서 원전연주를 제대로 선보일지라도, 그 연주를 통해 2차 예선부터 진행할 통상연주 실력이 ‘한국 종합 콩쿠르’의 권위에 어울리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고 말이다.
실제로 놈은 전생에 그걸 빌미로 김민호의 개별연습 시간을 또 빼앗을 계획을 세웠고, 흑막의 존재를 모르던 민호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휘둘려야 했다.
물론, 그 대상이 김민호였기에 정면에서 그의 간악한 계략을 고작 73시간의 연습으로 돌파한다는 미친 성공 신화를 이뤄내지만, 그건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현재보다 퍽 많은 경력과 경험으로 무장한 김민호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리라.
아무튼, 현재 곽재윤은 깨달았으리라 내가 자신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걸 위해 일부러 곽재윤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흔들렸지만,
흔들리면서도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까다로운 귀를 가진 강성욱 교수의 마음을 움직였으니, 실패하지 않았다, 가 아니라 성공했다고 평가해도 좋으리라.
마지막까지 벙찐 표정이나 휘둥그런 눈을 떴던 심사위원들과 다르게 나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던 곽재윤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놈은 표정관리가 쉽게 깨지는 인간이 아니었기에 내가 상당한 충격을 줬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휴우~”
다행이었다.
내 노골적인 비아냥과 도발이 통했으니 아마 놈은 괴롭힘의 대상을 지은이나 민호로 수정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나를 더 괴롭히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들겠지.
뭔가 시원스럽게 복수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은이를 지켰다는 사실에 나는 내심 뿌듯해졌다.
그렇게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고, 오늘 연주회장의 분위기나 구조를 알려주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아마 지은이는 내가 말해주는 짤막한 정보를 통해 자신의 긴장을 완화시킬 단서를 찾을 것이며, 민호는 알아서 이런저런 말을 보태며 연주회장을 디테일화 시키고 자신의 경험을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자신만의 준비를 하리라.
셋이서 같은 팀처럼 행동하는 건 처음이었지만,
우린 정말 오래된 팀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젠 내가 그 두 천재와 더없이 잘 어울리는 존재가 되었다는 확인을 받는 것 같아서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연주회장 인근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던 두 사람을 찾아가자 지은이와 민호는 서로 다른 반응으로 나를 환영해주었다.
“괜찮아?”
“늦었네?”
당연히 안부를 물어봐 준 쪽이 지은이였다.
그녀에게도 민호에게도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악의적으로 우릴 노리고 있다는 말 정도는 했기에 걱정해준 것이다.
그 와중에 민호는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여주니 이건 일종의, 자신감 표명이라고 보면 좋으려나.
아무튼,
우리는 어차피 같은 날에 예선을 진행하게 된 거, 이처럼 아침 조인 나부터 저녁조인 민호의 일정이 끝날 때까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안이 어떻냐면···.”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정보를 공유하는 나.
두 사람은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보다 더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갔다 올게.”
그렇게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연주할 곡을 점검한 지은이가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챙겼다.
“아, 잠시만 저 앞까지만 데려다줄게.”
“이런 커프ㄹ···.”
“자, 얼른, 얼른 가자 지은아.”
민호의 뾰로통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지은이와 카페를 나온 나.
좀 걷던 우리는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카페를 나오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은이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요새는 단둘이 남으면 꽤나 장난꾸러기에다 수다쟁이가 되는 그녀였기에 이는 충분히 긴장한 모습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지은아.”
“응?”
그래도 새된 소리 없이 즉각 대답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녀도 어수룩했던 예전보다 더 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줄게.”
그런 그녀에게 내가 내민 것은 바로, 초콜릿이었다.
“하, 이거 그거야?”
내 손에 놓인 초콜릿을 보자 바로 헛웃음을 흘리는 지은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럼, 긴장을 풀어주는 마법의 초콜릿이지. 이번에는 효과 확실해. 내가 방금 시험하고 왔거든.”
“생체실험 같은 거야?”
“임상시험이라고 하자. 그렇게 말하면 뭔가 무섭잖아.”
내가 그리 말하자, 지은이는 그런가? 하며 귀엽게 고개를 까딱였다.
무슨 고양이 같은 모습이었다.
“근데 미안, 나 최근에 긴장에 진짜 효과 좋은 약을 찾았거든.”
그런데 그녀가 내 초콜릿을 거절하는 건 예상외였기에 나는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그, 그래?”
“응. 초콜릿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거.”
내가 준비한 초콜릿과 비교도 안 된다니···.
“그게 뭔데?”
좀 섭섭한 마음이 들었던 내가 뾰로통한 얼굴로 그리 말하니 지은이는 잠시 주저하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뺨을 붉히더니 말했다.
“이, 이거···!”
그렇게 말하며 지은이는 정말 돌발적으로 나를 꽉 끌어안았다.
주변에 사람이 없지도 않은데, 갑자기 이런 식의 과감한 행동을 하다니···.
지은이도 참, 장난꾸러기가 다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딱 붙으니 콩, 콩 하고 뛰는 지은이의 심장 박동까지 다 느껴졌는데, 부정맥이 심히 의심될 정도로 너무 빠른 리듬이었다.
“지, 지은아!?”
지은이의 돌발 행동에도 차분했던 생각과 달리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과하다 싶을 만큼 괴상한 음을 내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삑사리.
아, 역시 나도 놀랐던 건가.
심히 부끄러워서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때, 마침 나를 올려다보는 지은이.
그녀는 홍시처럼 붉은빛으로 얼굴을 한껏 물들이고서는 내 얼굴이 달아오른 것을 퍽 만족스럽다는 듯 보고 미소를 짓고는,
“다녀올게!”
그렇게 말하며 달아나버렸다.
게다가 이제 보니 그녀가 반대편 횡단보도에 도착하는 순간 신호등은 다시 빨간빛으로 변했다.
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 같더니······.
내가 혹시라도 쫓아오지 못하게 시간을 계산한 모양이다.
정말,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고양이 같은 모습이었다.
허나, 나는 순간적으로 달아올랐던 얼굴과 마음을 차분히 하며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녀와 내가 눈높이가 비슷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녀가 안겨있었을 때 지은이의 머리는 딱 내 가슴팍 밑에 닿아 있었다.
나도 키가 많이 크긴 했나 싶다.
음, 그래.
차분하게.
그래도 내 정신 연령이 있는데 지은이에게 온정신이 오락가락할 순 없지 않은가.
차분하게 차분하게.
“거기 학생···.”
“네?!”
그렇게 마음을 가지런히 가다듬는 데 집중하고 있자 길을 지나던 행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얼굴을 알아본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사인을 부탁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 학생이 아까부터 횡단보도 신호가 네 번 바뀔 동안 움직이질 않아서 혹시 어디 아픈가 싶어서 말 걸어봤어.”
“아···. 네. 네?”
네 번?
시간이 언제···.
차분하기는 무슨, 나는 지은이의 행동에 충분히 휘둘린 듯했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곽재윤의 치밀하면서도 엄청나진 않았던 수작질은 대놓고 실패로 돌아갔다.
지은이는 그 안기 크흠, 특효약이 효과가 있었는지 연주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승리의 V사인을 보내왔다.
마찬가지로 민호는 썩 나쁘지 않은 연주였다고 말을 했으니, 아마 최고의 연주를 선보이고 돌아온 듯했다.
그렇게 삼일이 더 지났다.
드디어 서류 심사와 간략한 예선을 거쳐 2차 예선에 합격한 사람과 경합을 벌일 조가 발표되는 날.
나와 지은이 민호를 비롯한 교감 선생님, 전 학기 담임이었던 정혜선 선생님, 거기에 피아노 전공 담당 김기택 선생님이 다 함께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건오 한국 종합 콩쿠르’의 위상은 상상 이상으로 크기에 이것만 합격한다면 아마 그들에게도 큰 이력이 되는 모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1차 예선에 합격하다! 역시 미향예고!
그런 현수막 같은 게 걸리려나.
뭐, 나는 개인적으로 강성욱 교수의 미소를 봤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그 사람과 지은이, 민호가 아직 합격을 확신할 수 없으니 같이 앉아있을 뿐.
“떴다!”
가장 경쾌한 목소리를 내며 빠르게 반응한 사람은 다름 아닌 피아노 전공의 김기택 선생님.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합격 명단 및 2차 예선 조’라는 파일을 클릭해 펼쳤다.
이윽고 그렇게 열린 파일에는 각기 다른 조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들이 복잡하게 나열되어 있었는데,
“있다!”
“B조 이성현에 D조 김민호!”
“G조에 지은이도 있어요!”
“와아아아! 다 합격했어!”
“다 붙었다고?!”
“고등학교 1학년에 ‘한종콩’ 예선을 뚫는다고?”
우리보다 선생님들이 더 들떠서는 왁자지껄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셋은 당연히, 셋이서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아자!”
“해냈다!”
“아, 아자!”
승리의 환호를 내질렀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기만 하던 와중···.
“어?”
나는 내가 배정된 B조에서 이상한 이름을 발견해 급작스럽게 환호를 멈추고 모니터를 응시했는데.
‘B조 3번 최윤설’
최윤설.
그분은 다름 아닌 지난 이틀간 내가 학교에서 찾아다니던, 본래라면 2학기부터 미향예고의 교사로 취임했을 낙제생들의 은사님.
최윤설 선생님, 내 은사님이었다.
아니, 이 분이 왜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