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living again RAW novel - Chapter 159
159 뮤직 샤벨 – 5
연습실 문을 멋대로 열고 들어가는 건 결코 좋은 행동이 아니다.
퍽 친하지 않은 동급생이 그런 일을 해도 무례하다는 말을 들을 법한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이곳, 뮤직 샤벨에서는 더더욱 그렇겠지.
그래서라고 생각했다.
처음 내가 지은이의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부터 그녀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이유 말이다.
나는 곧장 본론을 이야기했다.
“…이 뮤직 샤벨에 있는 열두 명의 파이널리스트가 모두 협력하면, 더 좋은 연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는 편이 더 빠르고, 지은이는 당황할 때 질문을 받으면 묘하게 침착해지는 경향이 있는 아이니까.
다행히 내 예상은 적중했는지, 지은이의 경악스러웠던 표정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대강 3분 정도?
지은이는 깊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꾹 닫고 있었고 그녀가 처음 말문을 열었을 때, 들려온 단어는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성현아···.”
“응?”
“호,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설마 또 과로로 열이 오른 거야? 아니면···.”
“아니야, 아니야! 나 멀쩡해. 왜 그래 지은아.”
“왜 그러냐니, 여긴 뮤직 샤벨이잖아. 협력이라니···. 게다가 우리 둘이서도 아니고 열두 명이 다 같이 협력하고 싶다니. 말이 안 되잖아.”
아주 당연하게, 상식적인 시선을 읊어주는 지은이.
그래, 나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협력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는 건 아니잖아?”
맹 돌진을 시작한 나는 그리 간단히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 그렇지만···. 성현아. 우린 파이널리스트들이야. 결승전이 있고 나면 승패가 갈리고 등수가 나뉠 거 아냐. 그런데 다른 피아니스트분들이 순순히 협력하겠어?”
“난 그분들이 궁금한 걸 물어보시면, 내가 아는 걸 모두 말해드릴 거야. 그걸로는 안 되려나?”
지은이의 표정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로 빠르게 휙휙 변했다.
나 자신도 알고 있기는 하다,
나의 얼토당토않은 제안과 이상한 근거. 믿음을 주는 것조차 적잖은 위험부담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작곡, 과제곡의 모든 걸 다 털어놓는다는 퍽 과감한 혜택을 약조하려고 했다.
그것도 파이널무대까지 남은 기한이 오늘을 포함해도 5일뿐인 현재에.
그런데,
지은이는 말했다.
“또 뭔가 일을 벌이려는 거지?”
“응. 대신 말이야···.”
“알았어. 협력할게.”
내가 뭔가 지은이에게 이득이 되는 조건 따위를 말하기도 전에 말이다.
“응? 이, 이렇게 쉽게 날 믿어줘도 돼?”
너무 놀라는 바람에 내가 되묻자, 그녀는 싱긋 귀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내가 내 남친을 믿지, 누굴 믿어.”
“아니, 그래도···.”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뭔가를 해서, 실패한 적은 없었잖아? 그런 거야.”
즉, 경험에 기인한 믿음이라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지은이가 나를 그냥 믿어주기로 한 사실만큼은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예전부터 내 억지를 현실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주었었으니까.
믿음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고마워, 지은아!”
나는 활짝 웃으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방금까지만 해도 이성적이던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이번 일이 꼭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세한 계획을 검토했다.
***
두 번째 협력자는 다름 아닌,
‘협력’이라는 말에 일순간 환한 미소를 지었다가 이내 이성을 되찾은 정석 선배였다.
“혀, 협력을 하자고? 진심이니 성현아?”
선배는 지난 세미 파이널의 연주회 ‘프로그램’을 짜는 일부터, 이번 파이널 무대마저 이미 존재하는 곡이 아닌,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태에 가장 큰 피해자거든.
솔직히, 선배의 실력과 숱한 경력 그리고 그의 역량을 보면 그는 결코 12명의 파이널리스트 중, 10번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올해의 과제들이 너무나도 정석 선배에게 따라주지 않았을 뿐.
그러니까, 선배는 이번 콩쿠르에서 최고의 불운을 맞이한 피아니스트.
그런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에 내가 나타나서 한마디 하는 것이다.
“작곡을 도와드릴게요. 대신 과제곡 분석을 도와주세요.”
약점을 충족시켜드리고, 강점을 활용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드리겠다고 말이다.
“성현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분석을 도와달라는 건 저랑 지은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이번 파이널리스트 12명이 서로 협력하는 뮤직 샤벨을 꿈꾸고 있거든요.”
그래, 허무맹랑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략 반백년,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던 뮤직 샤벨을 내가 바꾸겠다 선언하는 것이니까.
허나, 선배는 아쉬울 것이다.
자신의 약점인 작곡, 그걸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인 지은이가 바로 내 옆에 서 있으니 말이다.
“그래. 성현아 알겠어. 대신, 여기 우리 셋을 포함해서 최소 여덟 사람 이상의 동의를 받아내면 나는 그때 협력하는 거로 하마.”
“네! 그거면 되요.”
승낙,
나는 처음 계획대로 다음 순번의 파이널리스트, 박의범씨에게 향했다.
“…협력 말이니?”
당연히, 당황하는 박의범씨. 허나, 정석 선배조차 동의했다는 사실을 말하자 그는 짧은 고민 끝에 협조를 약속해주었다.
승낙.
이어서 향하는 니엘 리히터의 연습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번 콩쿠르 파이널 무대에 오른 것으로 만족하는 눈치였던 피아니스트 프리츠씨의 연습실.
그리고 마찬가지로 9번으로 파이널리스트에 올라 세상을 다 가진 듯 날뛰셨던 올리비아씨의 연습실로.
이미 협력을 구한 파이널리스트가 다시, 다음 파이널리스트의 설득을 위한 근거가 되었고 일은 다소 어렵지 않게 흘러만 갔다.
“한 명도 거절을 안 했어···. 벌써 일곱 명이나···?”
일이 너무 순탄하게 흘러가자 솔직히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지은이.
“처음부터, 다음 분들을 설득할 계기가 될 사람을 먼저 찾아간 거거든.”
“…그러면 다 알고 있었다는 거야? 저분들이 뭐가 약점이고 어떤 부분이 강점인지까지 전부? 어떻게···?”
“아, 그건···.”
물론, 전생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자료였다.
퀸 엘리자베스의 파이널리스트, 이토록 유명한데 피아노 중독자였던 내가 이들을 못 알아볼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걸 이야기할 순 없으니 나는 대충 둘러대었다.
“나는 먼저 유럽에 와 있었으니까. 사전조사를 해봤을 뿐이야.”
“그 많은 무료 연주회를 다녔으면서 조사까지 했다고···?!”
그런데 내 예상보다 훨씬 더 화들짝 놀라는 반응의 지은이.
“어? 으, 응.”
양심에 찔려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는데, 지은이는 그저 날 대단하다는 듯 바라보며 감탄의 목소리를 높일 뿐이었다.
뭔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뭐 어때, 이번 일만 잘 풀리면 되는 거지.
“마지막은···. 민호구나?”
“응. 원래 같으면 두 번째로 찾아갈 예정이었지만, 요새 민호가 날이 서 있었잖아?”
“아, 알 거 같아. 약간, 위태로운 느낌?”
“응. 그래서 마지막 순서로 했는데, 혹시 서운해하진 않겠지?”
“음···. 아마? 최근에는 한창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느라 신경도 안 썼을 거 같아.”
그렇게 완벽한 방음처리가 된 민호의 연습실 앞에서 잡담을 마치고 그 문고리를 잡은 그 순간,
“너무하네, 둘이서만 이런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었어?”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어?”
“음?!”
우리가 놀라 동시에 뒤를 돌아보자,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서슬 퍼런 표정을 짓고 있던 그 민호가 장난기 있는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이미 정석 선배가 와서 말해주셨어. 협력하자는 거지? 그것도 이 뮤직 샤벨에서.”
“…응.”
“같이 해보자. 성현이 네가 과연,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을 만들지. 그게 보고 싶어.”
그리 말하며 한껏 웃는 민호.
그의 표정에서는 이전부터 계속 느껴지던, 불안감, 공포 따위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걸 혼자서 극복해낸 건가···.’
나는 내심 민호의 강한 의지에 감탄하면서 그가 내민 손을 움켜잡았다.
이로써 정석 선배가 제시했던 여덟 명이 충족되었다.
***
닷새째 아침.
여덟 명의 파이널리스트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식당을 나가지 않는 기행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여덟 명의 피아니스트 중에는 정석도 있었다.
음식이 치워지고, 대강 동그랗게 책상을 움직여 무슨 원탁과도 같은 것이 만들어지더니. 곧장 중앙에 서는 성현이.
“자, 그럼 우선 여기 계신 여덟 분 중 네 분께 약속드린 이 과제곡의 얽힌 사연을 가장 먼저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갑작스레 곡을 받는 것과 그 곡이 작곡되던 배경을 알고 있는 건 곡을 분석하는 데 하늘과 땅 차이의 결과를 만든다.
솔직히 성현이 우연히 듣게 되었다는 그 작곡 배경에 마음이 움직이는 건, 아무리 정석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그렇기 듣게 된 과제곡의 전말은 정석의 예상보다 간단한 것이었으면서 동시에, 아주 강렬한 이야기였다.
사람의 생과 사라는 주제는 언제나, 2000년의 세월이 흘렀을지라도 여전히 큰 힘을 가지는 주제이니까.
“…까지가. 제가 듣게 된 경위였습니다.”
과제곡에 대한 설명을 마친 성현이 그렇게 말을 마쳤다.
사실, 야박하고 치졸하게 행동한다면 바로 이 순간 이득만을 취한 상태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좋을 일이다.
아무리 비겁해도 퀸 엘리자베스라는 콩쿠르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1등을 거머쥘 가치가 있고, 애초에 뮤직 샤벨이라는 공간은 내부에 있는 동안 협력하라고 빌려주는 곳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다만, 정석을 포함해 모두가 그러지 못한 까닭은···.
“그리고 다음은, 제 분석을 들려드릴 텐데요···.”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성현이가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자신의 분석을 읊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제목과 두 감정. 그런데 제 생각에 이 곡은 처음부터 주선율과 반주가 아니라, 주선율과 주선율이 있는, 음. 그러니까···. 두 주제를 모두 살려야 하는 곡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말을 이어가는 성현.
그걸 귀담아듣는 다른 일곱 파이널리스트.
이윽고, 성현이 말을 마친 듯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바톤 터치를 받듯 입을 연 사람은 민호였다.
“그러니까, 성현이 네 말은···.”
성현의 분석에 대한 자신의 소견, 그리고 숨겨도 될 자신의 분석까지 천천히 논하기 시작하는 민호.
“재미있네, 근데 작곡 수업을 계속 들어왔던 내 생각은 이래···.”
거기에 지은이마저 자신의 탁월한 작곡 능력을 바탕으로 자작곡 과제와 공통 과제곡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버렸다.
이를 가만히 앉아 지켜보던 정석.
그는 생각했다.
참, 우스울 따름이라고.
뭐가 우습냐면···. 현재,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연주자인 그 세 명이, 아직도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했다는 것이 우스웠고, 이젠 아시아의 세 별이라 불리는 그 셋이···.
자신의 분석과 유리한 고지를 모두 내려놓고도 이토록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정말. 대단했다.
베테랑 피아니스트니, 한국을 대표해 독일 오케스트라에 왔느니 하던 정석, 자신보다 열 배, 아니 백 배는 대단한 피아니스트들이 된 그 셋.
정석은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풍경과 흡사한 기억을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M스튜디오에 적응해가던 1년 전의 성현이와 툴툴대면서도 도와줄 건 다 도와주는 지은이 그리고 매번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 누구보다 용기가 넘쳐나던 민호까지.
과거와 겹쳐지는 현재.
허나, M스튜디오의 천재라 불리던 세 학생은 지금, 퀸 엘리자베스의 파이널리스트가 되어있다.
정석은 같은 파이널리스트로서 위기감을 느끼거나, 경쟁심을 불태우기도 전에···.
이 모습, 이 광경이 너무나도 보기 좋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
니엘 리히터에게 뮤직 샤벨에서의 앞선 나흘은, 갑갑한 시간이었다.
그녀는 분석력이면 분석력, 연주실력이면 실력 거기에 작곡 능력까지. 뭐하냐 모난 곳 없는 만능의 피아니스트였지만, 사방이 벽으로 턱턱 막혀 평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람과도 제대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는 환경에는 영 적응하질 못했다.
그녀는 본래 말이 없는 편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말하는 것보다 타인의 말을 듣는 걸 더 선호했던 것뿐이었으니까.
아예 대화가 없는 이런 공간은 솔직히 영광스럽고 자시고 싫다고 니엘은 생각했다.
그러던 중, 성현에게서 협조 제안을 받았다.
‘그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곧바로 들었지만, 답답한 것이 싫었던 그녀는 주저없이 성현에게 협력했다.
이윽고, 뭐가 잘 되려나 싶은 마음 반, 성현과 그의 협력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한 흥미 반으로 식당에 갔고···.
“…두 개의 제목 두 감정···.”
시작부터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성현이 시작한 말을, 받아치는 민호와 그 두 사람과는 다른 시각에서 다른 가능성을 제안하는 지은.
세 사람은 이 콩쿠르에서 가장 어린 사람들일 텐데, 막상 이 콩쿠르의 그 누구보다 ‘곡’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어서 뭔가 체념한 표정의 정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피력.
서서히 무뚝뚝한 프리츠, 낯을 가리는 올리비아까지 의견을 보태며 회의는 풍부해져갔다.
심지어, 그 속에서 나오는 자작곡에 대한 팁들과 과제곡에 대한 분석은 니엘도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어하던 부분들을 아주 시원하게 뚫어버렸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신의 시선이 어느새 퍽 좁아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협력을 하다보니 자신의 자작곡은 순식간에 전보다 풍부한 소리를 가지게 되었다.
손에 아무것도 없던 여덟 명은 어느새, 다들 펜과 수첩을 손에 들고 있었고···.
그곳에서 나눈 대화를 그저 조금씩 적었을 뿐인 수첩은 당장 눈앞까지 다가온 자신의 파이널 무대를 삽시간에 발전시켜주었다.
우리의 이러한 변화를 어느새 감지했는지.
알렉시스를 비롯한 협력 제안을 받지 못했던 이들이 슬슬 이쪽에 관심을 가졌고, 성현은 그런 그들을 오히려 환영해주었다.
그렇게 닷새째 밤. 협력자는 열 명이 되었고, 엿새째 아침이 밝자···.
열두 명의 파이널리스트는 모두 아침 식사를 마치고도 이 넓은 식당에 남았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간략한 인사를 시작으로 어느 새부턴가 이 파이널리스트들의 대표와 같이 여겨지기 시작한 성현이 중앙에서 말문을 열었다.
그렇게,
이 뮤직 샤벨은 지금까지로 써는 상상조차 못 할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과정에서 잡음은 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파이널 무대에서 9명분의 심사 권한을 가지게 된 요셉 데커, 그는 뮤직 샤벨에서 연습이 시작된 지 정확히 일주일째 되던 날인 오늘, 조금 늦었지만 파이널리스트들을 만나보기 위해 뮤직 샤벨에 발을 들였다.
천천히, 요셉 데커는 생각했다.
이번 콩쿠르 무대에서 연주될 여덟 번의 ‘왈츠’.
아마 그중에서 요셉의 마음을 충족시켜줄 연주자는 성현···. 좋게 봐도 민호까지 포함한 두 명에 불과할 거라고.
허나, 요셉의 속에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조차 결국, 요셉이 그 곡을 작곡하던 당시의 심정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으리라는 확신 말이다.
뮤직 샤벨의 환경은 물리적으로는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환상적인 장소라 할지라도 심리적으로는 꽤나 심각한 부담감을 주는 장소이다.
지금껏 ‘왈츠’를 연주했던 마흔넷의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왈츠를 ‘사랑’ 혹은 ‘슬픔’에 취해 몸 둘 바를 모르는 주정뱅이로 전락시켰다.
“왈츠는···. 그런 곡이 절대 아니거늘······. 쯧.”
그 마흔넷의 피아니스트들은 최고의 몸상태와 최상의 심리상태를 가지고도 그것 밖에 분석하지 못했었는데, 과연 심리적으로 절벽 끝에 내몰려진 이 뮤직 샤벨의 파이널리스트들이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을까.
요셉은 자신의 가정에 절로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
이런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점차 분석력을 잃어가는 곳에서 어떻게 ‘왈츠’에 올바른 분석을 해낼 수 있겠는가.
“말이 안 된다. 말이···. 음?!”
요셉이 ‘연습동’을 거닐다 이상한 점을 눈치채는 건 바로 그때였다.
아무리 방금처리가 완벽한 ‘연습동’이라도 아주 미세한 음은 들리는 게 정상일 텐데···.
정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뭐지···?”
단체로 파이널 무대를 포기하기라도 했다는 걸까.
그것도 창밖이 이토록 환한 대낮에 연습실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니.
기이한 상황에 요셉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는데, 이변을 눈치챈 것은 ‘연습동’을 나와 ‘생활동’에 들어서는 그 순간이었다.
“…지만. 이렇게 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요셉이 이를 따라가니 마주하게 된 곳은 바로 자신이 한껏 성을 내던 그 식당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닫힌 문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들.
“설마···. 이 뮤직 샤벨에서 다 같이 협력이라도 하고 있다는 말인가?”
당연히 말도 안 되리라 생각하며 홀로 중얼거린 그 말.
끼이익,
그러나,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는 서로서로 북돋아 주고, 자신의 분석, 의견을 아낌없이 주고받는 열두 명의 파이널리스트들이 보였다.
“이게 무슨···!”
너무 놀라 작지 않은 목소리로 그런 중얼거림을 흘린 요셉이었지만, 파이널리스트들은 하나같이 회의에 집중해, 요셉의 방문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열성적이고 열의 넘치게 이어지는 협력의 풍경.
요셉은 근 10년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에 너무 놀라···.
입을 떡하니 벌리고는 그 자리에서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다른 파이널리스트들에게도 그러했지만, 이런 모습은 정말 전통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례적인 광경이었으니까.
요셉은 굳은 그대로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콩쿠르들과 올해의 콩쿠르는 뭔가, 다를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