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100
97. 술래 때리기
공사장의 펜스가 내 앞을 막았다.
왕자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왼손을 위로 뻗으며 뛰었다.
폴짝 뛰어 펜스 끝을 잡고, 그대로 몸을 당기듯 날려 넘어가자, 곁을 지나던 커플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우흐럭!”
여자는 놀란 눈만 부릅뜨고, 남자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뒤에서 여자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시하고 내달렸다. 경찰이 오면 내가 곤란할 수도 있지만, 상대도 곤란할걸?
여긴 한국이다. PWAT가 오든, 불멸특수대가 오든 일단 내 편이라 이 말이지.
“대기, 그쪽 전화기 내려놓습니다. 이곳은 지금부터 공무집행 구역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 쪽에서 제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몇 마디 더 경고를 남겼지만, 그건 들리지 않았다.
난 그사이에 이미 왕자를 안고 안으로 들어왔으니까.
짓다 만 건물은 철근과 콘크리트의 속살을 그대로 드러냈고, 계단 따위도 없었다.
난 1층 벽을 뒤에 두고서야 멈춰 섰다.
“왕자님.”
“후우, 후우, 어지러워.”
“정신 차리시고.”
너무 빨리 달렸나 보다. 왕자가 멀미를 호소했다.
내 옆구리가 고급 세단만큼 승차감이 좋을 수는 없지.
“왜?”
“위치 추적기 심었죠?”
“왕족의 의무야.”
실종, 납치 등의 모든 걸 대비해 요인의 몸에 추적기를 심는 건 기본이다.
나도 안다.
그래서 이렇게 추적당할 것도 예상했고.
이 추적기를 먹통으로 만들려면 재밍을 해야 하는데.
내 전문분야도 아니고, 그럴 만한 여건도 안 된다.
잡히면 안 되는데 숨을 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못 하는 일에 연연하는 것보다 잘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어릴 때 술래잡기의 왕이 된 이유는 하나지.
난 발이 빨랐다.
그리고 지금은 손도 빠르고 머리도 쓸 줄 안다.
왕자와 담소를 나누는 사이, 어둠을 뚫고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한다.”
뒤에서 라이트를 비춰 역광 때문에 눈이 부셨다. 눈이 적응하자 상대가 보였다.
에바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다가오는 중이었다.
변신족의 충동은 종종 다른 방향으로 분출되곤 한다. 그건 모든 변신족이 훈련하는 기본기다.
가령 성욕이 끓어오른다고 그 욕구에 모든 걸 맡기는 게 아니라, 운동이나 폭력으로 욕구를 대체하는 거다.
지금 에바는 성적 충동을 살인 충동으로 바꾼 거로 보였다.
세로로 쭉 쪼개진 동공으로 날 노려보는데, 돈 떼먹고 도망간 놈을 몇 년 만에 만난 듯한 눈이었다.
“집요한 여자는 인기 없어요.”
에바의 뒤로 로버트와 다니엘, 조이가 보였다.
조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네가 실연당한 여자의 기분을 알아?”
에바가 그렇게 말하며 길쭉한 송곳니를 보였다.
오, 저거 좀 무섭다.
달빛조차 들지 않는 어두운 공사장 건물 안, 어둠을 뚫는 눈과 번쩍거리는 송곳니라니.
고어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GPS 제거는 불가능할 거야. 여기서 얌전히 잡히면 나쁘게 대하진 않을 거고. 유, 포기해.”
조이가 말했다.
“진짜요?”
“물론이지.”
웃으며 말하는 데 난 확신했다. 이 자리에서 저 새끼가 제일 비열한 놈이라고.
거짓말을 물 처마시듯 하고 자빠졌네.
그렇게 순순히 잡히면 끝이 잘도 좋겠다.
“이대로 잡히면 제가 꿈에서도 괴로울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이들은 왕자의 목숨을 노린다. 확신까진 아니지만, 반쯤은 예감했다.
“네가 알 바 아니야.”
말하며 에바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래, 대답은 기대도 안 했다.
사실 궁금하지도 않아.
지금 중요한 건 내 임무의 목표뿐.
내 목표는 왕자의 목숨을 살리는 것.
그리고 지금은 내가 제일 잘하는 걸 할 차례다.
“봐줘요. 에바, 한때 사랑했던 남자잖아요.”
“사랑 안 했어. 넌 그냥 노리개였지.”
개소리에 개소리로 답한 에바가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변신족의 괴력이 섞인 일격이다. 고개를 뒤로 젖혔다.
훙- 하고 압력이 코앞을 스쳤다.
피했는데도 코뼈가 욱신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왼손 훅에 이은 로우킥.
변신족은 몸을 다루는 능력이 무척 뛰어나다. 짧은 훈련만으로 일류 격투기를 흉내 낼 수 있다.
에바가 그랬다.
그녀의 콤비네이션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주먹과 발에 힘을 싣는 방식도 훌륭했다.
제대로 훈련했고 실전을 경험한 변신족이었다.
콰직.
난 왼발을 내줬다.
발을 들어서 막으며 적당히 힘을 흘렸음에도 무릎이 시큰거리며 뒤틀렸다.
그래도 다 돌아가진 않았다.
이 정도면 뭐.
“애송아, 변신족한테 거리를 내주면 당하지.”
로버트가 뒤에서 입을 털었다.
누가 모르나.
하지만 내가 이렇게 당한 덕분에 당신들 전부 꼼짝할 생각도 안 하잖아.
다들 자기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스타일이란 말이지.
고로, 에바가 혼자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일에 굳이 손을 쓰지 않는다는 거다.
다니엘만이 뭔가 불만인지 뒤에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왜? 넌 날 직접 패고 싶었냐?
미안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왕자에게 달린 추적기를 제거할 수는 없으니 숨을 수도 없다.
그렇다고 왕자라는 짐을 안은 채 고속 질주를 계속할 수도 없다.
잡히기 전에 왕자의 속이 뒤틀려서 죽을 거다.
도망갈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술래를 조지면 된다는 거다.
팀장은 잡히지 말라고 했지, 술래를 피하라곤 안 했다.
대략 이레 동안 난 허접한 방귀태를 연기했고.
이들이 아는 나는 동대문의 구원자가 아니라 운 좋게 불멸특수대에 들어간 바보였다.
미안, 귀태 형.
형을 연기하긴 했는데 조금 더 오버하긴 했어.
왕자와 말싸움을 하는 건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머저리로도 보였을 거고.
전부 계산한 건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 거고.
그건 곧 상대의 방심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지금 난 여기서 에바의 일격에 무릎이 돌아간 걸 보여 줌으로써 용의 눈을 그려 넣은 셈이 되었다.
화룡점정, 방심과 방심.
그 틈에 생긴 기회다.
에바는 내 무릎을 반쯤 부순 뒤, 미소를 보였다.
만족감이 느껴지는 얼굴로 그녀가 더 다가온 순간, 난 품에서 나이프를 꺼내 던졌다.
내 나이프는 다니엘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팽하고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나이프는 로버트의 팔뚝에 막혔다.
“어설프다.”
로버트는 설교가 취미였다. 알아, 자식아. 어설픈 거.
에바는 내가 나이프를 던지자 아래에서 위로 주먹을 올려쳤다.
깨끗한 폼의 어퍼컷이었고.
너무 깨끗했기에 반격이 쉬웠다.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며 그녀의 가슴을 밀쳤다.
“어딜!”
에바가 사납게 외쳤다. 적당히 힘을 줘 밀자, 그녀가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난 도로 힘을 뺐다.
휘청하고 그녀가 균형을 잃고 앞으로 기울었다.
그 틈에 나이프를 하나 더 꺼내며, 조금 전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옆구리에 꽂았다.
푹.
“끅.”
에바가 신음을 흘렸다.
옆구리에 나이프를 꽂자마자, 난 그녀의 머리카락을 쥐고 점프하며 머리 위를 뛰어넘어 올라탔다.
그녀가 주먹을 휘둘러 날 때렸다.
빡 하고 옆구리에 맞았는데.
베리어가 달린 코트 위였다. 헥사곤 필드, 육각 결계가 모양을 갖추며 그녀의 일격을 막았다.
그사이 난 목을 쥐고 사정없이 옆으로 꺾었다.
마지막까지 목에 힘을 줘 반항하려 하기에, 나도 힘을 줬다.
우득.
반쯤 목이 꺾이고.
에바는 턱을 바르르 떨며 뒤로 통통 물러났다.
일반인이라면 죽겠지만, 변신족의 생명력은 끈질기다. 불멸자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 죽지는 않지.
물론 침은 좀 흘릴 수 있다.
“으드드. 너으으.”
질질질, 그녀의 입가로 맑은 액체가 흘렀다.
목뼈는 신경 다발이 지나는 곳이다. 충격이 제대로 전달되면 전투 불능이란 소리지.
일단 하나 아웃.
티딩.
에바를 제압하고 다시 왕자 곁으로 돌아오자, 로버트가 제 무기를 꺼냈다.
긴 검은 막대 끝에 창날이 튀어나온 게 보였다.
음, 나름 살벌한걸.
다니엘도 손을 들며 자세를 취했고, 조이도 양손에 권총을 꺼내 쥐었다.
난 대충 땅을 디디며 다리 상태를 점검했다.
불멸자로 각성한 이후, 수없이 잘리고 다쳤다.
통증의 정도와 체감하는 정도로 회복하는 시간을 역산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30초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완치는 아니어도 뛸 수는 있다.
“로버트,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뭐?”
“변신족도 방심하면 거리를 주든 말든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이.”
“넌 정말 미친놈이야.”
조이는 여전히 웃는 낯이다.
“당신 웃는 건 재수 없어요. 그리고 그 판은 제가 속인 거 맞아요. 불멸자랑은 도박하는 거 아닙니다.”
고스톱을 알려 주면서 뒷장 좀 뺐다. 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지, 이 얍삽한 놈.”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니까요.”
“멍청한 척 연기한 거지? 왕자님과도 처음부터 짠 거고?”
조이가 물었다.
“왕자님.”
뒤에서 다니엘이 몹시 복잡한 심경을 담은 눈으로 왕자를 불렀다.
왕자가 막 아니라고 말하려 하기에 그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퉤!”
왕자가 내 손가락을 뱉었다.
그사이에 내가 입을 열었다.
“불멸특수대를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오해의 소지가 깊어질 만한 말을 해 주자.
조이가 입가를 바로 하고 눈썹을 씰룩였다.
처음으로 웃음을 잃은 그 얼굴을 보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꽤 괜찮았다.
“우리 셋, 아니, 이 병력을 상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조이가 물었다.
“네.”
말하며 코트를 벗었다. 파라락 하고 벗은 코트를 왕자의 어깨에 둘렀다.
“비싼 겁니다. 잃어버리시면 안 되고요.”
“싸구려야.”
그놈의 주둥이.
우둑, 우두둑.
목을 좌우로 꺾고.
손을 탈탈 털고 자세를 잡는다. 상대의 숫자를 확인하며 슬쩍 품에 넣어둔 권총의 무게를 느꼈다.
이대로 싸우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야, 어떻게든 살겠지.
하지만 왕자는 죽는다. 손 하나로 막기에는 좀 많잖아.
그럼 어떻게 할까.
술래 하나 조졌으니, 다시 튀면 되지.
선입견은 무섭다.
뒤가 막히고 유일한 출구를 막으면 상대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세웠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난 자세를 잡고 몸을 돌렸다.
타다다당!
조이가 권총을 갈겼다. 내가 입은 건 얇은 케블라 섬유로 만든 방탄 슈트다.
투두두둥.
권총의 화력으로 뚫기에는 무리지.
퍼버벅!
탄환이 주는 충격은 몸으로 버티며, 난 뒤를 막은 벽 앞까지 왼발을 디딘 다음 오른발 끝을 틀었다.
오른발 끝부터 발목, 무릎, 허리까지 회전력을 응축.
변신족의 괴력이 더해, 주먹을 뻗는다.
훙, 공기가 뒤로 밀려나는 감각과 함께 주먹과 벽이 맞닿았다.
꽝!
주먹 한 방에 벽이 무너진다. 출구가 없다면 만들면 된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돼.”
어머니가 날 데리고 다니며 수없이 한 말이다.
변신족의 괴력은 길이 없는 절벽도 오르게 한다. 잡을 게 없으면 손가락으로 벽에 구멍을 내면 된다는 식이다.
그 가르침 그대로 난 새로운 출구를 만들고 왕자를 던졌다.
훙- 하고 날아간 왕자의 뒤를 따라서 나도 몸을 날렸다.
왕자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일어나 달렸다.
그걸 보며 왕자의 뒤를 몸으로 가렸다.
어지간한 총격은 방패가 되어 버텨 줘야 했다.
혹시나 코트 밑으로 드러난 왕자의 몸에 총알이 박히면 끝이니까.
몇 개의 탄환이 내 몸을 관통하기도 했다.
방탄 슈트가 가리지 못한 부분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으니까.
총구를 보고 피할 환경도 못 되고 말이다.
그렇게 달리는데, 끔찍한 직감이 뒤통수를 긁었다.
훙.
파공음이 뒤늦게 귀를 때렸다. 반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날아오는 걸 몸으로 막았다.
퍽!
“음.”
짧은 신음이 흘렀다.
“유!”
왕자가 날 불렀다.
이런 로버트, 나한테 보여 줄 때는 이거 근접 무기처럼 썼잖아요.
이런 음흉한 양반.
무식한 흑곰 불멸자의 스틱은 투척 무기였다.
그 양날 창이 내 옆구리에 주먹 두 개만 한 구멍을 만들었다.
내장은 피했다. 마지막에 가까스로 몸을 비틀었다.
그래도 갈비뼈 몇 개는 갈렸고 근육은 찢어졌고, 신경은 박살 났다.
더럽게 아팠다.
“갑시다.”
난 통증을 억누르며 왕자를 안았다.
다리도 완벽하게 회복된 게 아니었고 옆구리에 구멍도 났으며, 벽을 부순다고 주먹도 망가졌다. 그래도 쉴 수는 없으니 뛰었다.
술래를 전부 잡을 수 없다면 술래가 쫓을 수 없는 속도로 도망가면 된다.
본래 계획은 그랬는데.
이거, 옆구리 구멍이 상당히 크고 피가 울컥울컥 솟는걸.
급한 대로 왼쪽 옆구리에 왕자를 끼고 오른손으로 상처를 틀어막았다.
지체할 시간은 없었기에 다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