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355
349. 바른말은 뜨겁고 따갑다.
“기척 죽여. 기세를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게 취미가 아니면.”
“아니, 본인이나 잘…….”
너나 잘하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이중봉의 이명은 팬텀.
기척을 죽인 채로 움직이는 걸 장기로 삼는 양반이다.
그래, 너 잘났다.
마지막 잔소리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아마추어는 없다. 프로 중의 프로를 가르쳐도 무방할 실력자만 있었으니.
한번 해 본 일을 다시 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좋은 훈련 상대다. 해 봐.”
작대기 선생이 툭- 하고 어깨를 쳤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아들, 반 타이밍 늦게 들어오긴 했다. 기척이고 뭐고 간에 제대로 들어오렴.”
어머니와 통나무 선생이 시선을 끌면 내가 일격을 꽂아 넣는 게 전술의 핵심이다.
고로 두 분과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그래, 이것도 인정이다.
기척 숨기랴, 몸 움직이랴, 그러다 보니 타이밍 조금 어긋났다.
조오오오금이다.
많이도 아니고 두 분이 날 보고 충분히 조절할 정도였는데.
“쟤보다 더 센 애 나오면 안 잡을 거야? 그럼 너 보면서 속도 맞출 자신 없다.”
통나무 선생도 거들었다.
“네네, 알겠습니다요.”
“어? 빈정 상했다. 입꼬리 조금 올라갔죠? 배알이 꼴리면 저래요. 제가 다른 남자랑 있는 거 보고 저러더라고요.”
옆에서 혜민이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언제 너 남자랑 같이 있는 거 보고 이랬냐.
말을 해도 똑바로 해야지.
정확히 말하면, 네가 과외 빼먹고 지나가는 남자를 쥐어패고 있어서 그랬지.
하도 하기 싫다고 옹알거려서 데리고 나왔더니, 지나가는 사람은 왜 패냐고.
뭐, 그 작자야 맞을 타당한 이유가 있긴 했지만, 그때 난 얘를 어쩌지 하는 눈빛으로 본 거다.
“아들, 그러다 밴댕이라는 말 듣는다.”
“바른말이 본래 뜨겁고 따갑지.”
어머니와 중봉이 형은 의외로 죽이 잘 맞는구나.
근데 둘이 동년배로 보이는데, 계속 형이라고 하긴 그러네.
이중봉 새끼라고 해야겠다.
그래, 이중봉 새끼 말대로 제대로 한다. 하고야 만다.
“가시죠. 지금부터 달라진 저를 보여 드릴 테니.”
말을 덧붙이면 신나서 더 떠들 위인들이다.
그러니 몸으로 말한다. 실력으로 보여 준다.
아까의 전투를 되새긴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단 낫네.”
뒤에서 이중봉 새끼가 말했다.
난 앞으로 나아가 걸었다. 기세를 감춘다. 변신체에서 자연스레 뻗어 나가는 박력을 감춘다.
잔소리였지만, 도움이 되긴 했다.
두 명의 불멸자는 조언을 했고, 난 조언을 듣고 곧바로 실행했다.
금색 바실리스크는 눈에서 광선을 쏘았다.
맞는 순간, 그 일대를 태우는 광선이다.
변신족 몸뚱이가 아무리 튼튼해도 맞고 버티긴 곤란한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불멸자가 몸으로 때울 수도 없었으니.
그들은 전부 피했다.
이번엔 시선을 강혜민이 끌었다. 중첩된 은하수 필드 위로 광선이 맞닿았고, 터졌다.
별을 담은 방어막은 제 역할을 다해 냈다.
약점은 미간 사이, 기척을 죽인 채 뛰어오른 광익은 뇌전을 방류하는 뿔을 담은 창을 내리꽂았다.
빠각! 까드드득!
단단한 껍질이 깨지며 눈 사이에 구멍이 난다.
광익은 그 안에 임팩트 총구를 쑤셔 넣고 당겼다.
익숙해졌기에 할 만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할 만하다는 건 쉽다는 말과 같았다.
실수는 없었다.
중봉은 광익의 움직임을 감각으로 전부 하나하나 읽곤 놀랐다. 물론 속으로만 놀랐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지켜보며 말 한마디 안 할 순 없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만티코어의 항문에 창을 꽂고, 그사이 달려드는 미노타우르스의 머리통을 총으로 쏴 갈긴다.
머리가 터진 인베이더가 쓰러진다.
그 모든 동작이 한 호흡이었다.
기척은 기가 막히게 감춘 채로 한 짓이었고.
그 사이사이 기척을 흘리고 속여 미노타우르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일부러 기척을 흘려서 따라오게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달려들기에 총을 쏜 것이 전부였다. 소 대가리가 멍청해 보일 정도였으니.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다른 얘기다.
흘리고 속이고 흩날리는 기세를 적절히 이용했다.
중봉은 솔직히 인정했다.
저건 천재라고.
특별한 혈통, 그게 저 미친 특수종을 정의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기도 안 차는 말이다.
지금 저 모습을 보라.
단 한마디에 조언에 움직임이 변하는 저 재능을.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특수종이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아들이, 참.”
중봉은 그 모든 감탄을 짧은 말 한마디에 담았다.
불멸자 수준의 눈치가 없어도 알아들을 만했다.
“네, 잘났네요.”
곁에 선 강슬혜가 말을 받았다.
“팔불출이다. 이년아.”
장가희가 눈은 광익에게서 떼지 못한 채로 말했다.
농담 섞인 구박이다.
“잘난 걸 어쩌니.”
강슬혜가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박탈감이 느껴지는군.”
주일호, 작대기 선생은 고요한 눈으로 말했다. 담담했으나, 그 말은 여기 있는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을 했더니, 날아 버린다.
어디에 날개를 숨겨 놨는지 보지도 못했는데, 어떤 새보다도 높게 날아 버리니.
“역시 우리 서방.”
“혜민이 파이팅.”
박탈감 따윈 개나 줘 버린 혜민과 강슬혜를 제외하면, 그들이 느낀 감정은 같았다.
그렇다고 좌절할 이유 따윈 없었다.
이미 세파에 시달리다 못해 별의별 일을 다 겪은 이들이다.
그들은 그저 광익의 등을 보며 내심 인정할 뿐이었다.
저 등이, 저 특수종이, 저 아이가.
미래를 이끌어 갈 세계 최고의 특수종이 맞다고.
세최특이라니,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기가 막히게 잘 지은 이명이지 않나.
아니, 저 양반들은 놀러 왔나.
사장이 이리 몸소 싸우는데 뒤에서 노닥거리고 있다.
무슨 잔소리를 더 할지 전술 회의라도 하시나.
“아따, 일 안 합니까? 다들 월급 받고 이러시면 안 되죠? 강혜민?”
“가요. 서방님.”
“넌 오지 마!”
하여간 저 서방 소리는 이 세계에서나 저 세계에서나 한결같네.
자이언트 웜에서 자꾸 인베이더가 튀어나온다. 빠른 속도는 아니지만, 플랜트는 미니 블랙홀이나 다름없지 않나.
그럼 그냥 둘 순 없고.
난 임팩트를 들고 왼 주먹으로 후렸다.
떠-엉!
묵직한 한 방에 종소리 비슷한 울림이 대기를 때렸다.
꼭 인베이더 대가리를 후려쳐야 에너지가 충전되는 건 아니다.
임팩트는 충격 에너지를 흡수하는 거니, 내가 때려도 된다는 것.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멈추라고 손짓하고 적당히 옆으로 돌아 박동하는 플랜트 옆구리에 총구를 갖다 댔다.
크기는 작은 운동장만 한가.
철컥. 꽝!
방아쇠를 당긴다. 집결된 에너지가 송곳처럼 날아가 거대 플랜트의 벽에 구멍을 뚫었다.
훙 하고 사람 머리가 들어갈 만한 크기다.
“남은 수류탄 다 모아 주세요.”
내가 말했다. 플랜트의 외피는 꽤 단단하다. 특히나 이건 임팩트 수준이 아니면 구멍도 안 난다. 그럼 안에서 부수면 될 일.
입구에서 나오는 인베이더는 나오는 족족 족치면 된다지만, 이런 흉물스러운 걸 눈앞에 둘 수야 있나.
“플랜트의 생명력은 질기다.”
작대기 선생의 말이다. 수류탄 몇 개로 깨끗이 지울 순 없다는 건데.
“제가 할게요.”
뒤에서 혜민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했다.
“네가?”
무시하려는 말투는 아니나, 통나무 선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혜민이가 좀 치는 스펠 유저라는 건 이미 안다.
하지만 규모 있는 폭발을 일으키려면, 어지간한 주문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나는 통나무 선생의 반응을 이해했다.
그럴 수 있었다.
스펠 유저라는 것도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종류가 다르다.
그중 혜민은 특출난 쪽이지만, 그 형태는 명확했다.
몸을 쓰는 스펠 유저라는 것.
강화 주문을 주로 쓰고 방사형 주문 따위를 쓰지 않는 타입이다.
“뭐, 대강 될 것 같은데요.”
혜민이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뭐, 얘가 아니면 나가서 폭탄이라도 제조해서 들고 와야 할 판이다.
그 사이 이 플랜트를 놔두면 뭘 더 낳을지 모르겠다.
저 금덩어리 두 마리도 얘가 낳은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러니 여기서 처리하면 베스트다.
혜민이 말하고 다들 거리를 벌렸다.
플랜트의 입구 앞이 또 진득한 액체를 흘리기 시작했다. 인베이더가 또 튀어나올 것이다.
대략 백 미터쯤 거리를 벌린 뒤다.
“준비하는 동안에 아무것도 못 하니까 지켜 줘요.”
혜민이 말하고 우두커니 섰다.
근데 나도 궁금하긴 하네, 얘가 방사형 주문을 그리 팡팡 써 대는 건 못 봤는데.
혜민이가 허리춤에서 긴 지팡이를 꺼냈다.
“그건 뭐냐?”
“암시장 금고에 있던 거.”
보기만 해도 되게 기분이 나쁜데.
겉은 까맣고 그 끝에는 하얀 보석이 달려 있었으며, 비린내 따위가 났다.
생선 비린내라기보다는 말라붙은 피비린내 같은 거?
무엇보다 감이 안 좋다. 옆에 두고 싶지 않다.
“냄새 고약하지? 저주받은 물건이다.”
“느낌이 묘하지? 저주받은 물건이다.”
통나무 선생과 작대기 선생이 짠 것처럼 동시에 말했다.
“두 분 합이 잘 맞네요.”
“안 맞아.”
“개소리.”
둘은 곧 날 두고 사랑싸움 비슷한 걸 했다.
아무래도 둘이 정말 친해지다 못해 많이 가까워진 것 같다.
난 둘을 두고 혜민이 쥔 지팡이에 집중했다.
저주가 붙으면 안 써야 하는 거 아닌가?
탁.
내가 혜민이 팔목을 쥐었다.
“위험한 거면 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하면 돼.”
아직 연습 중이지만, 나도 남겨 둔 한 수가 더 있다.
혜민이 고개를 내려 제 손목을 잡은 내 손을 보곤, 다시 고개를 들더니 날 바라봤다.
“이건 프러포즈?”
“실수로 포옹이라도 하면 곧바로 애라도 생기는 거냐?”
“그런 주문을 개발해 볼게.”
“미친 소리 그만하고.”
“괜찮아.”
내 말을 자른 혜민이 생긋 웃었다. 우습게도 난 그리 웃는 혜민이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물론 곧바로 그 생각은 지웠다. 귀엽긴 무슨.
저 얼굴로 쌍욕 뱉는 걸 한두 번 봤어야지.
“저주, 안 걸리고 쓸 수 있겠더라고.”
“그건 무슨 확신이냐?”
“그냥 감.”
강혜민은 천재를 넘어선 수준의 스펠 유저.
혜민이의 감은 곧 어지간한 스펠 유저의 계산보다 뛰어나다.
“할 거야.”
손목을 놨다. 하겠다는데 어쩌겠나.
그리고 정말 위험해진다고 하더라도.
저주 따위야 김주희 여사가 알아서 해 주겠지.
그 외 물리적 위험이야 막아 주면 그만이고.
크우어어!
그 사이, 플랜트가 두 번째 미노타우르스를 뱉어 냈다.
저거 참 용하네, 또 팔십 번대야?
한 마리만 나온 것도 아니다.
뒤에서 다른 놈도 튀어나왔다.
스으으윽.
양손 있는 자리에 빨간빛이 흐르는 도끼를 달고 있는 놈이 스무스하게 앞으로 나와서 선다.
길로틴, 넘버링 83번이다.
저 도끼는 단분자 커터만큼이나 날카롭다.
고로 잘못 걸리면 여기저기 싹둑 잘리는 건 일도 아니라는 것.
두 놈을 시야에 두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해요.”
“여기서?”
어머니가 되물었다.
블랙홀이 배회하는 인베이더를 뽑아 내는 거라면, 플랜트는 인베이더를 생산한다.
그 차이는 크다.
“쟤네 대가리가 나빠요.”
경험이 쌓이지 않은 단순한 패턴만 반복하는 인베이더란 거다.
팔십 번 대부터는 보통 네임드보다 한 단계 낮은 놈들.
보통이라면 상대하기가 까다로울 것이다.
특히 근접전에 들어서면 짧은 시간, 제 몸을 다루는 법을 익혀 나가는 괴물이 될 것이니.
지금 필요한 건 피 한 방울.
똑. 떨어진 피가 내 왼손에 달린 기생 기어로 스며든다.
늘어난 기생 기어가 팔뚝을 타고 흘러 검지 끝에서 총구를 만든다.
라이플에 달린 얇은 관 따위가 팔뚝 혈관에 연결되고.
라이플이 꿀렁 하고 내 피를 다시 빤다.
그리고 그 피는 곧 푸른 탄환이 된다.
청기사의 에너지를 머금은 탄환 되시겠다.
블루 피어스.
창으로 찌르는 것보다야 위력이 낮겠지만.
쟤들은 전신에 금붙이도 안 둘렀을뿐더러.
저격 따윈 경험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본능만으로 이 탄환을 막으면 인정이다.
그럼 가까이에서 쥐어 터질 자격이 있다.
왼발을 꽝 바닥에 찍어 고정하고, 등은 어머니 쪽에 기댔다.
어머니가 눈치 좋게 내 몸을 받쳐 주셨다.
겨누고 쏜다. 단순한 동작이 결과로 치환된다.
총성은 소리는 한발 늦게 도달하며.
소머리가 터지는 소리와 겹쳤다.
쉬지 않고 두 번째 탄환을 쐈다.
길로틴은 제 넘버를 증명하듯 반사적으로 도끼를 겹쳐 막았으나.
탄환이 곧 놈의 도끼를 깨부수고 머리통을 반쯤 터트렸다.
쓰러진 놈의 머리에서 까만 액체가 줄줄 흘렀다.
“죽여 주네.”
보던 작대기 선생이 한마디 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선생님.
강푸름 이 새끼, 기어에 청기사 부산물을 잘도 섞었어요.
“흐으으으으.”
그사이 주문 준비가 끝났는지, 혜민이 입에서 신음이 흘렀다.
신음 위로 한기가 겹친다.
혜민의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혜민이의 동공이 두 개로 겹쳐진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