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Of the Unique Lineage RAW novel - Chapter 381
375. 빙글, 빙글.
램 더스트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장막을 걷겠다고 건물을 부숴?’
그래, 애초에 모든 건 계획적이었다.
건물 안에 들어오는 것도.
이 건물을 전투의 무대로 삼은 것도.
그럼 싸움이 쉬워지니까.
그녀가 가진 초능은 그림자 조형.
그중에서도 건물 안 같이 막힌 공간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그림자 감옥이라 이름 붙인 기예다.
모든 초능이 그렇듯, 기술에 이름을 붙이고 이미지를 구현하면 능력이 더 강해진다.
그런 의미로 그녀는 가진 기술을 분류하고 구현했다.
그림자 감옥은 그림자를 늘려 사방을 장막으로 채우는 것.
자신의 그림자이기에, 상대의 감각을 차단할 수 있다.
다만 주변이 막혀야 한다.
공간이 넓어지면 그림자가 뭉치지 못하고 흩어진다.
‘첫수가 발 구르기로 깨지네?’
상대는 괴물이다. 그것도 전투 방면에서는 탁월한 본능을 지닌 괴물.
‘짜릿해.’
위기감이 찌릿하게 전신을 치달린다. 그게 그녀를 흥분하게 했다.
건물이 무너지는 걸 보며 램은 몸을 뺐다.
비틀린 창문이 펑 하고 터지는 걸 보고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림자로 만든 갑옷이 건물 잔해와 깨진 유리 따위를 튕겨 냈다.
그러면서도 장막을 거두진 않았다.
세최특은 작은 빈틈만 보이면 그대로 짓쳐 들 것이다.
상대는 불멸자의 감을 지녔다.
그래도 하나는 다행이었다.
준비한 제물과 저주가 제대로 먹혔다.
상대의 고속 재생은 봉인한 셈이다.
저걸 해주 하려면 골치 꽤 아플 테니, 지금 당장은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세최특을 상대할 때 가장 골치 아픈 것 중 하나가 고속 재생이었다.
“아자!”
제 건물을 무너뜨린 세최특이 뭐가 그리 신났는지, 건물 잔해를 뚫고 나오며 상쾌한 기합을 터트렸다.
펑 하고 건물 잔해를 사방으로 흩어서 내보낸다. 쨍하고 햇볕이 유리, 콘크리트, 철근 따위를 비췄다.
건물 밖으로 나온 세최특은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그러더니 곧 고함을 내질렀다.
“모든 회사원이 바라는 뻑킹 리스트 하나 내가 해 줌!”
왜 저러는 걸까.
“회사 건물이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소원 접수 완료!”
세최또라고도 부른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그리고 찾았다.”
그 뒤에 목소리를 착 낮추더니 중얼거렸다.
어라?
순간 상대가 사라졌다.
불멸자의 기척 죽이기.
아직 그림자 감옥이 다 흩어진 것도 아닌데?
뒤에서 날아온 손날이다. 램은 어깨가 부서지는 걸 느꼈다.
물론 그녀의 본체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발동한 초능이 그녀를 지켰다.
그림자 분신이 그녀를 대신한다.
그녀의 초능은 닳디 닳은 것.
불길함을 인지한 순간, 반응했다.
본체는 훌쩍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그림자로 이미 마킹해 둔 곳이다.
“깜짝이야, 어디 숙녀 몸에 함부로 손을 대니?”
“말투 되게 재수 없네.”
세최특은 제 앞에 무너진 그림자 분신을 보며 아쉬운 듯 혀를 찼다.
곧 그림자 분신은 흐물거리더니, 수증기처럼 흩어졌다.
쿠르르릉.
그의 뒤로 건물이 반파되면 먼지구름이 훅하고 일어났다.
‘이제 내 차례다.’
라고 세최특이 말하는 것 같았다.
순간, 시야가 전부 가려졌다.
기감이 탁월하지 않다면 상대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그래도 괜찮았다.
램은 준비한 게 많았으니까.
그림자 감옥은 그녀가 가진 이능 중 아주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가령 일인 군대와 버금가는 기예도 있었다.
그림자 군세.
이건 그녀의 의지로 움직이는 그림자 분신 수백을 만드는 거였다.
그 외에도 내장과 심장 따위를 그림자에 전이해 치명상을 피하는 것도 있었으며.
상대의 몸과 접촉하면 순간 몸의 자유를 뺏는 그림자 조종 같은 것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최후의 비기라 할 수 있는 흑백 세계가 있었다.
그녀가 인지하는 모든 곳을 흑과 백으로 나누며 수묵화처럼 변화시키는 초능이다.
쓰고 나면 며칠은 앓아 누어야겠지만.
그래도 그 효과만큼은 명확했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쓰는 그림자 장막은 흑백 세계의 아류에 불과했으니까.
강력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그림자 손도 있다.
세최특의 괴력이라면 금세 찢겠지만, 그의 움직임을 일순간 제한은 할 수 있는 그런 능력.
‘고속 재생을 봉인했으니, 다음은 팔다리를.’
사지 중 하나만 잘라도 승산이 불쑥 높아진다.
그녀는 기대했다. 이후에 벌어질 처절한 싸움을.
그녀는 기대했다. 이어질 상대와의 수 싸움을.
그녀는 기대했다. 끝내 승리해 세최특의 몸을 그림자로 삼키는걸.
하지만 모든 기대는 실망을 동반하는 법이었다.
빙글.
순간, 램은 왜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아직 제대로 된 어떤 카드도 꺼내지 못했는데?
상대는 세최특이지만, 미친 또라이.
싸우는 도중 반쯤 정신을 놓고 이상한 기합을 내지르는 미친놈.
여전히 저 멀리 선 채로 대치하는 상대.
빙글, 빙글.
세상이 돈다.
그녀의 생각은 점점이 끊어졌다.
뚝뚝 끊어진 상념이 몇 가지 생각을 이어 갔다.
‘아직 저기 있는데.’
한참 멀리서 세최특은 기세를 여실히 뿜어내고 있다.
그런데 빙글 돌아가는 그녀의 시선에 세최특이 또 보였다.
자신의 뒤였다.
어떤 기척도 기세도 없이 마치 자신의 그림자처럼 뒤에 선 채였고.
손에는 칼날이 한 뼘은 넘는 나이프를 들었으며 그 나이프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허공에 점점이 빨간 비눗방울 같은 게 흩날리기도 했다.
‘예쁘네.’
그리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시야에서 램은 제 몸을 볼 수 있었다.
분신이 아니었다.
본체다.
‘아.’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찰나의 시간 그녀는 깨달았다.
‘당했네.’
그녀의 본체에는 머리가 없었다.
뭘 해 보기도 전에 간만 보다가 목이 잘렸다.
얼마나 빠르게 잘랐는지, 목이 잘린지도 몰랐다.
통증조차 못 느꼈다.
목이 잘린 채로 생각을 이어 간다.
깨끗한 패배.
‘신념 따위.’
죽기 직전에서야 그녀는 자신의 오만함과 고집을 깨달았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그녀는 더는 세상을 인지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안다’고.
보이는 게 전부라고.
이 할망구도 그랬을 거다.
머리가 돌아 버린 특수종.
세최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저돌적인 또라이.
말투와 상황, 그걸 인지하는 사람의 위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램 더스트, 그녀는 내 이미지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다.
거기에 그동안 내 전투 방식도 봤을 거고.
공격 일변도, 저돌적인 변신족.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도 있었을 거다.
그림자를 조정하는 걸 떠나, 품은 사이오닉 에너지 하나만으로도 막강한 상대다.
자기가 내 천적이라고 생각했으려나?
불멸의 재생은 저주로 잡았으니.
일단 주문으로 불멸은 잡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유리한 건 누구였을까.
모른다. 다만, 난 빈틈이 보였고 그 빈틈을 후벼 팠을 뿐이다.
건물이 무너지고 먼지구름 따위로 시야를 가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난 그저 기척을 흘리고 속이고 죽였다.
그 상태 그대로 몸을 날렸을 뿐이다.
그녀가 보는 건 환상.
기감이 발달한 특수종이기에 볼 수 있는 환영.
실제의 나는 기척을 죽인 채, 그녀의 뒤에서 칼을 휘둘렀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목이 잘린다.
초능 특수종의 목이 무슨 강체화 된 변신족이 될 순 없는 거니까.
비약으로 생명을 이어 갔다고 해서 할망구의 몸이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었으니까.
방심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대비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유를 말하자면 밤새도록 말할 수 있다.
다만, 가장 단순한 이유 하나만이 답이 될 뿐이다.
내가 더 강했다.
긴 세월 살아남은 프로메테우스 수장의 목이 떨어졌다.
난 상념을 집어치우고 후하고 숨을 한 번 내쉬었다.
“건물 부수는 게 복지라고요?”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근육이었다.
“회사 다니면 이런 상상 한 번쯤은 하지 않아요? 회사 건물이 무너져서 강제 휴업.”
“……죽였네요.”
“손에 사정을 둘 상대는 아니니까. 뭐. 그렇죠.”
“이겼네요.”
“에, 질 것 같았어요?”
“큰 부상도 없네요.”
“팔이랑 발 이런 데 까졌어요.”
생채기 몇 개를 보여 줬다.
김근육은 웃었다.
부다다다다.
곧이어 테러로 엉망이 된 곳 위로 대형 드론이 날았다.
카메라가 달린 드론이다.
렌즈가 위잉 움직이며 날 비추기에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었다.
램 더스트가 죽은 뒤 하루.
서울에서 일어난 모든 테러를 제압했다.
사상자 수는 두 자리 이내.
그것도 테러로 인한 피해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열린 어스 블랙홀 때문에 생긴 피해였다.
전심전력으로 모인 한국의 특수종 단체의 위업이었다.
뭐, 그걸 모은 것도 나고.
결국, 계획의 중심에 선 것도 나지만.
“덕분입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나.
싸움의 정리가 아직 끝나기도 전에, 각 단체의 수장이 모였다.
대통령과 단군 그룹의 회장, 사이오닉 협회장까지.
“진심으로?”
외할아버지가 묻는다.
“진심으로 덕분이라고 생각하냐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이번에 나라에서 민간 기업에게 주는 상을 새로 만들었는데, 어떻습니까? 광익 군.”
나한테 상을 주지 못해 안달 난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주시면 감사하죠.”
나 생각보다 사회생활 잘한다.
이중봉 밑에서 거뜬히 회사에 다녔다는 걸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런데 다들 날 보면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난 위선적으로 웃을 수 있는 남자다.
“아, 협회장님, 왜 이렇게 말씀이 없으십니까? 자리 불편하세요?”
싱글벙글.
웃음과 함께 말을 건다.
협회장은 끙하고 신음을 삼켰다.
“불편하신가 보네. 아, 혹시 저 때문에?”
“무슨!”
협회장은 되려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꼬우시면 덤비셔도 되는데요?”
난 사회생활 만렙의 회사 대표다. 내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말을 가릴 줄 알지.
“안 덤빌 거요. 죽어도.”
협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보던 외할아버지가 낄낄 웃었다.
“늙은이 놀리는 거 재밌냐?”
협회장이 그 말에 발끈했지만, 어딜 감히.
일단 외할아버지 포스에 눌린다. 단군 그룹과 사이오닉 협회 덩치 차이가 좀 난다.
“허허, 농담이 늘었군요. 광익 군.”
대통령은 날 계속 광익 군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프로메테우스 잡았으니까 숨 좀 돌리는 거냐?”
테러 단체는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점조직으로 운영하지만, 결국, 머리통 하나가 잡히면 다른 머리통의 꽁지 머리라도 보이는 법이다.
죽은 건 프로메테우스의 수장.
그리고 이쪽에서 캐낸 건, 프로메테우스의 본진.
남은 건 정보를 탈탈 털어먹는 건데.
그 전에 하나.
“제가 이상한 저주에 걸렸거든요.”
“당장 마법 연맹에 요청해서 저주를 해결해야겠네.”
“큼.”
내 말에 외할아버지는 의문을.
대통령은 행동력을.
협회장은 고소하다는 내심을 보여 줬다.
“협회장님?”
“당장 연맹에게 항의해야지.”
거, 목소리에 진심을 좀 담으쇼.
“대충 4개 연맹 중 한 군데는 엮인 것 같거든요. 고대의 저주 비슷한 뭐, 제물도 바쳤다고 하고 그러니까.”
난 말을 이었다.
셋 다 내 말을 경청했다.
본래 이 자리는 이번 테러 사건을 정리하고 공표할 내용을 정할 자린데.
“그래서 연맹 순찰 좀 돌려고요. 누가 그랬나 확인을 해 봐야겠거든요.”
골치 아픈 일은 남은 회사원이 알아서 할 것이다.
대신 난 마법 연맹이란 친구들을 만날 것이다.
연맹은 총 다섯 개, 위치는 전부 안다.
암시장의 배후였던 스위퍼도 위치는 대강 아니까.
“당장?”
“저주는 풀고 가야지?”
“가면서 풀면 됩니다. 회사 소속 마법사랑 같이 갈 거니까.”
“남은 일 정리는?”
“이중봉, 이동훈, 우미호, 김요한.”
“넷을 찾으세요. 회사 일은 그쪽에 일임했습니다.”
셋 다 멍한 시선으로 날 본다. 반응은 외할아버지가 빨랐다.
“하! 내 손자, 엄청 화끈하구나!”
“제가 좀 그렇죠.”
“당장 가겠다는 겁니까?”
“네, 대통령 전용기 좀 빌려주시면 고마울 것 같은데요?”
“그렇게 해요. 광익 군 하고 싶은 대로.”
“……건투를.”
협회장은 마음에도 없는 응원을 보냈다.
테러범을 조지고 나서 24시간이 지나기도 전, 난 다음 타겟을 정했다.
이번에는 마법 연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