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03
‘이쯤되면 슬슬 감지에 잡힐만도 할텐데….’
하수로 안쪽 깊은 곳까지 진입하자 널찍했던 통로가 점점 좁은 원통형으로 변해간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것은 수로 정 가운데로 흐르는 얼어붙은 구정물과 양 옆으로 난 작은 인도 뿐.
깊이 들어갈수록 수로는 자잘하게 파생되어 갈라지고, 큰 길은 점점 형태를 잃고 수십갈래의 나뭇가지의 형상을 띄기 시작한다.
55구역은 50번대 구역중에서도 그 너비만으로는 세 손가락안에 드는 광활한 구역이다.
4번 수문을 기준으로 잡고 탐색을 이어나간다고 해도 레녹의 마력감지가 미치는 범위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물론 그 반경이 평범한 마법사의 수준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광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레녹의 감각권에 걸리지 않는다면 이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크림갈 용병 사무소쪽에서 그렇게까지 멀리 움직였을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결국 고민하던 레녹은 천천히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짚어 걷기 시작했다.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
레녹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지금 이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한다.
‘고도의 은폐술식으로 감춰져 있거나, 다른 누군가가 기둥을 회수해갔을 수도 있어.’
드레이가 혼수상태에 빠진 사이에 다른 용병이나 관계자가 기둥의 존재를 눈치채고 손을 썼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레녹이 처음부터 이 가능성을 어느정도 상정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여기까지 발걸음을 옮길수밖에 없었다.
다만 드레이만한 용병에게 저주를 걸만큼 강력한 보안술식을 걸어놓았다면, 수로 내부에 존재해야만 하는 물건이라는 뜻일 터.
회수당했을 가능성보다, 아직까지 이 수로 안에 숨겨져 있을거라는 추측이 보다 타당하다.
‘수문쪽을 한번 더 돌아보고 가야겠군. 이번에도 찾지 못한다면 에이전트쪽에게 일을 넘길 수밖에.’
기둥쪽 볼일이 급하다면 근방의 다른 수문들을 싸그리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흔적이라도 찾아내야겠지만, 투자할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암호키에 섞어놓은 더미 데이터를 통한 위치추적.
그 결과를 토대로 한 두번째 작전이 일주일 뒤에 예정되어있다.
작전이 도시 밖으로 나가서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4번 수문을 통과해서 흐르는 거대한 물의 격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콰아아아아!!
족히 수백갈래는 되는 무수한 수로에서 한데 모인 물이 축축한 공기를 뚫고 흘러 떨어져내린다.
싸늘한 지하수로의 공기에도 불구하고 한번 흐르기 시작한 물이 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제대로 개발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55구역의 지하수로는 여전히 발칸의 각지에서 흘러들어오는 온갖 폐수를 받아내고 있으며, 도시 밖으로 끝없이 그 오물들을 방류한다.
미개발지구를 비롯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오염체가 생기는 것도 생각해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고, 서서히 악화되는 것도 금세 잊혀지기 마련이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 보이지 않는다…..’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속에서 새로운 의문을 발견한 레녹이 퍼뜩 깨어나며 손을 휘저었다.
말하자면 작은 물줄기를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용마법.
하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그 순간에 다각도로 개조를 거쳐서 기존 마력허용치를 대폭 늘리고, 제어 가능한 수량을 크게 끌어올린다.
그 결과.
콰과과과!!!
거센 강처럼 흐르던 수문 하수로 물길이 양쪽으로 쩍 갈라지면서 그 바닥이 훤히 드러난다.
맨손으로 강을 갈라낸다는 이적을 성공시켰으면서도 레녹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
빠르게 수문 바닥 언저리를 훑던 레녹의 시선이 툭 튀어나온 수로 바닥 언저리에 고정되고.
그 가운데서 환연한 은빛의 말뚝을 발견한 레녹이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웃었다.
쩌저적…!!
레녹의 눈에 띄는 것과 동시에 기둥의 표면에 음각되어있던 알 수 없는 문자들이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진다.
그러면서 기둥안에 가득 차 있던 음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새어나오며 하수로를 온통 적시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
‘혹시나 해서 찔러본건데, 나쁜 결과는 아니었군.’
특정 마법이나 술식의 경우에는 조건을 까다롭게 걸수록 그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강력해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기둥을 설치한 당사자는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은폐술식의 기능을 대폭 끌어올려 마력감지를 회피했던 것이겠지.
크림갈 용병 사무소가 자리를 뜬 이후 기둥을 회수하는 대신 자리를 옮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도해본 일이었지만, 그 결과는 확실했다.
‘남은 선택지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이걸로 됐어.’
쿠웅!!
충격마법으로 땅을 파내리고, 마그네틱 컨트롤로 기둥을 뽑아 허공에 띄워올린다.
기둥이라기보다는 말뚝에 어울리는 생김새.
하지만 그 표면에 빽빽하게 새겨진 문자와 마법진의 형상은 이 물건이 결코 단순한 철제 말뚝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흑마법. 그것도 필연적으로 도시에서 행해져야하는 어떤 공정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게 맞겠지.
지금 당장 이 자리에 앉아서 말뚝을 해석하다보면 레녹의 안목으로 뭐라도 알아내는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빠르게 이벨린에게 넘겨주고 다른 기둥들을 찾아보게 하는게 훨씬 효율적이겠지.’
이런 기둥이 고작 하나만 있을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레녹이 여지껏 배워온 마법이론에 따르자면 이런 식으로 기물을 이용해서 진행하는 술식은 광범위한 대상이나 대규모 공정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많은 양의 준비물을 필요로 하는것이다.
만약 이것이 정말로 흑마법사와 테러조직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면, 도시 곳곳에 이런 기둥들이 숨겨져 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재밌어.’
지정술식에 대해서 초월적인 저항능력을 가진 레녹에게 있어서 이런 종류의 저주와 술식은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그들이 시정부라는 범접할 수 없는 권력기관을 상대로 도대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순수하게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파격적으로 선전포고를 했다면 분명 어느정도 믿는 구석이 있을테고, 부분적으로나마 승산을 점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시작했을 터.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행동방식에 레녹이 보고 배울만한 점이 있었으면 했다.
레녹 역시, 발칸의 시정부가 믿을만한 아군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기둥을 찾았으니 일단 지하수로에서 당장의 볼일은 끝난 셈이다.
이벨린에게 이걸 넘겨주고 나면 에이전트 쪽에서 이걸 조사한 뒤에 추후에 현장에 남아있는 흔적을 탐사하기라도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레녹이 수문 출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레녹의 감각권에서 순식간에 강렬한 기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허공에서 느닷없이 불꽃이 피어오른 것처럼 뜬금없으면서도 갑작스러운 출현.
[루루루~ 라라라~~ 울룰룰루~~]동시에 저 먼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느긋한 콧노래.
저벅, 저벅.
느릿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수문의 물소리와 나직한 어둠을 뚫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춤에 걸린 검 한자루.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슨하게 풀어헤쳐진 정장.
옷깃 사이로 드러난 창백한 피부.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사람의 머리통 대신 목 위에 얹혀져 있는 안드로이드 형태의 접합부.
눈가를 가린 바이저 너머로 희미하게 빛나는 붉은 안광만이 그 시선의 방향을 유추할 수 있게 도와줄 뿐이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어오던 로봇 머리 검사가 레녹을 발견하고는 발걸음을 멈춰세운다.
한없이 육성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아아아, 갑자기 이상한 마력이 느껴지길래 돌아왔더니 새로운 손님이 들어와 있었구나.]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정말 고마워. 반나절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못하고 그냥 이 시궁창을 뒤적거리고 있었거든. 설마 수문 바로 아래에 숨어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 덕분에 일이 줄었어.]“일이 줄었다고?”
[그래. 내 클라이언트가 바로 그 물건을 가져오라고 했거든. 쓰레기를 원하는 주제에 던져주는 돈은 또 얼마나 많은지. 이 더럽게 추운 동네에 날 던져놓고 알아서 하라고 하면 단가? 웃긴 새끼들이란 말이야.]“………”
…..머리통이 강철로 된 주제에 어딘가 나사가 하나 풀린 듯한 말을 지껄이는 놈이다.
레녹은 대꾸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다가 뭔가를 떠올리고 물었다.
“혹시 그쪽이 프리랜서 중에서 매드 맨슨이라고 불리는 사람인가? 스트라이커랑 같이 이름을 들어보기는 한 것 같은데.”
[매드는 씨발 무슨 매드야? 그딴 병신같은 별명을 이름 앞에 붙이고 다니는 놈도 있나?]“아닌가?”
[그런데 내 이름이 매디슨이기는 해.]“………”
미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었다.
확실하다. 술집에서 만난 남자가 언급했던 잘나가는 프리랜서, 매드 맨슨은 바로 이 놈이 분명했다.
레녹은 머리 위에 떠올린 기둥을 힐끗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저 기둥은 이미 주인이 있다. 그쪽에게 내어줄 수는 없을 것 같군.”
[어, 진짜? 처음 듣는 이야긴데.]“당연하지. 내가 발견하기 전까지 반나절동안 이 수로를 떠돌던 사람이 알리가 있나?”
레녹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렸다.
“헛걸음한건 안타깝지만, 슬슬 꺼져줬으면 좋겠는데.”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기둥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저 언동만 봐도 알 수 있다.
말이 프리랜서지, 실로 제멋대로인 무법자에 가까운 성품.
수틀리면 당장 칼을 뽑아들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이 자리에서 전투를 피할 수 없을거라는 확신이 들자 레녹의 말 역시 곱게 나오지는 않았다.
[음…… 그 말에는 동의하기 힘들군.]프리랜서, 매드 맨슨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한발, 앞으로 걸어나오며 들린 그의 손이 절로 허리춤에 걸린 검집으로 향했다.
[더 강한 놈이 주인인게 당연하잖아.]그러고보니, 이벨린이 예전에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지.
같은 프리랜서를 죽일 각오가 되어있냐고 물었던가.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남의 성과물을 날로먹으려는 강도들을 쳐죽이는데 있어 무슨 거리낌이 있을까.
“그러니까.”
파지지직….!!
손가락 사이로 새파란 전광을 밝히며 레녹이 웃었다.
“내가 주인이라고. 말귀를 못알아듣나?”
매드 맨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초인이 동시에 움직였다.
콰직..!!
맨슨이 서 있던 땅이 짓뭉개듯이 짓밟히고, 그의 몸이 한순간에 자취를 감춘다.
카아아아앙!!!
레녹의 옆구리를 타고 들려우는 날카로운 파공음.
그러나 실드에 가로막히면서 그 기세가 무색하게 허공을 베어내고 칼날의 끝이 방향을 잃는다.
[오호라.]멍하니 감탄하는 맨슨의 안면을 향해서 레녹은 힘차게 손에 쥔 전격의 덩어리를 밀어넣었다.
일단 저 건방진 놈의 시각부터 뺏어볼까.
[라이트닝 바운드]파지지지지지지지직!!!
어두컴컴한 지하수로의 통로를 환하게 밝히는 마력광과 함께 터져나온 전격의 폭류.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렬하게 응축된 전격의 구체가 터져나가면서 수백갈래로 쪼개진다.
마법을 쏘아내는 속도 자체는 빠르지 않지만, 구체가 터져나가는 속도는 그 이상이다.
그 사소한 간극이 맨슨의 반응을 아주 잠시 늦추고.
수백갈래의 전류 줄기가 그대로 맨슨의 몸을 덮쳤다.
콰아아앙!!
공용마법을 막 깨우치던 프리랜서 초반에도 대인용으로는 꽤나 높은 위력을 자랑하던 마법이다.
시전 직전이 아니라, 미묘하게 반호흡 느리게 터져나오는 강렬한 화력이 초단위로 판단하고 대응을 설계하는 초인들의 대처를 거꾸로 느리게 만든다.
적중하기만 한다면 크로켄 정도의 괴물조차 잠깐 경직시킬 수 있을정도의 뛰어난 가성비.
하지만 맨슨은 곧이곧대로 당해주지 않고, 작은 전격의 폭풍에서 어렵지 않게 몸을 빼내는데 성공했다.
[생각보다 화끈한 친구였잖아.]그의 손에는 어느샌가 꺼내든 길쭉한 검은 망토가 들려있었다.
차가운 금속광을 내뿜는 망토 사이로 전격의 잔해가 번뜩이면서 망토를 딱딱하게 굳히지만, 적어도 맨슨의 몸을 보호해주는데는 무리가 없는 듯 하다.
아티팩트인가.
그만큼 명성있는 프리랜서라면 이런저런 도구들을 들고다녀도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레녹처럼 장비의 무게가 신경쓰여서 가벼운 몸으로 돌아다니는 프리랜서가 특이한 편이겠지.
맨슨은 검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금속 턱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마법사치고는 반응이 굉장히 빠른데. 실드 강도도 상당하고…. 혹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