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04
뭐라 대꾸하기도 어려운 혼잣말을 지껄인 그가 곧바로 고개를 훌훌 털어버렸다.
[뭐, 됐어. 술사놈이라면 더 상대하기 편하니까. 그냥 기절시켜놓고 하나하나 물어보면 되겠네.]머리통이 금속으로 이뤄진것 치고는 참으로 번뇌가 가득한 상대다.
하지만 방금 그가 보여준 움직임은 결코 얕잡아볼만한 것이 아니었다.
‘검사를 상대하는 것은 주드 러셀 이후 처음인가.’
항만에서 마주했던 까무잡잡한 흡혈귀 검사 이후로 검을 든 상대를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다.
총과 마법의 위력이 엄연히 초인들에게도 통용되는 이 세상에서 냉병기는 어지간히 숙련되지 않고서야 다루기 어려운 무기.
스스로의 실력과 타고난 감각. 그리고 마력량이나 육체강화면에서도 다른 초인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선택하기 어려운 무기.
그러나 그런 다양한 페널티를 이겨내고 일정 수준 위로 올라온 전사들은, 레녹으로서는 결코 범접하기 어려운 움직임과 깨달음을 무기로 들고 전투에 임한다.
‘그리고, 검사라고 마냥 칼 한자루만 사용하지 않는다는것도 문제지.’
레녹이 보조장비로 총을 사용하듯이 맨슨도 얼마든지 비슷하게 다양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맨슨이 갑자기 왼손을 들어 스스로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겼다.
쩌엉!
“……뭐하는거지?”
[빌어먹을. 왜 안 나와? 이딴 고물 깡통으로 머리를 갈아치우는게 아니었는데.]쩌엉!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으로 한번 더 철제 머리를 후드려갈기자, 그제서야 그의 입에서 길쭉하게 생긴 유리병이 하나 튀어나온다.
칙칙한 회색빛의 가스가 담겨있는 앰플.
두 손가락으로 그것을 집어든 맨슨이 앰플을 흔들면서 이죽거렸다.
[이걸 보고도 곧바로 도망가지 않는걸 보니 확실히 애송이가 맞네. 별로 경계할 필요는…..어억!!]콰아아앙!!
굳이 저 말을 듣고 있을 필요는 없다.
무슨 수를 쓰려했는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 멍청한 짓이겠지.
대꾸하는 대신 옆의 수로에서 흐르는 물을 끌어다 그대로 맨슨의 머리 위에 뒤집어씌운다.
동시에 손안에서 흘러넘치는 한기를 담아 그대로 흩뿌리자, 한계까지 내려간 냉기를 이기지 못한 수로의 구정물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맨슨의 움직임을 속박하기 시작했다.
[아이스 라운드]쩌저저저저적!!!
물이 있는 곳에 한해서만 사용이 원활한 마법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필요한 환경이 갖춰진 곳에서는 평범한 공용마법의 효율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특정한 환경에서 레녹이 원하는 대로 판을 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빙결마법은 레녹이 극히 선호하는 계열 마법 중 하나였다.
[아니, 잠깐….!!]사각을 찌르고 들어오는 레녹의 마법에 반응하지 못한 맨슨의 전신이 이번에야말로 차디찬 얼음에 갇혀서 순식간에 굳어가고, 그 손가락 사이에서 앰플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맨슨의 노림수가 파훼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레녹은 곧바로 마력을 조작해서 허공에 새하얀 마법진을 띄워올렸다.
[폭결(爆結)]왼손을 비틀어 마법진을 회전시키는 순간, 맨슨의 몸에 달라붙어있던 얼음 조각들이 일제히 곤두서더니 폭발했다.
콰아아앙!!!
레녹이 툭하면 터트리던 성대한 폭발에 비하면 그리 크지만은 않은 규모.
하지만 족히 십수미터는 떨어진 거리에서, 얼음이라는 매개체 하나만을 가지고 폭발을 일으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에덴의 연구일지를 통해서 터득했던 고유마법의 실전묘리.
레녹은 그 응용법을 전격마법뿐만 아니라 빙결마법에도 하나둘씩 적용시켜 새로운 마법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영감과, 단 한순간도 빗나가지 않는 선명한 직관.
마법사로 존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가지 재능은 서로 끊임없이 공명하면서 어우러지고, 쉴새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다.
다섯 손가락을 움직여 그대로 허공에 흩날리는 얼음의 파편들을 붙잡아세운다.
동시에 터져나가던 파편들이 그대로 방향을 거꾸로 비틀어 다시 맨슨이 있던 자리에 비처럼 쏟아져내린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속성을 자유롭게 다루는 듯한 경지. 마법사가 아니라 초능력자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겠지.
즉석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마법에는 이름조차 필요없었다.
화아아악….!!
차가운 결정의 비가 어두컴컴한 지하수로를 하얗게 불태웠다.
해치웠나?
후속조치까지 확실하게 가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레녹은 그 마법의 주문을 입밖으로 꺼내는 어리석은 실수따위는 하지 않았다.
마력감지를 극한까지 예민하게 돋군채로, 맨슨의 생명반응을 확인했을 뿐.
하지만 그럼에도 서릿발 같은 안개 사이를 뚫고 맨슨의 손이 불쑥 튀어나오는 것까지 막을수는 없었다.
타아앙!!
그만한 맹공을 허용하고도 형체가 남아있는 맨슨의 손에 들린 한자루의 권총이 불을 뿜는다.
총구의 방향이 향하는 곳을 확인한 그 의도를 눈치채고 재빠르게 실드를 날려봤지만, 그것보다 탄알이 앰프에 명중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그 충격량을 이기지 못한 앰플이 당연하다는 듯 깨져나가면서 안에 차 있던 회색의 가스가 폭발적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하고.
삽시간에 하수로를 가득 채울만큼 퍼져나왔다.
그 직후, 앰플에 담겨 있던 가스의 효능이 무엇인지 깨달은 레녹의 미간이 희미하게 찌푸려진다.
‘마력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실드와, 사방에서 몰아치는 마법으로 이루어진 한기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한다.
이미 구성된 마법의 구조에 간섭하면서 그 골자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마법 자체를 없애버리기보다는, 마법이 위치하는 환경을 비틀어서 패턴을 변질시키는 듯한 방식이지만 술식의 동작을 극도로 예민하게 느끼는 술사들에게는 치명적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마법사를 상대로 하는 EMP와 같은 느낌인가.
조금씩 무너져가는 실드를 바라보며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짙은 회색 가스 너머로 맨슨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 언제 맡아도 향기롭기 그지없군. 술사놈들이 당황하는 냄새. 아주 감미로워.]“………”
[마력이 생각대로 잘 안움직이지? 표정만 봐도 알겠어. 이런 느낌은 처음일거야. 나도 웬만한 각오로는 쉽게 사용 안하는 물건이거든.]뚜둑, 뚜둑.
가스를 헤치고 걸어나오는 길쭉한 형체.
온몸이 얼어붙은 채로 폭발에 휩쓸렸는데도 의외로 행색은 멀쩡하다.
갈기갈기 찢어진 옷 사이로 훤히 드러난 상반신에는 아직 상처가 남아있었지만, 그것조차 눈에 보일만큼 빠른 속도로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레녹의 눈이 절로 가늘게 변했다.
‘내구력은 평범하지만 재생력이 좋은 타입인가…. 쉽게 보기 힘든 유형인건 분명하군.’
그와 함께 일했던 육체계열 프리랜서들을 돌이켜보면 타격을 받을때 최대한 그 피해를 덜어내는 쪽이 대부분이지, 이미 받은 피해를 복구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나마 딜런정도가 크로켄에게 허리가 접히고 나서도 멀쩡하게 일어났던 기억이 있으니, 눈앞의 맨슨도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는게 맞았다.
맨슨은 한손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부여잡고 이러저리 돌려보다가, 마치 그제서야 레녹을 발견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도망 안 가냐?]“뭐?”
[슬슬 마력도 제대로 안움직일텐데, 웬만한 술사들은 이쯤되면 그냥 공포로 정신이 나가서 도망치기 바쁘거든. 생각보다는 신경줄이 두꺼운 놈이었잖아.]“……..”
[뭐, 겁쟁이보다는 멍청한 놈이 낫긴 해. 그냥 포기하고 살려달라고 비는 놈들보다는, 끝까지 반항하는 놈 모가지를 따버리는 맛이 있거든.]스르릉!!
검을 뽑은 채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오는 맨슨을 보면서 생각에 잠겨있던 레녹이 말했다.
“방금 사용한 가스. 마법이나 술식으로 만들어낸 아이템이 아니군.”
[오호.]단순히 아이템의 효과만으로 레녹이 조립해낸 마법에 간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레녹의 마력제어능력은 이미 다른 평범한 마법사들의 수준을 아득하게 초월해 있으니.
다른 마법사들이 꿈도꾸지 못하는 그런 일을 고작 프리랜서가 가진 소모품 따위가 해낼 수 있을 리 없다.
그의 마력에 간섭하기 위해서는 정말 유물급이라 불리는 보물을 가지고 와야 할 터.
그렇다면 지금 그의 마법에 간섭하는 이 현상은 레녹이라는 마법사를 직접 노리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이 일대의 환경을 바꾸는 방식일 가능성이 높다.
“마력의 움직임 자체를 둔화시켜서 마법구성이 천천히 무너지도록 만드는 방식인가. 대상 지정이 되어있지 않다는 걸 생각해보면 의도하고 만들어낸 물건은 아니야.”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면서 레녹이 결론을 내렸다.
“초능력. 아니면 그에 준하는 특이한 동식물이 가진 효능을 그대로 담아낸 것이겠지. 이렇게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물건이라면 가격도 엄청나겠군.”
레녹의 말을 들은 맨슨이 처음으로 그 나불거리던 입을 멈추고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라? 여기서 죽여버리기는 아까울만큼 머리가 잘 돌아가잖아. 나보다 먼저 기둥을 찾아낸 것도 그렇고….]“……….”
검을 어깨에 얹은채로 딱딱한 턱을 두드리던 맨슨이 말했다.
[너 나랑 같이 일해볼 생각 없냐? 누구한테 의뢰를 받고 이 일에 뛰어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차피 여기서 살아나가도 아무런 의미 없어. 내 클라이언트는 아주 높은 사람이라고.]“높은 사람?”
[그래.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개인적으로는 너처럼 똑똑한 놈이 한명쯤 있으면 좋겠는데. 네가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하면 내가 클라이언트한테 말을 잘해줄 수도 있지.]높은 사람이라….
맨슨은 굳이 이 자리에서 그 클라이언트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레녹은 단번에 그 고용인의 정체를 눈치챘다.
‘레이센쪽에서도 냄새를 맡고 달려든 모양이군.’
이벨린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에이전트쪽에서 레이센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쪽이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대안이 준비되어 있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였다.
더 이상 시간을 오래 끌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광기
레녹은 더 이상 대꾸하는 대신 말없이 손짓을 했고, 그 제스쳐를 알아들은 맨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이래서 지 잘난줄 아는 놈들이랑 대화하면 피곤하다니까. 괜히 쓸데없이 시간낭비만 했잖아.]“빨리 끝내지.”
[그래. 나도 이제 모르겠다. 그냥 네 얼굴가죽이나 뜯어서 들고가면 알아서 처리해주겠….지!!!]쌔애애애액!!!
지금까지 그 방만했던 태도가 거짓이었다는 것마냥.
맨슨의 손에서 한줄기 섬광으로 변한 칼날이 정확하게 레녹의 목을 노리고 쏘아져온다.
앰플을 박살내면서 뿌려놓았던 회색빛의 가스.
동시에 무너져내려가는 레녹의 마법 사이로 드러난 빈틈을 조금도 의심하지않고 찔러들어오는 날카로운 일발.
궤적을 예측하기 힘들도록 길쭉하게 휘어져들어오면서도 빠르기는 오히려 더 가속한다는, 공방 모순을 단 한순간에 담아낸 수준높은 검격이 그대로 레녹의 경동맥을 노리고.
카아아앙!!
다시 한번 실드에 막혀 허무하게 튕겨져나갔다.
맨슨이 터트렸던 그 가스의 효과가 정말 탁월하기는 했던 모양이다.
설마 아직까지 레녹이 마법을 유지하고 있을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잠깐 멈칫거린 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아니, 어떻게….?]레녹이 대꾸했다.
“마력의 구조적 성질에 혼선을 가해서 마법구조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라면, 그에 맞춰서 마력을 재배열하면 그만이지.”
레녹의 말은 쉽지만, 그것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붓의 크기에 맞춰가면서 같은 그림을 이어그리는 것처럼 초월적으로 난해한 해결방식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것이 마법의 구성이라는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나 레녹은 실시간으로 달라지는 마력의 움직임을 모조리 포착하고 그것들을 매 순간마다 새롭게 배열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마법을 사용해내고 있었다.
그 말도 안되는 조율능력을 제대로 실감조차 하지 못한 맨슨의 머리 위로 충격마법이 내리꽃히고.
콰아아아앙!!
[크하악!!]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머리채를 잡힌것처럼 고꾸라지는 맨슨의 신형.
레녹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중력의 채찍 두 갈래를 뽑아내 그대로 휘둘렀지만, 맨슨은 땅에 처박힌 그 순간에도 재빠르게 반응했다.
그가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일단 발이 묶이면 끝장이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닥에서 몸을 뒤집다시피 구르면서 발등으로 땅을 찍고 그대로 옆으로 몸을 날린다.
동시에 손에 쥔 검을 바닥에 꽃아넣고 한바퀴 돌리면서 균형을 잡은 맨슨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다시 한번 그의 모습이 레녹의 육안에서 자취를 감췄다.
쌔애애액!!
이번에 먼저 움직이는 것은 검이 아니라 몸쪽인가.
좁은 하수도의 통로를 상하좌우로 오가며 마치 중력이 없는것마냥 무게중심을 갈아치운다.
방향이 아니라 그 위치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고각도 기동.
단순히 레녹의 감각을 현혹하고 시야를 빼앗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지하라는 폐쇄된 공간. 이런 곳에서 고화력의 술식을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확실하게 파악한 뒤, 레녹이 그러한 위험부담을 감수하기 어렵도록 계속해서 이지선다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축축하고 어두운 하수도에서 이런 식의 움직임을 선보인다는 것 자체가 맨슨이 얼마나 뛰어난 전사인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휘이이이익!!
바람이 몰아치는듯이 매끄럽고 싸늘한 살기가 몰아치는 질주.
스스로의 몸을 한자루의 검으로 바꿔서 휘둘러진 가속이 끝난 순간, 맨슨의 몸은 이미 레녹의 뒤에 서 있었다.
발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사선으로 내리긋는 참격.
칼날에 서린 웅혼한 마력과, 타오르는듯한 불꽃의 형상이 감히 그 위력을 짐작하기 어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