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05
마지만 그 순간에 맞춰서 고개를 돌린 레녹의 시선에는, 당혹감의 일말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따악!
손가락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맨슨의 다리가 보이지 않는 빙판길을 밟은 것처럼 미끄러지고 거짓말처럼 칼날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이런 씨…!!]단단하게 얼어있던 하수로 바닥이 어느샌가 녹아서 흥건하게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은 맨슨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처음의 여유는 온데간데 없이, 계속해서 예상을 벗어나는 수에 끝없이 당황하기만 하는 그 모습을 레녹은 즐거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아까 끝까지 반항하는 놈의 모가지를 따는 것이 좋다고 말했었나.
그런 식으로 입을 놀리다가 종국에는 허둥지둥 손발을 놀리는 그 모습을 레녹 역시 좋아했다.
물론 맨슨에게 이런 처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따위는 존재하지도 않겠지.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가면서 빗나가는 칼날을 다시 잡아끌어서 레녹의 정수리 위에 내려찍는 컨트롤은 검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레녹도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들었지만.
“이미 늦었어.”
어느샌가 레녹의 양 손에 들려있던 샷건이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모든것을 수포로 만들었다.
[반동제어] [중첩사격]타아아아앙!!
팔머의 개조를 통해 반동을 늘리는 대신 내구성의 한계까지 화력을 끌어올린 개조 샷건.
총구에서 뿜어져나온 거대한 두발의 불꽃이 맨슨의 왼쪽 어깨로 빨려들어가듯이 쏘아진다.
전심을 다해 칼날을 내뻗은 맨슨은 레녹의 마지막 안배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으, 아아아아아!!!]한번 움직인 이상 멈출 수 없다.
계속해서 빗나가고 미끄러지면서 어떻게든 칼날을 적중시키려던 그 모든 시도가 단번에 무위로 돌아가고.
맨슨의 신형이 족히 십미터는 뒤로 날아가 그대로 물속에 처박혔다.
퍼어엉!!
거대한 물보라를 튀기면서 수문 아래쪽으로 사라져가는 맨슨의 몸뚱아리를 보며 레녹이 샷건을 갈무리했다.
“후우……”
이걸로 일단 방해꾼은 제거한건가.
적어도 지금 당장 기둥을 가져가는데 있어서 이 이상의 견제가 들어오지는 않겠지.
부여마법을 제대로 익히기 시작한 그에게 있어 이제 이런 총기 하나 정도는 충분하다.
공용마법.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용량이 가벼운 경량화 마법과 축소마법을 걸어놓으면 휴대성과 편의성을 모두 만족하면서 언제라도 꺼내쓰는게 가능한 근접화력병기가 손에 들어온다.
아주 오래전부터 레녹은 이런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간극을 메우는 것을 꿈꿔왔지만, 드디어 지금에야 그 공상의 일부를 실제로 구현하는데 성공해낸 것이다.
단순히 샷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총기, 보조장비, 원거리 무기와 소모품을 하나둘씩 장착해 나가다보면 기동력이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압도적인 전투 유틸성으로 극복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생각만 해도 가슴속이 충만감으로 가득 차는 듯 하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허공에 떠오른 기둥을 들어올린 채 걸음을 옮겼다.
휴대폰을 들어 사전에 받아둔 에이전트 측 연락처에 간단한 메시지를 넣고 곧바로 수로 밖으로 나가는 사다리를 붙잡았다.
저 멀리서 웅웅 울려퍼지는 맨슨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
레녹의 손속이 안일했던 걸까? 그럴리는 없다.
동체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샷건을 쏜 순간 왼쪽 어깨가 모조리 터져나간 건 물론이고 목 위로 달고 있던 깡통까지 반쯤 박살난 것을 확인했으니까.
괜히 그 몸이 수로로 떠밀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냥 바라만 본 것이 아니다.
죽을지 말지 애매한 수준이 아니라, 웬만한 초인이라면 즉사에 가까운 타격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멀쩡하게 메시지를 던져온다는 것은….. 그 역시 뛰어난 프리랜서인 만큼 구명의 수단 정도는 구비해두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겠지.
그러는 사이 맨슨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너, 이름이 뭐냐? 그 정도 실력이라면 내가 모를리가 없는데.]“반.”
레녹의 심드렁한 대답에 침묵하던 맨슨이 음울하게 웃어제꼈다.
“………”
[보아하니 서로 같은 일을 붙잡고 있는 건 매한가지 같은데. 조만간 다시 얼굴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는걸.]“그런가?”
[오늘 만남은 꽤 즐거웠어. 다음번에는 멋있게 차려입고 갈테니 기대하라고.]쏴아아아아!!
샷건에 두드려맞고 다음을 기약하는 방식치고는 괴악하기 그지없다.
듣는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포부를 밝힌 맨슨의 목소리는 수로로 흘러들어가는 거센 물소리에 파묻혀 사라지고.
레녹은 한숨을 내쉰 뒤 곧바로 수로 밖으로 몸을 옮겼다.
매드 맨슨. 뛰어난 검사이자 교활한 프리랜서.
그 고절한 검술만 보더라도 지금 보여준 역량이 실력의 전부는 아니겠지.
하지만 이 자리에서 두 발로 멀쩡히 걸어나가는 것은 레녹이었고, 8분전까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던 맨슨은 저 물밑 아래 처박혀 있었다.
승리의 근거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맨슨은 이 좁은 하수로 통로가 마법사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광범위한 술식과 고화력의 마법이 이런 장소에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 맨슨은 극한까지 그 환경을 이용해서 레녹을 압박하려고 했고, 그 시도는 반쯤 성공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광활한 공간에서는 결코 통용되지 않을 가스 분사. 입체적인 기동을 이용한 피격 봉쇄.
평범한 마법사라면 스스로의 마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점에서 무너져내리고, 맨슨의 움직임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단 일합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겠지.
하지만 레녹은 거꾸로 그가 내려앉을 위치의 얼음을 녹여서 트랩을 깔고, 검격을 빗나가게 만들어 피해낸 뒤 그대로 샷건을 갈겨서 전투를 마무리 지어버렸다.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심리전에서 단 한치의 밀림도 없이 역으로 상대를 낚아올릴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과 판단력.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완벽한 마법의 재능.
시간과 환경, 상황과 상대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 순간에 어떤 판단으로 어떤 승리를 쟁취할지 선택하는 것 뿐.
그런 의미에서 매드 맨슨과의 전투는 레녹이 잊고 있던 전투감각을 되새기기에 적합한 수준이었다.
‘다음에 만날때는 이런 식으로 끝나지는 않겠지.’
만약 정말로 매드 맨슨을 고용한 것이 레이센 측이라면, 고작 그 하나만으로 지금 상황을 해결하려 들리는 없다.
어쩌면 작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다 다양한 방해와 견제를 감내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생각만해도 까다롭고 험난해보이는 일이었지만, 레녹은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에낙필의 다섯 손가락이라는 이 믿을 수 없는 아티팩트는 레녹이 항상 전력을 다하면서도 여지를 남겨둘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고차원의 이동마법. 소모품이라고는 하나 그것을 연필이라는 이 작은 아이템 안에 담아내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또 무궁무진한 활용도를 가지고 있는지 레녹은 잘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를 어떤 순간에 사용해야 할지 레녹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연달아 피워내는 연초의 부작용으로 몸이 깎여나가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그것조차 감내하지 못한다면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가끔 이렇게, 몸이 삐걱거릴 때마다 영약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이벨린에게 비슷한 물건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군.”
에이전트라면 시정부에서 오가는 온갖 귀한 물건들에 대해서 어느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겠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찬바람이 몰아치는 55구역을 뚫고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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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쪽 직원들이 아주 고마워하고 있어.]여느때와 다름없이 평탄한 어조.
그러나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홀로그램 너머에 위치한 커다란 스피커를 통함이다.
제니의 술집. 그 위층에 위치한 사무실.
공적인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그 격식있는 장소에 레녹과 제니가 앉아서 이벨린의 홀로그램을 마주하고 있었다.
[반 덕분에 이쪽이 해야 할 일이 대폭 늘었다고. 꼭 감사인사를 전해달라더라.]“……..”
워낙 표정을 읽기 힘들어서 저 말이 어디까지 농담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레녹뿐만은 아니었는지, 이벨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제니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녀는 들고 있던 장초를 책상에 탁탁 내리찍으면서 말했다.
“요원님, 본론이나 빨리 말하시지?”
제니의 짜증섞인 대꾸에 이벨린이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준비
[오해하지는 마.]이벨린이 손에 든 뭔가를 아작거리면서 대답했다.
샐러리였다. 최근 들어서 새로운 채소를 키우기 시작한 모양이다.
[난 반 당신이 이번 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명을 받고 있으니까.]“뭐?”
[어찌되었든 이번 사건이 아니었다면 우리쪽에서도 기둥의 존재를 알아차릴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을테고, 그건 어떤 방식으로든 이 도시에 손해가 되어 돌아왔을거야.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에도 작전에 책정된 것과 동일한 보수를 지급할게.]“………”
레녹의 몸값에 해당하는 돈만 해도 수천만 셀이 넘는 돈이다.
에이전트의 입장에서는 우연이 입수한 정보임에도 제 값을 지불하려는 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벨린이 홀로그램 너머로 리포트를 팔랑거리며 말을 이었다.
[55구역에서 입수한 기둥에 부여된 술식은 흑마법이 맞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당 지역에 존재하는 지맥이나 수맥에 꽃아넣어서 대량으로 토지의 원기를 추출해내는 방식.] [의외로 흑마법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계열의 술식에서 사용되는 방법이기도 해. 대규모 술식을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쉽게 모을수도 있는데다, 시간이라는 소모비용을 제외하면 그리 큰 페널티도 없거든. 물론 농사를 짓는 땅에서는 문제가 될수도 있겠지만.]“크게 신경쓸 문제는 아니라는 뜻인가?”
[그건 아니지. 어쨌든 이 기둥을 이용해서 흑마법사들이 발칸의 지맥 에너지를 탈취하는 걸 내버려둘수는 없어. 반 네 보고를 받은 이후 우리쪽에서 외주를 맡긴 프리랜서들이 도시 외곽을 뒤지고 있고, 이와 비슷한 기둥을 세 개 더 발견하기는 했지.]“세 개라….. 사실상 소득이 없는거나 마찬가지잖아.”
제니의 말은 기껏 진행되고 있는 일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들리기는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 광활한 거대도시 외곽에 흑마법사들이 얼마나 많은 기둥을 설치해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맥에서 힘을 빨아들이는 술식의 특성상 기둥의 숫자는 아무리 적어도 5개 이상이다.
이제 막 작업을 시작했다고는 하나 상당히 지지부진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어쩔 수 없어. 그쪽 말대로라면 웬만한 용병이나 프리랜서는 건드리는 것만으로 저주에 걸리게 된다는 말인데, 기둥을 찾는 일에 그렇게 수준 높은 인력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수상한 지역을 돌아보고 이상이 있으면 보고하게 만드는게 전부야.]결국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적다는 말이지만, 레녹은 납득했다.
40번대 구역과 50번대 구역의 크기는 발칸 안쪽의 모든 구역을 합친 것보다 몇배는 넓다.
그 광활한 지역을 일일히 돌아다니면서 기둥을 찾아내는 일에 소모되는 인력과 시간, 그리고 비용은 에이전트쪽에서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겠지.
[가능한 최소한의 조치만 취해놓고,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주동자에게 전력을 집중하는게 맞아.]“현실적인 선택이라 이거야?”
물론 만약 기둥이 30번대 구역 안쪽까지 퍼져 있었다면 이벨린도 이런 식으로는 나오지 않았겠지.
그럼에도 그녀가 다소 방만한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30번대 구역 안쪽의 보안과 방비가 철저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았다.
특히 도시 안쪽에 기거하고 있는 거대도시의 핵심 전력들.
엉덩이가 무거우나 그 누구보다 멀리 내다보는 거물들의 눈을 피해서 도시 안쪽에 수작을 부리기는 어려울테니.
“좋아. 그렇다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지.”
이벨린의 대답으로 보아서는 이 이상으로 재촉해봤자 나오는 건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기둥에 걸려 있던 술식을 모두 해제함으로서 드레이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거기에 대해서 큰 미련은 없다.
아직 그녀에게 들어야 할 말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다.
[매드 맨슨 말이지? 네 추측이 맞아. 레이센이 그를 고용한 정황을 확인했어.]“하필 골라도 그 미친 새끼를….”
제니가 골치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발넓은 그녀답게 맨슨과도 안면이 있는 사이인건가.
제니의 심정은 이해했지만, 이벨린까지 난감하다는 듯 희미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것은 의외였다.
“그렇게까지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검술 실력이 뛰어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마력을 다루는 초인의 범주라는 의미.
진정으로 인간을 벗어난 괴물들의 기세에는 모자라다.
당장 홀로그램 너머로 흔들리는 이벨린만 하더라도 도시의 밤하늘을 진동시키는 엄청난 섬광의 소유자가 아닌가.
“그 몸으로는 그랬겠지.”
“몸이라고?”
“그 미친 새끼는 하나의 정신으로 여덟체가 넘는 몸을 돌려쓰는 다중신체적합자야. 이번에 너와 만난건 아마 수색용으로 사용하는 육체였겠지.”
“……로봇도 아니고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제니는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면서 대꾸했다.
“머리를 깡통으로 갈아치운거 봤지? 과도한 정신력의 소모를 막기 위해서 일부러 사고 프로세스를 AI에 일부 의존하고 있는거야. 게다가 각각의 몸이 할 수 있는 일과 전투력이 천차만별이니….. 괜히 현역 프리랜서들 중에서도 가장 잘나가는 놈이 아니지.”
“………”
설마 다음에 차려입고 오겠다는 말이 그런 의미였던 건가.
다중인격자도 아니고, 하나의 정신에 여러개의 몸을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온몸이 아작나다시피하고도 그렇게 여유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