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5
눈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마법진이 지금 노역장의 온 하늘을 뒤덮은 장막의 근원이었다.
오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레녹은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오른팔을 들어올리며 그대로 마력을 한껏 휘둘렀다.
콰아아앙!!
두 손가락을 타고 뻗어나온 화염의 나선이 그대로 컴퓨터가 가득 들어있는 지휘통제실을 강타했다.
보안술식이 걸려있었는지 어느정도 저항하기는 했지만, 마법의 제어권을 놓지 않은 것은 레녹도 마찬가지다.
그가 휘두르는 화염 줄기 두 갈래가 그대로 통유리 사이를 파고들면서 통제실 안에서 돌아가고 있던 컴퓨터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마 저 컴퓨터들이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구축하고 있던 기반이겠지.’
마법진을 방해할 수 없다면, 노려야 할 곳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걸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소용없다.”
불타오르는 컴퓨터들을 올려다보는 사이, 저 멀리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계산은 모두 끝났고, 남아있던 건 현상유지를 위한 작업이었을 뿐. 이제와서 저 물건들을 불태운다고 변하는 건 없을거다.”
묵직하면서도 두꺼운 울림.
듣는 사람을 절로 긴장시키는 단단한 각오가 서린 목소리.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 눈 밑에 그려진 정교한 나무뿌리 문신.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것처럼 익숙하다.
실용계파 흑마법사들의 수장, 크레이그.
발칸에 반기를 들고 테러를 자행하는데 일조한 범죄자가 바로 이곳에 서 있었다.
무너진 폐허의 끝에서 (1)
“네가 반이라는 놈이군.”
레녹은 대꾸하기에 앞서 이어폰을 눌러서 히나를 비롯한 아군 전력에게 신호를 보냈다. 크레이그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시그널.
이걸로 체이샤도 공동 안쪽으로 들어와 아군을 지원해줄 수 있겠지.
가능하다면 자운을 빠르게 처리하고 이쪽으로 내려와 놈을 생포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지만…. 레녹은 거기까지는 크게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날 아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 내 일을 가장 열심히 방해하는 버러지로 소문이 나서 말이다.”
정교한 마법진이 새겨진 새카만 장포를 펄럭이면서 그가 천천히 옆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태도는 자신감의 발로인가, 아니면 오만의 향취인가.
크레이그는 뒷짐을 진 채, 가만히 공동의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얘기 좀 할까?”
콰아아아아앙!!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그의 머리 위에 불덩이를 떨궜다.
노골적으로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 훤히 보이는데, 이 자리에서 당해줄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으니.
마법진을 지워낼 수 없다면, 그 술자를 직접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저편에서 들려오는 크레이그의 목소리는, 공격을 허용한 마법사치고는 너무나도 멀쩡했다.
“성질이 급한 녀석이군. 하지만 늦었어.”
우우우웅!!
그 말과 함께 레녹의 공동 온 사방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이 거칠게 진동하면서 느릿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6레벨 이상의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들, 그 중에서도 타고난 재능을 가진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다는 ‘자성영역(自性領域)’…. 그것을 인위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이지. 술식이 발동되기 전까지는, 술자와 마법진 모두 강력한 보안술식으로 보호받는다.”
자성영역. 중요한 키워드를 얻었다.
천견이나 복마전의 흑마법사를 마주했을때 느꼈던 기묘한 압박감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을까.
고위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전투방식에 대한 정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아서, 아리스에게 물어볼 기회도 없었지.
추후에라도 그녀에게 질의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레녹이 빠르게 상념을 갈무리했다.
“술식이 발동되기 전까지라…..”
반대로 말하자면 술식이 발동되기 시작한 뒤에는 아무런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인가.
까다로운 조건으로 보이지만, 고작 그만한 조건을 걸고 강력한 보안술식을 허락받았다면 남는 장사다.
아마 이만한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들어간 시간과 비용 역시 만만치 않았겠지.
레녹은 끌어올린 마력을 거둬들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좀 더 흔들어볼까.’
그가 영역에 대해서 아예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놈의 신경을 돌릴 수 있는 방향으로ㅡ
“공간계열의 보안술식을 구현했다고 안심하고 있는 건 아닌가? 너희들이 발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쪽에서도 그에 걸맞는 전략을 준비해왔지.”
말하면서도 절로 헛웃음이 나올만큼, 뻔하면서도 허접한 시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절로 반박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말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크레이그가 반응했다.
“혹시 그 전략이라는게 이런 걸 말하는건가?”
부우우웅!!
그 말과 함께, 크레이그의 등 뒤에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큼지막한 꼬챙이에 사지가 꿰인채로 기묘하게 비틀린 시체.
부러진 안경과 노쇠한 얼굴은 끔찍한 고통으로 일그러져있고, 두 눈알은 기이하게 튀어나와 굳어있었다.
낯익은 얼굴이다. 작전을 시작하기 직전에 레녹과 대화를 나누고 사라졌던 집행요원.
니로 코헨이었다.
“……….”
“건방지게 내 눈을 피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노역장을 지나 그대로 공동 안쪽을 엿보려고 하더군.”
크레이그가 중지 손가락으로 니로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그 가벼운 손길에 니로의 머리가 시계추라도 되는 것마냥 휘청였다.
끈적하게 굳은 피가 진자운동에 맞춰 후드득 떨어져내렸다.
“은신술에 자신이 있었던 모양인데, 영역을 구축한 마법사의 감각권에 들어오는 실수를 저질렀던게지. 가엾게도 말이야.”
그는 니로의 머리를 계속해서 밀더니,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그대로 후려갈겼다.
쿠웅!!
꼬챙이에 꿰인 시체가 힘없이 바닥으로 널브러진다.
몇시간 전까지 멀쩡하게 대화를 나누던 이가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지만, 레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물었다.
여기서 오히려 그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줄수는 없었다.
“어디까지 해야 만족할 심산이지? 레이센의 비자금을 손에 쥐고 도시가 무너질때까지 레이스를 벌일건가?”
“레이스라고? 개같은 소리를 지껄이는군.”
크레이그가 무거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 늙은이의 비자금을 받은 건 우리의 의사가 아니었어!!”
“……….”
“시의회의 나팔수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주제에, 상원의원에서 결정한 검문의 날짜를 제대로 알지도 못했지. 비자금을 숨기려고 우리에게 떠넘긴 채 나몰라라 했던게 누구였지? 내가 원한건 이게 아니야!!”
공동을 가득 메우고 쩌렁쩌렁 울려퍼지는 목소리.
저 묵직한 표정 아래쪽에 감춰놓았던 분노가 어느정도인지 명징하게 느낄 수 있을만큼, 그의 음색이 거칠게 끓어올랐다.
동시에 마법진에서 튀어오른 새카만 마력이 약동하면서 순식간에 사방을 새카맣게 뒤덮었다.
“후우, 후우……!!”
검게 변한 공동의 중심에서 숨을 몰아쉬던 크레이그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닿지 않는 목표를 쫓다가 흐드러지는 건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고작 늙은이 한명의 욕심 따위에 떠밀려 사라질수는 없어.”
우우우우웅!!
마력이 회전한다. 동시에 마법진이 어둡게 발광하면서 느릿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난 단지, 조금 더 잘 해보려고 했던 뿐이다.”
그 필사적인 설득에, 레녹이 대답했다.
“무고한 사람들을 제물로 갈아버리면서까지 말인가?”
두 마법사가 동시에 고개를 돌리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콰아아아앙!!
터져나오는 폭발.
귀청을 먹먹하게 울리는 굉음속에서 레녹이 말했다.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거창하게 스스로가 옳다고 납득시키지 않아도, 레녹은 크레이그를 이해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이의 욕심에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일어났는지, 또 어떤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는지를 차치하더라도.
레녹은 크레이그의 행동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자리는 정의를 집행하는 엄숙한 심판의 장이 아니다.
단지 서로의 이득과 손해를 쫓아 애먼 도시 밖까지 흘러들어온 두 사람이, 이제서야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을 뿐.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크레이그가 부르짖는 그 모든 말들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질없다고 느꼈다.
설령 레녹이 크레이그의 사상에 깊게 공감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자리가 바뀌는 일은 없었을테니까.
여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
솔직한 욕망과, 그것을 가리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만이 있을 뿐.
이 마법진 위에서 마지막까지 서 있는 단 한 사람만이 그 너머의 결말을 거머쥘 수 있겠지.
더 이상의 문답은 필요없었다.
[라이트닝 볼텍스]위이이이이잉!!
레녹의 왼팔에서 회오리친 새파란 번개의 격류가 회전하면서 그대로 흑마력의 파도를 향해 쏘아지고.
퍼어어엉!!
일점에 집중된 극한의 관통력이 파도를 뚫고 넓히면서 크레이그의 선공을 무위로 돌린다.
파앗!!
그리고 흩어져 사라지는 마력의 물결 너머에서 질주하는 크레이그의 신형.
분노로 점칠된 얼굴과, 희끗희끗한 머리칼.
그러나 그 움직임 자체는 레녹이 시선을 돌릴만큼 단련되어있다.
본인 스스로가 흑마법사인 것과는 별개로, 단련된 권사라는 것은 분명해보였다.
넘실거리는 마력을 담아 곧게 내뻗은 주먹이 레녹의 실드를 대번에 박살내고 순식간에 급소를 향해 다가온다.
콰지지직!!
레녹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허리춤에서 리볼버를 뽑아들었다.
타타타탕!!
공이를 당기고 숨쉴틈도 없이 쏘아낸 네발의 탄환.
허리춤에서 뽑는 것과 동시에 뿜어져나온 불꽃이 정확하게 레녹이 원하는 지점에 꽃혀들어간다.
보조마법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모두 사격의 위력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계열들 뿐.
퍼어엉!!
그러나 피격당한 크레이그의 몸은 마치 거대한 충격파를 정면에서 얻어맞기라도 한 것마냥 속절없이 뒤로 밀려난다.
미리 탄알에 부여해놓은 충격마법이 마법보다도 빠르게 크레이그를 뒤로 튕겨낸 것이다.
빠르게 다음 탄환을 장전하면서 레녹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설마 직접 달려들줄은 몰랐는데.”
중얼거리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흑마법의 달인인 크레이그가 모를리가 없을텐데 이렇게까지 빠르게 선공을 걸어온 이유는?
‘조금의 방해도 용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지.’
이유를 깨달은 순간부터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크레이그는 레녹을 직접 상대해가면서 그가 이 공정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견제할 생각인 것이다.
“네가 가진 그릇이 어느정도 크기인지는 이미 알고 있다. 아마 나 같은 마법사는 짐작도 할 수 없을만큼 먼 곳을 바라보고 있겠지.”
두 손에 어린 새카만 마력을 활활 불태우면서 크레이그가 말했다.
화르르륵!!
양 손에서 피어오른 마력의 불꽃이 느릿하게 크레이그의 전신을 뒤덮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불길로 화한다.
“근접전투를 실드마법으로 상쇄하고, 마법을 구사하는 사이사이에 정확한 사격을 꽃아넣는 특이한 전투방식. 그 모순적인 강함을 성립시키고 있는 것은 마법의 재능이 아니라, 기이할 정도로 침착하고 냉정한 판단력일 터.”
“……….”
“하지만 지근거리에서 실드를 무효화 할수만 있다면, 그 전투방식의 균형도 같이 무너져내리겠지.”
레녹은 대꾸하는 대신 말없이 리볼버를 치켜들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상대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마법사.
정말로 그의 실드를 뚫어낼 방도가 그에게 있다면, 이 자리에서 입을 놀리는 대신 직접 손을 휘두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