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6
비늘이 조금 그을린것을 제외하면 전혀 다치지 않은것처럼 보이는 그는 저 멀리서 죽어라 뛰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천천히 다리를 굽혔다.
으드득..!!
허벅지가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면서 지면에 자그마한 실금이 가기 시작한 순간.
꽈앙!
한발의 포탄이 되어 쏘아진 크로켄의 거체가 수백미터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좁힌다.
저 몸통박치기를 맞으면 죽는다.
서로 말을 주고받을 시간도 없었다.
딜런과 레녹 모두 마력을 허벅지에 때려박고 그대로 양 옆으로 몸을 날렸다.
쐐애애액!!
간발의 차로 두 사람을 스쳐지나간것을 깨달은 크로켄의 반응은 번개처럼 빨랐다.
그리고 경이적이었다.
까드드드드드득!!
한쪽팔을 땅에 그대로 때려박아 그 육중한 몸을 허공에서 우뚝 멈춰세운것이다.
아스팔트 표면에 족히 10미터는 넘는 거대한 스키마를 그리는 것과 동시에 도로가 타는듯한 매캐한 연기가 풀풀 피어오른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초월적인 근력에 레녹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리 마력으로 육체를 강화할 수 있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생명체의 한계를 아득하게 뛰어넘은 수준이 아닌가.
가뿐하게 몸을 뒤집어 일으켜세운 크로켄이 레녹을 향해 걸어오면서 말했다.
“네가 아까 번개공을 날린 마법사였군.”
“……..”
“어려보이는데, 그런 위험한 물건을 다른 사람의 다리사이에서 터트리면 안된다고 누가 안 가르쳐주더냐?”
“그런 폭발에서 살아남는 생물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나?”
레녹의 까칠한 대꾸에 크로켄이 껄껄 웃었다.
“당돌하군. 공장을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살려줬을텐데…. 나도 받은만큼은 일해야 하니 어쩔 수 없구나.”
날카로운 파충류의 동공이 번뜩였다.
“안타레스의 얼굴을 봐서 고통없이 보내주마.”
크로켄이 흉흉한 오른손을 들어 레녹의 얼굴에 가져다댄 순간, 레녹도 곧바로 마법을 발동시켰다.
[그래비티 바인드]콰직ㅡ!
“음?”
레녹의 뒤쪽에서 쏘아져나간 자줏빛 채찍이 한순간 크로켄의 팔을 멈춰세운다.
평범한 봉쇄마법이었다면 큰 효과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비티 바인드]는 대상의 질량에 비례해서 움직임을 억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크로켄의 육중한 무게를 그대로 이어받은 중력의 채찍은 아주 잠깐이지만, 확실하게 무방비한 거인의 몸을 짓누르고 멈춰세운다.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레녹이 뒤로 구르면서 한번 더 마력을 끌어올렸다.
남은 마력을 아끼지 않고 모조리 들이붓는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여력을 남길 생각은 없었다.
온 몸이 욱신거리는 와중에도 체내의 마력은 레녹의 의사에 따라 정교하게 결합하면서 심상을 투영한다.
앞으로 내뻗은 두 손가락 사이로 서릿발같은 냉기가 흐르기 시작한 순간, 레녹이 그대로 양 손을 바닥에 가져다댔다.
[프로스트 혼]후우욱!!
눈을 시리게 만드는 섬광. 피부를 타고 흐르는 저릿한 냉기.
땅을 향해 쏘아낸 레녹의 마법이 중력의 채찍을 타고 흘러 비늘로 덮인 양 팔에 닿은 순간.
쩌어어엉!!
크로켄의 거체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청록색 비늘에 새하얀 서리가 끼고, 가시같은 이빨 사이로는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온다.
파충류같은 동공도 얼어붙은채로 허공에 시선을 멈춰세웠다.
일단락
“….해, 해치웠나?”
멀리서 해서는 안될 말을 지껄이는 딜런을 무시한 레녹은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급격한 체온변화에 약한 변온동물. 그 상성을 찌르려는 시도가 운이 좋게도 들어먹힌 모양이었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고작 이 정도로 끝날 상대였다면 애초에 저 초고열의 폭발속에서 멀쩡히 살아나올리도 없었을 터.
남은 마력은 이제 바닥에 가깝고, 손에 남은 무기는 고작 두가지 뿐.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없다. 레녹은 지금 주어진 이 잠깐의 공백이 얼마 가지 않을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 생각대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굳어버린 크로켄의 거체가 조금씩 흔들리면서 얼어버린 비늘 사이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는 내구성과 맷집으로 순식간에 냉기의 구속을 빠져나오고 있던 것이다.
조금씩 그 진동을 키워가는 크로켄을 눈앞에 두고 레녹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주어진 시간을 모조리 사용해서 승부를 내야한다.
절박한 순간 미친듯이 머리를 굴리던 레녹이 허리춤에서 뽑아든것은, 처음 공장을 탈출했을때부터 그와 함께했던 권총이었다.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마력을 이번에야말로 끝까지 긁어모았다.
마력을 각성한 뒤로는 몇번 느껴본적 없는 압도적인 탈력감.
하지만 여기서 승부를 봐야한다. 온 몸이 텅 비어버린듯한 공허함에 이를 악물면서도 레녹은 마법을 영창했다.
바라고 소망하는것만으로 그의 내면에서 순식간에 조립된 심상이 마력을 움켜쥐고 현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공용마법. 그중에서도 원거리 무기를 보조하는데 특화되어있는 보조마법들이 레녹의 의지와 생각을 거쳐 순식간에 마력으로 현실에 빚어졌다.
[조준보정] [궤적유도] [관통강화]WORLD ver2.0에서 플레이했던 마총사. 캐릭터를 다룰때 수도없이 사용했던 사격보조마법들이 순식간에 총신을 스치고 사라진다.
마치 아무런 걱정없이 게임을 즐기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머릿속에서 떠오른 보조마법을 차례대로 때려넣는다.
낡은 권총이 새겨진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새파랗게 달아오르지만, 레녹은 무시하고 그대로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투사체 가속]타아앙!!
총구에서 빛이 번뜩이는 것과 함께 레녹이 들고있던 총이 그대로 무너져내린다. 안에 담겨있던 마력의 격렬한 변동을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총알 한발을 쏘는데 레녹이 때려부은 보조마법은 무려 네가지.
신속함. 정확성. 화력과 관통력을 모조리 강화해서 노리는 곳은 정확하게 크로켄의 안구와 뇌를 관통하는 궤적이다.
레녹은 지금 이 대치구도에서 죽었다 깨어나도 크로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장을 통채로 무너뜨리는 폭발에서도 상처하나없이 살아남는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급소를 노리는 단 한방의 기습말고는 그 어떤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다.
레녹이 알고 있는 대형마법의 위력을 강제로 증폭시켜서 때려박는다면 또 모르지만, 잇따른 전투로 남은 마력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
크로켄의 시야를 가릴 수 있는 그 짧은 시간동안 남은 마력으로 꺼낼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공격.
아이러니하게도 레녹의 머릿속에서 떠오른것이 마총사로 플레이할때 지겹게 사용했던 보조계열의 사격콤보 마법이었던 것이다.
보조계열의 마법들은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하고 효율이 적은 대신, 마력 소모 자체가 극히 적은 편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레녹이 짜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한 수.
고민은 길었고, 준비는 영겁같았지만 결과가 나타나는것은 한순간이었다.
세로로 된 동공이 꿈틀대며 드러나는 순간, 타이밍을 마법으로 보조한 레녹의 총알이 정확하게 그 얼어붙은 눈동자 가운데 직격했다.
콰직!
소리와 함께 크로켄의 얼굴이 뒤로 크게 꺾였다.
파앙!!
그와 함께 그의 전신을 묶어두고 있던 [프로스트 혼]의 효과가 완전히 박살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
힘겹게 도검을 쥐고 달려오던 딜런도, 부서진 총 손잡이를 쥐고 있던 레녹도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 모습을 응시했다.
억겁과도 같은 침묵이 흐르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크로켄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아주 좋은 시도였다.”
“……..”
“상대가 나라는 걸 빼면 말이지.”
“….괴물 새끼가.”
레녹이 허탈하게 중얼거린 그 말에 모든 결과가 함축되어 있었다.
4개의 마법을 뒤집어씌워 단 한번의 기회에 걸어 쏘아냈던 그의 소망은, 크로켄의 눈꺼풀 사이에서 그대로 멈춰 서 있었으니까.
저 괴물은 오로지 눈꺼풀의 근육만으로 레녹이 쏘아낸 탄알을 붙잡아세운것이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결과. 하지만 레녹의 이성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틀린말은 아니지. 나도 내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그는 흉성을 터트리면서 천천히 눈을 뜨고 잡고 있던 총알을 떨어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총알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눈을 다치는건 피할 수 없었는지, 파충류의 세로 동공에서 진액이 줄줄 흘러나왔다.
“그래도, 좀 아프군.”
크로켄이 씩 웃었다.
레녹은 떨리는 손으로 수중에 남아있던 레이저 절단기를 꺼내들었다.
“고통없이 보내준다는 말은….. 없던걸로 하지.”
콰아아아앙!!
두번째 기회는 없었다.
그 말과 함께 휘둘러진 크로켄의 오른팔이 거대한 충격파를 일으키며 뻗어나와 레녹을 덮쳤다.
고막을 터트릴것 같은 굉음. 물리법칙을 비웃는듯한 초월적인 근력과 막대한 충격량.
반응조차 하지 못한 레녹의 약한 육체는 순식간에 한줌 핏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
죽는건가?
땅에 얼굴을 처박은 뒤에야 레녹이 떠올린 생각은 그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통각은 생생하게 느껴지고, 사지도 멀쩡하게 움직인다. 몸에 두르고 있던 실드가 박살난 것 말고는 무사했다.
“…….?”
그제서야 목숨을 건졌다는것을 깨달은 레녹이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전신을 뒤덮은 흑색의 금속 슈트. 눈 아래쪽을 가린 새카만 철가면과 짧은 단발로 쳐낸 검은 머리칼.
두 눈동자와 슈트 너머로 간간히 흐르는 녹색광을 번뜩이는 여자 하나가 홀로 크로켄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왼손에 쥐고 있는 길쭉한 기계장치에서 뻗어나온 초록색의 파동이 크로켄의 공격을 둔중하게 튕겨낸다.
그제서야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악어가 이빨을 드러내며 비죽 웃었다.
“이런….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군. 시정부의 사냥개가 도착할 때가 되었던가?”
“크로켄 아실러스. 이건 선을 넘었어.”
마스크 너머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장을 통채로 터트려놓고 들키지 않을거라고 생각한건가?”
“…….”
“한동안 복마전이 움직일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42구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은 목적이 뭐지?”
“그건 좀 억울한데, 이벨린. 공장을 이꼴로 만든건 내가 아니라 저 두 놈이다만.”
크로켄은 그렇게 말하면서 딜런과 레녹을 가리켰지만 돌아오는것은 코웃음뿐이었다.
“그쪽에게 머리통이 터지기 직전이었던 이 변태마스크가? 말이 안되는 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레녹을 막지못해서 공장을 터트리는걸 방관했다는것 보다는, 범죄조직의 간부인 크로켄이 공장을 박살내고 있다는 시나리오가 훨씬 더 그럴듯하다.
크로켄은 그 대답에 완전히 완전히 의욕을 잃어버린듯 어깨를 으쓱였다.
“크크크…. 마음대로 생각해라. 더 이상은 못해먹겠군.”
“도망치는건가?”
“시정부의 에이전트와 싸우는건 계약에 없었다. 굳이 손해보는 일을 할 필요는 없지…”
그는 아직도 녹색 파동 사이에서 잡혀있던 그의 팔을 느릿하게 빼낸 뒤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저 호전적인 괴물이 이 자리에서 승부를 보는 대신 전투를 피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녀가 크로켄도 껄끄러워할만큼 강력한 초인이라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여자, 이벨린은 크로켄을 막아서는 대신 말없이 그가 폐허가 되어버린 공장 너머로 사라지는것을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강하게 나왔지만, 그만한 괴물과 정면으로 부딫히는것에 부담감을 느낀것이다.
작게 한숨을 내쉰 이벨린은 천천히 뒤로 돌아 쓰러져 있는 레녹을 향해 걸어왔다.
“…..구해줘서 고맙다.”
딱딱한 아스팔트에 사지를 엎은채로 레녹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사정이 어찌되었든 레녹이 그녀의 손에 목숨을 건진것은 사실이다.
뜻하지 않은 불운과 행운이 겹친 것일까. 하루라도 피가 마르지 않는날이 없었다.
그녀는 피곤한 안색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기고는 레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어설 수 있겠어?”
레녹은 그녀의 손을 거절하고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