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69
기본적으로 시정부 직속 연구소들의 개발 기조가 깊이를 추구하기보다는 편의성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겠지.
단순히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폭발부적과 같은 물건부터, 특정한 공간에 은닉술식을 걸거나 통신기기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안테나와 같은 아이템들.
레녹이 이것들을 전부 받아 챙기겠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걸 모조리 받아내도 그의 몸값을 충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대가를 받지 않아도 결국 열차를 보호하는 일에 손을 거들기는 했겠지만, 준다는 물건을 사양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시아가 레녹의 옆에서 걸으면서 말했다.
“당신,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마법사죠?’
“…….”
“그쪽이 열차 방향을 바꾸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봤어요. 틀림없이 자력계열 고유마법 사용자……. 그만한 위력이라면 틀림없이 마탑 소속이거나 천부적으로 특이마력을 타고난 수준의 재능이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품 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레녹에게 내밀었다.
“사정이 있어서 여기서 얼굴을 보일수는 없지만, 어차피 그쪽은 제 소속까지 다 아는데 굳이 숨길 필요는 없을것 같네요.”
[칼라일 연구소 차석연구원] [아카샤 루베닐]아카샤라…… 카시아라는 이름은 적당히 그녀의 본명을 바꿔 부른 이름이었던 모양이다.
“나중에라도 연구소에 찾아오시면, 저희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를 여러 가지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당신 정도 되는 마법사라면 소장님도 무척 좋아하실 거예요.”
“흠, 그건 정말…….”
결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몰래 한번 들려서 라바테논 대학에 어떤 종류의 기술지원을 넣고 있는지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아카샤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깔끔하게 명함을 건네주는 선에서 만족하고 돌아섰다.
아무래도 그녀는 바일라 연구소장의 명을 받고 자치령에 온 만큼, 다른 안내인과 함께 자치령에 들어갈 생각인 듯했다.
레녹은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뒤로하고 나서야 자치령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고오오오-
“…….”
끝도 없이 펼쳐진 고원.
지평선 너머로 어디까지나 이어져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은 어느 순간 부자연스럽게 끊기고 대신 까마득한 절벽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자욱하게 낀 안개 너머로는 제대로 된 풍경도 보이지 않지만, 그 높이가 수십미터를 가뿐하게 넘긴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다.
대륙 동북부 첨단에 위치한 이 절벽 너머 해역의 이름은 ‘이해의 바다’.
이곳에서 불어오는 특수한 상승기류는 아주 극소량의 마력만으로 강력한 부유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바로 이해의 바다의 특성으로 인해 만들어진 지역이 바로-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맙소사, 정말로 하늘에 섬이 떠 있어…….”
부유섬 군락지, 필레놈 자치령이었던 것이다.
제니와 조든이 말했던 자치령의 ‘특수한 지형’이라는 것도 모두 여기에 기인하고 있으며, 그 연유도 곧바로 이해하게 만든다.
바다 위에서 허공을 부유하는 무수한 섬의 군락지라는 것은 레녹에게 있어서도 생전 처음 보는 기이하고도 신비로운 풍경.
초목이 우거진 섬들이 구름 위를 노닐고, 여러 섬에서 이어서 떨어져 내린 물줄기가 느릿하게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간다.
다비마저도 슬쩍 품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올려다볼 만큼 아름다운 장관이었다.
[절경이군요.]“……”
이 비경 때문에 아주 오래전에는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면서 외해에서 다가오는 종말을 관측하는 장소로도 쓰이던 역사 깊은 유적지.
그렇기 때문에 바로 천견 마드레아 팔시어가 거주하던 ‘등대’가 위치한 곳이기도 했다.
“단순히 관광을 즐기러 온 거라면 좋았겠지만…….”
해야 할 일이 많다.
마약왕의 금고 위치를 찾아내는 것과 동시에, 차기 등대지기를 만나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했다.
하필이면 자치령에서, 두 가지 안건이 겹친 것은 우연일까.
이 일이 어디까지 뻗어 나가게 될지. 그리고 레녹에게 있어서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결국 직접 부딪쳐보고 나야 알 수 있는 법이다.
복잡한 심경을 억누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요하게 부유하는 섬의 정경만이 말없이 레녹의 시선을 빼앗고 있었다.
* * *
“자, 자치령으로 오시는 분들은 이쪽으로 와주세요!”
절벽의 끝자락에 위치한 큼지막한 건물 하나.
고속도로의 휴게소를 다른 풍경으로 개조해놓은 듯한 독특한 외관을 지닌 건물 앞에서 모자를 눌러쓴 청년이 사람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발칸에서 열차를 타고 온 다른 이들을 제외하고도 적지 않은 이들이 자치령을 방문하기 위해 찾아오는 듯하다.
아마 외부에서 자치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터.
그렇게 생각하면 발칸 쪽에서도 섣부르게 자치령과의 전쟁에 돌입하지 않는 이유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부유섬 군락지라는 독특한 환경과, 특별한 이동수단을 사용해야만 출입할 수 있는 이해의 바다라는 환경을 생각하면 자치령과의 전쟁은 기존의 양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을 테니.
“처음 오시는 분들은 특히 제 말을 잘 들어주셔야 합니다!!”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청년의 설명이 이어졌다.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는 것과 함께 스크린이 걷히더니 뒤쪽에서 대략 2m 정도의 금속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씬한 유선형에 물고기와 전투기를 반씩 섞어놓은 듯한 외관.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금속체의 양쪽에는 지느러미 형태의 작은 날개가 달려있었다.
부유섬 군락지 (1)
“지금 보시는 이 물건은, 바로 필레놈 자치령에서 섬과 섬을 오가기 위해 만들어진 소형 비행선입니다. 적은 마력으로 물체를 높게 띄울 수 있는 자치령의 환경상, 이 바다에서만 쓰이는 아주 효율적인 이동수단인 셈이죠. 자치령에서는 이 비행선을 ‘윙보트’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능숙하게 윙보트 위에 올라타 운전대를 잡았다.
그와 함께 부드럽게 바닥에서 떠오른 비행선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군.”
“운전대를 잡자마자 저렇게 시동이 걸리다니, 확실히 편리하겠어.”
윙보트를 처음 본 사람들은 비행선을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고, 이미 한번 자치령에 들러본 사람들은 따분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
반면 레녹은 흥미로운 눈길로 남자가 모는 윙보트를 관찰했다.
정확하게 말해서, 비행선 내부에서 돌아가는 마력의 작동원리를.
‘적은 마력으로 큰 부유능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니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군.’
윙보트 내부에서 돌아가는 마력의 양이 워낙 적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양쪽 날개 밑으로 뿜어져 나오는 추진력은 정말 희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 희미한 추진력을 가지고도 윙보트는 수십 명의 사람을 앞에서 멀쩡히 부유하고 있었다.
‘이 근처의 중력에 딱히 변화가 없는 걸 생각하면 아마 마력을 사용한 추진력만이 저 특이한 상승기류에 호응하는 모양인데…….’
확실히 지형이 지형인지라 이곳에서 일어나는 자연현상도 특이하기 그지없다.
그 밖에 비행선에 뭔가 숨은 비밀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 레녹이 윙보트를 유심히 관찰하는 사이,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윙보트를 보는 건 처음이시군요?”
레녹과 비슷한 나잇대로 보이는 청년이다. 갈색 머리를 모두 뒤로 넘기고 지팡이를 든 정장 차림새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레녹을 바라보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는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그러면 그렇게 놀라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마력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신 분들은 아직 납득하기 어려운 영역이지요.”
“…….”
“바이젠이라고 합니다. 블레이버 마탑에서 왔죠.”
블레이버 마탑이라면…… 화염계열 고유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의 집단으로 유명한 곳이다.
대부분 그 거취를 비밀로 하는 여타 마탑들과는 달리, 발칸의 시민들에게도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유명한 마탑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 소속 마법사들을 속세에 진출시키겠다고 선언하면서 활동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바이젠이라는 청년도 그러한 일환일까.
레녹은 손을 내미는 바이젠에게 적당히 악수를 해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이젠은 혼자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치령에서 직접 개발한 윙보트가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자면…… 이건 따지고 본다면 화염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추진력과도 연관이……”
말이 많다. 대충 흘려들으면서 논조만 이해하자면 소속 마탑에 대해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윙보트의 작동원리는 거의 파악했으니 새겨들을 이유는 없었다.
저 물건은 이 자치령의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면 완전히 사용이 불가능한 물건이다.
비행선이라는 물건에 혹해서 잠시 관조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결론은 변하지 않았다.
하긴 레녹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고, 마력으로 움직이는 소형 비행선을 제작할 생각을 한 사람도 천지에 널려 있었겠지.
오히려 지금 바이젠이 떠들어대는 화염마법의 강력한 추진력을 이용하면 비행선을 제작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이건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군.’
떠들어대는 사이 앞에서 윙보트를 타고 있던 청년의 설명이 끝났다.
윙보트를 사용하기 위해선 일정 이상의 대여료를 내고 자치령에 방문하는 기간 동안 빌리는 것으로 한다.
사실상 이 윙보트가 자치령에 찾아오는 외부인들의 출입증으로 작용하며, 윙보트의 대여 기간이 끝난 외부 방문객들은 자동으로 자치령 밖으로 추방당하는 듯 했다.
레녹은 다른 손님들이 먼저 돈을 내고 윙보트 한 대씩을 빌려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미 대충 이해는 끝났지만, 기왕이면 좀 멀리까지 날아갈 때 어떤 상승기류를 타고 흘러가는지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사실 저는 화염초라고 불리는 희귀한 약초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온갖 약재의 보고라는 자치령에서라면 그 재배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였죠.”
“…….”
“어떻습니까?”
“뭘 말하시는건지 모르겠군요.”
레녹의 담담한 대꾸에도 바이젠은 아랑곳하지 않고 빙긋 웃으면서 한번 더 손을 내밀었다.
“어떤 연유로 자치령에 찾아오셨는지 모르지만 처음 이곳에 오신 분이라면 미진한 부분이 많이 있을 겁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바이젠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지만, 레녹은 그 손을 마주 잡는 대신 빤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친절한 태도를 고수하는 것 같지만 그 속내는 다르다.
레녹에게 처음 말을 거는 순간부터 마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식의 단정. 그리고 자신의 도움을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여기는 거리낌 없는 태도.
공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태도와 언동 곳곳에서 자신감을 빙자한 오만이 묻어나오는 모습.
그리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이 괴리감은 레녹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시거 뱅 갱단을 상대하던 최종전.
토르번 마탑 출신의 마법사였던 에덴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그의 성정을 뼈저리게 실감하지 않았는가.
아마 마탑의 마법사들이 가지는 우월감이란, 이런 방식으로 은근히 표출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대가는?”
“……예?”
“그쪽이 저를 도와줘서 얻는 대가는 뭐죠? 이유 없는 호의를 베푸는 성격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레녹의 말에 순간 바이젠의 입매가 꿈틀거렸다.
그 심정까지도 전부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레녹도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능력을 판단하고 단정 지으며 그것을 표출하지만, 반대로 자신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에 있어서는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름대로 스스로를 심계가 깊고 인내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스스로의 자존감은 굉장히 높은 성격.
만약 그가 레녹처럼 시궁창에서 기어 올라온 사람이라면 고작 이런 사소한 말에 심기가 불편해지거나,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는 일은 없겠지만…….
바이젠의 태도는 발칸의 프리랜서들보다도 어설픈 면이 있었다.
“흠, 뭐 제가 그다지 큰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사이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은 바이젠이 헛기침을 했다.
“다만 마력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인 것 같아서 마법사 된 도리로 도움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바이젠은 그렇게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레녹의 눈치를 보았다.
“그, 정 대가를 주고 싶으시다면 코트 깃에 달린 장신구라도 괜찮습니다.”
“…….”
레녹은 물끄러미 그가 말한 장신구를 내려다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리나 페스필드에게서 직접 탈취해 온 닉스의 휘장.
바이젠은 그 물건을 알아보고 레녹에게 그것을 보상으로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레녹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죄송합니다. 이 장신구는 제 부모님께서 남겨주신 유일한 유산이라서요.”
“아…… 그렇군요.”
“저도 무슨 효능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법사님께 드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여기서 서로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레녹은 그렇게 말하고 바이젠을 지나쳐 확연하게 줄어든 대열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윙보트를 하루 대여하는데 필요한 금액은 10만 셀.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할지 모르니 기한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겠지.
등 뒤에 따라붙는 바이젠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레녹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열흘 치를 예약하고 윙보트의 운전대를 움켜쥐었다.
자치령으로 떠날 시간이었다.
* * *
“이야기는 잘 되셨습니까?”
옆에서 스리슬쩍 다가온 다른 마법사의 말에 바이젠이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고 대꾸했다.
“전혀요.”
“저런…….”
“잘만 구슬리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경계심이 강하더군요. 거래를 먼저 언급하는 걸 보니 그래도 아주 뜨내기는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윙보트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레녹의 표정은 영락없이 마력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겉으로는 아무런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함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