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45
약먹는 천재마법사 245화
화산지대(2)
주위의 놀란 시선을 뒤로하고 레녹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런 방식의 빙결마법도 나쁘지 않군. 효율은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레녹이 그동안 사용해 왔던 공용마법체계의 빙결마법은 기본적으로 수원이 있는 환경에서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한다.
당연히 그만큼 마력소모가 적은 데다 광범위한 범위를 커버하는 것이 가능해서 레녹 역시 먼저 물을 끼얹은 다음 억지로 판을 만들어내는 식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수분이 없는 곳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의미.
그렇기 때문에 레녹은 빙결계열. 그것도 해당 속성을 특화시킨 고유마법체계를 사용하는 마법사들의 방식을 알아내고자 임원금고에 들렀던 것이다.
그곳에서 맥퀸의 해방도술과 주계도문을 얻은 것은 별개의 수확.
레녹의 진짜 목적은 바로 염열계열과 빙결계열 마법의 동시 수련에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일행을 돌아보며 그렇게 말한 뒤, 다시금 마력을 끌어올렸다.
빙결계열 창조마법.
[원영동(園英凍)]가볍게 걸음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체내에서 격렬하게 마력이 회전한다.
위계의 완성. 하나의 질서로 통합되기 시작한 레녹의 마법체계속에서 새로이 더해진 지식이 힘으로 화했다.
빠가가가각……!!!
수분이라고는 일체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거짓말처럼 얼음조각들이 튀어나오며 지상을 냉기의 숲으로 뒤덮고
산 위로 향할수록 더해가는 열기를 중화시켰다.
그리고 그제서야 레녹이 무슨 방식으로 이런 규모의 빙결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를 깨달은 요원들이 입을 살짝 벌렸다.
“물이 아니라 마력을 통째로 얼려서 굳혀버린 건가……!!”
“말도 안 돼……. 입자 단위로 마력을 조작하는 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마력의 물질화야 마법사인 만큼 당연하다고 해도, 마력으로 수분을 대체하는 것은 물과 얼음의 성질을 완벽하게 따라 하지 않고서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기예다.
선천적으로 특수한 형질을 타고났거나, 혹은 빙결계열 마법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수반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
요원들이 빠르게 이벨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외부고문님을 이번 일에 부르셨나 했더니…….”
“반 님이 이 정도로 빙결마법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팀장님은 알고 계셨군요!”
“응? 뭐어……. 뭐, 그런 셈이지.”
이벨린의 머쓱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레녹이 품 안에서 다시 슬쩍 책을 꺼내 들었다.
‘다음에는 어떻게 하더라……?’
물이 없다면 수분 대신 사용할 입자를 취사선택하기만 하면 그만.
필요한 마력조작능력은 이미 차고도 넘친다.
남은 것은 다른 빙결계열 고유마법 사용자들이 어떤 방식과 만들어진 빙결조각들을 조작하고 응용하는지 그 요령을 빠르게 습득하는 것뿐.
그 정도는 책 한권 정도의 지식만 있다면 충분했다.
“……으음.”
레녹이 한 손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손가락을 움찔거리자, 그에 맞춰서 사방으로 뻗쳐나간 냉기가 양옆으로 쩍 갈라지며 큼지막한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상을 눈치채고 달려 나온 용암 괴수들이 섣부르게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신랄하고 강력한 빙판조각.
하지만 레녹의 손짓에 맞춰서 뻗어 나가던 빙판길이, 어느 순간 딱 틀어막히더니 일정한 지점에서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그제야 뒤에서 느긋하게 레녹을 따라오던 이벨린이 눈을 빛냈다.
“이건…….”
그녀는 근처에서 작은 조약돌을 하나 집어 들더니 그대로 빙판길이 끊긴 지점에 던졌다.
치이이익!!
허공에서 특정한 지점을 통과하자마자 조약돌이 그 자리에서 불이 붙어버리며 녹아내리듯이 사라진다.
이제까지 마주한 자연현상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일정한 지역을 기준으로 넘어오는 모든 외부물질을 불태우는 결계. 마탑의 힘이었다.
허공에서 불타올라 사라지는 돌멩이들을 바라보던 레녹이 말했다.
“마탑에 방문하는 모든 손님들이 이런 불편함을 겪는다는 건 비현실적이지.”
“……”
“지금 이 상황 자체가, 저쪽에서 우리의 방문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겠군.”
레녹이 이벨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할까?”
곰곰히 생각하던 그녀가 표정을 굳히고 말했다.
“화산지대에 올라오기 직전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넣었어. 그런데도 아직까지 이 정도 수준의 보안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우리가 알아서 이걸 뚫고 들어오라는 의미겠지.”
“…….”
“반, 할 수 있겠어?”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손을 쭉 내밀었다.
무방비하기 짝이 없는 그 손짓에 다른 요원들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지만, 레녹의 손이 아무렇지도 않게 빙판길이 끊긴 지점 너머로 향하고.
화르르르륵!!
순식간에 불이 붙은 채 타오르기 시작했다.
“……반 님!!”
“잠깐만.”
실드로 손을 보호한 채 천천히 결계 내부의 마력흐름을 확인한다.
특정한 영역을 점유하고 외부에서 진입하는 물체를 포착, 원거리에서 자동으로 점화주문을 걸어 불태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결계 내부에 형용할 수 없는 열기가 가득 차 있다기보다는, 레이더와 비슷한 방식으로 적을 탐지하고 요격하는 방식에 가까운 술식.
‘의외로 원리는 꽤 간단하군. 그렇다면…….’
“어때?”
“여차하면 결계를 통째로 박살낼 생각이었지만……. 그럴 필요도 없겠어.”
손을 빼낸 레녹이 왼쪽 소매를 잡고 가볍게 털어내자, 소매 안쪽에서 탄창 수십 개가 와르르 쏟아져나왔다.
경량화마법과 축소마법을 걸어서 수납하고 다니던 무수한 탄약들.
쾅!!
탄창의 케이스를 박살 내고 안에 들어 있던 수백 발의 탄알들을 마력사로 쥐어 그대로 허공으로 띄워 올린 레녹이, 그대로 결계 너머로 총알들을 집어 던졌다.
두두두두두두두두!!!!
결계 너머로 진입하자마자 일제히 불타오르는 총알들.
레녹이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그대로 손을 내저었다.
조작계열 창조마법
[마력사 주입] [다중공명 : 발산]퍼버버버버벙!!!
레녹의 통제하에 있던 수백 발의 총알들이 강렬한 마력을 내뿜으며 그 자리에서 터져 나갔다.
결계 너머에서 새파란 섬광이 연달아서 번뜩이며 시간 차로 터져 나간다.
재와 먼지로 가득한 하늘에 때아닌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그제야 레녹이 손을 거둔 뒤 아무렇지도 않게 빙판이 끊긴 길 너머로 걸음을 옮겼다.
“가지.”
“……끝난 거야?”
“일시적으로 결계의 탐색 방식에 혼선을 준 것뿐이야. 적을 탐색해서 요격하는 방식의 보안결계라면, 탐색 자체를 방해해서 후속타를 방지할 수 있을 테니까.”
그제서야 레녹의 말을 이해한 다른 요원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플레어를 뿌려서 결계의 탐지 자체를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아무런 장비도 없이 즉석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줄은…….”
“아니, 이건 결계의 탐색 패턴을 온전히 해석하고 투하주기를 철저하게 조절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텐데 어떻게…….?”
“오래 가지는 않을 거다. 빨리 움직이지.”
레녹의 말에 일행은 잡담을 그만두고 빠르게 움직였다.
화산 위로 올라갈수록 주위 환경이 격변한다.
단순히 열기로 가득차 호흡이 곤란한 수준을 넘어, 아래쪽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로 시야가 방해받을 정도.
하지만 레녹은 화산의 분화구 중심에서 보이는 풍경을 보고 살짝 감탄하고 말았다.
“아무리 염열계열 마탑이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곳에 자리를 잡을 줄이야…… 배짱 하나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군.”
산의 중심에서 끓어넘치는 거대한 용암의 호수.
주홍빛으로 빛나는 초고온의 호수를 둘러싸고 거대한 구조물 다섯채가 우뚝 서 있다.
나선형으로 비틀린 다섯 탑의 비틀린 곡선 사이로 바닥에서 끌어올린 용암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각 구조물 사이에는 암반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서 서로를 지탱하고 이어준다.
칙칙한 암석으로 만들어진 마탑의 주위로, 용암이 나선의 결을 따라 흐르며 은은하게 빛났다.
마치 나사의 피치 사이로 빛이 발광하는 듯한 독특한 외견.
블레이버 마탑은 단순히 화산지대에 자리를 잡은 것을 넘어서, 화산의 용암을 마탑의 동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화구의 중심으로 향하자 일행은 그제서야 거대한 탑의 지상에서 그들을 마중나온 한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짝 빛깔이 어두운 붉은 로브를 두른 인자한 인상의 노인이다.
그는 이쪽 일행을 바라보면서 사람좋은 표정으로 유쾌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노인이 손을 흔들면서 아이처럼 소리쳤다.
“이벨린!!”
이벨린 역시 그제야 옷깃을 다듬고는 노인을 향해 걸었다.
“아인츠 님, 오랜만이에요.”
아인츠라 불린 남자는 곧바로 이벨린과 손을 맞잡은 뒤, 가볍게 포옹하고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참 오랜만에 보는구나! 도시에서의 생활은 괜찮은 편이냐?”
“걱정해 주신 덕분에요.”
“마르시아 가문은 네가 있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구나. 못난 동생이 대녀를 보살피지 못하니 형님을 볼 낯이 없다.”
이벨린은 별다른 말을 하는대신 희미하게 웃었다.
아인츠는 다른 일행들을 보고 진중한 얼굴로 돌아와 고개를 살짝 숙였다.
“블레이버 마탑의 실증이론연구 3반의 아인츠라고 합니다.”
오만한 마탑의 마법사로는 느껴지지 않는 정중한 태도.
다른 일행이 얼떨결에 고개를 숙이는 사이, 아인츠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곧바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다들 하나씩 받으시지요.”
새빨간 종이 재질로 만들어진 팔찌. 하지만 그 안에 모종의 마력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레녹은 놓치지 않았다.
아인츠는 자신의 팔목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는 똑같은 물건을 가리키며 웃었다.
“마탑이 초대한 손님들에게 하나씩 드리는 물건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외부인 신분을 증명하는 물건으로, 귀빈들을 위해 만들어진 소모품이죠.”
“소모품이라는 건…….”
“팔지를 길게 찢으면 마탑의 결계 밖으로 역소환되는 형식입니다. 마탑 내부에서 무언가 잘못되어간다고 느끼신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사용하시길.”
순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 일행들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대신 레녹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팔찌를 아인츠 님도 같이 차고 계시는군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레녹을 돌아본 아인츠가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도 마법사군요. 그것도 상당한…… 아니, 굉장한 수준이야.”
“…….”
“정확합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나 역시 이 마탑에서는 외부인이나 다름없지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실까요?”
아인츠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일행을 마탑 안으로 안내했다.
나사의 머리부분에 해당하는 마탑의 옥상. 그 틈새에 난 외길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가자 순식간에 시원한 바람이 감도는 청결한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외부인의 출입을 금했음에도 마탑의 내부 분위기는 그리 한가해 보이지 않았다.
방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복도에 난 창문 사이로 다양한 복색과 차림새를 한 이들이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다른 요원들은 물론이고, 레녹 역시 다소 흥미를 감추지 못하고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으로 방문한 마탑이 이곳이 될 줄은 몰랐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마법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모여서 연구를 하는지 항상 궁금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아인츠는 일행의 맨 앞에서 뒷짐을 지고 걸으면서도 생글생글 웃고 있을 뿐,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게 여유로 보일지 몰라도, 레녹의 눈에는 달랐다.
마치 억지로 태연함을 가장한 듯한 투명하기 그지없는 표정.
거대도시에 온 첫날부터 가면을 쓰고 살아온 레녹에게는 그리 구분하기 어렵지 않았다.
남을 속이는 일에 그리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벨린도 마탑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살짝 얼굴이 굳어 있었다.
일행은 순식간에 마탑의 복도를 지나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인상적인 드넓은 복도 입구.
마탑의 최상층에 위치한 고급회의실의 문 앞에서 아인츠가 몸을 돌렸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원로원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지만, 그 입매는 전에없이 딱딱하게 변해 있었다.
“이벨린, 건투를 빈다.”
철문이 열리고, 아인츠가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두꺼운 문이 꾹 닫히고, 어둠만이 가득한 회의실에 그제야 천천히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소만.”
마우저가 중얼거린 말대로, 고풍스러운 디자인을 한 길쭉한 테이블, 그리고 가지런히 놓인 의자 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벨린은 무어라 말하는 대신, 앞에 놓여 있는 간이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화르륵!
그와 동시에, 테이블의 좌석 위에서 제각기 다른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화산지대를 올라오는 것을 방해하는 결계가 펼쳐져 있었을 텐데.]다른 요원들이 놀라는 사이, 불꽃들 사이에서 묵직한 저음이 울려 퍼졌다.
[굉장히 수준 높은 재밍이더군. 그쪽에서 손을 쓴 건가?]“…….”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레녹에게 향했다.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불꽃들도 레녹의 얼굴을 비추었다.
잠깐의 침묵이 지나고 나서야, 불꽃 너머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들이 오시는 것을 잊고 미처 결계를 해제해 두지 않았군. 미안하게 생각하네.]사태를 수습할 생각도 없어보이는 담담한 사과.
이벨린은 놀란 기색도 없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로분들께서는 직접 저희를 환영하실 생각은 없으신 모양이군요.”
[…….]“두 개 도시의 인가를 받고 정식으로 자리했습니다만, 이번 일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그제서야 가장 오른쪽에 떠오른 불길이 일렁이면서 느릿한 목소리를 토해냈다.
[현궁……. 그 이름은 우리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지.]“……”
[마르시아의 비의를 가장 온전히 물려받은 궁사라고 했던가. 그대만 한 수준의 전사가 마탑을 방문한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상황이 그리 적절하지 못했군.]불꽃은 허공에서 이리저리 타오르면서 마치 고개를 돌리듯이 내비치는 면을 바꾸었다.
[거기에 마우저 공방장까지……. 내 직접 마중하지 못한 것을 사죄하오. 마키나에서 이 일을 너그럽게 보아 넘겨준다면 고마우련만.]이벨린을 대할때와는 또 다른 정중한 말투.
그들이 얼마나 이 털복숭이 대장장이를 중히 여기는지 짐작할만 하다.
하지만 마우저는 그 말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난 고작 그런 인사치레를 듣기 위해 이렇게 먼 길을 내달린 것이 아니오.”
“블레이버 마탑이 복마전과 갈등을 빚은 이후 문을 걸어 잠근 이유에 대해 모두가 걱정하고 있소. 알다시피 화산지대 클라오로니스에 그대들이 세운 마탑은 대륙에서도 한 손에 꼽히는 거대한 화로나 마찬가지. 서부 대륙 철강산업의 핵심 중 하나였던 그대들이 이런 식으로 그간의 일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면 누가 함께 일을 하고 싶어 한단 말인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딘가 어리버리해 보였던 모습은 어디 가고, 또렷한 눈빛과 근엄한 목소리만이 남는다.
오만한 마탑의 마법사들. 그 정점에 오른 원로원에게 호통을 치는 그 모습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레녹은 그제야 이벨린이 여러 가지 불편함을 감내하고 기계도시의 사절단을 기다렸던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사실상 이번 일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해야 할 철강산업의 관계자가 끼지 않고서야, 사실상 마탑을 시찰할 명분을 갖추기 어려웠기 때문이겠지.
“당장 그대들에게 문제를 해결하고 마탑을 개방하라고 말하지는 않겠소.”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로 마우저가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마탑의 일이 문제없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게는 해주셔야겠소.”
[그건……. 무슨 의미지?]“마탑이 복마전과의 항쟁에서 승리하고, 단지 그 여파를 추스르는 중일 뿐이라는 증거가 필요하오.”
마우저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적어도 나는 오늘 이 자리를 그대들이 이것에 동의했다고 생각한 것을 전제로 수락했소만.”
[…….]나직한 침묵이 흘렀다.
마치 자신들이 해야 할 말을 더없이 신중하게 고르려는 사람들처럼.
[좋습니다.]대답이 들려온 것은 한참 뒤, 그것도 아까와는 정반대로 가장 왼쪽에 위치한 불길에서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과는 반대로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 말투는 정중하지만 마치 얼음장이 굴러가는 것처럼 싸늘하다.
[오늘부터 사흘간, 마탑의 모든 시설을 그 쪽에게 개방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