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46
약먹는 천재마법사 246화
지오니스(1)
지오니스의 파격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놀랍도록 빠르게 마무리됐다.
마치 그 자리의 책임자가 이미 결정이라도 된 것처럼, 다른 원로원들 역시 크게 반발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탑의 모든 시설 출입권한을 허락받고, 순식간에 회의실에서 나온 마우저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요즘 친구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제대로 된 친구였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대화였소.”
“지오니스 베르바인. 블레이버 마탑 중앙지부에서 기거하는 탑주의 직속 제자들 중 하나로, 일흔을 넘기기도 전에 성위의 경지에 오른 초신성이라고 합니다.”
이벨린은 여기 오기 전에 마탑에 관해서 적지 않은 조사를 마쳤는지, 마우저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맙소사, 그럼 그 친구가 원로원에서도 얼마 되지 않는 7레벨의 마법사라는 말이오?”
“블레이버 마탑 중앙지부 근방의 분쟁으로 마탑의 실력자들이 전방으로 불려 나간 지금은, 탑 내 제일가는 실력자라고 하더군요. 다른 이들의 반발이 없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으음, 확실히 그동안 보아왔던 고리타분한 마법사들과는 조금 달라. 이 정도라면 블레이버 마탑쪽에서도 충분히 도리를 다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이벨린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거대한 마탑을 전부 둘러보기에 사흘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테니까요.”
용암 호수 한복판에 위치한 이 거대한 마탑은 크기로만 따지자면 수십층 높이 빌딩을 족히 여섯 개 이상 합쳐놓은 크기다.
단순히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마법을 연구하고 학문으로서 학습하는 이들을 제하더라도 수백 년이 넘게 보관된 고서와 자료들, 그리고 온갖 장비들과 유물, 연구논문들이 쌓여 거대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지오니스라는 그 남자, 우리에게 제대로 된 안내인을 붙여주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대외적인 시선을 다분히 신경 쓴 조치라는 말이군.”
레녹이 말했다.
“어찌 됐든 두 도시의 사절단에게 마탑의 내부 시설을 모두 오픈했다는 사실만 있으면, 마탑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위신 정도는 다시 세울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것은, 마탑이 복마전과 싸우다가 그들에게 굴복했을 가능성을 상당히 낮추게 된다.
이벨린의 걱정과는 달리, 블레이버 마탑은 판데모니엄과의 분쟁에서 단지 큰 손해를 입는 선에서 그친 것일까.
레녹은 당장 그 질문에 결론을 내리는 대신, 가만히 눈을 감고 주위의 마력흐름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장 복마전의 흔적을 찾아내지는 못하더라도, 레녹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모처럼 지오니스라는 마법사가 직접 마탑의 시설허가증을 내준 참이다.
이 기회를 극한까지 활용하지 못한다면 마법사도 아니었다.
* * *
일단 이벨린의 제안대로 일행은 제각기 흩어져 각자 생각하는 장소에서 정보를 긁어모으는 일에 열중하기로 했다.
이 드넓은 탑을 전부 확인하는데 전원이 함께 몰려다니는 것은 다분히 비효율적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당장 인원을 나누어서 구획을 정하고 거기서 집중적으로 전수조사를 벌이는 것이 현명했다.
마우저는 자신과 함께했던 일행의 행방을 묻기 위해서라도 따로 움직일 생각으로 보였다.
개중에서도 레녹이 선택한 곳은 탑 내 지하에 위치한 고서 보관함과 연무장이 위치한 실습장.
탑의 마법사들이 탑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꾸준히 수련을 거듭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널찍한 공간이었다.
“그간 많은 마법사들이 저희 마탑을 방문하셨지만, 빙결마법을 익히신 술사분을 모시는 건 오랜만이군요.”
“그렇습니까?”
“예. 아무래도 여러모로 상극에 가까운 속성이다 보니, 오시는 길부터 마탑에 머무르기까지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거든요. 예를 들자면…….”
실습구역을 관리하는 안내인은 자연스럽게 복도 창밖에 나 있는 정원을 향해 팔을 뻗었다.
족히 1미터는 넘어 보이는 크기의 거대한 도마뱀이 유리창 너머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도마뱀의 등위에서 녹색의 불길이 일렁이면서 춤을 춘다. 평범한 생물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샐러맨더라고 합니다. 화산지대에서 서식하는 마수 중 하나로, 불을 좋아하고 한기를 싫어하는 특성이 있죠. 보통 빙결술식을 익힌 술사분들을 보면 난폭하게 성질을 부리는…….”
그렇게 말하려던 안내인의 말이 뚝 멈췄다.
레녹을 빤히 바라보던 도마뱀이 느닷없이 유리창에 머리를 바싹 붙이고 미친 듯이 뺨을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비부비부비부비.
“…….”
헤어진 고향친구를 마주한 듯한 반가움.
애정공세를 퍼붓는 듯한 도마뱀의 열렬한 몸짓에 두 마법사 모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하, 하하…… 마법사님이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군요. 원래 이렇게 아무한테나 친근하게 구는 녀석이 아닌데.”
“실습 구역에서 이런 친구들을 기르고 있는 겁니까?”
레녹은 자연스럽게 질문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사실 레녹의 빙결마법보다 염열계열 마법에 대한 숙련도가 훨씬 높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이런 자리에서까지 수상함을 내비칠 이유는 없었다.
“아, 그렇습니다. 애초에 실습구역이 위치한 3동은 탑 자체가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마법사들의 수준을 가늠해 보기 위한 이런저런 도구와 생물들을 구비하고 있죠.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안내인의 말을 들어보니 외부인에게 마탑의 정경을 보여줄 때 주로 3동의 모습을 구경시켜 줄 만큼, 3동 내부에는 이것저것 신기한 물건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마력의 농도에 따라서 강도를 달리하는 매듭, 마력조작능력을 실험하는데 사용되는 퍼즐, 마력감응력의 수준에 따라서 색을 달리하는 종이라던가.
순수하게 수련자들의 도전정신을 자극하고 자기계발 욕구를 상승시키기 위해 마련된 여러 가지 아티팩트들.
“가장 대표적인 물건으로는 이런 물건이 있죠.”
안내인이 고풍스러운 진열장에서 투명한 수정을 꺼내 들어 레녹에게 내밀었다.
“쥐고 마력을 불어넣으시면 마력의 순간출력을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아티팩트입니다.”
“그렇군요.”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레녹은 그 말에 무심코 손을 뻗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저었다.
“괘, 괜찮습니다.”
왠지 모를 강렬한 기시감이 레녹을 멈춰 세운다. 마치 저 수정을 잡았다가 그대로 수정이 박살 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이적인 직관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를 회피한 레녹이 안내인을 먼저 앞세우고 슬쩍 선반에 놓인 물건을 하나 집어 들었다.
마력감응력에 따라서 색을 달리하는 감별판지. 감응력이 높을수록 다채로운 색이 나타난다고.
다행히 소모품이라 하나쯤은 없어져도 모를 것 같았다.
살짝 종이를 쥐고 마력을 불어넣자, 다양한 빛깔의 색이 순식간에 종이 위로 떠오르다가 이내 미친 듯이 온 종이를 뒤덮기 시작했다.
색이 겹치고 겹치다 못해 나중에는 새카맣게 변해버린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레녹은, 슬쩍 그것을 코트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뒤늦게 안내인이 레녹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뒤로도 레녹은 안내인을 따라 3동 마탑을 두루두루 돌아다녔다.
“이건 염열계열 마법사들의 마력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봉화…….”
화르륵!
“마력압박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압력유리…….”
와장창!
“감응력에 따라 예민하게 느껴지는 꽃가루…….”
“쿨럭!”
“…….”
“…….”
마법사의 미간이 가운데로 좁혀졌다.
레녹 역시 헛기침을 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마법에 대한 지식과 재능이 모여 있는 시설이라서 그런지, 그냥 주위를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레녹의 이질적인 재능이 사방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여기서 괜히 의심을 사면 곤란할 터.
하지만 안내인은 이내 표정을 풀고 활짝 웃었다.
“과연 세상은 넓고 실력자는 많군요.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계시니 직접 이렇게 저희 마탑에 시찰을 나오실 수 있었겠지요.”
“…….”
뭐,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순진하다.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마법을 모르는 이들에 대한 선민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는 한 것 같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범죄조직에 가담할 배짱도 영악함도 없다.
적어도 지금 이 근방에서 확인한 마법사들 중에서 복마전과 결탁한 것으로 보이는 마법사는 없었다.
……조금 더 떠봐야 할까.
레녹은 짐짓 헛기침을 하면서 슬쩍 운을 띄웠다.
“마탑 밖의 세상에 대해서도 흥미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뭐……. 그렇죠. 누군들 그러지 않겠습니까. 탑에서 일하다 보면, 해가 너무 긴 게 절절하게 느껴지거든요. 마탑에 들어온 지 10년이 넘게 지난 지라, 이제는 바깥 풍경도 가물가물하네요.”
타고난 마법의 재능을 가지고 자신의 의지로 이 외진 화산지대에 찾아온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종종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녹은 대충 그의 말을 받아주면서 발칸의 생활에 대해서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어 들려주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은 처음에는 시큰둥한 기색이었지만, 뒷골목에서 피가 낭자하는 잔혹한 이야기들에 흥미를 가지지 않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
“오, 그것 참…….”
“허, 그렇게 무도한 놈들이 판치고 있을 줄이야. 이거 참 안 되겠군요.”
“어깨너머로 마법을 배운 무지렁이들이 거대도시의 그림자에서 마법사 행세를 하고 있다니, 웃기는 일입니다.”
슬쩍 마탑의 마법사들을 띄워주면서 레녹같은 프리랜서 마법사들을 깎아내리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는 것은 금방이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겉으로는 겸손한 태도를 견지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은 마력사용자들에 대한 은은한 결명도 같이 지니고 있었으니.
그들 정도 수준이라면 지금 당장 발칸에서도 능히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아부는, 오히려 레녹의 담담한 태도 때문에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입발림 소리로는 뻔하기 그지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 먹히는 법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이다.
어느새 모인 마법사들은 이제 자기들끼리 도시의 생활에 대해서 들었던 사실들을 이것저것 늘어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근처의 마법사들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한 레녹은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뭐, 이런 이야기들은 저보다는 지오니스 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겠습니까. 저는 기껏해야 도시 뒷골목에서 구르던 마법사 출신이지만, 그분은 무려 탑주님의 직속 제자로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셨을 테니까요.”
“아, 그분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법사들의 표정이 살짝 어색해졌지만, 이미 흥겨운 분위기에 편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마법사들 시아에서 지오니스에 대해서 이것저것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워낙 평가가 좋아서 조만간 다섯 갈래 염주(炎柱)에 오르실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탑주님의 직속제자이면서도,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것은 물론이고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굉장히 친절하셔서.”
“거기다 최근 들어 실종자가 많아진 흉흉한 분위기를 수습했던 것도, 원로원의 늙은이들 대신에 그분이 적극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어허! 이 친구야, 말조심하게!!”
이야기에 끼고 싶어서 분주히 입을 놀리던 젊은 마법사 몇 명의 입에서 실언이 나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레녹은 그 말실수를 물고 늘어지는 대신,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리고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군요. 그럼 조금만 더 블레이버 마탑의 자랑스러운 시설들을 견학해 볼 수 있을까요?”
살짝 어색한 표정의 마법사들을 보며 레녹이 희미하게 웃었다.
“별다른 방해가 없다면 오늘 염열계열 고유마법의 위력까지 모두 견식해 보고 싶군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실습구역에서 마법사들의 염열계열 마법을 훔쳐 배우려고 레녹이 운을 띄운 순간.
“그걸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상대를 해드리죠.”
느닷없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얼음장같이 싸늘한 목소리. 하지만 그 어조에 일체의 적의가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 오히려 그 음색을 잘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덥수룩한 머리에 왼쪽 눈에 낀 외알안경. 멀대처럼 큰 키의 남자가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 뜨거운 곳에서도 두꺼운 적갈색의 코트를 걸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성큼 이쪽으로 걸어와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투명한 표정.
아무런 감정도 내비치지 않는 그 모습은, 마탑에 온 첫날 들었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크게 동요한 표정으로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지오니스 경……!!”
“3동 마탑에는 어쩐 일로 오셨는지……”
“손님분들 중 하나가 저희 마탑을 적극적으로 견학하고 계시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외알안경 너머로 무심한 눈매가 빛났다.
“마탑 외부에 펼쳐진 점화요선진(點火邀選陣)을 직접 돌파하고 오신 마법사라 하시면 흥미가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
“하물며 화산지대를 찾는 일이 없는 것이 정상인 빙결계열의 마법사라면……. 흥미가 돋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습니다.”
레녹 역시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위계를 완성하신 마법사님과 직접 손속을 겨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겠지요.”
지오니스 베르바인. 탑주의 직속 제자로서, 이제 막 성위의 경지에 다다라 블레이버 마탑의 염주 후보로서 서대륙 지부에 파견 나온 책임자라고 했던가.
탑의 마법사들은 그의 존재를 나름대로 수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녹이 보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원로원과는 달리, 가장 먼저 이렇게 얼굴을 드러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놈의 마법에서 그 흔적을 짐작해 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