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96
약먹는 천재마법사 296화
시의원(1)
“데이터 수집이라…….”
레녹은 연초를 쥐고 가볍게 털면서 중얼거렸다.
거대도시 외곽전선을 지키던 방위군의 반역. 하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전직 군인들의 일탈.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한 전역자들이 음지에 흘러 들어오는 것 역시 하루 이틀 있던 일은 아니었으니까.
스캐빈저의 지부장에 자리해 있던 전역 군인, 음지로 흘러드는 특수부대 출신들, 서서히 기동을 멈추고 녹슬어가기 시작한 전선의 흔적까지.
이 도시에 뿌리내린 무수한 불안과 균열들 중 하나가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다.
문제는 그 균열의 끝에 놓인 흉수가, 이제는 대놓고 레녹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흘려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높은 확률로 반 당신에게 연락이 닿을 거예요. 시의원들 중 누군가일 가능성이 높겠죠.”
“시의원이?”
“음지의 강자들 중에서, 특정한 조직이나 소속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은 많지 않죠. 그 소수들도 대부분 협력이라는 개념과는 연이 없는 정신병자들. 프리랜서 일로 실력과 신뢰를 동시에 증명한 그쪽에게 눈길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
“금제율령이 풀리기 전에 양지의 실력자들에게 행동 권한을 쥐여주려면 시의회도 많은 걸 희생해야 합니다. 차라리 외곽구역에서 활동하는 무법자들의 손을 빌리고 싶겠죠.”
양지의 실력자들이 지닌 행동 권한을 제한하는 대신, 그에 준하는 특권을 쥐여주는 금제율령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논란거리들 중 하나.
이본가주가 언급했던 것처럼 최근 들어서 율령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율령이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기아스가 섞인 제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급하게 율령에 손을 대는 대신 다른 방법을 강구하려 하겠지.
“대충 이해했다.”
니콜의 말을 듣고 있던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용건을 듣지 못했군. 이런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이유가 뭐지?”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이해했다.
방금 레녹을 덮쳤던 이 습격이 단순히 단발성으로 이뤄진 일이 아니라, 거대도시의 방위군을 둘러싼 거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말이 아닌가.
꽤 그럴듯한 이야기기는 하지만, 레녹은 어차피 니콜이 하는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다.
이후 구체적인 사항은 전부 그가 사로잡은 대원들을 통해 교차검증을 해보면 해결될 일일 터.
하지만 굳이 나타나서 먼저 이런 정보들을 전해주는 니콜의 의중은 무엇일까.
지금 그녀의 행동은, 플라톤 용병 사무소가 시정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에 확신을 심어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런 레녹의 판단을 감수하고서 찾아왔다면, 니콜에게도 목적이 있을 터.
그 모든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알아보고 판단하기 전에, 레녹은 니콜의 대답을 먼저 들어두고 싶었다.
쓴웃음을 지은 니콜이 말했다.
“글쎄요……. 굳이 말하자면 감사의 표시라고 해두죠.”
“뭐라고?”
“성채의 대리전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어요. 애덤을 상대로 만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
“조카의 목숨값을 여기서 갚았다…… 이 정도면 이유로는 충분할까요?”
니콜은 그렇게 말하고는 유유히 등을 돌려서 골목길 사이를 걸어 나갔다.
레녹이 무슨 수를 쓸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한 여유로운 태도.
오히려 이런 식의 대응으로 그만큼 자신이 레녹을 신뢰하고 있다고 내비치는 셈이었다.
레녹은 멀어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를 생포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토해내게 만드는 것과, 플라톤 사무소와의 관계, 그동안 그녀가 꾸준히 보여주었던 우호적인 태도의 손익을 가늠한다.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태도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감사의 의미라며 정보를 건네준 그녀와 당장 적대할 필요는 없다.
니콜의 신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는 만큼,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조치하더라도 충분할 터.
결국 니콜을 보내주기로 결심한 레녹이 돌아서며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안타레스에게 연락을 해야 하나…….”
이벨린이 장기휴가를 받고 소집령에 응한 뒤 연락이 두절된 이상, 당장 이런 문제를 상의할 만한 협력자는 안타레스 정도.
더불어 전직 군인 출신으로 레녹의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드레이가 전부다.
일단 괜찮은 정보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적당히 연락을 넣어볼 수밖에.
[바안-!]근처에서 들리는 맨슨의 고함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레녹이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반!”
레녹은 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마스크를 보고 픽 웃었다.
딜런은 자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음료 하나를 레녹에게 던졌다.
레녹은 그것을 손으로 받아드는 대신, 마력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낚아채 쥐어 들었다.
성채에서의 일을 통해 마력사를 조작하는 기술은 물론이고, 효율 자체도 굉장히 늘어났다.
단순히 기술적인 수준으로 따지자면 레녹이 지닌 계통의 술식들 중에서는 가장 성장이 빠를 정도.
다른 계통의 숙련도가 충분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레녹의 기준으로도 성취가 빠르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야, 난 그냥 차가 좋다고 했잖아. 왜 이딴 걸 사 오냐고.”
딜런의 뒤에서 걸어오던 밀라가 손에 쥐고 있던 민트 맛 청량음료를 흔들면서 투덜거렸다.
딜런이 마스크 사이로 히죽 웃으면서 대꾸했다.
“민트의 맛을 모르는 네가 불쌍해서 내가 직접 신경을 썼으니까,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자꾸 개소리할래?”
“그럼 이거랑 바꿀까? 보리 맛 탄산음료인데, 이것도 먹을 만해.”
“이게 진짜, 죽고 싶냐?”
두 사람은 투닥거리면서도 자연스럽게 레녹이 앉아 있던 벤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뭐 이런 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어?”
버려진 공원. 먼지가 쌓인 놀이터가 내려다보이는 상가 계단 쪽.
구름 낀 하늘 사이로는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고, 낡은 상가 간판에서 들어오는 불빛이 자리를 비출 뿐이다.
당장에라도 비가 올 것처럼 습한 날씨.
하지만 레녹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 사이 놓인 벤치에 앉아 커피 캔을 땄다.
“그러고 보니 반, 너 팔굉성채에서 사이비 새끼들이랑 놀아주고 왔다면서?”
마주 앉아 민트 맛 청량음료를 홀짝이던 밀라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그거 때문에 시정부 쪽에서 성채로 전수조사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무슨 일인지 알고 있냐? 현궁도 없는 판에 일만 귀찮아질 것 같은데.”
“…….”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던 딜런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레녹이 그 몸짓을 놓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교단과 관련된 소식이라면 눈에 불을 켜는 딜런이 이번 일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겠지.
플라톤의 니콜도 성채 관련 정보들을 알고 있던 것으로 보아, 아마 안타레스 쪽 용병들도 레녹이 한 일에 대해서 대충 주워듣고는 있었을 것이다.
밀라가 딜런의 사정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짐작하지 못하는 지금, 굳이 이야기를 꺼낼 이유는 없다.
“그쪽 선교자하고 여러 가지 일이 있었는데……. 나중에 따로 얘기해 주지.”
레녹은 자연스럽게 말을 슬쩍 돌렸다.
“그것보다 이쪽 용건이 먼저다. 메시지를 읽어봤다면 대충 무슨 일인지는 알겠지.”
가장 먼저 안타레스에게 연락을 넣었지만, 메시지를 읽은 기색조차 없다.
아니, 지금 그가 이 도시 안에 존재하는지도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레녹은 안면이 있는 용병들을 불러 안타레스의 의중이나 남긴 말을 들어보려 했던 것이다.
그 남자는 틀림없이 이 세계의 진실에 가장 근접해 있는 초인들 중 하나.
안타레스가 정한 대답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 지금 사태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문제였다.
“흠, 방위군 사령부 말이지.”
딜런이 손에 쥐고 있던 민트 초코 맛 맥주를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단장은 너무 바빠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지도 꽤 됐어.”
“…….”
“아마 거대도시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이것저것 뭘 하고 있을 것 같긴 한데. 찾으려면 고생 좀 해야 하지 않을까?”
밀라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그 군인 친구들 목적이 진짜 이 도시를 뒤집어엎으려는 거라면, 애초에 도시를 떠난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겠지.”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럼 이건 어떻지?”
레녹은 두 사람에게 니콜의 존재와 그녀가 했던 말들을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플라톤 용병 사무소와, 시정부의 이름까지 엮여 나오자 두 사람의 태도도 보다 진지하게 변했다.
“플라톤이라…….”
“그러고 보니까 그 아저씨 얼굴 본 지도 한참 됐네. 왜 모르고 있었지?”
“…….”
마스크를 긁적이는 딜런의 말에 레녹이 한숨을 내쉬었다.
신경을 쓰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 없지 않고서야 이런 반응일 리가.
오히려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밀라가 뭔가 알고 있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고 보니 니콜 그 여자, 이상한 소문 같은 게 많았지.”
“뭐지?”
“어쩌다 보니까 플라톤 쪽 용병이랑 같이 일하다 들은 건데, 애초에 음지쪽 출신이 아니라던데?”
“…….”
“예전에는 어디 이름 모를 부서 쪽 공무원이었다고 하더라고.”
“공무원이라.”
“아예 이 도시 출생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사무소 내부에서 인망은 있는데, 사생활은 철저하게 감추는 편이라더라.”
“음, 그건 내가 아는 어떤 마법사랑 꽤 비슷한 면이 있는데.”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걸로는 남매처럼 똑 닮았군.”
레녹이 딜런과 밀라가 떠들어대는 헛소리들을 대충 흘려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플라톤 용병 사무소가 시정부와 모종의 커넥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니콜이 말했던, 시의원들 중 누군가가 레녹을 직접 호출할 거라는 말 역시 가능성이 낮은 일은 아닐 터.
‘어떻게 할까…….’
만약 정말로 외곽 방위군이 거대도시와의 라인을 끊고 독자적으로 행동에 나섰다면, 레녹이 무시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무수한 화력병기와 인적자원을 지닌 방위군의 포구가 가장 먼저 향할 방향이 거대도시 외곽이라는 사실은 자명할 터.
제니가 구축한 물자유통망이 무너지고 사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레녹은 발칸의 안위나 음지의 질서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힘들게 구축한 사업이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것 자체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발 물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조만간 있을 청의 눈 소집령이 마음에 걸린다.
이벨린 마르시아가 먼저 연락을 받고 떠난 만큼, 등대지기 라피스가 레녹에게 접촉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터.
단순한 친목 도모라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최근 자치령을 떠나 급격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라피스의 호출이라면 레녹 역시 무시하기는 힘들다.
교단의 일도 있고 하니, 이번 기회에 얼굴을 비치고 관련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이 바람직할 터.
가능한 한 빠르게 방위군의 문제를 해결하고, 소집령에 응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반?”
레녹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밀라가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물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음?”
그 말을 듣고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본 레녹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어느샌가 양쪽 손가락에서 흘러나온 마력사 가닥이, 텅 빈 커피 캔을 붙잡고 허공에서 실뜨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력사 조작능력 향상을 위해 성채에서 간간이 연습하던 습관이 아직까지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두 용병이 슬쩍 손을 거둬들이는 레녹의 모습을 기괴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참 마법사들이란 이해하기 힘든 친구들이란 말이야.”
“저런 걸 그냥 의식하지 않고서도 해낼 수 있다니……. 술식의 세계에는 영원히 발을 들일 수 없을 것 같군.”
“어쨌든, 너희 말은 대충 이해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벨린과 안타레스가 동시에 자리를 비운 상황…… 만약 방위군이 이런 것까지 생각하고 시기를 정한 거라면, 이건 니콜의 말대로 허투루 취급할 사항이 아닌 거겠지.”
“우리가 도와줄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조만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거다. 만약 정말로 시의원들 중 누군가 연락을 해온다면 자연스럽게-”
삐리리리리!!
레녹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의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품 안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세 개의 핸드폰 화면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통화 발신자의 이름을 띄워 올리고 있었다.
가만히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던 레녹이 말을 이었다.
“-평판이 좋은 인력을 잡으려 노력할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설마 이 사람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게 될 줄이야.
일 하나로 시작된 인연이 여기까지 꼬여서 닿아 있을 줄은 레녹도 정말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전화 : 구의원 존 메이어]제약회사의 일을 하면서 그 배후로 알게 되었던 구의원의 연락이 하필 지금 닿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제 막 프리랜서 일을 시작한 레녹조차 탐내던 욕심 많은 노인이, 구의원의 명함을 벗고 한 차원 더 높은 직위를 거머쥐게 된 것이다.
* * *
“의원님. 정말 이 남자에게 협력을 요청할 생각입니까?”
“왜. 내 안목이 못 미더운가?”
“그건 아닙니다.”
똑 부러지는 목소리의 여성이 대답했다.
“하지만 ‘견뢰’의 최근 행적은 상당히 위험해 보입니다. 조금 고리타분한 기준으로 보아도 굉장히 이질적이라는 것은 확실하죠.”
“…….”
“이 도시 뒤에서 벌어지는 이권 다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 행동하면서도, 결과로서의 이득은 착실하게 불려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최근 손을 댔던 카르텔과 팔굉성채에 대한 대처를 보면 더 확실하게 드러나죠.”
카르텔과의 이권 싸움에서는 강경하게, 팔굉성채의 대리전에서는 오히려 그 사이로 섞여 들어가 두 세력을 동시에 우호적인 스탠스로 돌려놓았다.
장기적으로 조직 간의 알력 다툼을 내다보고 행한 그 수완이 어디까지 닿아 있을지는, 그녀조차 짐작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
“안보부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한 분석 보고서를 보면 아실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두꺼운 종이들을 꺼내 노인의 앞에 내려놓았다.
쿠웅!!
족히 수십 장은 되어 보이는 두꺼운 분석 보고서.
오직 단 한 사람의 배경과 능력, 그리고 행적과 동향을 알아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자료집이다.
그 종이의 가장 위에는, 유난히 인상이 날카로운 청년의 사진이 흐릿하게나마 걸려 있었다.
시정부 직속 고위 관료의 인가 아래 만들어진 분석 보고서에 쓰이는 사진의 질이 이렇게나 좋지 않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반이라는 마법사를 사진이라는 데이터 안에 담을 수 있는 최선이, 고작 이것뿐이었다는 증거.
“이만큼이나 기록이 필요한 일을 벌이고 해낸 와중에도, 과거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죠. 용의주도한 정도를 아득하게 넘어선 수준입니다. 자신의 신상을 감추고 바꾸는 일을 강박에 가까울 만큼 완벽하게 해내고 있죠.”
여성이 말했다.
“그만한 사정과 비밀을 지니고 있지 않고서는 보일 수 없는 행동이지 않겠습니까?”
“…….”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른 성장 속도. 그에 비례하는 인맥과 지연.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는 깔끔한 행적까지. 틀림없이 우리가 파악하지 못한 강력한 동기가 있을 겁니다.”
여성은 여유롭게 웃고 있는 노인을 내려다보며 말을 맺었다.
“그리고 견뢰의 목적이 의원님께 도움이 될 만한 방향인지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겠죠.”
그 말에 대신 대답하듯, 노인의 앞에 놓인 새카만 명패가 정갈하게 빛났다.
[시정부 중앙의회 하원의원] [존 메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