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05
약먹는 천재마법사 305화
에이전트 본부(2)
“팔라드 오콘. 에이전트의 부국장 자리를 해먹고 있는 공무원일세.”
대충 레녹의 손을 잡고 흔든 팔라드가 자연스럽게 뒤돌아 두 사람을 집무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레녹은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빠르게 주위의 풍경과 팔라드의 행동을 관찰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헤집으며, 풀어헤친 넥타이를 책상 한구석에 던져놓는 언동.
그 성격이 어떨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시정부 직속 정보조직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외곽구역에 대한 간섭과 관리를 허락받은 최정예 무력집단.
이 거대한 조직을 통괄하는 2인자의 모습은 레녹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느긋해 보였다.
“듣고 있자니 날 빼고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집무실 의자에 드러눕듯이 앉은 팔라드가 말했다.
“사전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한 것뿐입니다.”
히나의 단호한 대답에 팔라드가 씩 웃었다.
“기다리던 사람 심심하게 왜 그러나. 시의회의 늙은이들이 금제율령을 풀어보려고 간을 보던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말이야.”
“…….”
“하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그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 그 노친네들이 아무리 노망이 들었다고 해도 이 도시를 무너뜨릴 계획을 직접 짜지는 않았을 테니까.”
의미심장한 어조. 흘려넘길 수 없는 말에 레녹이 물었다.
“방위군 사령부의 계획이 성공한다면 발칸이 무너질 수도 있다고 보는 건가?”
“놈들의 계획대로 30번대 구역에 폭격이 쏟아진다면 그렇겠지.”
하품을 쩍 하며 팔라드가 대답했다.
“거대도시에 촘촘하게 펼쳐진 교통망이 망가지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도 몰라. 진짜 문제는 양지까지 퍼진 혼란을 틈타 다른 도시의 개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다른 도시의 개입이라…….”
“워낙 덩치가 커서 아직까지 별다른 일이 없긴 했지만, 시정부는 적이 많거든.”
한순간, 팔라드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날카롭게 변했다.
“우리 역시 그 과정에 일조하기도 했고 말이야.”
“…….”
팔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슬쩍 고개를 들어 레녹을 바라보았다.
“문제는 그 노친네들이 사령부의 반역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들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나?”
“시의원들 중 누군가는 쿠데타로 인한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할 생각이 있다는 말이겠지.”
레녹이 대답했다.
“어쩌면 그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고.”
“아주 정확해.”
손가락을 튕기며 레녹을 가리킨 팔라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전제조건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자네를 여기까지 불렀네.”
그렇게 말하는 팔라드의 눈동자에는 아주 희미한 살기가 맴돌고 있었다.
“시의회가 아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 이상의 대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니까.”
“…….”
레녹은 말없이 팔라드가 대충 타서 던져준 싸구려 커피를 들이켰다.
시의회의 의원들이 믿음직한 아군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제 와서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이 거대한 도시의 외곽구역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그들이 저지른 실수와 과오가 얼마나 다양하고 거대한지 실감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메이어 의원은 시의회 말석에 들기 위해 이번 일을 해결하는 것을 조건으로 받아들였지. 때문에 그의 진의를 의심하지는 않아.”
털썩 의자에 주저앉은 팔라드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의원들은 다르지. 이번 일의 피해가 커질수록, 방위군의 위험이 시민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올수록 금제율령을 해지하기 위한 논의는 활발해질 테니까.”
“도시 전체가 쿠데타에 휩쓸리는 것은 그들도 바라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의 피해는…….”
“오히려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군.”
레녹의 말에 히나와 팔라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의회가 방위군의 조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굉장히 낮지.”
팔라드가 칼같이 대답했다.
“13구역은 이 도시에 존재하는 폐쇄구역들 중에서도 가장 엄중하게 관리되는 비처……. 방위군 장성은 사실상 시의회의 목숨줄을 넘기라고 요구한 셈이다. 자기 보신에 집착하는 그 노친네들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지.”
폐쇄구역이라.
레녹도 그 존재에 대해서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방위군의 일을 통해서 접점을 가지게 될 줄은 몰랐다.
단순히 시정부의 편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비밀이 숨어 있기에 방위군과 시의회 양쪽에서 민감하게 나오는 것이겠지.
레녹은 남은 커피를 적당히 들이켠 뒤에 입을 열었다.
“사정은 충분히 들었으니, 슬슬 본론으로 넘어가고 싶군.”
“본론이라.”
“에이전트의 부국장씩이나 되는 남자가 입이 근질거려서 사람을 불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팔라드와 레녹의 차분한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이벨린을 대신해 내게 바라는 바가 있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 아닌가?”
“직설적이군. 우리 공무원들은 그런 화법에 익숙하지 않아.”
너털웃음을 터트린 팔라드가 말했다.
레녹이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방금 전까지 신나게 시의회를 씹어대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군.”
“그건…….”
“에이전트 총력을 기울여도 이상하지 않은 이번 안건의 책임자가, 국장도 아닌 부국장이라면 그쪽에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
“하지만 내가 알 바는 아니야.”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커피잔을 내려놓고 품 안에서 연초를 꺼내 들었다.
“에이전트 내부의 구구절절한 파벌싸움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너희가 이번 일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느냐의 문제겠지.”
팔라드 오콘이 메이어의 업무를 일부 인계받았다는 사실은 짐작이 간다.
메이어가 충분한 보상과 특권을 약속한 이상, 이제와서 그들이 제시하는 업무에 대해서 보상을 따지고 들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에이전트에서 정확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는 필히 레녹이 들어두어야 할 문제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라, 여태까지 이벨린을 제외하면 별다른 접점이 없는 외부고문을 직접 불러들였다면 그것은 결국-
이벨린이 담당하고 있던 무력의 공백을 채워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테니.
“……놀랍군. 그 말이 맞아.”
레녹의 생각을 듣고 침묵하던 팔라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마르시아 팀장이 해주었어야 할 이동요새 공략작전. 그 핵심을 자네에게 맡기고 싶네.”
“…….”
“하지만 책임감과 선의로 어려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던 그녀와 자네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지. 그래서 그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어. 아무리 막대한 대가를 쥐여준다고 하더라도, 움직이는 요새 하나를 상대해달라는 부탁을 쉽사리 받아들일 사람은 없을 테니까.”
“계속 말해봐.”
“……하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할 무수한 무력충돌에 협조해 달라는 부탁은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이지. 내가 궁금한 건 그것일세.”
레녹의 빈 컵에 새로 탄 커피를 따라준 팔라드가 물었다.
“30번대 구역에 거주하는 2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 실패와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그들을 구하는 일에 나설 용의가 있나?”
“…….”
“정의감과 책임감은 한 끗 차이지. 그러나 아무리 많은 대가를 쥐여준다고 하더라도, 책임감에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팔라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하지만 자신의 정의에 따라서는 모든 것을 바칠 수도 있지. 이벨린 마르시아는 그런 사람이었네.”
“부국장님.”
옆에서 히나가 팔라드를 불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르시아 팀장이 그렇게 아끼는 자네에게도 비슷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거야. 지금 그만큼 우리는 다급할 실정이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듯이 말을 내뱉으며 물었다.
“자네의 마음속에 그 비슷한 것이 살아 숨 쉬는지 물어도 되겠나?”
“아니.”
레녹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미안하지만 그런 고결한 감정과는 연이 없군.”
“……”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대충 알겠다.”
사람들의 생명, 도시의 질서와 안위. 그런 것들에 크게 신경을 써본 기억은 없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살던 나날에서 벗어난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렇다고 레녹이 바라보는 시야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레녹이 바라보는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와, 어떤 보장도 불가능한 현실 앞에서 모르는 사람의 안위보다는 다른 많은 것을 쥐어보려 노력해 왔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하다 느낀다.
하지만 난잡하기 그지없는 이 도시에서, 굳이 이유를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되는 일이 하나 있다면.
“내 사업을 방해하는 놈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지.”
“……결정됐군.”
팔라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곧바로 작전회의에 들어가 보자고.”
* * *
레녹이 에이전트의 제안을 수락한 뒤로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팔라드는 레녹의 사업이나, 구체적인 내막에 대해서는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한 모양이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번 일에 한해서 그가 이벨린의 공백을 대체할 의향이 있다는 사실 하나뿐.
메이어 의원에게 협력하는 수준을 넘어서, 에이전트의 인계과정에서도 무력을 보충해 줄 수 있다는 동의.
서로 알고 있는 정보들을 교환한 팔라드가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모두 세 가지.”
손을 들어 올린 그가 하나씩 손가락을 접으며 말했다.
“도시 내부로 숨어든 방위군 첩보부대의 색출. 이동요새와 사령부 장성들의 무력화. 마지막으로 기어사이드 측 전력 개입 견제.”
“반 님이 기어사이드 관련 정보를 인지하고 있어서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메이어를 비롯한 에이전트 측에서도 이미 생포한 대원들을 조사하며 기어사이드의 존재를 추적해 낸 모양.
“그중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이 바로 방위군 첩보부대의 소탕이다.”
“내부정리를 확실하게 한 뒤에야 요새 무력화에 나설 수 있다는 건가.”
“에이전트 정보부측에서 메이어 의원쪽 작전팀과 협력해서 방위군 기습부대 출현지점을 패턴화하고, 동선 예측 알고리즘을 만들고 있어요.”
히나가 말했다.
“대략 30시간 정도면 작전지원에 필요한 인력과 프로그램이 완성될 겁니다.”
“메이어 의원 측에서도 사전에 협상이 끝난 인력들을 취합해 이쪽으로 명단을 넘겨주기로 했네.”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에이전트에게 협력을 요청했던 것인가.
“모레 새벽쯤이면 필요한 모든 준비가 끝나고 작전에 돌입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남은 시간은 열흘.”
팔라드가 한 손으로 미간을 누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열흘 안으로 방위군의 특수부대 전력을 청소하고, 이동요새를 멈춰 세운다. 해야 할 일은 그것뿐이야.”
“좋아.”
레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에이전트가 무엇을 위해 자신을 불렀는지는 이해했다.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방위군 특수부대의 동선을 예측하고 데이터 확보를 위해 출몰할 이들을 상대하는 일.
빨라야 모레 새벽에 작전을 시작 가능하다면, 그전까지 준비할 시간은 충분히 있을 터.
하지만 팔라드가 돌아가려는 레녹의 발걸음을 잡아 세웠다.
“잠깐만, 급하지 않다면 한 가지 더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뭐지?”
“이번 일을 위해 가용 가능한 실행요원 전원이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야. 대부분이 임무수행경험을 지니고 있지만, 자네만 한 실력자를 상대해 본 이는 드물어.”
팔라드가 말했다.
“그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모의훈련을 진행해 보고 싶어. 자네 입장에서도 다수를 상대로 하는 시가전의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쓸데없는 일 같은데.”
레녹이 대꾸했다.
“변수가 너무 많아 한 번의 훈련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괜히 부상을 입고 전력을 깎아 먹지만 않으면 다행이군.”
“내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거야.”
“……뭐?”
손바닥을 짝 마주친 팔라드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번졌다.
“모든 요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대로는 곤란해. 따로 병력을 빼놓을 적절한 명분이 필요하다 이거지.”
“……그렇군.”
레녹은 순식간에 팔라드의 의도를 이해하고 피식 웃었다.
“요원들 전원이 작전에 동원되는 것 자체가 그쪽의 의도가 아니다?”
“자네들이 방위군 첩보부대를 소탕하는 사이, 우리 에이전트는 13구역 인근에서 대기하며 사태를 지켜볼 생각이야.”
팔라드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첩보부대쪽 전력이 궁지에 몰린다면, 저쪽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할 테지. 그 방향이 향하는 곳은 놈들의 목적인 13구역일 가능성이 높아.”
“…….”
“한 번의 작전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야. 잘만하면 방위군의 뒤에 숨겨진 전력까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끌어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건 앞으로 있을 이동요새 공략작전에서도 중요한 단초가 될 거다.”
세 가지 목적을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취하기보다는, 하나의 작전을 진행하는 도중에 다음 작전을 위한 단서까지 모조리 끌어내겠다는 의도.
필요하다면 시의회의 감시를 어겨서라도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가겠다는 단호한 의지.
팔라드 오콘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과 시선으로 이번 일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껴진다.
하지만 레녹은 그 말을 듣고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군. 다른 사람을 찾아봐라. 굳이 날 핑계로 댈 이유가 없을 텐데?”
“시의회의 노친네들에게 댈 핑계는 철저해야 하거든. 처음부터 이번 일에 연관되어 있던 당신이라면 그 의심많은 노친네들도 뭐라 하지 않겠지.”
“흠…….”
그래도 역시 그리 내키지는 않는다.
명분상의 문제라고는 해도, 아무런 대가 없이 이런 일에 시간과 마력을 낭비하는 건…….
“이럴 줄 알고 국장놈의 금고에서 괜찮은 물건을 하나 꿍쳐왔지.”
레녹의 시큰둥한 얼굴을 본 팔라드가 곧바로 집무실 책상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자네만 한 실력자에게는 그리 필요 없는 물건일지도 모르지만, 지인들에게 들려주면 큰 도움이 될 걸세. 아직도 대가가 부족한가?”
“……아니.”
레녹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정도면 차고도 넘치는군.”
팔라드의 손에 들린 물건은 빼곡한 술식문자가 적혀 있는 연필 다섯 자루.
그는 레녹에게 모의훈련을 부탁하기 위해서, 무려 에낙필의 다섯 손가락을 보상으로 가져왔던 것이다.
* * *
“괜찮겠어요?”
에이전트 건물 지하에 마련된 모의 훈련장.
아득하게 넓은 공동에, 일대 시가지를 통째로 구현해놓은 그 모습은 이곳이 지하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현실적이다.
히나와 팔라드는 그런 훈련장의 통제실에서 저 아래쪽에 내려선 레녹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말이지?”
“국장님의 물건을 마음대로 훔쳐 쓰다가 걸리면, 후폭풍이 상당할 텐데요.”
“난 또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히나의 말에 팔라드가 콧방귀를 뀌었다.
“그 여자는 에이전트 일에는 이제 아무런 관심도 없어. 자기가 파놓은 뒷구멍에 심취해서 출근도 안 하는데 뭐가 없어진 건지 기억이나 할까?”
“그건…….”
“적당히 방패로 써먹기 좋아서 아직까지 내버려 두고 있을 뿐이지, 각 부서 팀장들이랑은 진작 이야기가 끝났어. 넌 아직까지 제대로 인계를 받지 못한 모양이군.”
“워낙 이런저런 부서를 돌아다니다 보니…….”
말끝을 흐리는 히나를 내려다보던 팔라드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현장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네 컨디션을 스스로 관리할 수 없다면 슬슬 마음을 정하는 게 좋을 거다.”
“……”
히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팔라드는 굳이 그녀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타고난 지병으로 인해 체력이 약하고 오래 움직이기 어렵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녀가 지닌 검술과 무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떤 부서에서든지 제 몫을 해내면서 에이전트 내부 다양한 상급자들과 안면을 쌓아온 그녀의 입지는 이 조직 내부에서도 꽤나 특수한 편.
무력과 지성을 양립시킨 유능한 요원인 그녀를 원하는 부서는 꽤 많다.
문제는 히나 본인이 이벨린이 직접 관리하는 현장 무력대응팀의 업무를 극도로 선호하고 있다는 점.
편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일을 찾아나서는 그 자세는 칭찬할 만했지만, 환경과 적성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팔라드는 굳이 그런 뻔한 훈수를 내뱉는 대신, 훈련장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슬 준비가 된 모양이군.”
인위적으로 구성된 시가지의 아래쪽 횡단보도.
낡은 신호등의 아래 기대 연초 불을 당긴 레녹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팔라드는 그런 레녹의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 거리에서 단연코 가장 특별한 재능을 지닌 마법사라지. 어디 한번 그 실력을 좀 확인해 보자고.”
굳이 국장의 창고를 뒤져가며 레녹에게 이런 일을 맡긴 것이 아니다.
이번 일의 핵심적인 열쇠가 되어야 하는 저 마법사의 실력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이 자리에서 직접 확인하고 견적을 짜야만 앞으로의 작전을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 테니.
다만 팔라드는 레녹과의 관계나, 이벨린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이런 일을 부탁했을 뿐.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히나가 살짝 질린 표정으로 대답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그 일을 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