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25
약먹는 천재마법사 425화
새로운 마법체계(5)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점에서 튀어나온 고백.
심지어 이 자리에서 서슴없이 그 이름을 언급하는 마드리치의 발언에, 레녹이 순간 멈칫거렸다.
“……!!”
“최소한 두 명.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는 이들이 존재한다. 승천자에 준하는 지혜를 가지고, 끊임없이 이 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며 다음으로 향하는 길을 찾아 헤매는 탐구자들이-”
파지지직……!!!
그 순간, 마드리치의 몸을 뒤덮은 강렬한 노이즈가 그대로 순식간에 그 목울대를 뒤덮고 잡아먹기 시작했다.
마치 더 이상의 발언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듯 쏟아져 내리는 노이즈의 향연.
살짝 놀란 표정으로 스스로의 몸을 내려다보던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역시, 이렇게 될거라 생각했다. 금제가 스스로의 힘만으로 묶이는 매듭이었다면, 이미 진작 프로젝트의 비밀이 중앙전선에 전해지고도 남았겠지.”
“마드리치…….”
“군령을 사용해 페널티를 분담하는 것 정도가 내게 허락된 유희였던 셈이지. 오래 버텼군.”
지지지지직!!!
목울대를 뒤덮은 노이즈가 순식간에 그의 팔다리를 잡아먹고 소멸시킨다.
목 아래쪽의 신체를 통채로 잡아먹은 그것은 순식간에 마드리치의 얼굴을 뒤덮었다.
사라져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던 마드리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한때는 저 바다 너머에 새로운 세상이 존재할 거라고 믿었지.”
“…….”
“어쩌면, 세상의 끝을 무턱대고 찾아 헤메던 그 시간이…… 내게는 가장 바라마지 않던 대답이었을지도…….”
파아아앗!!
한줌의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린 군령술사의 신형과 함께, 그 기척은 더 이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레녹이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금제를 이런 식으로 우회하는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의 대답만을 묻고 전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 초월적인 의지와 확신은 도대체 그가 살아온 시간 어디에서 쌓여 완성된 것일까.
정작 마드리치가 찬탄한 레녹 본인은, 아직까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도…….”
무력하다.
알카이드에 대한 비밀, 프로젝트의 실패. 중앙도시의 멸망.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계속해서 늘어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레녹의 손이 미치지 않는 부분은 한가득이었다.
다음으로 향하는 대답이 완성되었다는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 더 내디딘 자신만이 오로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다.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그저 자신을 믿고 앞으로 한발 내딛을 뿐.
그 결과를 마주하기 위한 용기마저도, 대답의 하나인 것이다.
마드리치 오니온은 새파랗게 어린 마법사에게 패배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부정당했음에도, 처음 정한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다.
설령 이 자리에서 힘이 다 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대답을 이어나가줄 거라고 믿고 다음을 맡기는 것인가.
그것은 레녹이 생각한 것과는 달랐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
마드리치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바라보던 수평선을 마주한다.
그가 그리던 꿈의 끝을 되새기며 레녹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마력이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일곱 가지 위계가 크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빠지지직!!!!
더 위로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사고의 지평선이 넓어지고, 할 줄 아는 것이 하나씩 늘어나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 눈 앞에 펼쳐진 순간.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동이 터오르는 해안가의 모래사장 사이로 새파란 청광이 해일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발칸에서도 관측되어 이상현상으로 기록될 만큼 눈부시게 타오른 청광이 사라진 것은, 꼬박 한나절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 * *
끼릭, 끼릭.
낡은 괘종시계가 초침을 움직이는 소리.
그 작은 소음조차 이 조용한 공간 안에서는 천둥처럼 크게 울려 퍼진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햇빛 한줄기를 제외하면 어떤 빛도 허락되지 않는 암전의 공간.
그 사이로 조용한 기침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니온이 떠났군.”
“열정적인 친구였지.”
띄엄띄엄, 가라앉은 목소리가 간신히 대화의 형태를 이을 정도로만 울려퍼진다.
“다시 생각해도 그 친구에게 사법기관을 맡긴 건 현명한 판단이었어.”
“자화자찬해도 인사과가 개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네만.”
“내 손을 떠난 지 10년을 훌쩍 넘은 곳이야.”
한번 숨을 고른 목소리는 희미한 조소를 담고 있었다.
“우자들의 헛발질이 요람을 치는 것이 하루 이틀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프로젝트의 실패 이후 망가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예우를 받을 만해. 오랜만에 그 친구를 기리며 한잔하겠나?”
“예끼,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쉰내가 섞여서 코를 찌르는군. 오래 있기 힘드네.”
“자네 증손자가 아들을 낳은지 10년이 넘은 걸로 아네만, 무슨 소리를…….”
가벼운 어조로 너스레를 떨지만, 고요한 공동 안에 감도는 마력은 더없이 정갈하다.
일체의 불순물과 방해도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인 안식처.
그들이 모여있는 이 장소를 숨기고 보호하는 결계와 보안마법만 해도 능히 한 중소 도시를 뒤덮고도 남을 정도이니.
거대도시의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중앙의회 상원.
그중에서도 수십 년 넘게 의원직을 차지하고 권력의 중심에 군림했던 노괴들이, 마드리치 오니온의 죽음을 계기로 한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콜록……!! 이거 오랜만에 회의장에 들렀더니 영 공기가 시원찮군.”
“늙은이들이 잘 찾지 않는다고 청소를 게을리해서야 되겠나.”
아무렇지 않게 농담조로 떠들지만, 이 회의실을 관리하는 책임자는 오늘부로 두 번 다시 도시 안에 발을 들일 수 없게 될 것이다.
상원의원들이 수십 년 넘게 일을 처리해 온 방식은 더없이 냉정한 것이었고, 그들을 모시는 수행원들 역시 그 사실을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오니온 그 친구가 상대했던 마법사, 이름이 견뢰라고 했었나? 그 친구 신상 정리된 거, 내 앞으로 좀 보내봐.”
“오호, 이제 와서 아랫것을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
“많이 늙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우리랑 같이 일하던 친구야.”
사락사락 종이를 넘기던 목소리가 대꾸했다.
“그 친구를 밟고 올라섰다면, 반대로 그 친구를 대체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늘 그렇게 해왔잖나.”
“알기로 하원에서 견뢰라는 아이와 긴밀하게 연락하는 의원이 하나 있는걸로 알아. 감사원 소속일걸.”
“더 이야기하기 편하겠군. 나중에 따로 불러줘.”
사법기관의 수장이자, 대법원장을 역임했던 8레벨의 군령술사.
위대한 초인이자 훌륭한 위인임은 틀림없지만, 한때는 그들 역시 그와 대등한 입장에서 미래를 논의하던 설계자였다.
지나간 죽음보다 빈 자리를 의식하고 처리하는 것은 노인들의 오래된 습관이나 다름없었다.
의원들이 제각기 할 말만 중얼거리며 떠들던 사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가장 안쪽 구석의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오니온의 사망이 확정된 시점에서 오랜 지인을 통해 연락이 닿았네.”
“뭐, 진짜 일 얘기를 하러 모인거였어?”
“우리 모두 이제는 끈 떨어진 연 신세 아닌가. 금제율령이 풀릴 때도 개입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일하는 시늉을 내겠다고?”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도시가 스스로 그 덩치를 부풀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도시를 이끄는 책임은 피로와 부담으로 변한 지 오래.
전쟁이 끝나고 긴장상태만이 이어지는 이 시대에서 쓸데없는 명예에 시간을 허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보다 더 큰 목표와 사명을 위해 살아온 이들에게 이제와 남은 것이라고는 하릴없는 미련과 권태뿐.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은 변한다.
한때 이들은 그 변화를 긍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헌신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헌신조차 이제는 타락에 가까운 방관으로 변해 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누구와 연락이 닿았길래 이리 호들갑을 떠는 겐가.”
“계백(界魄).”
침묵이 흘렀다.
방금 그 대답을 알아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지나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괴물에게 아직 지성이 남아있는 줄은 몰랐군. 자연재해에 대고 소리치는 것도 의사교환이라 할 수 있는가?”
“말 조심하게. 승천에 도전한 초월자를 보고 괴물이라니…….”
9레벨 승천자 계백(界魄).
승천자와 직접 연락이 닿았다는 상원의원의 말에도 그 대답을 반기는 이는 없다.
모든 승천자가 우수한 지성과 완벽한 이상을 가지고 승천에 도전한 것은 아니다.
자격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 적합한 그릇과 재능에게만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주체할 수 없는 힘과 권능에 매몰된 채로, 존재의 소멸 앞에서 쫓기듯이 위계를 넘어선 이들 역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계백이라 불리는 승천자는 그 중에서도 단연코 대륙 역사에 남을 만큼 최악에 가까운 실패나 다름없었다.
태어나 오롯이 부여받은 인간의 지성과 육신마저 잃고, 한계를 초월해버린 그 힘만을 대륙 전역에 흩뿌리는 자연재해.
목적을 잃은 초월적인 힘에 그 의미를 부여하려던 모든 시도가 얼마나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는지 상원의원들 역시 잘 알고 있지 않았나.
“문명을 잡아먹는 괴물이야. 우리와는 완전히 상반된 영역에서 일하는 친구지.”
“그게 연락을 했다니, 웃기지도 않는군. 그 새카만 늪 안에 휴대폰이라도 숨겨놓고 다녔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사방에서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도, 처음 화두를 던진 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니온 그 친구가 원로원의 지령을 직접 받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겠지.”
“…….”
“원로원 중 누군가 계백을 움직이신 모양이다. 직접 그와 관련된 사항을 공지하셨지. 마냥 웃어넘길 일은 아니야.”
빈정거리던 소리가 단번에 끊겼다.
원로원.
의회의 위계질서를 지나, 이 도시가 초창기 만들어졌을때부터 관여했던 극소수의 공신들.
지금은 하나같이 명패를 내려놓고 칩거하고 있지만, 그 이름과 영향력이 어디가는 것은 아니다.
상원의원들 중에서도 핵심적인 직위를 꿰찬 이들도차, 원로원과 직접 연락이 닿지는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무리 원로원이라고 해도 승천자를 움직일 수 있다니……. 자네의 입으로 들었지만 영 믿기지가 않는군.”
“정말로 계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가만히 두고 볼 일이 아닐 테지. 하지만 어째서 지금인가?”
오니온이 원로원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고, 그의 죽음과 함께 일이 어려워졌다면 원로원이 언짢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 일련의 사태가 미친 승천자를 움직이는 것으로 귀결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친구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목적을 이어가려면, 그만한 거물을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지……. 나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해.”
“에잉……. 그래서, 그 괴물은 어느 도시로 가고 있는 게야?”
영 시원찮은 대답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만약 원로원의 호출로 계백이 다른 도시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면, 그에 맞춰서 현 정권의 방향을 대폭 수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공직에 있지도 않은 이들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건 달갑지 않지만,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혼란이 전쟁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계백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는 그 모든 가능성을 부정했다.
“도시가 아닐세. 편람의 우물로 향하고 있다는군.”
“……!!!”
그 의미를 알아차린 상원의원들이 처음으로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섰다.
승천자의 이름을 들었던 그 순간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노괴들이 기함할수밖에 없는 지명의 이름.
편람의 우물 역시 또 다른 승천자가 기거하는 사상전역의 일종이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한 이상과 존속을 바라는 건 아니지. 누군가는 단지 세계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몰라.”
목소리가 침통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원로원은 결말이 다가오기 전에, 승천자들의 전쟁을 보고 싶으신 모양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