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48
약먹는 천재마법사 448화
낙천의 말로(2)
수만 명이 한데 뭉쳐서 군집체를 이룬 상태. 두 팔로만 움직이는 이상 맨손으로 땅을 헤집고 앞으로 굴러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저 정도 되는 머릿수의 사람을 한데 모아 뭉칠 정도로 기이한 힘을 가졌으면서도, 지극히 원시적인 이동을 고집하는 존재의 모습.
아우성치듯 앞다투어 팔을 내뻗는 괴물들의 모습 어디에도 강력한 힘이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의 목에 매여 있는 수만 갈래 흑색의 사슬이 한데 뭉쳐 그들의 하반신을 단단하게 옥죄고 있었을 뿐.
한참 동안 침묵하던 레녹이 물었다.
“……저게, 도대체…… 뭐지?”
마법과 신비가 살아숨쉬는 세상.
적지 않은 시간을 거대도시에서 보내며 온갖 기이하고 신비한 것을 두 눈으로 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저만큼 기이하고 모순적인 존재는 또 처음이다.
단지 움직이는 것만으로 지형을 뒤바꿀 정도의 물리력과 강력한 감염능력을 지녔음에도, 정작 그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그리 크지 않다.
존재 자체의 힘이 부족하거나 미약하다기보다는, 완벽하게 구속당해 그 힘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보일 정도.
“인간 시절의 이름은 아우렐 실포드. 중앙도시 아르스노바 출신의 군인으로, 수백 년 전에는 아르스노바에서 가장 기대받던 신성이라 불리던 초인이지.”
말없이 레녹의 옆에 서 있던 명이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은 승천자 계백이라 불리는, 살아 있는 자연재해다.”
“계백……? 저 인간 구체 덩어리가, 승천자 계백이라고?”
레녹 역시 계백이 어떤 존재인지는 대충 알고 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승천에 도전할 자격을 갖춘 초월자는 역사상 서른 명도 되지 않고, 그중 살아 있는 존재는 열 손가락 안쪽.
그 이름과 존재를 공부하고 기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계백은 다른 승천자들과는 달리 승천에 실패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미쳐서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버린 괴물.
다른 누구의 말이나 통제도 듣지 않고 오로지 내키는 대로 움직이며 주변을 죽음으로 물들이는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존재.
하지만 설마 계백이 저렇게 끔찍하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히 미쳐서 타락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다른 생명을 자신의 종속으로 삼아 움직이는 현상이 되어버린 걸까.
승천에 도전했다는 고결하기 그지없는 명성과는 달리, 추악하다는 말도 부족한 기괴한 외견.
“중앙도시 아르스노바의 가장 추악한 실패 중 하나지.”
하지만 그런 계백을 바라보는 명의 시선은 어딘가 뜨뜻미지근했다.
“실포드는 역사에 남을법한 재능이 있었지만, 당시의 아르스노바는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온갖 기아스로 그의 재능이 지닌 가능성의 방향을 통제하고자 했지.”
“…….”
“터무니없는 굴레로 묶어냈음에도 그 재능 하나로 도전할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당연하다는 듯 실패한 직후 미쳐 버렸어. 승천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도전당한 괴물…… 그것이 바로 계백의 정체다.”
구속이자 맹약에 해당하는 기아스. 제약의 조건이 어려울수록 강력한 힘과 방향성을 부여받지만, 그것을 어길 경우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직 정제되지 않은 재능에 온갖 조건과 제약을 덧붙여 억지로 변형과 성장을 통해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승천자.
그것이 바로 계백의 존재라고 명은 레녹에게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술사라면 누구나 막연하게 상상만 해보고, 실제로는 결코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공상.
그것을 중앙도시가 직접 실천에 옮겨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말일까. 레녹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기아스나 트리거와 같은 술식적인 제약들은 단순히 인간에게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부여해 개조하는 기술이 아니다.
심상의 기저 저편을 파고들어, 한 사람의 정체성을 강제로 고정하고 그에 상응하는 모순을 부여하는 행위.
그것을 억지로 덮어씌운다고 하더라도, 당사자의 심상이 지닌 출력과 강도가 버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시절의 계백이 타고난 재능과 그릇이 도대체 어느 정도였기에, 또 얼마나 강력하고 견고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까.
명은 대답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레녹을 두고 시선을 돌렸다.
“아르스노바는 자신들의 손으로 승천자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그들은 오래전부터 다음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승천에 실패하고 지성을 잃어버린 괴물을……. 병기로 활용하고 싶었을 뿐이지.”
충격적인 이야기다.
중앙도시 아르스노바가 그렇게까지 압도적이면서도 추악한 도시였다는 것도.
일부러 승천에 실패시키고 그 결실을 무기로 이용해 먹을 정도로 몰려 있었다는 것도.
이 모든 사실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명해 주는 명의 존재까지도.
“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줄 알고 있나?”
힐끗 레녹을 바라보는 명의 입가에는 어느새 싸늘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저 모습이야말로 어떤 의미로는 우리가 하려는 일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뜻이지?”
“아르스노바의 사령관들은 계백의 재능을 기아스로 묶어서 승천에 도전할 자격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주물러댔지. 하지만 계백이 승천에 실패하며 그 정체성이 완벽하게 반전되고 말았다.”
명이 고개를 까닥였다.
“그를 9레벨에 준하는 위계까지 끌어올렸던 수만가지의 기아스가, 오히려 계백을 이루는 본질이 되어버린거지.”
그제서야 명이 하는 말을 깨달은 레녹이 입을 살짝 벌렸다.
“잠깐, 그렇다면 저건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그래. 계백의 정체는 단순히 승천에 실패한 괴물이 아니야.”
명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저건 사실상 살아 있는 기아스 덩어리나 다름없는 존재다. 수만 개의 기아스를 한몸에 달고, 살아 있는 생명을 닥치는 대로 그 안에 묶어버리는 개념적인 존재에 가깝지.”
저 거대한 체급과 물리력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마력과 기척이 느껴지지 않던 이유.
그것은 계백의 존재가 애초에 더 이상 생명체조차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접근한 이들의 정신을 구속하고 기아스로 그 몸과 존재까지 통채로 속박해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
실포드라는 인간의 위에 기아스를 덮어씌웠던 형태가 반전되며, 기아스로 만들어진 존재 위에 생명이 달라붙는 형태가 되어버린 것인가.
단 몇 마디 말로 저 기이하고 끔찍한 계백의 외견을 명쾌하게 설명해낸 명이 말했다.
“인류 역사상 저 정도로 막대한 기아스를 끌어안고 개념 그 자체가 되어버린 괴물은 없었어. 저 안에 얼마나 복잡한 인과의 흐름이 몰아치고 있을지 상상해 볼 수 있겠나?”
“……위험하군. 사실상 폭탄이나 다름없는 상태겠어. 아무도 내면의 형태를 상상할 수 없는.”
수만 개의 기아스로 구성된 계백의 안쪽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아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기에 저런 자연재해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버젓이 대륙을 활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폐해와 후유증을 예상할 수 없는 이상, 누구도 제정신으로는 섣불리 손을 대려 하지 않을 테니까.
“저 안에 엉킨 기아스의 흐름은 이미 아무도 풀 수 없을 정도로 비틀려 변질되어 있겠지. 누구든지 그 안을 열어보는 순간,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법칙에 휩쓸려 죽음보다 못한 꼴을 맞이하게 될 거다.”
명은 그렇게 말한 뒤,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설령 암흑의 바다를 부유하는 외신이라고 해도 말이야.”
“…….”
순간, 레녹은 그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명이 무슨 저의로 그런 말을 꺼내는지 곧바로 이해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명이 이런 말을 늘어놓았는지를 깨달은 레녹이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말을 골랐다.
“미쳤군……. 설마 판데모니엄에서 바라는 목표 중 하나가……!!”
“그래.”
명이 웃었다.
“우리는 저 괴물을 외해의 종말을 향해 쏘아낼 탄환으로 써먹을 생각이다.”
“말도 안 돼……. 지금 이 시점에서 외해 밖으로 나갈 구멍이 도대체 어디에……!!”
레녹 역시 이 닫힌 세계가 온전하지 않고, 외해로 연결되는 균열이 여기저기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다.
그런 균열의 존재로 인해 구세계의 유물이나 기술들이 이 세계에 흘러들어와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으니.
하지만 승천에 실패해 미쳐버린 괴물을 외해 밖으로 밀어낼 수 있을 정도의 균열이 세계 어디에 존재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공간이 존재한다면 이미 진작 이 세계는 그 균열을 통해 내려온 외해의 괴물들에게 잠식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터.
“대륙 최남단 밀림에 존재하는 편람의 우물. 이 세계에 열 군데도 남지 않은 극소수의 [관문] 중 하나지.”
“편람의 우물이라고……?”
뇌리에서 번뜩이는 교주의 말.
‘큰 기대를 하지는 않겠습니다. 우물을 지키는 뱀은 미련에 잡아먹혔고, 제 사명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우물을 지키는 뱀이라 하면, 틀림없이 편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말이었을 터.
교주는 한참 전부터 이미 이 사태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었던 것인가.
“이번 일의 끝에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싫어도 알게 될 거다. 하지만 한번 발을 들인 다음에는 벗어날 수 없겠지.”
깊게 가라앉은 흑색의 눈동자가 레녹의 가면을 응시했다.
“어느 한쪽만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었지. 그건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다른 문제야.”
뚫어져라 레녹을 바라보던 명이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원로원의 개입으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이제 시간이 많지 않아……. 단순히 뛰어난 초인이 아니라, 운명을 비틀 수 있는 재능이 필요하다.”
“…….”
“반, 너는 어떻지? 이제야 비로소 우리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봐도 되겠나?”
침묵하던 레녹이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말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굳이 한 번 더 묻는군.”
신기한 기분이다.
대천사의 눈물을 손에 넣기 위해 그렇게 난리를 피우고 온 지 고작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승천자들 간의 격돌이라는 사건의 한복판에 도달해 있다는 것이.
그만큼 지금 계백과 편람의 격돌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자, 판데모니엄으로서도 빠르게 처리해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는 의미겠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레녹은 지금 명이 말하는 이번 일에서 발을 뺄 생각은 없었다.
바로 이런 일을 통해서 복마전의 저의를 파악하고 그 가능성을 재단하기 위해 가면을 집어 든 것이 아닌가.
단장과 명이 레녹을 재단하는 만큼, 레녹 역시 그들의 판단과 의지를 가늠하고 대답을 확인해야 한다.
“복마전에게 의지하려 돌아온 게 아니야. 승천에 대해 숨겨진 비밀이 남아 있다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
원하는 것은 언제나 손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한 걸음 다가가면, 한걸음 또 멀어지는 것만 같은 아득함.
무력감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소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간절하게 갈망하고, 또 발버둥 쳤기에 그 편린이라도 손에 쥘 수 있는 것이다.
레녹은 단 한 번도 그 확신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고, 아마 명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아왔겠지.
원래라면 겹칠 리 없었던 시간선이, 결코 만날 일 없는 자리에서 우연히 교차해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러운 뒷골목을 뒹굴던 예전이나, 위대한 흑마법사과 함께하는 지금이나 달라진 것은 없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다.
딸깍!
거침없이 품 안에 손을 집어넣고, 그 안에서 꺼내든 영롱한 눈물을 그대로 입안에 넣고 씹어 삼켰다.
으드득!!
그 자리에서 대천사의 눈물을 복용한 레녹이 천천히 가면을 다시 뒤집어쓰며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래, 그래 보이는군.”
명은 레녹의 흔들리지 않는 대답을 듣고,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끼이익!!
트럭 짐칸 뒤쪽의 문을 연 명이 손을 하늘로 뻗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의 눈앞에 거대한 흑색의 통로가 열리기 시작한다.
그 너머에서 희미한 아지랑이와 함께 아른거리는 다른 지역의 풍경.
그것이 울창한 수풀과 밀림의 형상을 띄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레녹이 숨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하아아아아아악!!!!]그 순간 두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처럼, 계백이 순식간에 방향을 돌리고 이곳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계백의 온몸에 달려 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도착하면 광대가 기다리고 있을 거다. 남부는 그의 관할이고, 이번 일을 수습하기 위한 적임자로 내정되어 있지.”
명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 추태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 그럼에도 필요한 힘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네가 과연 우리의 대답이 되어줄 수 있을까?”
눈앞에서 괴성을 지르며 운하 밖으로 몸을 비트는 검은 사람들을 보면서도 레녹의 눈이 천천히 감기기 시작한다.
대천사의 눈물을 복용한 시점에서 몸의 기능 자체가 완전히 개선되며 급격하게 의식을 잠에 빠트리는 것이다.
명은 그런 레녹의 목덜미를 붙들고 흑색의 통로 안으로 거침없이 트럭의 화물칸을 밀어 넣었다.
레녹의 눈이 감기며 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그를 내려다본 명이 쓰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기대해 보지. 판데모니엄에 온 것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