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95
약먹는 천재마법사 495화
불멸과 필멸 사이(3)
레녹의 눈가 사이로 새카만 안광이 터져 나온 그 순간.
암리타의 인지능력이 한순간 모조리 붙잡혀 틀어막힌 듯한 불길한 직감이 엄습했다.
“……!!”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에 몸과 마음 자체가 옭아 매인 듯한 불쾌하기 그지없는 감각.
예지에 가까운 계시능력을 거머쥔 암리타로서도 결코 오래 견디기 어려운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함.
그것을 피하기 위해 암리타가 필사적으로 몸을 뒤집어 레녹과 거리를 벌리려던 찰나의 순간.
콰아앙!!
그 순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움켜쥔 레녹이 그대로 암리타의 명치를 찍어눌렀다.
“카하악……!!”
암리타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경악 섞인 비명소리.
하지만 고통과는 달리 암리타의 몸은 바로 이어지는 공격에 기민하게 대처했다.
쐐액!!
제자리에서 사라진 암리타의 신형이 레녹의 뒤에서 나타났다 사라지며 칼끝을 찔러넣는다.
아직 채 고통이 가시지 않은 뻣뻣한 몸으로도 십수 미터 거리를 자유자재로 뛰어넘으며,
상대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순간마다 섬찟한 검광을 쉴 새 없이 급소 사이에 꽂아 넣는다.
직후 칼끝에 남아 있던 공간의 잔상이 어그러지며 레녹의 피육과 근골을 쥐어짜듯 비틀어 버리고, 연달아 일어난 폭발이 마법사의 몸을 뒤덮었다.
두두두두!!
격렬하다 못해 섬뜩하게까지 느껴지는 일련의 공방.
암리타의 움직임은 이미 더 이상 속도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인지능력을 뛰어넘어 한발 앞에서 내달리고 있다.
평범한 수싸움과 공방으로는 따라잡기는 커녕, 제대로 포착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잔상의 끝.
“죽어……!!”
악독하고도 음습한 적의가 섞인 암리타의 절규.
하지만 레녹의 대응은 방금 전까지 일방적으로 공세에 내몰리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검게 타오르는 안광을 힐끗 돌려세워 암리타의 모든 것을 관통하듯 주시하고, 손을 움직인다.
그렇게 시작된 레녹의 반격은 한 번의 점멸조차 사용하지 않고 암리타의 모든 검극을 역으로 튕겨내고 있었다.
[삼중화(三衆化) – 반발(反撥)] [혈화선(血化線)]화르르륵!!
부채꼴로 갈라진 불길의 파도가 암리타가 나타나는 수십 갈래 도약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휩쓴다.
[육진홍(六進紅) : 괴염륜(怪炎輪)]파도 속에서 피어오른 여섯 갈래 불기둥이 일대 공간을 휩쓸며 회전하고.
쉴 새 없이 불어난 화염구들이 소행성처럼 회전하며 열기를 한데 집약하며.
[주신락(朱辰落)]이윽고 거대한 열선의 파동으로 변해 암리타의 몸을 꿰뚫었다.
콰아아아아!!!
“아아아아악……!!”
레녹의 손짓에 따라 붉은 파동과 열선이 춤을 추듯이 날뛰면서 암리타의 육신을 미친 듯이 후려갈긴다.
방금 전까지 치열하게 날 서 있던 공방이 거짓말처럼, 압도적으로 암리타를 찍어누르는 염열마법의 춤사위.
암리타 역시 미친 듯이 발악하며 어떻게든 찍혀 눌린 구도를 뒤집기 위해 저항했으나.
레녹은 그런 그녀의 모든 저항을 한 발 앞선 시점에서 읽어내는 것처럼 모조리 파훼해 버렸다.
“이게 아니야……!!”
레녹을 죽일듯이 노려보지만, 그녀가 사용하는 사도술식은 제대로 구현되기도 전에 모조리 박살 난다.
도약으로 몸을 빼려 하면 이미 그 위치를 알고 있다는 듯 폭발을 미리 터트리고.
왜곡으로 피하고 공격을 쏟아내면 그 궤적을 거꾸로 역산해 반격을 때려 박는다.
변주와 전이, 도약으로 인한 공방은 대처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철저하게 시동 단계에서 찍어누른다.
암리타가 공간전투에 사용하는 모든 요령과 경험을, 그녀 자신보다도 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한 무기력함.
암리타가 이빨을 부서져라 악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신녀였던 이젤 나이드리가 지니고 있던 계시의 힘.
외해 바깥을 부유하는 외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존재하는 공능이지만, 신녀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다.
한없이 강력하고 예민해진 영성을 통해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힘.
그렇기 때문에 신녀들은 계시를 받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미래를 보고 듣는 것이 가능하다.
암리타는 바로 그런 신녀의 계시를 전투에 활용해서 사실상 예지에 가까운 시점에서 유리한 수싸움만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방금 전부터 레녹과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우위를 차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눈앞의 마법사가 암리타보다 더 강력한 예지능력을 갖추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
신을 믿지도 않는 저 이단자가, 교단의 사도이자 신녀가 된 자신보다도 더 강력한 영성을 갖추고 있다는 말인가.
암리타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섣불리 믿을 수가 없었다.
“영성이 아니다.”
레녹은 그런 암리타의 모습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에 손을 가져다댔다.
오른쪽 눈동자에서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흑색의 안광.
새카맣게 점칠된 안광이 마치 물안개처럼 천천히 흘러 떨어진다.
본디 형체가 없는 단순한 빛에 불과해야 하는 안광이 무게를 가지고 움직이는 듯한 기묘한 형태.
“너와 같이 이질적인 힘을 손에 넣은 존재들을 위해 특별히 고안해 낸 힘이니까.”
레녹 자신의 심상을 그대로 투영하는 왼쪽 마안과는 달리, 오른쪽 눈은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의 도움을 받아 개안한 마안이다.
강력한 마안술사인 그녀의 [칠채보의 마안] 을 베이스로 삼아 개안했기 때문에, 그 눈이 지니고 있던 인과간섭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눈.
칠채보의 마안처럼 일곱 가지 능력을 담을 수는 없더라도, 한 가지 이상의 능력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용량이 큰 마안이기도 했다.
레녹은 그렇기에 마안의 능력을 비워두는 대신,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해서 꾸준히 개발시켜 왔던 것이다.
“계시의 힘을 통한 예지. 자신의 죽음이라는 인과를 미리 엿듣는 거라고 했었나?”
점점 일그러지는 암리타의 표정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사도에게만 주어지기에는 무척 좋은 힘이군. 좋은 건 같이 써야지.”
“말도 안 돼요!! 계시의 힘은 신녀의 자격이자 권리…….!! 한낱 이단자 따위에게 허락될 수 없는……!!!”
찌이잉……!!
그 순간, 암리타의 뇌리가 통채로 흔들리는 듯한 충격과 함께 그녀가 주저앉았다.
자신의 감각을 믿을 수 없다는 것처럼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얼굴을 매만지는 사도의 모습.
“아니, 이건 아니야……!! 너무, 너무……!!”
계시의 능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까지 레녹의 눈에서 뻗어나온 안광에서 느껴지던 위화감. 그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기에.
그것이 암리타 자신을 어떻게 만들려고 하는지 이해했기에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맨손으로 미친 듯이 스스로의 얼굴 피부를 찢고 긁어내리며, 귓구멍을 틀어막고 고막을 찢어낸다.
눈과 귀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끔찍한 얼굴로 암리타가 고통스럽게 절규했다.
“너무, 크게 들려……!!!!!”
레녹이 웃었다.
“개안 후 40초 경과. 슬슬 체감이 될 정도인가 보군.”
원인과 결과. 인과에 직접 손을 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조차 그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위계를 스스로 떨어뜨린다는, 실로 막대하기 그지없는 대가를 감수해야 했을 정도로.
광대 역시 스스로의 위계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인과를 속이며 엄청난 부작용을 떠맡지 않았던가.
괴물들이 기아스와 인과를 다루는 방식을 레녹은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고, 그 위험성에 대해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오히려 부추길 수 있다면 괴물들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상대의 인과조정능력을 없애거나 억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능력을 파악하고 개입해 통제불가능한 수준까지 증폭시켜 버리는 것.
그를 통해 술자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능력의 폭주로 자멸하게 만든다.
원인과 결과를 반복해 증폭, 폭주시키는 인과의 상호확증파괴.
인과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상대에게 한정되지만, 거의 틀림없이 치명적인 타격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역발상의 능력.
턱!!
마력사를 이용해서 암리타의 목을 움켜쥔 레녹이 말했다.
“원인과 결과를 잇는 연결고리는 지나치게 섬세해서, 조금만 힘을 보태주는 것만으로도 비틀리기 마련이다.”
“카학……!!”
오른쪽 눈에서 흘러 떨어진 흑색의 안광이 암리타의 얼굴에 그대로 떨어지며, 그녀의 계시를 버틸 수 없을 만큼 크게 터트린다.
사도의 육신으로도 받아낼 수 없을 만큼 강성하고도 넘쳐 흐르는 외신의 의지.
버티지 못한 암리타의 뇌가 통째로 짓뭉개지며, 그 뇌수가 코와 눈을 타고 줄줄 흘러나왔다.
“너희들이 섬기는 신조차도 그 절대적인 법칙 아래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
“아그그극, 그으윽……!!”
천천히 힘을 잃어가는 암리타의 기척을 응시하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외해의 종말이 결과에 장난질을 치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면, 이런 식으로 그 불멸성을 망가뜨릴 수 있다면…….”
반드시 그 상어머리 용에게도 닿을 수 있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암리타의 목을 쥔 채로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그 순간.
“……아니.”
암리타가 힘겹게 눈을 뜨고 웃었다.
“아직 멀었어…….”
“역시 그런가?”
레녹도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계속해 보자고.”
화아아아악!!!
혼란스러워하는 암리타에게 일말의 빈틈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염열마법을 때려 박는다.
시간이 갈수록 규모와 위력을 더해가는 염열마법이 정해진 공간 안쪽에 한껏 응축되며 그 밀도를 높여가고.
불길 속에 섞인 마력 입자까지 타올라 증발하며 그 힘을 불살라 더해간다.
“아아아…… 아아아악!!!!”
등허리를 관통한 거대한 화염의 칼날, 어깻죽지를 묶고 타오르는 불길의 채찍과, 종아리를 난자하는 말뚝.
그리고 암리타의 어깨에 낙인처럼 찍힌 채 쉴 새 없이 타들어 가는 화염의 각인까지.
어지간한 초인이라면 그 모든 마법 중 하나만을 허용해도 잿더미로 변해버릴 마법을, 수십 차례 맞고도 아직 버티고 있다.
“아아아악!!! 뜨거워……!!”
온몸을 불태우는 열기에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피 흘리는 머리를 부여잡는다.
극한까지 증폭되어 폭주하는 계시의 힘이 암리타라는 존재를 남김없이 잡아먹고, 본디 있어서는 안 될 방향으로 부풀렸다.
‘아아, 아아……!!”
찌지지직……!!
암리타의 피부 위로 새하얀 털이 솟아오르고, 그 몸이 삽시간에 부풀리듯 크기를 키우며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형상으로 변한다.
이미 한번 신전의 비밀 공간에서 보았던 새하얗고 거대한 털뭉치의 형태.
하지만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뭉개진 채로 잠만 자고 있던 그때와는 달리, 암리타의 진체가 보다 확실한 무언가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후우……!!]두 눈이 시뻘겋고, 길쭉하게 귀가 튀어나온 늘씬한 백색의 거인.
거대하고 새하얀 토끼를 인간의 형태로 길쭉하게 조형해 낸 듯한 기이한 형태.
저것이 본디 암리타가 완전히 미쳐버리기 전에 지니고 있던 사도의 진체인가.
레녹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암리타는 진체를 드러낸 그 몸으로 빠르게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암리타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압도적이면서도 찬란한 광채.
[성역 선포]파아아아앗!!!
레녹과 암리타를 뒤덮고 터져 나온 광채가 사방을 까마득하게 물들이고, 이내 공간 자체를 완전히 격리시킨다.
중력이라고는 일절 존재하지 않는 듯한 착각이 드는 거대한 공허.
자색의 섬광과 잿빛의 광채가 번뜩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 한없이 암흑의 바다와 유사한 공허의 풍경.
성역 선포
임의조성 세외배천
[탈각성역 해저삭월(海低削月)]어디선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암리타의 전성.
레녹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머리 뒤로 들어 올린 뒤에, 거대한 토끼 거인이 자신을 섬뜩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간이라는 개념을 극한까지 끌어내면, 그 끝에는 결국 모든 시공간의 층이 벗겨지고 텅 비어 있는 공허만이 남죠.]압도적인 체구로 레녹을 내려다보는 암리타의 눈빛은 실로 싸늘하기 그지없다.
그런 암리타의 등 뒤에 떠오른 거대한 삭월이, 천천히 빛을 발하며 회전하고 있었다.
[이건 제게 있어 그 꿈의 파편을 조금이나마 빌려오는, 아주 사소하기 그지없는 기적일 뿐.]“그 말이 사실이라면, 결국 이 성역 역시 제대로 된 바다 위는 아닌 셈이군.”
레녹이 조용히 암리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곳이 개념적으로 외해와 동일한 공간이었다면, 성역을 선포한 시점에서 이런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을 테니.”
[…….]“아니, 그것보다는 오히려…….”
말없이 손가락 사이에서 빛을 내뿜는 반지를 바라본다.
진둔의 항하사미궁의 끝에서 습득한 술식병장, [파이겐바움의 눈동자].
본디 허수공간을 비출때만 반응하는 이 눈동자가, 암리타의 성역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허수차원의 개념에 가까운 영역이었나.”
술식적으로 보았을 때 허수차원은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다.
다만 현실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법칙과 상리를 설명하기 위해 임의로 만들어진 가상의 개념일 뿐.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공허의 시공을 가정해야만 성립하는 법칙으로 인해 만들어진 결과론적인 개념.
본디 이면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이 세계의 시공에서, 없는 것을 가정해야만 설명할 수 있는 복잡하고도 정교한 설계의 흔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했다면, 그것은 공간술식이 아니라 암리타가 섬기는 종말의 힘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역이라 부르지만, 결국 너희 역시 그 개념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야.”
위아래가 사라진 허수차원의 공간을 고고하게 부유하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의 성역 속에 빠졌다는 결착의 순간 속에서도, 암리타를 바라보는 레녹의 시선에는 조소밖에 남지 않았다.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하는 힘과 의지를 떠받들며 하염없는 꿈에 심신을 내맡기고 있을 뿐이지.”
[만신전의 위대한 의지들은 저희의 모든 것을 내다보고, 그에 걸맞은 은혜를 내려주시죠.]암리타가 차갑게 대꾸했다.
[한낱 이단자가 입에 담을 만큼 가벼운 이름이 아니에요.]그녀의 단호한 선언과 함께 허수차원의 공허 너머로 떠오르는 거대한 삭월의 모습.
거꾸로 떠오른 희미한 달을 등지고 거대한 허수차원이 통채로 재조립되며, 레녹 단 한사람을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쿠과과과과과!!!!!
암리타가 눈을 감고 그 아득한 성역의 공간 사이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부유했다.
공허속을 유유히 헤엄치며 레녹의 눈앞에 거꾸로 떠오른 그녀가 말했다.
[이 모든 순간에 위대한 경외를. 당신께도 하염없는 감사를.]“…….”
[계시의 힘을 폭주시켜준 덕분에, 불멸과 소멸의 기로 사이에서 저는 깨달을 수 있었어요.]아득한 황홀경에 취한 것처럼 아련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그분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낙원. 우리가 귀도(歸度)의 낙원에 서기 위한 유일무이한 미래. 위대한 외신이 꾸는 꿈의 끝.]양손을 모아 펼친 채, 레녹에게 선사하듯 내민 암리타가 말했다.
[그 대답이 이곳에 있어요. 지금부터 그것을 당신에게. 위대한 영성을 선사하는 이 순간을 위해.]성역의 힘이 하나로 밀집되듯 회전하며, 암리타의 손끝에 모여든다.
하지만 그런 해저삭월의 성역이 모조리 집약되어 레녹을 정확하게 가리키기 직전.
“아니.”
레녹이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난 알고 있다. 외해 바깥을 부유하는 종말은 그렇게 자비롭거나 인간적인 존재가 아니야.”
[…….]“모든 것이 한줌의 메아리가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심신을 바쳐 종말에게 헌신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말한 레녹이 천천히 손목을 입가에 가져다댄다.
“그건 너희들 역시 파멸로 잠기는 미래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결말을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귀도(歸度).
교단의 이름이라 칭해지는 그 단어에 레녹이 알지 못했던 그 의미가 숨겨져 있다면.
키이잉……!!
그 순간, 레녹의 손목을 타고 흘러나오는 선혈에 희미한 황금빛의 광채가 섞이기 시작한다.
그러모은 양쪽 손아귀 사이로 잡히는 우로보로스의 이중나선.
동시에 레녹의 등 뒤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황금빛의 만화경.
제 머리를 잡아먹는 뱀과 만화경의 풍경이 레녹의 앞뒤를 둘러싸고 동시에 전개되기 시작한 그 순간.
“자성영역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