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15
약먹는 천재마법사 515화
저격수의 진가(5)
레녹의 나직한 질문에 바이저가 오히려 코웃음을 쳤다.
[하, 또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바이저가 몸을 낮추는 것과 동시에 열차의 접합부가 썰리듯이 절단당하며 객석의 공간이 사선으로 비틀린다.
서걱!!
[헛소리나 지껄여서 시간을 벌 생각이라면 틀려먹었어!!!]무너져 내리는 객석. 흩날리는 좌석과 짐칸 파편 사이에서 눈부신 광채가 폭발했다.
마력사를 통해 사방 모든 물건을 붙잡고 밀어 당기며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레녹과.
뜨겁게 달아오른 팔뚝 위로 쉴새없이 다른 술식을 터트려가며 질주하는 바이저의 모습.
물결치듯 회전하는 실의 궤적과, 직선적인 섬광이 쉴 새 없이 엇갈리며 잘라내고 터져 나간다.
두두두두두!!!!
팔다리에 실드를 덧댄 레녹의 몸이 쏟아지는 술식과 권각을 피해 휘청이고, 동시에 손끝에서 풀려나온 마력사를 사방으로 내던졌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비튼다는 다소 어색하기 그지없는 감각.
하지만 그 눈가와 목젖, 쇄골과 관절 아래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가는 살의의 파동은 환상이 아니다.
열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레녹 본인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지근거리 육탄전.
의념으로 마력사를 당겨 사지를 조작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몸으로 다시 마력사를 조작해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공세를 찍어눌렀다.
발 아래서 풀려나오는 실타래가 바이저의 발길질을 묶어버리고, 등허리에서 회전한 마력사 몇가닥이 그대로 팽팽하게 당겨지며 살점을 베어낸다.
촤악!!
체크무늬처럼 엇갈린 그물이 레녹의 손끝에서 피어올라 정면에서 터져 나오는 술식을 갈랐다.
허공에서 비산하는 파편과 마력의 잔향을 마력사 끝에 걸쳐놓고 도르래를 흔들듯이 잡아당겼다.
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마력사 위에서 선을 가늠하듯,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살기 위로 끝없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마력사를 조작하는 찰나의 순간 수십번 넘게 마찰했다 사그라드는 마력의 격류.
오감으로 인지하고 반응하는 시점에서 이미 늦는다.
성위급 이상의 초인과 정면에서 벌이는 육탄전은, 인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반응할 수 있는 영역을 아득하게 뛰어넘어 있다.
마력감지로 확인한 직후 예측에 가까운 승부수를 던져가며 균형을 맞추고, 예지에 가까운 도박수를 통해 판을 뒤집고 주도권을 가져온다.
레녹이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실패해서는 안되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하기 그지없는 줄타기.
쉬이이익!!
순식간에 무너진 객실을 등지고 열차 연결 부위을 여러 차례 관통해서 뻗어 나가는 두 갈래 신형.
그 주변에서 몰아치는 십수갈래 마력사와 마력광이 번뜩이며 연쇄적으로 어그러진다.
콰앙!!
균형감각을 억지로 마비시키고, 순전히 마력사 조작으로 레녹 자신의 몸을 지탱해 수행하는 전투.
마치 제 3자의 시선에서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것처럼, 자신의 오감따위는 전부 뒤로 미뤄두고 내달린다.
열차 좌석 사이에 걸친 레녹의 몸이 뒤로 홱 젖혀지듯 회전하며 싹 밀려나고, 그 뒤를 청색의 바이저가 추적한다.
잘리고 터져 나가 비산하는 좌석 쿠션과 의자 사이로 레녹과 바이저의 마력이 수십 번 넘게 교차.
그 사이로 날이 서 있는 수십 발의 검은 화살이 쏟아지며 두 사람의 지근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화살이 박히며 철로와 차체가 비틀리는 충격에 바닥에 처박혔다 반동으로 떠올랐다.
타아앙!!
그 힘을 이용해서 그대로 마력사로 자신의 몸을 인형처럼 조작,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레녹의 모습.
하지만 바로 뒤에서 나타난 바이저가 그림자 후드를 움켜쥐고 그대로 열차 벽면에 처박아버렸다.
콰앙!!
“윽……!!”
철도 위를 내달리는 열차 끄트머리 창구에 처박히듯 달라붙은 채,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는 가면을 뒤집어쓴 채로, 그러나 틀림없이 분명하게 그 시선의 방향을 읽으며 의중을 파악하고 있다.
[방금 그 움직임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전투에 훨씬 능하군.]콰직!!
레녹의 멱살을 쥔 바이저가 그대로 레녹의 팔 하나를 들어 열차 벽면에 그대로 구겨 박아버렸다.
한쪽 팔이 벽면에 박힌 채로 휘청거리듯 매달리게 묶어버린 바이저가 싸늘한 안광으로 레녹을 응시했다.
[그래도 역시 내 상대는 아니야.]“후우…….”
[얌전히 있겠다고 약속한다면, 사지의 힘줄을 끊어버리는 정도로 멈출 수 있어. 술식의 비전에 대해 말할 것을 기아스로 맹세한다면 목숨을 살려주지.]화악!!
당장이라도 레녹의 가면을 박살 낼 것처럼 손을 가까이 가져다 댄 바이저가 으름장을 놓았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네 머리통을 부숴서 뇌만 들고 가도 상관없다는 걸 알아둬라.]“…….”
[대답이 없군.]쾅!
레녹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그 순간, 바이저가 그대로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로브 안쪽에 드리운 흑요석 가면이 그대로 부서지듯 가루가 되어 흘러내린다.
직후 가면 너머에서 드러나는 것은, 텅 비어버린 로브 안쪽에 뚫려 있는 공허한 구멍.
[……!!!!]바이저가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고 어깨를 움찔 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짐승의 육감으로도 인지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건가.”
쿠과과!!!
비틀거리며 당장이라도 철로를 이탈할 것처럼 휘청이는 열차 끄트머리.
어느새 지붕 위에 쭈그리고 앉은 레녹이 뒤쪽 창문에 매달린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이저의 손에 잡혀 있던 로브자락은 어느새 한 줌의 그림자밖에 남지 않은 상황.
레녹은 그런 바이저를 멀쩡한 가면 너머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접 조작은 아직 좀 영 서툰 면이 있군. 좀 더 실전에서 연습하면서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어.”
마력사 조작을 혼용한 육탄전을 즉흥적으로 시도해 보긴 했지만, 제대로 실전에서 써먹기에는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
마나중독증의 후유증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충돌과정에서 일일이 실드를 전개해 공방을 직접 받아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쓸데없이 낭비되는 마력과 집중력이 상당한 수준.
직접전투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의 반동과 마력사 조작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체력과 내구성의 문제.
육체능력자에게는 숨 쉬듯이 당연하지만, 레녹에게는 한참 기준에 미달하는 조건들을 채워 넣지 않고서는 실전성이 떨어지는 방식이다.
지금 당장은 성위급 육체능력자를 상대로 밀리지 않을 정도라는 수준에 만족할 수밖에.
남은 건 놈의 바이저를 박살 내고 레녹의 추측을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이 개자식이, 도대체 언제부터……!!!!]“아직 모르겠나?”
레녹이 칼같이 그의 말을 잘라내며,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당연히 처음부터지.”
끼이이이익!!!
균형을 잃어버린 열차가 하염없이 흔들리다 미칠듯한 굉음과 불똥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청색 바이저가 이를 악물고 빠르게 열차 벽면을 기어올라 레녹을 향해 재차 달려들려던 그 순간.
바로 옆 교차로에서 나타난 또 다른 열차가 바이저의 등허리를 들이받고 무지막지한 충격파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앙!!!
뼈와 근골이 박살 나고 찢어지는 소름 끼치는 소음.
[끄아아악!!!]하지만 그 소리조차 열차가 인간을 들이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레녹은 망가져 가는 열차 위에서 마력사를 뻗어 방금 나타난 새로운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 지붕 위에 간신히 매달린 채 힘겹게 핏물을 토해내는 한 남자의 모습.
“카학……!!”
슈트를 입은 사지는 핏물에 범벅이 되어 있고, 온몸의 관절도 모조리 비틀려 뼈가 튀어나온 끔찍한 형상.
방금 전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청색의 바이저는 완전히 박살 나 그 파편째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특무기관의 조직원으로 사는 일도 쉽지 않지?”
레녹은 천천히 쓰러진 남자의 등을 돌아보며 웃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같은 사람인 척하려면 얼마나 많은 감각을 억눌러야 할지 짐작도 가지 않는데, 실제로는 어떻지?”
“빌어먹을……!!”
“난 웨어울프랑 일해본 적은 많지 않아서 말이다. 정확하게 어떤 느낌인지 짐작이 잘 안 가는군.”
청색의 바이저가 박살 나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맨 얼굴.
피를 퉤 뱉어내며 고개를 휙 돌리는 남자는, 놀랍게도 레녹에게도 눈에 익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신에 알 수 없는 문양으로 문신을 한 채, 상반신을 벗고 있던 근육질의 웨어울프.
판데모니엄의 멤버로서 중간결산에 참가했던 로기어가 레녹의 앞에 이지스의 대원으로서 나타났던 것이다.
덜컹, 덜컹!
열차가 쉴 새 없이 흔들리며 두 사람이 타고 있는 철도조차 비틀거린다.
하지만 레녹과 로기어는 주위의 환경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래,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이거지…….”
물끄러미 레녹을 바라보던 로기어가,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뚜둑, 뚜두둑!!
일어서며 관절을 맞추고 뼈를 잡아 끼우는 것과 동시에 온몸의 피부가 빠르게 재생되어 간다.
얼굴을 뒤덮은 핏물을 닦아내고, 슈트 지퍼를 끌러 풀어내린 그가 물었다.
“언제부터냐?”
“말했잖나. 처음부터라고.”
레녹이 심드렁한 어조로 대꾸했다.
“인형사인 체비엔의 능력이나 버논의 태도 때문에 그쪽을 의심하기 쉽지만, 후보를 몇 명 제외하고 나면 누가 범인인지는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
“본인 스스로가 강력한 육체능력자인데, 술식각인을 통해서 원래 사용할 수 없는 술식을 사용하는 타입이라…….”
가면 끄트머리를 긁적인 레녹이 피식 웃었다.
“내가 상대한 이지스의 대원들이랑 아주 판에 박힌 것처럼 똑같더군.”
“후우…….”
“바이저와 슈트로 전신을 가린 것도 아마 그쪽과 비슷한 이유겠지? 전신에 각인을 박아넣었거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특징적인 외견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겠지.”
레녹을 붙잡아두고 있던 이지스의 대원들은 강력한 술식과 전투력을 동시에 보유했음에도 정작 술식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만약 그것이 이지스의 대원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징이라면, 그를 통해 내통자의 정체를 짐작해 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웨어울프라는 특징에 가려졌을 뿐, 술식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인시켜 행동을 트리거로 발현하는 로기어의 존재.
상대의 거칠고 사나운 태도와는 별개로, 그 능력에서부터 처음부터 정답이 나와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로기어가 대답하지 않음에도 레녹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가 어떻게 복마전과 이지스 양쪽에 발을 걸쳤는지는 관심없다. 궁금한건 오히려 네 동기 쪽이지.”
“동기라고……?”
“설마 박사가 이 사실을 몰랐을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레녹의 차가운 시선에 로기어의 말문이 턱 막혔다.
“그걸 알면서도 이 시점에 굳이 정체를 드러낸 이유가 뭘까. 내가 맞춰보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세계의 유물을 수집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은거야. 하지만 결산에는 계속 참가하고 싶었던것 아닌가?”
박사가 진행하는 중간결산은 단순히 구세계의 유물을 수집해서 넘겨주기만 하는 정산과정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구세계의 정보나 지식을 자신이 쌓아놓은 조정치만큼 되돌려받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본디 이 세계에는 남아 있지 않은 잊힌 기술이나 능력에 대한 정보를 손에 넣는 것이 얼마나 큰 이득인지는 분명한 일.
로기어는 결산에 참가하기 위해 이지스의 도움을 빌려서 구세계의 정보를 수집해 왔던 것이다.
서서히 눈빛이 변하는 로기어를 보며 레녹이 연달아 말을 이었다.
“결산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이지스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어. 박사가 사라지고 나면 내통자에 대한 정보는 흐지부지될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
“그다음 일은 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군. 체비엔을 따라 날 의심하는 척하며 먼저 자리를 피한 건 나쁘지 않았다.”
레녹이 웃었다.
“하지만 정말로 의심을 피하고 싶었다면 그 같잖은 헬멧을 뒤집어쓰는 대신 바이루츠를 떠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