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524
약먹는 천재마법사 524화
마도공학 박람회(2)
학장이 떠나고 레녹과 카시아 두 사람만이 남은 부스.
엔진을 조립하는 레녹의 발치에서, 학장이 남겨두고 간 정령과 다비가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비행기도 아니면서 붕붕거리는 두 정령 덕분인지 조금씩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박람회에 오니 정말 신기한 것들이 많네.”
“나 정령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원래 저렇게 다들 귀엽게 생긴 거야?”
“정령 관련 테마 연구 발표라면 빨리 구경하고 싶은데, 언제 시작하나요?”
박람회를 관람하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린 만큼, 시청 안쪽을 드나드는 시민들도 상당하다.
어느새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정령이 뛰노는 광경을 구경하기 시작하자, 카시아가 긴장한 기색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에반, 정말 괜찮겠어요?”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조립한 엔진을 꺼내두고 부스의 전시대 위에 올려두었다.
“당장 보여줄 건 없지만, 대충 엔진을 작동시켜 놓으면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심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적당히 묻어갈 수 있겠지요.”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카시아가 살짝 레녹을 향해 고개를 기울이고 속삭였다.
“지금 이대로 심사위원들에게 논문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고작 엔진 하나로 준비를…….”
“잠깐 다른 부스를 둘러보고 올 테니, 자리 좀 맡아주시겠습니까?”
“……뭐라구요?”
“학장님의 정령이 있으니 사람들을 맞이하기는 무리가 없을 겁니다.”
“아니, 정령술사도 아닌 제가 어떻게 이 아이를 데리고……!!”
카시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녹은 다비를 냉큼 집어 들고 그대로 부스 밖을 빠져나왔다.
학장이 나눠준 연구원 명패를 들고 볼 일이 있는 척 얼굴을 굳히자,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주었다.
로비 바깥에서 판매하는 핫도그를 하나 집어 들고 시청 안쪽에 위치한 부스들을 쭉 둘러보기 시작했다.
“음…….”
몸에 해로운 맛이 실시간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준비 중인 부스들을 살핀다.
이미 준비를 끝내고 관람을 허락하는 곳도 있고, 암막을 쳐놓고 열중하는 부스도 상당하다.
레녹은 그런 부스들이 이번 박람회에서 공개한 연구 내역과 테마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인접한 마탑과 연구기관들이 모인 자리다. 최근 연구 흐름과 동향을 훔쳐보기에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지.’
단순히 시연과 전시만이 아니라, 박람회 심사위원들에게 심사를 받고 수상을 기다려야 하는 이들이다.
그간 연구해 온 성과의 핵심이나 그 기술의 핵심 원리를 심사과정에서 공개해야 하는 것은 필연.
레녹은 자신의 안목과 다비의 능력을 이용해서, 이 자리에 마탑과 연구기관들이 공개한 기술들을 즉석에서 그대로 기록해 저장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두 번째 논문 성과 발표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워.’
대륙 사방에서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찾아온 만큼, 그 테마와 분야 역시 다양하다.
시청 안쪽에 따로 초빙된 부스들을 가볍게 쭉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레녹에게 영감을 주는 주제나 연구성과가 계속 눈에 들어올 정도.
“62차 마탑 학회에서 발견된 새로운 술식계통의 존재, 아인종의 야수성 조정 임상실험, 공간압축을 이용한 새로운 건축 양식…….”
품 안에서 다비를 껴안은 채로 떠오르는 연구 주제나 테마들을 기록해 나간다.
“잠깐만, 거기 연구원. 뭐 하는 거지?”
“방금 뭘 들고 있었는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만 레녹의 잠입실력으론 부스 사이를 들락거리며 심사를 위해 숨겨둔 발표 내용을 훔쳐본다는 일이 가능할 리 없다.
수상한 움직임을 눈치채고 귀신같이 레녹을 지적해 오는 마탑의 마법사들이나 연구원들.
하지만 레녹은 그럴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품 안의 전뇌정령을 양손으로 번쩍 치켜들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저희 정령이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고 싶어 해서.”
[…….]정령팔이를 시작한 레녹의 모습에 다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았지만.
오동통한 새끼여우의 모습을 보자마자 의심은 눈 녹듯 녹아내리고 너그러운 얼굴로 변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정령술사였군. 그럼 상관없겠지.”
“어머, 아주 어린 정령이군요.”
불퉁한 기색으로 주둥이가 튀어나온 다비를 보고 순식간에 미소를 머금는 마법사와 연구원들.
“어린 정령한테는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듣게 해주어야 한다는 격언이 있지.”
“이름이 뭐죠? 한번 쓰다듬어봐도 괜찮을까요?”
정령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레녹을 부스 안까지 안내해주는 연구원들도 있다.
“제가 괜히 바쁘신 연구원분들을 귀찮게 해드린 것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뇨, 마침 이쪽에 좋은 촉매가 좀 남아 있어요. 괜찮다면 그쪽 아이에게 한번 먹이로 주고 싶은데요.”
“다비, 인사해야지.”
[…….]지금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기는 싫은지 입을 꾹 다문 전뇌정령.
레녹은 그런 다비의 앞발을 들고 양발로 박수를 찹찹 쳤다.
“다비, 부우~”
[부.]심통이 난 기색으로 한마디를 툭 던질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마법사와 연구원들의 얼굴이 흐뭇한 기색으로 녹아내린다.
“어쩜, 어쩜.”
“내 동료들에게도 소개시켜 주고 싶은데, 잠깐 시간 괜찮겠나?”
“물론이죠.”
[부부!!]정령술사는 애초에 무척이나 희귀한 데다, 연구 테마가 일반적인 학회의 분야와 겹치는 일도 거의 없다.
경계심은 까맣게 잊고 순순히 자신들의 성과를 미끼로 다비를 구경하기 위한 마법사들의 노력을 다비를 내세워 손쉽게 받아먹는다.
부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레녹의 마력과 다비의 전뇌조작 능력을 이용해 연구 성과 전체를 빠르게 스캔.
반나절 정도를 소모해 온갖 부스를 돌며 다비라는 만능열쇠로 굳건한 마법사들의 경계심을 열어젖힌 레녹이 로비를 돌아 나오며 생각에 잠겼다.
여러 기술과 연구 성과들을 빼먹은 것과는 별개로, 그 과정에서 무언가 수상쩍은 낌새가 느껴졌기 때문.
‘몇몇 마탑과 연구기관의 방향성이 묘하게 겹치는 느낌이 있다.’
참지 못하고 시판용 충전식 두루마리 휴지를 하나 사서 만지작거리던 레녹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공통점이 없다시피 한 연구소와 마탑들이 동시에 같은 테마를 선택했다……. 이유가 없을 리는 없겠지.’
겹치는 테마 대부분이 대기 흐름조작, 자기 폭풍 내성 실험과 같이 발칸의 대기환경과 관련된 연구들뿐이다.
이번 박람회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이런 주제들이 연달아 겹쳐 발표되었다는 것이 우연일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생각을 이어가려던 그 순간.
“에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푸른 머리칼을 대충 묶어 올린 날선 인상의 여성이, 입가에 아이스크림을 잔뜩 묻힌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정말 에반이잖아! 오랜만이다?”
반갑다는 듯 다가와서 레녹의 어깨를 거칠게 두드리는 상대의 반응.
레녹은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카밀라, 오랜만이군요. 그동안 잘 지냈습니까?”
“밀라, 아는 사람인가?”
그런 밀라의 등 뒤에서 성큼 걸어 나오는 거대한 새머리거인의 모습.
근엄한 표정과는 어울리지 않는 꼬깔콘을 뒤집어쓰고, 한 손에는 톱니바퀴 모양의 풍선을 들고 있다.
밀라가 고개를 홱 돌리고 레녹을 붙잡은 채 말했다.
“펠릭스, 여기 예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는 우리 동생 담임 선생님!!”
안타레스 용병사무소의 일원인 펠릭스와 밀라.
마도공학 박람회의 규모가 규모인만큼, 그들 역시 이 자리에 박람회를 구경하기 위해 나들이를 나온 모양이었다.
“호오, 에반 바일런 조교수가 바로…….”
펠릭스 역시 에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지, 굵직한 눈썹을 꿈틀거리며 악수를 청했다.
“펠릭스 마가트.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반 바일런입니다.”
펠릭스와 밀라는 반과 에반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다만 밀라의 동생인 프리실라가 라바테논 대학에 재직 중인 만큼, 그녀를 담당하는 조교수가 에반이라는 사실만 따로 알고 있을 뿐.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펠릭스는 에반에게 충분히 흥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교단 선교자를 잡는 일에 한 몫 거드신 적이 있다지요.”
“큰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연구직 마법사이면서도 전투에 재능이 있다고 밀라가 칭찬을 하더군요.”
“실라를 구해준 사람이라니까. 내 안목은 확실해.”
“보시다시피 빈말을 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은 친구가 아닙니다.”
“…….”
펠릭스는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레녹에게 주었다.
“안타레스 용병사무소에서는 언제나 재능 있는 신입을 환영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인연이 닿는다면.”
“……예. 감사히 받죠.”
“이번 박람회에서 발표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랑 구경하러 갈게!!”
“딜런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스텔라는 벌써 술을 마시러 간 건가?”
떠들썩하게 멀어지는 안타레스 사무소의 용병들을 바라보던 레녹이 픽 웃으며 걸음을 돌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 만큼 카시아에게 부담이 심할 터.
적당히 부스를 넘겨받고 슬슬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부스로 돌아온 사이, 카시아가 팔짱을 낀 채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딘가 잔뜩 날이 서 있는 듯한 카시아를 조심스럽게 레녹이 불러세우려던 그 순간.
“에반 바일런?”
부스 옆에서 딱딱한 목소리가 갑작스럽게 울려 퍼졌다.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법한 깐깐한 인상의 남자가 레녹을 보며 서 있었다.
레녹에게 할당된 부스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슬쩍 부스를 둘러본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안으로 쓱 걸어들어왔다.
“라바테논 대학의 에반 바일런 조교수. 맞나?”
“네. 제가…….”
“학장의 정령을 데리고 있는 걸 보니 틀림없겠지.”
레녹의 말을 휙 끊어버린 남자가 엔진을 보며 말했다.
“리첼렌 교수의 성과를 제 것인 양 자랑하고 다니는 놈팽이가 있다고 들어서 말이야. 한번 직접 보고 싶었거든.”
“…….”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겨서 놀랐다. 다른 사람에게 들러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들은 보통 인상이 정해져 있는데 말이지.”
남자가 힐끗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하기야 그 정도는 되니까 칼라일 연구소의 차석 연구원까지 홀려서 그럴듯한 쇼나 벌일 수 있는 거겠지.”
이 정도로 대놓고 적대감을 드러내면 막상 크게 화도 나지 않는 법이다.
“혓바닥을 놀리는 걸 조심하는 게 좋을 텐데요. 아니, 그럴 필요도 없으려나?”
반쯤은 욕설에 가까운 시비를 걸어오는 남자의 앞에, 싸늘하게 굳은 표정의 카시아가 마주 섰다.
“지금 당신이 지껄인 그 같잖은 시비, 제가 책임지고 고스란히 감당케 만들 테니까.”
“그런가?”
“가운에 박힌 문양. 페그라체 연구소 출신이죠?”
카시아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상원의원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떠들썩하던데, 이번 박람회에서도 그 커넥션을 자랑할 생각인가요?”
“이해가 안 되는군. 시의회의 비호를 받고 있는 건 너희들이잖아.”
“뭐라구요?”
남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 학장이 중앙의회 기술자문으로 돌아다니며 로비를 하고 있다는 거, 우리 연구소에서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뻔뻔하게 나오는 것도 정도가 있지.”
카시아가 날카로운 어조로 빈정거렸다.
“메이어 하원의원이 주도하는 감사원에서 페그라체 연구소를 두 차례 압수수색했다는 기사가 몇 번이나 실렸는데-”
“연구를 위해 협업을 맺고 있을 뿐이야. 그걸 가지고 진짜 로비를 하는 라바테논에서 흠을 잡으려 들다니, 뻔뻔함도 정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녀의 말을 도중에서 끊어버린 남자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무슨 낯으로 박람회까지 기어나왔나 확인해 보려 했는데, 이 정도면 굳이 신경쓸 필요도 없겠군.”
남자가 웃으며 레녹이 조립한 엔진을 탕탕 두들겼다.
“뭘 가지고 나왔나 했더니, 마력과 전력 치환 원리를 이용한 엔진 하나뿐?”
“…….”
“논문 발표 당시에는 획기적인 이론이지만, 이미 이쪽 분야는 사업화 검증이 끝나고 양산에 돌입한 지 오래야. 지금 시장에 풀리는 최상급 마도공학 엔진들 중에 이것만 한 물건은 얼마든지 있어.”
레녹을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에는, 숨길 수 없는 희열과 경멸의 감정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리첼렌 교수의 성과를 답습할 뿐인 쓰레기였군. 그 두 번째 논문이라는 것도 보나 마나 고작 첫 번째 논문을 재활용하는 수준이겠지.”
쾅, 쾅!!
엔진을 두들기는 남자의 손길이 점차 거칠게 변했다.
“평생 그따위로 누군가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살 생각이었겠지만, 기어 나올 무대를 잘못 골랐다. 이번에 그 뻔뻔한 낯짝과 추태를 남김없이……!!!”
“그거 계속 두드리면.”
레녹이 남자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 시선은 남자가 아까부터 거칠게 두들기던 엔진을 향하고 있었다.
“폭발한다.”
“뭐?”
치이익……!!
그 순간, 남자가 부서져라 두들기던 엔진의 상층부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그대로 푸르스름한 불꽃을 내뿜었다.
콰아아!!!
초고온의 열기를 맨손으로 움켜쥐다시피 한 남자의 팔이 그대로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고.
처참한 표정으로 무너져내린 얼굴의 남자가 끔찍하기 그지없는 비명을 토해냈다.
“끄아아아아악!?!!!!”
불이 옮겨붙은 팔을 움켜쥐고 미친 듯이 부스 바닥을 나뒹구는 남자의 모습.
레녹과 카시아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무언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부스 옆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튀어나와 그를 부축했다.
“슬리먼!!”
“무슨 일이냐!!”
“팔을 다쳤어!! 빨리 안전요원을 불러라!!”
“안 돼, 안 돼……!! 내 팔이……!!!”
불길에 휩싸인 팔은 이미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워 보였다. 엔진이 폭발한 시점에서 이미 슬리먼 본인도 직감하고 있겠지.
형편없이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슬리먼의 표정에 카시아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발악에 가까운 비명으로 슬리먼이 두 사람을 가리켰다.
“저, 저새끼들이야!! 저 새끼들이 내 팔을 불태웠다아아악!!”
* * *
“그러니까 CCTV에 녹화된 영상으로는 두 분께 아무런 의도도 없어 보입니다만.”
“저놈들이 슬리먼의 팔을 불태웠다고요!!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악독한 술수를 부린 거예요!!”
“슬리먼 연구원 본인이 먼저 부스에 접근해서 시연품을 건드리지 않았습니까.”
“칼라일 연구소에서 저런 일을 벌인 거예요……!! 페그라체 연구소가 잘나가니까 질투해서!!”
“이거 참…….”
슬리먼의 동료로 보이는 연구원들의 억지를 받아주던 공무원이 난처한 한숨을 내쉬었다.
안전요원들에게 둘러싸여 호송되는 슬리먼의 오른팔은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워 보였다.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을 선사한다는 초고온의 화상.
보조장치를 착용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오른팔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도 어렵겠지.
의수를 착용한다면 앞으로 연구직을 이어나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술사로서 마력을 다루는데 일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터.
사실상 마도공학 연구원으로서 다른 이들에 비해 크게 퇴보했다고 볼 수밖에.
“조정 중인 시연품에 손을 댄 건 명백한 본인의 실책이라 드릴 말이 없군요. 도의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이건 저희 측으로서도 책임지기 어렵습니다.”
“이……!! 너 지금 우리가 무슨 일을 앞두고 있는 줄 알고 이러는 거야!!”
공무원의 멱살을 마구 쥐고 흔드는 연구원들의 모습.
다른 부스에서 묵묵히 준비를 하던 마법사나 연구원들까지 힐끗 이쪽을 돌아보는 것이 느껴진다.
레녹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들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말없이 폭발한 엔진을 수리하는 일에 집중했다.
카시아가 등 뒤에서 슬쩍 레녹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금방 끝나겠어요?”
“문제 없을 겁니다.”
레녹이 대답했다.
“열기 분출구 필터가 과부하된 것뿐이라, 출력 한계점만 다시 만져주면 되거든요.”
“흐흠, 하필 하고많은 필터들 중에서 그놈이 손을 댄 부분만 과부하가 됐다…….”
“우연이죠.”
카시아가 빙긋 웃었다.
“그럼요, 지독한 우연이네요.”
레녹이 지금 상대해야 하는 것은 페그라체 연구소가 아니라, 그의 논문 내용을 검증하려 드는 심사위원들이다.
지금 이 소란 따위야 앞으로 해야 일에 비하면 시시한 일일 뿐.
슬리먼을 죽이는 대신 팔 하나를 망가뜨리고 보내준 것 역시 그런 이유였다.
그럴듯한 폭발사고로 위장할 수 있다고 해도, 사람이 죽어버렸다가는 박람회 일정이 밀릴 가능성이 있다.
레녹은 고작 쓸모없는 방해꾼 한 명 때문에 이번 일이 흐트러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조정 끝났습니다. 이제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예요.”
뻐근한 허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과 함께, 뒤에서 부스 안을 정리하고 청소하던 카시아가 슬쩍 물었다.
“그런데 정말 두 번째 논문의 내용이 엔진과 관련된 건가요?”
“이제 와서 궁금하기라도 한 겁니까?”
“궁금하기야 한참 전부터 궁금했죠.”
카시아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그 멍청이의 말이 진짜는 아니겠지만, 두 번째 논문의 성과가 엔진과 관련이 있는 건 확실해 보여서요.”
그렇지 않고서야 박람회 발표를 앞둔 이 시점에 엔진을 붙잡고 수리하고 있을 리가 있겠는가.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용도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그렇게 보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가져온 물건이 아무것도 없다.
무슨 짓을 할 생각이기에, 그 깐깐하기 그지없는 학장이 선뜻 제 인맥과 지인을 사용해 이렇게 무모하게 일을 밀어붙였는지.
“연비나 출력의 획기적인 개선이겠지.”
레녹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부스 밖에서 조용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차가운 인상의 안경을 쓴 여성. 슬리먼의 동료로 보이던 페그라체 연구원과는 완전히 다른 복장.
따지자면 오히려 군복에 가까워 보이는, 제복을 입은 그녀가 레녹을 보며 웃었다.
“페도라야. 페도라 에이번. 방위군 기술국 소속이고.”
그녀는 아까 슬리먼과 같은 꼴을 당하기는 싫은지, 부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은 채 레녹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그 멍청이가 하려 했던 일은 유감이야.”
“아뇨, 괜찮습…….”
“방금 알아보니까 리첼렌 교수 연구실에 들어가려다 퇴짜를 맞은 일이 있더군. 그쪽한테 앙심을 품고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지.”
“…….”
그 잠깐 사이에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정황을 알아보고 레녹에게 대화를 걸었단 말인가.
방위군 기술국이라. 트레펜 중장의 반역 이후로도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모양.
“난 그 정도로 멍청한 병신은 아니야. 하지만 놈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
페도라가 힐끗 엔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두 번째 논문으로 엔진의 성능이나 효율을 올리는 성과를 제출할 생각이겠지? 그 정도는 들고 와야 내세울 거리가 있을 테니까.”
“그렇습니까?”
레녹이 이번 박람회에서 사기를 치려 든다던 슬리먼보다는 훨씬 말이 잘 통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페도라 역시 레녹이 제출하려는 논문 성과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성과로는 의원들의 눈에 뜨일 수 없을걸.”
“…….”
“이번 박람회에서 그들이 원하는 테마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어. 다른 연구소들 역시 마찬가지지. 그쪽 학장이 시정부 고위직과 관련이 있다고는 하지만, 별다른 협업이나 후원이 없는 라바테논 대학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레녹의 엔진을 바라보는 페도라의 시선에는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시정부는 언제나 새로운 성과와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을 원해. 지나간 업적을 답습하는 정도로는 그들의 눈에 찰 리 없어. 학장이 사람을 잘못 봤군.”
“획기적인 발전이라…….”
“이번에 그쪽을 박람회 무대에 세우기 위해 학장이 아주 많이 무리를 했다고 들었어. 당신이 실패하고 나면 학장의 인맥과 권위 역시 적잖게 무너져내리겠지.”
웃음기가 섞인 표정으로 유유히 부스 앞을 지나치며 페도라가 말했다.
“같이 잘 해보자.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지만.”
휙 사라지는 페도라의 뒷모습을 얼척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카시아가 고개를 휙 돌렸다.
빙긋 웃는 카시아의 이마에 살짝 핏대가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저 여자한테도 잠깐 엔진 구경을 시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일단 진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레녹이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제 곧 시연이 시작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시청 건물 부스 안의 움직임이 한결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명단을 호출할 테니 지명자는 앞으로 나오세요.]무기질적인 안내음성이 시청 내부 로비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지금부터 심사를 시작하겠습니다.]동시에 건물 로비 바깥에 위치한 부스들부터 차례대로 로비 안쪽에 오픈된 넓은 무대 위로 불려 나갔다.
천천히 불이 켜지는 것과 동시에 시청 2층에 가지런히 도열해 앉은 이들의 모습이 조금씩 들어온다.
상반신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긴 채, 지팡이를 쥔 주름진 손이 보이는 자리.
시정부 중앙의회의 상원의원들이 박람회에 도착했다.
이번 박람회의 성과와 기술을 확인하기 위한 시연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