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37
약먹는 천재마법사 637화
신을 죽이는 방법(3)
“문을 훔치겠다니…… 당신, 제정신입니까?”
헤르메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목이 잘려 나간 채로 피범벅이 된 채로도 여전한 그 순진무구한 얼굴이, 실로 기괴하게 보였다.
하지만 레녹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문의 힘을 손에 넣을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을 이 정도로 개방해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 핵심을 깊게 들여다보기 어려운 법이지.”
철가면 너머 차분한 시선이 헤르메스의 투명한 눈동자와 맞닿았다.
“구세계의 영을 이 세계의 육에 입히는 것으로 너는 문의 가치를 증명했다. 이건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할 여지가 있어.”
해저장벽 심성관. 가장 깊은 호수 중앙에 위치한 승천문의 유산.
그것이 구세계의 편린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레녹은 신중하게 상황을 재고 있었다.
헤르메스가 스스로의 의지로 구세계의 영을 불러 현세에 강신시키고, 다른 마이스터들과 파국을 맞이한 지금 이 순간.
결정적으로 문의 출력을 한계까지 끌어다 사용하며 그 진가를 고스란히 내보이기까지.
이 정도 출력과 정보량. 그리고 설계 구조라면, 레녹이 어떻게든 습득해 가져갈 수 있다.
레녹은 그것을 확신하자마자 지금까지의 계획을 바꿔, 이렇게 직접 헤르메스의 눈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으음…….”
헤르메스가 곤란한 기색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거꾸로 뒤집힌 머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감하군요. 적당히 구슬려서 써먹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너무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신사분이었군요.”
“이게 승천문의 실패에서 비롯된 유산이라는 비밀 말인가?”
레녹이 담담하게 문고리를 두들기며 물었다.
“아니면 너희가, 다음 세계로 넘어가려는 계획을 아직까지도 붙잡고 그 미련을 곱씹고 있다는 것?”
“……후후.”
그 순간, 헤르메스의 머리가 그 자리에서 옆으로 한 바퀴 굴러 바로 섰다.
절단된 단면부에서 흘러나온 피를 흠뻑 뒤집어쓴 섬뜩한 몰골.
하지만 헤르메스는 잘린 목을 바닥에 붙인 채, 똑바로 레녹을 바라보며 웃었다.
“처음에는 물론 그렇지 않았지요. 모두가 이 일을 치욕스럽게 여기고, 흔적과 증거를 지워 없애 버리려 했습니다.”
“…….”
“승천문을 설계했던 아터마이어, 문의 토대를 제작한 화덕진군, 마이야 렌슬릿을 비롯한 집행기관의 선지자들까지. 도시의 역사 속에서 잊혀지는 결말을 맞았지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던 겁니다.”
헤르메스가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조소했다.
“이 도시는 이미 실패한 역사를 답습하며, 그 찌꺼기를 주워 먹는 것 말고는 어떤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승천문을 만들어 다음을 엿보려고 한순간, 우리의 미래는 그렇게 정해진 것이었죠.”
“…….”
“우리에게 다음이란 없습니다. 이 세계에 미래란 존재하지 않아요.”
대답하지 않는 레녹을 향해 헤르메스가 확답하듯 강하게 속삭였다.
“문을 열고 도달한 곳이 네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였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모순 속에서 갇혀버린 겁니다.”
결말이 정해진 이 세계를 넘어 다음으로 향하려 했던 기계도시의 대답, 승천문.
그것은 문의 개념을 극한까지 압축하고 전뇌화시켜, 다음으로 향하는 인류의식의 통로를 구축해 세계 자체를 건너뛰는 프로젝트의 일종이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마도공학의 정수. 인간의 갈망과 소망을 수치화하고 데이터로 정립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린 그들의 기술력과 발상은 레녹이 보기에도 초월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지만.
네 번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사실이 모든 계획을 송두리째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말이 다가오는 이 세계 너머에 다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적인 진실.
자신들이 지닌 그 무엇보다 우수한 기술력으로 희망을 찾았지만, 그렇기에 바로 그 방법 그대로 다가오는 절망의 정체도 알게 된 것이다.
헤르메스는 그렇게 말해놓고는, 자신의 꼴이 우스운 듯 피식 웃으며 자조했다.
“뭐, 외부인에 불과한 당신이 이 말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자격이 있다 생각했기에 상실을 견딜 수 없는 거지.”
“…….”
그 한마디로 번민의 핵심을 찔린 것처럼 느꼈을까.
입을 다문 헤르메스의 머리를 바라보며 레녹이 말했다.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며 집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도시의 모든 희망을 그러모아 도달한 곳이 갈망하던 미래가 아니라, 실패한 과거라는 것을 알게 된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견디지 못한 그들이 미쳐버려 모든 흔적과 관계자들을 지우려 했던 것도.
이제 와서 필사적으로 자신들이 발견한 실패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레녹은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다르지 않아.”
레녹이 무릎을 꿇고 헤르메스와 시선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이미 실패해 미쳐버린 이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난 그걸 부정하고 싶지 않다.”
바로 그렇기에, 다음을 추구하려던 이들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레녹은 계속해서 갈구하는 것이다.
결말의 끝에서 그들이 어떻게 실패해 다음으로 향하지 못하고 굴러떨어졌는지.
그 갈망이 어떤 식으로 결실을 피웠다 져버렸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레녹 역시 그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테니까.
이 세계의 모든 실패를 남김없이 탐구하며, 알카이드와 손을 잡고 방법을 찾았던 카이세조차 종국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신의 실패에서 배우고, 영민한 자들은 타인의 실패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울 기회 따위는, 이 세계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영민하지 않더라도, 자격이 없더라도, 광기와 치부로 얼룩진 역사를 들추는 한이 있더라도.
레녹은 어떻게든 대답을 내놓고 실패를 반복한 그 시간들을 돌이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계의 결말에 대한 단 한 번의 대답.
다음으로 향하는 의미, 혹은 그에 비견되는 가치를 찾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헤르메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천천히 관문으로 다가가는 레녹의 모습.
천천히 양손으로 관문의 문고리를 잡고, 마력을 불러일으켜 힘껏 돌려세운다.
차르르륵!!
수십 개 겹쳐 부유하던 원형의 고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회전하며 거대한 광채를 터트렸다.
“위대한 관조자, 도전하는 초월자, 법칙의 이탈자…… 당신은 아직 방법을 찾고 있는 이로군요.”
헤르메스는 레녹의 뒤에서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웃었다.
“존재하지 않는 답을 갈구하는 그 마음가짐은 존경스럽지만, 문의 힘은 고작 그런 각오만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찰칵!!
레녹은 헤르메스의 말을 무시하고, 거대한 원형의 고리 곳곳에 연결된 출력장치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시점에서 헤르메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레녹이 해야 할 일은 문의 출력을 한계 이상으로 과부하시킨 뒤, 다비의 힘을 이용해 문의 설계구조와 내부술식을 복제해 빼돌리는 것.
마이스터들이 어떤 식으로 장비를 조작해 문을 조정하고 출력을 안정시키는지는 확인해 두었다.
그렇다면 장비 자체를 반대로 조작해서 출력의 안정성을 떨어뜨리고 억지로 과부하시키기만 하면 될 일.
우우우웅!!!
레녹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수십 개씩 겹쳐진 거대한 원의 고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광채를 더하기 시작했다.
문의 힘 자체를 억지로 증폭시켜 내부 구조를 무너뜨리고, 강제로 그 안쪽을 관찰해 기억하려는 레녹의 모습.
레녹이 빈말을 지껄인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문의 구조를 파헤치고 있음을 깨달은 헤르메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제가 그쪽 신사분을 너무 과소평가했군요.”
그 말과 함께, 호수 수면 아래쪽에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쿠르르륵……!!
순항미사일처럼 소리를 뛰어넘는 속도로 빠르게 상승한 무언가가 그대로 튀어나와, 거침없이 레녹을 후려갈겼다.
우웅……!!
고막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섬뜩한 진동. 호수 수면 위로 거대한 파도가 몰아쳤다.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나오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콰아아아앙!!!
“심성관 내부 소란을 완전히 진압할 때까지는 적당히 숨겨둘 생각이었지만…….”
헤르메스가 자신의 목을 데굴데굴 굴려 문 옆으로 피하면서 말했다.
“당신 같은 강자를 상대로 어디까지 통할지 실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레녹이 한번 걷어차서 호수 밑에 처박아 버렸던 구세계의 망령, 혈기사.
하베스트의 육신을 피칠갑을 한 갑주로 뒤집어쓴 채, 비틀거리며 레녹의 앞을 가로막은 괴물의 형상.
하지만 레녹은 그런 혈기사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시행착오 자체는 이미 끝났고, 필요한 건 실전에서의 검증뿐이었겠지.”
“예?”
“과정 자체가 상리에 어긋나 있다. 공양의 효율성을 따져서 계산해도 대가가 부족하군.”
레녹은 인신공양 자체에는 큰 흥미나 가능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인신공양에 대해서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문의 효율이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구세계의 영혼을 불러내는데 하베스트의 생명 하나만을 바쳤을 뿐.
마이스터의 존재 자체가 이 도시에서 엄청난 자산이라는 것과 별개로, 신을 죽인 초월자를 불러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대가다.
사전에 미리 대가를 추가로 더 바치고, 영혼 자체를 준비시켜 둔 게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만큼.
“미쳐서 이성이 없는 것처럼 굴었지만, 사실 이미 거래 자체는 진작에 완성되어 불려 나온 상태겠지?”
웃고 있는 헤르메스의 머리를 내려다보는 레녹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상황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저자가 폭주하고 있는 것처럼 굴게 만들었던 거겠지. 갑주로 얼굴을 가린 것도 그 이상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일 테고.”
목이 잘린 헤르메스의 모습과 혼란에 빠져 도망친 마이스터들.
지금까지의 상황 자체가 헤르메스 자신의 의도대로 진행되어 완성된 계획이라면, 그 진정한 목적 자체는 어디에 있을까.
“문의 폭주와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해저장벽 내부를 혼란에 빠트린다. 그럼에도 그 혼란이 퍼져나가는 걸 막지 않았다는 건…….”
레녹이 바닥을 나뒹구는 헤르메스의 머리를 보며 싸늘한 조소를 지었다.
“해저장벽 자체를 문의 대가로 바쳐버릴 생각이 아니고서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
죽음의 공포와 생존의 욕구 사이에서 극한까지 고조되는 인간의 감정.
오랜 시간 동안 존속해 온 기계도시 내부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가치 있는 비처라 여겨지는 해저장벽의 존재.
그 모든 것을 문의 거래를 위해 대가로서 바친다면, 불러낼 수 있는 영혼의 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헤르메스는 신살자를 불러내기 위해 마이스터 한 명만을 바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 마이스터 십수명의 존재. 다른 군인들과 해저장벽의 모든 물질과 공간, 시간의 가치까지.
기계도시 마키나의 가장 가치 있는 부품을 통째로 문 너머에 밀어 넣고, 자신이 바라마지 않는 무언가를 손에 넣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레녹이 그 사실을 지적한 순간, 굳게 닫혀 있던 혈기사의 투구 사이로 메마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재미있군. 이 세계의 기재들도 다음으로 향하는 꿈을 꾸느냐?”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천천히 투구를 벗고 머리칼을 쓸어올렸다.
한 손으로 얼굴을 덮은 그가 가만히 시선을 들어 레녹을 바라보았다.
“멸망의 끝에서 영혼을 저당잡히고,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고통받으며 저주하는 삶……. 매번 생각했지만, 정말…….”
남자가 한숨을 내쉬는 것과 동시에 얼굴을 가린 손을 치웠다.
“지난한 일이구나.”
손을 내린 얼굴은, 이미 하베스트의 시체가 가지고 있던 얼굴가죽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매끈한 피부와 잿빛의 머리칼. 창백한 안색과 훤칠한 체격을 가진 미청년.
그 몸짓에서는 숨길 수 없는 고고함과 기품이 묻어나온다.
“얼굴이…….”
레녹은 뒤늦게 그 외견의 변화가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단순히 외견을 바꾸는 마법이나 술식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문 너머에 존재하는 구세계의 기억. 그 안에서 하베스트의 시체에 깃든 영혼이, 존재만으로 육신을 근원부터 바꿔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영혼의 격과 존재감이 말도 안 될 만큼 강력하기에, 육체와 영혼 간의 균형이 무너지고 영혼의 기억대로 육신이 재구성되는 기적.
자기 개변의 일곱 가지 위계를 완성한 정도로는 모자라다.
자신의 위계 자체를 비틀어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선 수준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순식간에 상대가 범상치 않은 수준을 넘어선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레녹의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누군가의 의지에 억지로 불려 나올 법한 존재가 아니로군. 어째서 바깥으로 기어나온 거지?”
눈앞에 서 있는 잿빛 머리의 청년은, 결코 타의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 영혼이 아니다.
이 정도 격을 지닌 영혼이라면, 하베스트의 육신에 자의로 깃들어 문 너머로 탈출할 마음을 먹고 직접 실행에 옮겼음이 분명할 터.
왜인지 모르지만, 저 존재는 방금 레녹과 헤르메스의 대화를 듣고 스스로 하베스트의 육신을 차지해 바깥으로 기어 나온 것이다.
“기어 나왔다니, 참으로 무례한 발언이군.”
청년이 피식 웃으며 등 뒤에 위치한 승천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거침없이 승천문을 구성하는 원형의 고리를 하나 뜯어낸 청년이 양손으로 그것을 쥐고 강하게 비틀었다.
우드드득!!
두께만 몇십 센티미터에 가까운 고리를 그 자리에서 맨손으로 비틀어 제멋대로 방향을 바꿔낸다.
순식간에 나선형의 형태로 꼬여 들어간 언월도 한 자루를 만들어낸 청년이 가볍게 그것을 그러쥐는 순간.
화악!!
청년을 둘러싼 공기가 날카롭게 일어서며, 수면 위로 둔중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묵직한 창대를 어깨 위로 걸친 청년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저자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그에 응답했을 뿐이다.”
“…….”
“우리의 결말을 이런 식으로 되새기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지만, 같은 실패자끼리 상처를 핥아주는 정도라면 나쁠 것도 없지. 그리 생각하지 않느냐?”
같은 실패자. 구세계의 존재. 레녹은 상대가 하는 말을 대충 이해했다.
아마 저 존재는 신살자 자체는 아니었으나, 두 번째 세계에서 승천에 실패하고 소멸에 이르렀던 존재였겠지.
멸망한 세계의 일부가 되어, 인과의 끝에 도달했음에도 헤르메스의 부름에 응해 육신을 빌려 이 자리에 현현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헤르메스가 승천문의 실패를 이용해 이 기계도시에서 시도하려던 계획의 본질.
이 세계의 인간의 육신에, 구세계의 영혼을 깃들게 하여 이 도시의 새로운 첨병으로 삼는 것.
“미련따위는 없지만, 그대같은 구도자의 자격을 시험해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창대를 어깨에 걸친 채로 살짝 고개를 숙인 청년이 섬뜩한 안광을 흘리기 시작했다.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려앉은 창대와 어깨 사이를 타고 흐르는 불길한 검붉은 마력.
검붉은 마력광이 창대를 타고 언월도 날 위로 뒤집히며 타오르는 듯한 창날을 덧대 만들었다.
“내 이름은 카슈인. 실패한 신을 버리고 대천사의 좌에서 떨어진 죄인이다.”
“……대천사라고?”
레녹이 그 이름을 듣고 얼굴을 굳힌 찰나, 혈기사의 등 뒤로 피칠갑을 한 거대한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동시에 창대를 타고 솟아오른, 거대한 태양과도 같은 홍염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화르륵……!!
수십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가볍게 내지른 카슈인의 창극.
그를 따라 들불처럼 일어선 창날의 마력이 레녹의 머리를 쪼개 버릴 듯 높게 일어서 작열한다.
콰아아아앙!!!
흩날리는 불길 사이에서 희미한 냉기가 번뜩이고, 그 뒤를 거침없이 카슈인이 추적해 막아섰다.
순식간에 실드를 깨부수고 레녹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민 남자가 타오르는 시선을 가까이 들이대며 웃었다.
카가각!!
“네게서 더없이 그리운 영혼의 냄새가 나는군……. 네 이름은 뭐지?”
그 순간, 레녹의 품 안에 잠들어 있던 스태프, 대천사의 연민이 강렬하게 공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