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77
약먹는 천재마법사 677화
중앙의회 상원(5)
“점성술이라…….”
레녹 역시 기계도시에서 비슷한 일을 몇번 해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직관에 기댄 추측에 가까웠을 뿐.
실제로 점술이라는 술식이나 능력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타인의 운명을 들여다보는 점성술사.
아르스노바의 멸망을 예견했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승천자들에게 직접 공인을 받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상원의원들이 그녀를 두고 사태를 관망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저 여성이 강력한 술자이자, 이번 일을 마무리 지을 명분으로 작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겠지.
레녹이 점성술에 응하는 것만으로 그 결정을 어느 정도는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셈이다.
“…….”
마냥 허황된 소리나,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세계에는 결말을 맞이한 미래의 분기점을 보고 돌아온 예지자도 있었으니까.
결말의 한 갈래를 보고 돌아온 안타레스와는 달리, 운명을 엿보는 점성술사라면 과연 레녹에게는 무엇을 이야기할까.
운명이라는 단어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기에 흥미가 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좋아.”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점성술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점성술사의 앞에 선 레녹이 이 자리를 내려다보는 상원의원들을 향해 말했다.
“점성술을 치는 것으로 오늘 있던 일을 마무리 할 생각이라면.”
“…….”
“다만 점성술에 대한 결과는 나 혼자서 듣겠다.”
레녹이 눈을 감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분히 개인적인 일이라고 생각되는데. 그 자리에 멀뚱히 앉아 남의 운명을 훔쳐 들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반.”
실포드가 대답했다.
“어차피 술식이 시작되고 나면, 그 진행과정은 누구도 엿볼 수 없게 될 테니까요.”
“…….”
“두 사람을 현세에 붙잡아두기 위한 관측자 한 명을 제외하고서는, 당신의 운명을 함부로 탐하려 드는 이는 없을 겁니다.”
“관측자?”
레녹의 반문에 의장이 입을 열었다.
“메이어 상원의원.”
쿵!!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이 자리의 누구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의 모습.
하지만 그 강직한 시선과 기세는 시간의 흐름을 뛰어넘어 형형하게 빛난다.
일찌감치 레녹의 재능을 알아보고 회유하려 했던 늙은 정치가.
하원에서 그 경력을 시작한 탐욕스러운 노인이, 이제는 상원의 일원이 되어 이 회의동에 자리해 있었던 것이다.
의장이 메이어를 바라보며 그에게 물었다.
“견뢰와 개인적인 안면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소만.”
“우리와 견뢰를 대신하여, 이 자리의 증인이 되어줄 수 있겠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메이어가 옥좌를 두들기자, 순식간에 옥좌의 높이가 낮아지며 레녹의 지근거리까지 내려섰다.
천천히 걸어 레녹과 점성술사의 옆에 다가온 메이어가 레녹에게 물었다.
“반, 괜찮겠나?”
“감안할 생각입니다.”
레녹이 조용히 대답했다.
“중앙의회와 한번쯤은 조율을 거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원로원의 중재를 받게 된 것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방식 자체가 레녹의 흥미를 끌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필멸자의 운명을 점쳐주는 점성술사라. 하물며 그 능력을 승천자에게 직접 공인받았다는데 어찌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을까.
일이 귀찮아지기는 했지만, 레녹에게 호의를 가진 메이어를 증인으로 세운다면 감안할 만했다.
메이어는 오래전부터 레녹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연락을 이어왔던 만큼, 무슨 사태가 벌어지든 적당히 균형을 맞춰주겠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는 점성술사를 메이어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녀의 능력은 인정받고 있네. 나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야. 신기한 기념품을 마주한 기분이군…….”
“오호라, 날카로우시군요.”
옆에서 싱글싱글 웃고 있던 실포드가 중절모를 매만지며 끼어들었다.
“사실 그녀의 본질은 오히려 그쪽에 더 가깝거든요.”
“뭐라고?”
“그렇게 편리하거나 용한 점쟁이기만 한 건 아니라는 말이죠.”
실포드가 레녹을 향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뭐, 직접 겪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준비가 됐다면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한걸음 앞으로 다가온 점성술사가, 레녹을 보며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현계에 의식을 남길 수 있는 순간은 찰나에 가깝죠. 바다 저편을 헤매이다, 잠에 들고 깨어나는 것을 반복…….”
그녀가 물었다.
“진리 속을 떠다니는 것에 비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참 무의미하지 않나요?”
“……글쎄.”
말없이 점성술사를 응시하던 레녹이 웃었다.
“그쪽의 능력을 원하는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점성술사를 불러 중재를 맡긴 것 자체가, 레녹이 발칸에 위협이 되지 않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과정 자체에 무언가 숨겨진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
아르망이 언급하며 레녹의 반응을 살피려던 에반 바일런에 대한 화두와 상원에서 거래로 제시한 마탑 창설.
묘하게 반과 에반의 경계선 사이를 걸쳐 있는 거래조건과 정황까지.
어쩌면 이들 중 누군가는 반과 에반이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레녹은 그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그 의심조차 거둬내기 위해 점성술에 응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품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유리병을 꺼내 든 그녀가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별빛으로 빛나는 흑색의 가루를 레녹과 자신의 주위에 뿌리고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린 그 순간.
[축쇄 : 성련경(星聯鏡)]촤아아악!!
모래사장에 새카만 파도가 이는 듯이, 레녹과 점성술사를 둘러싸고 굵직한 칠흑의 암막이 솟아올랐다.
까마득한 암흑 저편에서 희미한 별이 반짝이는 듯한 어둠의 파도.
두 사람의 발 밑에서 솟아오른 흑색의 구체가 회의동과 격리되어 회전한다.
순식간에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는 격리지대로 변한 공간을 보며 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됐군.”
“15분정도던가?”
“모르지.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끝날 수도…….”
“…….”
제각기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암막을 응시하는 의원들의 모습.
의장 역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으로 암막을 바라볼 뿐이다.
실포드는 그런 의원들의 대화를 올려다보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 * *
레녹은 자신과 점성술사를 둘러싼 방대한 암막의 형상을 보고 눈을 빛냈다.
“특이한 개념을 빌려왔군. 말 그대로 별자리를 비추는 거울인가.”
세 사람을 둘러싼 암막의 너비 자체는 막상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마치 거대한 우주 속을 연상케 하는 듯한 압도적인 투영감이, 이 암막 자체를 아득히 넓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밤하늘을 비추는 등대지기의 천구와는 그 용도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느낌.
지상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아니라, 마치 외해의 풍경 자체를 가감 없이 비추는 듯한 불길함이다.
“바로 시작하지.”
우주를 비추는 어두운 암막을 바라보던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어는 주변을 둘러싼 암막을 신기한 듯 둘러보다, 이내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듯 뒤로 슬쩍 물러섰다.
눈을 감은 채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를 보며 레녹이 물었다.
“점성술을 사용하기 위해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가?”
“…….”
대답하지 않은 채, 눈을 감은 얼굴을 들어 올린 점성술사의 모습.
닫힌 눈꺼풀 너머로 레녹의 얼굴을 대신 바라보는 것처럼,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여성의 입에 천천히 열렸다.
“귀하, 운명을 믿지 않으시는군요.”
“믿지 않는다…… 그것과는 조금 다르지.”
레녹이 순순히 대답했다.
때론 이런 문답조차 의식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
“나는 운명과 존재의 상관성을 확신하지 못한다.”
우연과 필연, 그리고 운명.
여전히 레녹은 그 개념과 순서에 온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레녹이 그동안 해왔던 일은, 언제나 정해진 답을 거부하고 벗어나는 것뿐이었으니까.
과거와 현재의 마음을 비추는 대신, 미래에서 대답을 찾고 있다.
결말이 보이지 않는 과정을 무한한 인과의 순환 아래 존속한다.
레녹이 위계를 쌓아올리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정해져 있던 법칙을 비틀고 길을 벗어나며 만들어진 것.
점성술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운명을 본다는 것은 정해진 인과를 관측하고 일러두는 것이 아닙니다.”
낡은 카드뭉치를 꺼내든 그녀가 천천히 카드를 뒤집어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무한해 보여도, 살아온 시간을 따라 궤적을 덧그린다면 그 흐름을 논할 수 있지요.”
“…….”
“저는 별의 움직임을 따라 시간의 궤적을 덧그리고, 그 방향성을 귀하에게 일러드리는 것뿐입니다.”
“이 카드들은 그런 별의 움직임을 보기 위한 도구인가?”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방향도 의미는 없지요. 별자리를 비춰 의미를 담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사용하든 상관은 없답니다.”
레녹의 앞에 무릎을 꿇은 그녀가 웃으며 그에게 카드들을 가리켰다.
수십장의 카드들이 눈물 모양으로 배열이 되어 있는 모습.
“한 장을 집어 확인해 주세요.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고르는 순서조차 점괘의 일부니까요.”
그 말에 따라 레녹이 카드를 한 장 집어 들어 뒤집었다.
동시에 두 사람의 머리 위 암막의 풍경이 뒤집히더니, 특정한 별자리가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입을 열어 설명했다.
“첫 번째 카드는 귀하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바라는 소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떤 풍경인가요?”
“아무것도 없군.”
“……네?”
점성술사의 대답이 살짝 늦었다.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카드를 뒤집어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뒤집힌 카드의 앞면에는 새카만 어둠만이 일그러지듯 회전하고 있을 뿐이었다.
“…….”
미래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괘를 이런 식으로 전해주려는 걸까.
만약 레녹에게 엿을 먹이려는 생각이었다면 꽤나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카드를 하나 더 뒤집어 확인해 주세요.”
한참을 침묵하던 점성술사가 다시 말했다.
“두 번째 카드는 귀하가 지금 처한 상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죠?”
“똑같다.”
두 번째 카드의 앞면 역시, 알 수 없는 어둠이 몽글거리고 있을 뿐.
“……세 번째 카드는 귀하의 인연과 귀인이 될 사람에 대해…….”
“희끗거리는 안개만 보이는데.”
“네 번째 별자리는 앞으로 다가올 위험과 그 대책을…….”
“뭐가 움직이긴 하는데…… 꿈틀거려서 뭔지도 잘 모르겠군.”
“…….”
점성술사 역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의 진지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자꾸 이상한 곳으로 새어버리는 점괘.
그 뒤로도 몇장의 카드를 더 뒤집었지만, 까맣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꿈틀거리듯 회전하는 풍경만 연달아 튀어나올 뿐.
무언가 암시를 줄 만큼 구체적인 그림이 드러나는 일은 없다.
침묵하던 점성술사가 중얼거렸다.
“……이상한 일이군요.”
“이런 식의 예지는 항상 잘될 수는 없는 법이지.”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지닌 대상지정 저항능력을 생각하면, 레녹을 대상으로 하는 점괘 자체가 아예 통하지 않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레녹 자신이 점괘를 보는 것을 허락하더라도, 아예 술식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만큼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아뇨. 그게 아닙니다.”
하지만 점성술사는 레녹의 말을 곧바로 부정했다.
“점성술은 별의 흐름을 인간에게 빗대어 방향을 알려주는 신기. 점괘가 통하지 않을 경우 카드는 배열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운명이 멈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별자리 자체가 요동치는 것이 아니고서야…….”
“그래서?”
레녹이 물었다.
“이대로 계속 카드를 뒤집어보면 되겠나?”
“……다른 방법을 써보죠.”
고민하던 점성술사가 품 안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안개를 머금은 수정구.
수정구를 양손으로 받치고 일어선 그녀가 조심스레 레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수정구에 한 손을 올리고, 두 눈이 중심을 바라보도록 시선을 맞춰주세요. 시간이 되면…… 꺄악!!”
쨍그랑!!
레녹이 손을 올리기도 전에, 수정구에 눈짓을 던지는 순간 흑색의 수정구가 박살이 나버렸다.
점성술사의 손안에서 폭발하며, 그 조각이 손을 베고 피를 줄줄 흘러내린다.
베인 상처를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고개를 치켜든 점성술사의 모습.
뒤에서 말없이 서 있던 메이어도 살짝 놀란 듯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레녹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걸로 충분하지 않나?”
“…….”
운명된 존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운명을 거스르는 존재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레녹에게는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애초에 우주 일체를 지배하는 위대한 의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운명을 받아들여라.]이 세계에서 눈을 뜨기 직전 보았던 마지막 전언.
여전히 정답은 없다. 꼬리를 물고 피어나는 의문만이 있을 뿐.
필멸자의 운명을 볼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해 응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지만 점성술사는 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레녹의 말에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닙니다. 점괘는 틀림없이 전해졌어요. 저는 알 수 있습니다.”
“…….”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이 자리에 있어요. 저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비추기만 한다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이 자리에 있다고?”
그 말은 단순히 점술이 통하지 않았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가 아닌가.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발 아래로 시선을 내린 그 순간.
“…….”
그 눈동자가 얼어붙을 만큼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메이어가 당황한 기색으로 레녹을 불렀다.
“반……?”
“……움직이는군.”
“뭐라고?”
“카드의 그림이 같이 움직이고 있어.”
새카맣고 희끄무레한 무언가. 하지만 각 카드에 비춰진 색채가 꿈틀거리며 회전하는 속도는 동일하다.
카드의 그림이 각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뉘어 연결이 되어 있는 것처럼.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렇군. 처음부터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나?”
레녹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거울을 한장한장 뒤집기 시작했다.
점성술사가 뿌린 카드는 제각기 다른 미래나 상황, 위기를 비추고 있던 것이 아니다.
이 카드 더미 안에 담겨 있는 그림은, 처음부터 단 한 가지만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카드를 뒤집어 바닥에 내려놓을때마다, 희끄무렇게 꿈틀거리던 무언가 둥그런 원형을 그려 나간다.
외곽에서부터 카드를 뒤집어, 중앙으로 그림을 맞춰나갈 때마다 그 형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아, 아아아……!!”
레녹이 뒤집는 카드들을 바라보던 점성술사가, 그 그림의 정체를 깨닫고 벌벌 떨며 뒤로 물러섰다.
멀어버린 두 눈을 반개한 채, 제 자리에서 경련하며 미친듯이 벌벌 떨어대는 그녀의 모습.
쩌적, 쩌저저적……!!
카드를 뒤집을 때마다, 점성술사가 펼친 어두운 암막의 풍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지금부터 보여질 풍경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우주를 비추는 거울이 일그러졌다.
“반?!”
당황해 다가오려는 메이어를 물러서게 한 뒤, 마지막 카드를 뒤집어 그림을 완성한다.
“…….”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떠 있는 거대한 눈동자.
수십 장의 카드 앞면 위로 그려진 눈동자가, 천천히 꿈틀거리며 레녹을 바라보고 있다.
눈동자의 창백한 동공 아래쪽으로는 마치 상처가 난 것처럼, 끈적한 수정체가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그 눈동자의 크기가 너무나도 크고 거대하여, 카드 몇장으로는 그 실체를 짐작하기 어려웠을 뿐.
처음부터 점괘는 단 한 가지 그림만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아아악!!!”
경련하며 피를 토하는 점성술사를 무시하고, 레녹이 말없이 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직감하는 것만큼, 레녹도 이 눈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
편람의 우물에서 시도했던 승천자 계백사출작전.
타락한 승천자의 육신을 탄환으로 삼아 외해 바깥으로 쏘아 올렸던 마총사의 기적.
레녹은 우물 끄트머리에 의식을 함께하며, 그 탄환이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보았다.
외해의 심연. 아득한 우주 저편을 헤엄치며 멸망을 노래하는 종말.
상처입고 피흘리는 바깥의 괴신이, 레녹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