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91
약먹는 천재마법사 691화
마녀와 마탑(5)
스탬프 건을 발포 직전에 하프먼의 손안에서 뺏어 든 레녹의 모습.
방아쇠를 당기는 감촉이 느껴졌음에도, 그 순간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
뒤늦게 레녹의 존재를 확인한 하프먼과 말라시아의 표정이 싹 변했다.
기겁하는 반응을 내보이기도 전에, 두 사람이 사라지듯 모습을 감췄다.
카가가가각!!!
멈춰 있던 그 자리에서 소리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
순식간에 타티아나를 버려두고 레녹의 지근거리로 파고든 두 사람의 마력이 격렬하게 회전했다.
콰아앙!!
레녹이 서 있던 자리의 앞뒤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와 쓰레기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 충격으로 타티아나의 신형이 장난감처럼 튕겨 나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쿨럭!!”
지친 몸을 끌고 힘겹게 일어서, 덜덜 떠는 손으로 목 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찍어 바른다.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입술을 깨문 타티아나가 그대로 수인을 맺으려던 그 순간.
옆에서 나타난 레녹이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수명을 깎아 먹는 짓이다. 굳이?”
두 사람의 공격을 동시에 받아낸 것도 모자라, 직후 타티아나를 만류하고 나설 만큼 상황을 그새 파악한 것일까.
레녹을 돌아본 타티아나가 쓴웃음을 지으며 피를 닦아냈다.
“알고 있었냐?”
“믿는 게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지.”
엉망이 된 그녀의 모습을 훑어본 레녹이 대답했다.
“다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기아스를 걸어 넣었을 줄은 몰랐군.”
“…….”
타티아나는 집단 화력전에 맞게 스스로의 염열마법을 조정하며, 강력한 기아스를 걸어 넣었다.
범위와 위력을 넓히고 화력전에 특화된 포화마법을 강제로 조정해 만들어낸 특화 마법체계.
강력한 포화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둔 불씨가 필요한 것은 그러한 부작용이었겠지.
타티아나 역시 전투를 대비해 불씨를 여럿 지니고 다녔겠지만, 도망치는 사이 전투를 거듭하며 전부 소모해버린 것이다.
심지어 불씨를 사용해 마법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지막에는 불씨가 아닌 완전히 다른 수단에 의존하려 했다.
“혈법사도 아니면서 그쪽 계통을 사용하는 건 추천하지 않아. 적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군.”
“그건…….”
선천적으로 적성을 가진 라얀 아이터나, 흡혈귀로 태어난 마담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혈마법에 손을 대는 것은 자살행위다.
다른 계통의 술식을 억지로 차용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 매개체가 혈액이 되어버리는 순간 목숨을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
수명이나 잠재력이 깎여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다간 그 자리에서 죽어 자빠져도 이상하지 않다.
“궁여지책으로 익혀둔 술식이겠지만, 그걸 사용하면 목적을 이루는 건 불가능해지겠지.”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과 함께, 저편에서 끈적이는 두 사람의 안광이 이쪽을 향해 번뜩였다.
“마탑을 도망쳐 나온 이유. 저쪽에 있는 게 아니었나?”
“……그래.”
타티아나가 고통에 흐려진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생명유지장치를 들고 다니는 마법사에게 거기까지 도와달라고 말할 생각은 없었지.”
“…….”
“내가 시작한 일이야.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나 혼자서 끝내야…….”
비틀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주워 담는다.
그사이에 흘린 출혈이 극심했는지, 거리감이 맞지 않아 휘청이는 손짓이 애처롭다.
레녹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두들겼다.
“윽……!!”
그 가벼운 진동만으로 힘겹게 주저앉아버리는 그녀의 모습.
“여기서 죽일 생각은 없으니 포기해라.”
레녹이 웃었다.
“두고두고 살려서 부려먹을 생각이거든. 아, 방금 말은 기절해서 못들은 걸로 할까?”
“하…… 다, 들었거든…….”
타티아나가 쓰레기 더미 사이에 기대 앉아 힘겹게 눈을 감았다.
그녀의 호흡이 희미하게나마 붙어 있음을 확인한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옮기는 사이, 은빛의 기둥을 타고 푸른 전격이 솟아올랐다.
파지직……!!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굵직한 전광 너머로 레녹이 웃었다.
“블레이버 마탑의 다섯 염주 중 한 명이라 했던가?”
“…….”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비스듬히 레녹을 응시하는 말라시아와 계획과는 달라진 상황에 표정이 일그러진 하프먼이 벼락줄기 사이로 교차한다.
입술을 깨문 하프먼이, 발아래 쓰러진 켈베로스 병단 청년의 얼굴을 발로 짓밟았다.
콰직!!
“끄, 끄학?!”
그 발길질로 콧대가 부러지며 피가 흘러나오고, 고통에 두 눈을 번쩍 뜬 청년이 하프먼을 보고 사색으로 변했다.
하프먼이 그런 청년을 노려보며 물었다.
“왜 도중에 견뢰와 접촉했다는 사실을 바로 보고하지 않았지?”
“쿨럭, 크, 그으건……!!”
“아, 됐어. 들을 필요도 없지.”
으드득!!
청년이 당황해서 어떻게든 변명하려 했지만, 하프먼은 한 번 더 그 얼굴을 걷어차 이빨을 모조리 부러뜨려 버렀다.
“이래서 살인귀 새끼들을 작업에 써먹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급하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꼭 항상 탈이 난다니까.”
“으브브브!!”
찰칵!!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버둥거리는 청년의 머리 위로, 하프먼이 라이터를 당겼다.
피어오른 불꽃을 손가락 하나로 훔쳐, 그대로 청년의 부러진 코 위에 떨어뜨린다.
물방울처럼 떨어진 불꽃이 피범벅이 된 청년의 얼굴 위에 닿은 그 순간.
“최대한 천천히 죽어라. 고통스럽게.”
청년의 얼굴 위로 피어오른 불길이 통째로 그 머리통을 좀먹고 활활 타올랐다.
화르르륵!!
“끄아아아아악!!”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살점과 근육을 태우고 뼈를 불사르는 열기.
처절하게 울려 퍼지던 비명은 성대마저 불타 금방 사라지지만, 고통은 남아 팔다리를 벌벌 떨게 만든다.
얼굴이 불타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발악하는 청년의 팔다리와 손가락이 반대 방향으로 꺾여 부러지고.
그 움직임조차 흐려진 불씨처럼 사그라들어 멈춰버렸다.
레녹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념만으로 연소의 개념을 전이시켜 대상을 장작으로 삼는 방식이군. 생각보다 훨씬 세련됐는데?”
“……타티아나에게 들은 거냐?”
“듣지 않아도 그렇게 보여주면 금방 알 수 있지.”
라이터를 사용해 연소점을 강제로 만들어, 그 연소과정을 특정 대상에게 강제전이.
소각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만이 옮겨붙어, 타지 않는 물건도 마른 장작처럼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
본디 불에 잘 타지 않는 살아 있는 인간의 신체를 낙엽처럼 태워버린 것도 그러한 능력의 결과.
“타티아나도 그렇고, 마탑의 염주들은 하나같이 염열마법을 독특한 방식으로 다루는군.”
레녹이 물었다.
“그건 너희들의 스승이 그런 특정한 방향성을 염주들에게 지시하기 때문인가?”
“…….”
블레이버 마탑의 다섯 염주들 중 하나, 멜터 하프먼.
마탑에서 봉황전을 들고 도주한 타티아나를 가장 먼저 추적해 냈으면서도, 켈베로스 병단을 고용해 타티아나를 유인해낸 장본인.
그렇게 시간이 끌리는 사이 아킬레우스 사의 술식요격시스템을 손에 넣어 일방적인 구도를 만들고.
말라시아라는 또 다른 강력한 초인을 동반해 얼마 되지 않는 변수까지 완벽하게 차단하기까지. 그 모든 판단에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가 없다.
상정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면서도, 그 개개인의 가능성에 일일이 집착하지는 않는 적절한 취사선택.
이 두 가지 판단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고 있는 것 자체가 경험 없이는 쉽게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아마 틀림없이 하프먼 역시 전쟁터에서 구르며 무수한 실전을 거쳐 살아남은 마법사.
레녹이 하프먼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중앙전선에서 활동하는 실력자들의 솜씨가 항상 궁금했지. 좋은 기회가 되겠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야, 견뢰.”
그렇게 대꾸하는 하프먼의 손에는, 어느새 복잡한 형상의 기계장치가 들려 있었다.
타티아나의 포화무장, 재례의를 억제하는데 사용되었던 아킬레우스 사의 술식요격시스템.
하늘 위로 펼쳐진 푸른 빛의 그물이 방향을 바꾸더니, 이번에는 레녹의 마력을 억누르기 시작했다.
키이잉……!!
지팡이 사이로 솟아오르는 벼락줄기를 그 자리에서 찍어누르는 무형의 압력.
하프먼이 그것을 보며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했다.
“발칸에서 가장 폭급한 살인귀라는 소문이 있던데, 다친 몸으로 외유를 즐기는 걸 보니 틀리지는 않은 것 같군.”
“…….”
“여기까지 쫓아온 걸 보면, 당신 역시 본 마탑의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게 중얼거리는 하프먼의 얼굴에는 어울리지 않는 필사적인 다급함이 엿보였다.
레녹과 조우하고도 곧바로 도망가지 않고, 이 시점에서 전투를 선택한 이유.
그건 자신과 말라시아의 실력을 믿고, 레녹의 컨디션이 저하되었음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만큼 하프먼 역시 이번 일에서 조금도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증거겠지.
레녹은 스스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판단을 다잡으려는 하프먼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제 목숨마저 도외시하고 전투를 즐기는 광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한번 확인해 볼까……!!”
치이익!!
그 말과 동시에 자세를 낮춘 하프먼의 무릎이 기괴한 방향으로 크게 비틀린다.
찰나의 순간 내딛는 걸음을 수십 번씩 쪼개 넣고, 폭발적으로 가속한 하프먼이 길쭉하게 늘어지는 섬광으로 변했다.
염주의 도약에 이어 길게 늘어진 불꽃이 꼬리처럼 따라붙어 타오르고, 사방을 에워싼 불꽃의 실을 레녹의 눈앞에서 휘갈기듯 내리찍는다.
쐐애액!!
한발 늦게 들려오는 공기가 찢어지는 섬뜩한 소음.
하지만 레녹은 코앞에서 떨어져 내리는 불꽃의 소용돌이를 보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잔인한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제는 나에 대한 소문조차 아닌 것 같군.”
콰아앙!!
레녹의 지근거리에서 따라붙은 불꽃의 실이 도화선처럼 타올라 연달아 폭발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실을 레녹 주변에 수십 가닥씩 엮어두고, 순차적으로 터트리는 연쇄작용.
두두두!!
폭발이 터질 때마다 그 여파로 화염의 기둥이 연달아 솟아오르고.
기둥 사이로 내달린 하프먼의 신형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레녹의 실드를 녹여버렸다.
쿠화아악!!
한 손으로는 라이터를 당기며, 다른 손으로는 불꽃의 단검을 역수로 쥐고 미친 듯이 속도를 높인다.
[혁관(赫貫)] [답뢰(踏雷)]빠지지직!!
레녹의 손짓에 따라 이어 붙는 뇌광의 파편이 열기에 호응하며 일방적인 공세를 막아 부수고.
피잉!!
귓가를 스치고 사라지는 날카로운 화염의 섬광을 본 레녹이 웃었다.
“마력사를 사용하는 건 아니었군. 연소 강제전이 마법을 이용해, 공기를 도화선으로 만들어 불태운 건가.”
레녹의 주변을 휘감고 타오르는 불꽃의 실은 마력사나 의념으로 만들어진 형체가 아니다.
그랬다면 진작에 역으로 레녹에게 그 통제권을 빼앗겨 농락당하고도 남았을 터.
틀림없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데도, 그 연소 매개체를 찾을 수 없던 공허함의 정체.
하프먼은 연소과정을 전이시키는 마법으로, 본디 타오르지 않을 공기 자체를 태워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대로 공방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레녹을 둘러싼 일대 쓰레기장의 산소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 터.
“호흡을 막아버리면 시간제한이 생기고, 사고속도가 느려지지. 판을 짜는 데 성공하면 주도권을 가져올 수도 있고.”
레녹을 향해 공격을 이어나가면서도, 일방적인 공세의 흐름이 거대한 판을 짜도록 만들어나가는 전투방식.
멜터 하프먼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적과 성정에 걸맞은 스타일이라 해야 할까.
“하지만 너무 느려.”
“그렇지.”
팟!!
레녹의 앞에 일렁이며 나타난 하프먼이 웃었다.
“공기를 태워 호흡을 막는다는 건, 그쪽에 시선을 돌리기 위한 연막이거든,”
직후 하프먼의 양손이 순식간에 복잡한 수인을 연달아서 영창.
동시에 레녹의 주변을 둘러싸고 타오르던 불꽃의 실이 아래로 푹 꺼지듯이 가라앉는다.
지금까지 레녹 주변의 산소를 불태워 없애버리던 과정을 제 손으로 무효로 돌려 버리는 기괴한 선택.
하지만 레녹은 자신의 발밑에 어느새 그려진 거대한 불꽃의 마법진을 보고 하프먼의 의도를 이해했다.
공격과 동시에 대기를 불태워 호흡을 빼앗는 건, 상대의 생각을 막아버리는 동시에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기 위한 것.
진짜 목적은 일련의 복합영창을 통해, 8레벨의 마법사에게조차 통용될법한 강력한 마법을 터트리기 위해서였던가.
“혁(赫), 쇄(碎), 투(投), 발(發), 개(開). 지정선언.”
염열계열 고유마법
5중영창 복합공명
[발염도래(發炎到來) : 염열나선(炎熱螺旋)] [오금쇄(五金鎖)] [초융해(超融解)]우우우웅!!!
레녹의 발 밑에서 끓어오르는 지옥의 열기가, 순식간에 적색의 광채를 터트리며 공간을 불태운다.
용암처럼 끓어오른 의념의 불꽃이 순식간에 지상을 꿰뚫고 화산처럼 터져 나오려던 그 순간.
“아니.”
콰직!!
레녹이 가볍게 발로 마법진을 짓밟는 것과 동시에, 불꽃의 실로 만들어진 융해마법진이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몰라도, 보조영창에 사용된 마법은 아는 마법이군.”
두 눈을 찢어져라 크게 뜬 하프먼을 보며 레녹이 말했다.
“그럼 깨부술 수 있지.”
“……!!!”
피잉!!
귓가를 스치는 파공음과 동시에, 레녹과 하프먼의 신형이 절묘하게 빗겨나간다.
그 자리에서 공간을 분리해 사선으로 벗겨 버린 듯한 환각.
레녹이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한데도, 하프먼의 마법이 그를 맞추지도 못하고 비틀려 지면에 처박혔다.
콰아아앙!!!
“크학……!!”
바닥을 뒹굴면서도 하프먼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한번 공격이 빗나가긴 했지만, 영창 자체는 틀림없이 성공 직전까지 도달했다.
견뢰가 그 영창을 마지막에 가서야 간신히 막아낸 것을 생각하면, 말라시아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면 기회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을 터.
‘승산이 있다……!’
그렇게 생각한 하프먼이 벌떡 일어나 다시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그 순간.
“어……?!”
느닷없이 찾아온 현기증에 비틀거리며 다시 주저앉아 버렸다.
자신이 왜 다시 주저앉았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듯, 멍하게 변해버린 그의 얼굴.
레녹은 그런 하프먼을 보며 말했다.
“자신의 감각이 예민하다고 믿는 마법사의 빈틈을 찌르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아.”
“……뭐?”
“마력을 적당히 변조시켜 섞어주기만 해도, 제 것인지 구분조차 못 하는 놈이 태반이거든.”
주저앉은 하프먼을 바라보는 레녹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쪽으로 내려간 순간.
“너도 별반 다르지는 않은 것 같은데.”
하프먼은 어느새 자신의 옆구리에 비틀린 단검 한 자루가 깊게 꽂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이건…….”
단검이 어찌나 깊숙하게 틀어박혔는지, 옆구리 사이로 날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 사이로 퍼져나오는 온갖 저주술식의 흔적이 온몸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어째서 이제야 눈치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하고 끈적한 저주가 하프먼의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다.
“아, 아티팩트의 마력을…… 내게 맞춰서…….”
헛웃음을 지은 하프먼이 단검을 뽑아내지도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 그의 옆구리에 꽂힌 단검은, 온갖 저주술식이 내장되어 있는 암살용 아티팩트.
그런 아티팩트의 마력을 하프먼의 마력과 착각하게 만들어, 찰나의 순간 옆구리에 꽂아버린 것이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서로의 신형이 지근거리에서 교차했던 일순.
그 시점에 이미 하프먼의 마력패턴과 감각권을 인지하고, 강제로 허점을 만들어 버린 것인가.
틀림없이 아킬레우스 사의 술식요격 시스템을 레녹에게 돌렸는데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하프먼이 레녹을 향해 정면에서 달려든 순간, 이미 승부는 결정이 나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하프먼의 눈동자가 그 자리에서 천천히 뒤집혀 쓰러진 뒤에야, 레녹이 말라시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일단 하나는 잡았군.”
“…….”
구부정하게 선 채 웃고 있는 말라시아를 보며 레녹이 말했다.
“머리가 좋아 보이는 놈은 살려뒀으니까, 넌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지?”
“크히힛, 글쎄…….”
말라시아가 히죽 웃으며 낫을 고쳐 쥐었다.
가볍게 손목을 비트는 것만으로 그녀의 등 뒤에 걸린 낫이 매끄럽게 회전하며 초승달을 그렸다.
키잉!!
날붙이가 미끄러지는 것만으로 공기를 베어 가르는 섬뜩한 절삭음이 울려 펴졌다.
“일이 이렇게 된 참에 마탑의 염주를 배제하고 계획을 짜도 상관은 없단 말이지.”
“다시 짠다고?”
마치 말라시아의 소속이 하프먼의 결정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묘한 뉘앙스.
레녹이 그 말에 담긴 의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미간을 찌푸린 그 순간.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고 있던 타티아나가 힘겹게 속삭였다.
“반…… 중앙전선의…… 군사기업을 언급…….”
“…….”
“거의, 틀림없…….”
순식간에 그 의미를 깨달은 레녹의 시선이 변했다.
“그렇군. 처음부터 켈베로스나 마탑 소속이 아니었나?”
중앙전선에서 움직이는 민간군사기업.
저 정도로 기괴하고 독특한 병장기를 다루는 초인을 기업이라는 체계에 묶어둘 만큼 강대한 조직.
발칸 음지 삼두령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던 거물이자, 이제는 거대도시를 떠난 초인조직의 본대.
“데드라이즈 괴마전단 비인섬멸대 3석. 말라시아 덴드로즈.”
말라시아가 웃었다.
”이 도시에서 삼두령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아니, 그건 됐으니까 이것부터 묻지.”
레녹이 그렇게 반문하며 어깨를 두들긴 그 순간, 허리춤에서 펼쳐진 철갑의 날개가 레녹을 감싸 안고 솟구쳤다.
촤아악!!
“……!!”
“데드라이즈 소속을 만나면 꼭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거든.”
두 눈을 크게 뜬 말라시아를 내려다보며 레녹이 웃었다.
“이 물건의 주인.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