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1
물론 지금까지 그 괴물같은 악어거인에 비견될만한 강자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레녹은 스스로의 실드를 신뢰하는 대신 꾸준히 다른 대책을 연구해왔다.
기동마법을 익히지 못한다면, 레녹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면에서 적의 공격을 오롯이 받아내는 것 뿐이니.
여기까지 온 이상, 문제는 간단해진다.
결국 그를 향해 쏟아지는 벡의 공격을, 레녹이 일일히 압축시킨 실드로 받아낼 수 있느냐.
그 결론의 해답이 싸움의 행방을 가르게 될 테니.
그리고 레녹은 단 한번도, 스스로의 재능을 의심해본적이 없다.
“한번 해보자고.”
꺽다리 갱스터와, 비쩍마른 마법사가 동시에 앞으로 한발 걸어나온다.
너덜너덜한 벡의 정장마의 너머로 떠오르는 늑대의 심상. 동시에 쏟아지는 수십발의 섬광.
모조리 받아낸다.
타타타타타타탕!!!
마른 쇠를 쉴새없이 두드리는 듯한, 답답하면서도 날카로운 굉음이 연달아 울려퍼지고, 충격파가 사방을 가차없이 휘저었다.
육안으로 보고 반응하면 늦는다.
오로지 눈앞의 상대에게 마력으로 펼쳐낸 감각권을 집중하고, 떨쳐낼 뿐.
동시에 부서져라 움켜쥔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긴다.
[장전가속] [격발강화]타타타탕!!
은빛의 총구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벡의 길쭉한 팔다리 곳곳에서 새빨간 꽃이 터져나온다.
발 밑을 차갑게 얼려내는 빙판과, 허공을 격해서 내리찍히는 새파란 전류 십수가닥이 아래와 위쪽을 가리지 않고 쇄도하고.
리볼버의 총구와 연달아 쏘아지는 불덩이가 벡의 온 몸을 거세게 두드렸다.
콰아아아아앙!!!
결착
“크하아아…!!”
단 한번의 공방을 실패했을 뿐인데, 돌아오는 반격이 너무나도 거세다.
두 눈을 부릅뜬 벡의 얼굴을 보면서 레녹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저 비쩍마른 몸뚱이에 어울리지 않는 괴물같은 근력, 인간을 초월한 속도, 강력한 맷집은 대단하지만, 지금까지 그가 힘을 사용하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했다면 쉽게 그 허점을 파악해낼 수 있다.
특정 동물의 형상이 떠오를때마다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한가지 능력.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형상을 바꿀때마다 다른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진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레녹은 벡이 거북이의 형상을 내려받지 않는 이상, 언제 어느때라도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퉤! 이 버러지 새끼가…!!”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벡이 단번에 등 뒤에 떠오르는 형상을 바꾸고 왼발을 길게 내뻗었다.
구웅!!
뻗은 디딤발이 지반을 깊게 파고들어가면서 떠오르는 들소의 형상.
창대에 서린 강렬한 마력이 묵직한 파동이 되어 질주한다.
한번 쓴맛을 보고도 우직하게 정면에서 실드를 박살낼 생각인가.
틀린 판단은 아니다.
만약 벡이 이 자리에서 한번이라도 실드를 제대로 뚫어낼수만 있다면, 레녹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일테니까.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음에도 재차 정면돌파를 선택한 그의 강단이 놀라울 뿐.
레녹 또한 그 공격을 보고 한번 더 전력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두번째 격돌.
콰아아아아아아!!!
귀가 멀어버릴것만 같은 굉음이 터져나오고 다시 한번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벡이 디디고 있는 지면이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뒤쪽으로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길쭉한 오른팔이 꽃아넣은 정권은, 이번에도 레녹의 실드를 뚫지 못했다.
아까와 똑같은 방식으로 한쪽에 집중된 레녹의 실드가, 이번에는 빠르게 회전하면서 그의 타점까지 빗겨내버린 것이다.
“제기, 랄…!!”
전력을 다한 일격이 무위로 돌아간 반동.
적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끌어낸 전력이 빗나간 대가는 크다.
체내 곳곳에 박힌 리볼버의 탄환과, 조드가 입혔던 부상, 아그리아가 쏘아냈던 레이저로 누적된 피해가 단번에 그의 몸을 좀먹기 시작했다.
“쿨럭….!!”
그리고 그 너머에서 쓰러진 레녹이 가슴을 움켜쥐고 마른 기침을 토해냈다.
벡의 공격 자체는 막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사이로 터져나온 충격파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레녹의 몸까지 두드렸던 것이다.
프라이아이스의 반지를 발동시켜서 내장과 골격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 약한 몸이 내외로 비틀려도 이상하지 않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레녹은 미친듯이 입에 문 연초의 연기를 들이마시며 버텨냈다.
플럼버의 과수원에서 따로 구입했던 연초 몇가지. 그 중에서도 과수원의 노인이 강력하게 추천했던 디파일러-92.
감각을 인위적으로 짓뭉개서 고통을 극단적으로 억제하는 진통에 특화된 약물이지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투때는 도움이 될 순간이 있을 터.
처음으로 실드를 내려놓고 맨몸으로 초인과의 전투에 나서는 레녹에게는 그 무엇보다 필요한 물건이었다.
다행히 둔해지는 것은 오감뿐, 마력을 이용한 감지능력은 여전히 날카롭게 작동한다.
얼얼한 손바닥을 문질러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레녹이 이를 악물고 땅을 향해 마력을 내리찍었다.
[싱크 홀]벡의 발 밑에 생겨난 구덩이가 아직 충돌의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몸을 집어삼키고.
양손으로 리볼버를 움켜쥔 레녹이 그대로 구덩이 아래쪽을 향해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눈먼 총구가 사방으로 흔들리며 불꽃을 뿜어내고, 구덩이 안쪽으로 성난 탄환이 머리를 들이밀며 생육을 찾는다.
보조마법의 효과로 한발 한발 당길때마다 구덩이 안쪽에서 희미한 충격파가 터져나오고, 흙바닥이 그에 맞춰 들썩였다.
[리버스 그래비티]우드드드득….!!
이에 그치지 않고 아그리아가 밟고 있었던 근처의 시계탑을 뽑아서 그대로 구덩이 안쪽에 내리찍는다.
3m정도의 돌기둥이 포물선을 그리며 레녹의 손길에 따라 낙하하고.
콰아아아앙!!
구덩이를 향해서 머리를 거꾸로 향하고 틀어박힌 시계탑의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레녹이 숨을 고르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후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고 있던 연초를 천천히 입에서 빼낸다.
얼마나 이를 꽉 물고 있었는지 꽁초 끝에 피가 섞인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죽었을까?
레녹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팀원들이 벡을 상대로 뼈를 깎아가며 시간을 버는 동안 이것저것 준비하기는 했지만, 방금까지의 격돌에서 써먹었던 것은 고작 둘도 되지 않는다.
사이에 새로 빼어문 약물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런 소강상태조차 맞이할 수 없었겠지.
그리고 그런 레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구덩이 안에 깊숙하게 박혀 있던 시계탑이 크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우지지지직!!!
진작 시침이 멈춘 시계가 땅에서 튀어나온 손아귀에 우그러지고, 그 안에서 길쭉한 팔다리가 튀어나왔다.
만신창이가 된 벡 클린턴의 모습.
하지만 두 눈동자만큼은 번들거리는 살기로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카아악..!!”
퉤!
입안에 섞인 불순물을 부러진 이빨과 함께 뱉어낸 그가 레녹을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길었다, 그렇지?”
“………”
온몸에 가득한 상처. 옷깃 사이로 줄줄 흐르는 핏방울. 연이은 전투로 경련하는 팔다리.
처음보다 확연히 망가진 행색에도 불구하고 벡의 얼굴에는 흉악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굳은 목을 풀면서 어깨를 붕붕 돌린 벡이 으르렁거렸다.
“기대하는게 좋을거다. 죽지 못해서 사는게 뭔지, 보스 앞에 직접 끌고가서 내가 직접 보여줄테니까!!”
“아니.”
지친 얼굴로 레녹이 대꾸했다.
“이제 끝이다.”
“……뭐?”
촤르르르륵!!
그 순간, 벡의 등 뒤에 거꾸로 박혀있던 시계탑이 환하게 빛난다.
마치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처럼 길쭉한 원을 그리며 완성된 자줏빛의 마법진.
그 안에서 튀어나온 단단한 채찍 두갈래가 순식간에 벡의 몸을 붙잡고 시계탑에 끌어당겼다.
쿠웅!!
“이, 이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벡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묶이는 것과 동시에 온몸을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이 감각.
한번 겪어보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이 끔찍한 구속감.
중력계열 구속마법, [그래비티 바인드]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그를 묶어버린 것이다.
이 마법을 피하기 위해 벡이 전투도중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떠올리면, 그야말로 허무한 결말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하나는 얻어걸리는군.”
그런 벡을 향해 레녹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면서 말했다.
다른 팀원들이 몸이 부서져라 벡과 싸우는 잠깓동안, 레녹이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던 것이 아니다.
그동안 꾸준한 연구로 발전시켰던 부여마법.
그 연구의 성과를 마침내 움직이는 물체에도 소급적용시키는 것에 성공했던 것이다.
두번째 격돌 이후 레녹에게 주어진 시간을 느닷없이 시계탑을 뽑아서 던지는데 낭비했던 것 역시 모두 그 작업의 일환.
그리고 벡은 레녹의 노림수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단번에 그 시도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실력있는 전사라도 인지의 사각을 찌르고 들어오는 응용마법에는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총기같은 물건에 상시 적용시키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당장의 전투에서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셈이야.’
적지 않은 성과가 틀림없지만, 레녹은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중력의 채찍에 묶인 채 미친듯이 발버둥치는 벡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제니의 술집에서 만난 그날, 벡은 언젠가 이런 방식으로 레녹을 올려다보게 될 줄 알았을까?
이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리로 울부짖는 벡의 고함소리를 덤덤히 흘려보내면서, 레녹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키이이잉!!
하늘로 던져올린 마력이 그대로 넓게 펼쳐지면서 새파란 섬광을 흩뿌린다.
열차칸을 단번에 불태워버린 그 마법이 자신의 머리위로 떨어질거라는 사실을 직감한 벡이 미친듯이 발광한다.
“씨, 발….. 죽여버릴테다아아!!!”
죽음을 코앞에 두었다는 걸 알면서도 애원하는대신 증오를 불태우는가.
짜증나는 상대지만, 한편으로는 훌륭한 전사였다.
하지만 그런 감상조차 하늘에서 내리찍히는 새파란 빛의 기둥에 휩쓸려 사라진다.
[썬더 콜링]콰아아아아아아아아!!!
거꾸로 돌아선 시계탑을 이정표삼아 정확하게 벡의 머리 위로 내리찍히는 낙뢰 한줄기가 근방의 모든 것을 푸르게 불태운다.
피부가 따끔거릴만큼 강렬한 열풍이 불어닥친다.
바싹 마른 흙밖에 남지않은 대지에 산산히 부서진 철도역의 돌가루만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그제서야 서둘러 실드를 끌어올린 레녹이 눈을 슬쩍 뜨고 본인이 만들어낸 참상의 결과를 확인했다.
벡이 그 와중에도 낙뢰의 여파를 버티고 살아있다면, 확실하게 마무리를 해야 할테니.
리볼버를 꽉 움켜쥐고 마력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마력감지로 느껴지는 생명반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린 시계탑.
그 아래쪽에 말라 비틀어진 어느 길쭉한 시신 한구만이 남아 전투의 종말을 알리고 있을 뿐.
“……..”
이젠 입을 열기조차 힘겹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움직여 바싹 타버린 시신의 소지품을 뒤졌다.
벡 클린턴은 그가 만났던 초인들 중에서도 엄청난 강자이자 수준높은 실력자.
그런 사람이라면 가지고 다니는 물건에도 그 비범함이 깃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죽는 순간까지 품안에서 놓지 못한 창대를 빼앗아들고, 쪼가리만 남은 셔츠와 바지 주머니를 훑었다.
대부분의 물건이 낙뢰의 열기에 잿더미가 되어버렸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 열기에 버티고도 살아남은 물건은 귀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런 레녹의 확신을 뒷받침하듯, 다 타버린 정장 마의 안주머니에서 녹색으로 빛나는 열쇠 하나를 손에 쥘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