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14
약먹는 천재마법사 714화
빈집털이(7)
머리 위로 타오르는 공장의 형상.
사방에서 불길이 넘실거리는 무너지는 테마파크의 폐허.
매표소와 상가 건물이 충격과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며 굉음을 내뿜고.
어그러진 대지를 타고 부서지는 파편 너머로 레녹과 페이샤가 마주 섰다.
두 사람의 발아래 널브러진 초인들의 시체가 수백.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이들이 고작 다섯. 생사를 알 수조차 없는 이가 둘이다.
“소, 소장님…….”
스탁턴이 당장이라도 끊길 듯한 목소리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의식을 놓지 않기 위해 혀를 깨물며 말했다.
“견뢰는, 미치지 않았…… 놓친 부분이…….”
“그래. 나도 알아.”
페이샤가 레녹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피와 싸움에 맛이 가버린 놈은, 애초에 이런 느낌이 아니거든.”
“…….”
“가끔 이런 놈들이 있지.”
침묵하는 레녹을 두고 페이샤가 히죽 웃었다.
“결말이 궁금해 미친 것보다 더 이상해진 놈들. 아니, 오히려 그게 진짜 미쳤다는 증거 아닐까?”
흘러넘치는 죽음의 냄새, 발 아래 쓰러진 자신의 부하들 따위는 일체 관심도 없다는 듯 깔깔대는 페이샤의 모습.
그 귀기 어린 목소리와 태도는 레녹이 보기에도 섬뜩하게 느껴질 지경이었지만.
레녹은 그것과는 별개로 차분하게 페이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데드라이즈의 귀희, 페이샤 그리스번.
과거 발칸에서 활동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인 살인귀이자, 시거 뱅 갱단 소속이었던 벡 클린턴의 스승.
강력한 혼령조작술을 다루는 육체능력자이자, 그녀 자신 역시 경지에 다다른 강력한 창사.
카지노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모호했던 페이샤의 성취가, 살의를 표명한 지금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 깊이가 정확히 어느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위계를 넘어선 것이 분명한 이 처연한 기세.
하지만 레녹은 페이샤의 실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페이샤의 행적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지.’
과거 그녀가 발칸에서 활동할 당시, 안타레스와 일대일 결전을 벌였다는 사실.
패배해 죽기 직전까지 몰려 척추가 부러지고 중앙전선에서 회복에 전념했다고 했던가.
하지만 레녹은 페이샤가 안타레스를 상대로 패배했다는 것보다, 싸워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신경 쓰고 있었다.
‘안타레스는 한 번 싸운 상대를 굳이 살려둘 만큼 느슨한 성격이 아니야.’
천천히 레녹을 향해 걸어오는 페이샤의 신형을 보며, 시선을 깊게 가라앉혔다.
‘그 예지자가 페이샤를 죽이지 못했다면 틀림없이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안타레스는 결말을 엿보고 돌아온 예지능력자이자, 그 반동으로 자신의 결말까지 확정해 버린 존재.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손에 넣은 예지로 결말을 바꾸려는 극소수의 선지자들 중 하나다.
정해진 답안지를 손에 넣은 그가, 싸우기로 결심한 상대를 살려둘 생각으로 전투에 임할 리가 있을까.
사실상 페이샤의 미래를 배제했을 텐데도 죽이지 못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겠지.
안타레스와 일대일로 싸울 생각을 한 시점에서 페이샤의 무위가 그만큼 탁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한번 안타레스에게 죽을 뻔 했던 그녀가 다시 발칸으로 돌아왔다면.
적어도 그녀 자신이 안타레스에게 밀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카지노에서도 생각했지만 참 이상한 놈이군.”
성큼 앞으로 다가온 페이샤가, 레녹을 보며 웃었다.
“이 와중에도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거지?”
“…….”
“생각하지 마. 생각이란 건, 싸우기 전에나 하는 거야.”
그런 그녀의 등 뒤에서 알 수 없는 혼령의 형상들이 휙휙 뒤바뀌며 그녀의 변해가는 의념과 감정을 대변한다.
[뀌이이익!!]페이샤의 등 뒤에서 가장 먼저 멈춰 선 것은, 불쾌한 비음을 흘리는 투실투실한 멧돼지.
온몸을 새카만 털로 뒤덮은 채, 침을 뚝뚝 흘리는 짐승의 영을 빙의시킨 귀희가 한 손을 옆으로 뻗은 순간.
쩌어어업!!
멧돼지의 형상이 입을 쩍 벌리더니, 그 안에서 길쭉한 창대 한 자루를 토해냈다.
번들거리는 광채를 내뿜는 기괴한 장창. 날끝에 달린 방울이 청명한 울음소리를 울렸다.
그것을 움켜쥐자마자 페이샤의 분위기가 확 변했다.
그러지 않아도 희미했던 기척이 더욱 깊게 가라앉고, 레녹을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흰자위가 사라진다.
무언가에 씌이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그럴 준비를 하는 것처럼 고요해진 페이샤의 기세.
“죽고 싶지 않으면 나한테 집중해.”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을만큼 섬뜩한 그녀의 입에서, 싸늘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필사적으로 발악하며, 죽기 직전까지 나만 생각하라고!!!”
“누구 마음대로?”
페이샤의 창대가 그 자리에서 사라진 순간, 레녹도 끌어올린 마력을 손끝에 걸고 휘둘렀다.
[백락(白落)] [비창(飛蒼)]기괴하게 구부러진 창날이 가볍게 회전한 찰나, 새하얀 벼락 줄기를 쥐고 터트린다.
상리를 초월한 무구와 마법이 충돌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의식의 저편에서 수백 갈래로 쪼개져 폭발했다.
쾅!!
마주 선 자리에서 처음으로 발발한 의지의 격돌.
8레벨에 도달한 두 괴물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갈려 나가기 시작한다.
끼기기기기긱!!!!
칼날과 마력이 갈려 나가는 수준을 넘어, 비틀리고 쪼개져 으스러지는 기이한 굉음.
고막을 터트리다 못해 찢어버릴 법한 섬뜩한 소리가 노래처럼 울려 퍼지고.
마법사와 창사가 주고받는 공방이 서로의 간극을 수백 번씩 침범해 덮어씌웠다.
쩌저저저저정!!!
자세조차 제대로 취하지 않았는데도, 휘두르는 창극의 속도는 소리를 뛰어넘는다.
쏘아낸 참격의 위력은 실로 기형적이지만, 그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무구를 거두는 간극의 속도에 있다.
전심을 다해 휘두르는 것보다도, 거두어 수렴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는 모순.
하지만 그 모순을 현실에서 구현해낸 창사의 무예는, 소리와 공간을 뛰어넘어 물리법칙 이상의 위력으로 화했다.
[귀극 : 투회]레녹 역시 그 속도에 맞춰, 고유마법 수십 종을 동시에 영창해 받아쳤다.
[천붕뇌락(穿崩雷烙)] [야뢰난무(夜雷亂舞)]드르르르륵!!!
창을 휘두르고 있는데 시공을 드릴로 쪼개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으깨져 비틀린 뇌전의 광채가 손끝에서 회오리치며 뭉개진 공간 사이를 찢고 튕겨냈다.
인지의 속도를 넘어, 의념의 저편에서 앞서나가는 궤적의 파편이 흩날린다.
레녹과 페이샤의 의식 기저 아래쪽을 파고드는 무수한 공방의 궤적.
수백, 수천 갈래로 쪼개진 무수한 실선이 매 순간마다 다채롭게 경로와 방향을 바꿔가며 삶과 죽음을 재단하고.
창극과 마력이 충돌하는 현재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미래에서 그 예측과 여파를 저울질한다.
조우하자마자 벌이는 첫 격돌.
그것도 서로 일체 자리를 옮기는 일 없이 정면에서 그 수싸움을 주고받는 공방.
파직……!!
극한까지 치달은 계산과 직관의 영역.
뇌리에서 스파크가 튀는 듯한 환상과 함께 피아노의 선율처럼 흔들리던 궤적들이 일순, 하나로 합쳐져 회전하고.
레녹이 역수로 쥐고 휘두른 벼락이, 페이샤의 창끝과 정확하게 충돌해 멈춰 섰다.
카아아아앙!!!
호흡이 두번 끝나기도 전에 수백 번을 넘게 때려 박아 엇갈리던 서로의 공방이,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서 끊어졌다.
“……!!!”
엇갈리는 충격파를 등지고, 거의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는 레녹과 페이샤의 얼굴.
페이샤가 입매를 꿈틀거렸다. 동공이 없는 그녀의 두 눈이 살의와 흥분으로 희번뜩거렸다.
“너, 보이는군. 그렇지?”
“그건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레녹이 웃었다.
그런 레녹의 왼쪽 눈동자는, 어느새 선명한 자색의 마안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타레스에게 패배하고도 살아남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군. 그 전투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야.”
왼쪽 눈에 새겨진 자색의 마안은 가능성의 분기점을 관측하는 레녹의 심상을 시각화하는 힘.
레녹 자신의 심상을 시각화하는 것만으로 선천이능으로 지정되어, 마안의 형태로 개방된 능력이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전투경험과 초월적인 직관, 무수한 괴물들을 상대하며 가공된 판단이 빚어낸 기예의 극한.
하지만 페이샤는 레녹이 공방 끝에 찔러넣은 마지막 편뢰를, 억지로 받아쳐 강제로 길항상태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정면에서 수싸움으로 승부를 본 것이 아니라, 마치 정답을 엿보고 억지로 템포를 맞춘듯한 위화감.
레녹은 이 감각을 어디서 느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안타레스와 같은 예지자. 혹은 교단의 신녀와 같은 계시능력자에게서 느껴지는 묘한 불쾌감.
“미래시?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약하고 희미한 힘이군. 이능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해.”
레녹이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중얼거렸다.
“안타레스의 힘을 어설프게나마 따라하는 정도…… 하지만 원하는 순간에 사용할 수준은 되는 느낌인가.”
서슴없이 안타레스의 이름을 언급한 레녹의 말에 페이샤의 입매가 꿈틀거렸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레녹 역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추측을 그대로 내뱉었다.
“카지노에서 도박에 몰두하던 것도 그런 이유였군. 미래시 적성을 수련하려 했다면 확률게임이 효과적일 테니.”
안타레스와의 결전에서 패배하고, 외려 그의 힘에 영향을 받아 적성을 깨우치기라도 한 것일까.
그랬다면 페이샤가 부상에서 회복한 것도 모자라, 높은 위계의 강자가 되었는지도 납득할 수 있다.
안타레스가 그 전투에서 페이샤를 죽이지 못하고 놓쳤는지 역시.
“틀렸어. 이제와서 새로운 이능이나 적성 따위를 발견한 게 아니지.”
창대를 매만지며 페이샤가 말했다.
한차례 공방이 끊겼음에도 그녀는 안달을 내지 않았다.
그저 치열한 전투 속에서 순식간에 달아오른 창대를 부드럽게 어루만졌을 뿐.
그 느긋한 손놀림이 오히려 레녹에게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졌다.
“다만 좀 더…… 과정을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
“누구를 죽일지보다, 어떻게 죽일지를 고민하다보니 뭔가를 좀 더 이해하게 됐거든.”
페이샤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그녀의 등 뒤에는 어느새 거대한 눈동자를 지닌 올빼미가 떠올라 있었다.
두 눈을 잔뜩 충혈시킨 채로 이쪽을 노려보는 기괴한 올빼미의 형상.
벡 클린턴이 사용하던 것보다도 훨씬 기괴하고, 또 강력한 혼령의 빙의 조작.
“그때부터 혼령들이 내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지…… 그걸 알고 나니 결과보다 방법에 흥미가 생기더군.”
“카지노의 게임처럼?”
“그래. 그 게임처럼.”
레녹을 바라보는 페이샤의 입이 양 옆으로 길쭉하게 찢어졌다.
귀신처럼 섬뜩하게 구부러진 기괴한 웃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아이와도 같다.
누구를 죽일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일지에 대해.
죽음의 미학을 탐미하게 된 그녀의 심상이 비틀리며, 위계를 초월해 8레벨에 다다랐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흉내낸 열화된 미래시 역시, 새로운 이능을 각성한게 아니라 혼령을 다루는 방식이 깊어졌다 봐야겠지.
콰직!!
‘복마전 회의에서 데이머스는 페이샤를 하대하면서도, 그 무위는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머릿속에서 빠른 속도로 반과 빅터의 신분으로 전해들은 정보들을 끼워 맞춘다.
‘그건 데드라이즈 내부 직책상 데이머스가 위에 있는 것과는 별개로, 실력은 아래라 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 그걸 생각하면-’
데드라이즈 내부 직책이나 직급은 개개인의 무력과는 별개로 매겨지며.
페이샤의 상관이라 하더라도 꼭 그녀보다 강하리란 보장은 없다는 의미.
그건 앞으로 데드라이즈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레녹의 입장에서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정보다.
레녹이 페이샤와의 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마력에 박차를 가한 그 순간.
“뛰어난 직관이야. 하지만 그 사고방식은 별로 마음에 안 드는걸.”
페이샤가 속삭였다.
“답을 정해두고 과정을 끼워 맞추는 식이라……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 네가 생각하는 게 전부 옳다고 생각하지?”
콰아앙!!
그 순간, 머리 위에 떠 있는 위성공장이 폭발하더니, 한쪽으로 크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버티지 못하고 추락하기 시작하는 위성공장의 모습. 타티아나가 반중력 엔진을 파괴한 것일까.
하지만 그 안에서 뛰쳐나온 타티아나의 표정은 결코 밝지만은 않았다.
“반!!”
키잉!!
귓가를 울리는 이명. 그 위화감을 눈치채기도 전에 두 사람의 감각이 하늘 저편으로 향했다.
폭발하는 공장 저 끝에 선 타티아나가 창백한 안색으로 소리쳤다.
거리가 한참 멀어진 탓에, 레녹으로서도 그 긴박한 기색만을 읽을 수 있을 뿐.
하지만 그것만으로 타티아나의 의사를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공장 내부에서 엔진을 파괴하지 못했거나, 혹은 엔진 자체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을 직감한 레녹이 저 멀리 쓰러진 스탁턴을 향해 시선을 돌린 순간, 페이샤가 말했다.
“이번 계획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어. 미친 마법사 하나 때문에 일이 망가지게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대번에 그 말의 의미를 읽어낸 레녹이 말했다.
“……미완성된 엔진을 발사대에 옮겨두었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발사 자체는 성공시키겠다?”
“죽은 마법사의 영혼 몇 개 빠진다고 달라지는 일이 아니야.”
카각!!
창대를 비틀어 레녹의 전격마법 사이로 빼낸 그녀가 대답했다.
“중요한 건 네가 염열계통의 권한 수용체 그 자체지. 마녀가 훔친 보물을 엔진 동력부에 꽂아 넣고 나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돼.”
페이샤가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죽어라. 이 모든 계획을 여기까지 망쳐놓은 저 마녀와 함께!!”
그 직후, 추락하는 위성공장의 파편이 레녹과 페이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과 함께 매표소가 위치한 상가 아래 거대한 크레이터를 형성했다.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 감각이 통채로 흔들리는 듯한 진동. 뇌리를 파고드는 기이한 이명이 뒤섞여 회오리친다
융해되기 시작한 금속과 흙더미의 폐허 너머로, 뇌전과 창섬의 충돌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다.
처음 격돌보다 속도를 몇배로 더 높여, 서로의 급소를 쥐고 생명을 빼앗으려 휘두르는 힘의 격돌.
쿠과과과!!!
공장이 떨어지며 내리찍힌 충격을 반동으로 삼기라도 하듯, 테마파크 저편에서 길쭉한 철골 구조물이 빠르게 솟아오른다.
마치 무언가를 지탱하고 활주로를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형상.
그것이 위성 발사를 위해 만들어진 시설임을 인지하기도 전에, 강렬한 불꽃이 일며 추진제를 불태웠다.
콰아아아아!!!
아직 레녹에게 봉황전을 빼앗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점화를 시작한 발사대의 정경.
콰직!!
쓰러진 레녹의 어깨를 한 발로 짓밟은 페이샤가 속삭였다.
“바쥬르 님께서 입신에 이르고 난 뒤, 우리는 이 도시를 떠나 두 번째 기회를 손에 넣으려 발버둥쳤지.”
키잉!!
두 사람의 귓가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이명.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굉음으로 청각이 망가져 가는 것일까.
피투성이가 된 레녹을 향해 고개를 숙인 그녀가 말했다.
“난 그래서 이 도시가 싫어. 모든 것이 망가지는 그런…… 그런 경험을 두 번 하고 싶지는 않거든.”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레녹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뉘었다.
“하지만 카이세 바쥬르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는 게 좀 있지.”
“뭐?”
찰칵!!
쓰러진 레녹의 코트 안쪽에서 낡은 회중시계가 떨어졌다.
반시계 방향으로 팽팽 회전하는 회중시계의 형상을 바라본 페이샤의 두 눈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 그 순간.
“무슨 느낌인지는 이해했다. 다시 시작해 볼까?”
키리리릭!!
회중시계를 움켜쥔 레녹이, 그 초침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꽂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