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79
약먹는 천재마법사 879화
운명을 보는 눈(15)
“……아니. 하지만 네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이라는 건 알겠군.”
얼굴이 미묘하게 굳은 딜런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도시 전체를 장작으로 삼아서라도 주인을 되찾을 생각이라니, 이거 완전히 미친놈이잖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말했듯이,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야.”
딜런을 향해 걸으며 레녹이 가볍게 손을 펼쳤다.
그 순간, 가게 주변에서 타오르는 화염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레녹의 팔 위로 휘감기기 시작했다.
“다만 필요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더라도 행해야만 할 이유가 있다. 그렇게 말하는 거지.”
“그러니까, 반을 보고 그딴 생각을 하는 것부터 미쳤다고 말하는 거다!!”
딜런이 그 말과 함께 곧바로 레녹을 향해 달려들었다.
레녹의 팔 위로 휘감긴 불길이 어지럽게 사방으로 구부러지며, 딜런의 장병기와 충돌하며 일그러졌다.
콰르르르륵!!
낙후된 골목, 버려진 상가들이 덩그러니 놓인 골목이 열기와 아지랑이로 일그러지며 검광을 반사한다.
불길 속에서 격렬하게 날뛰는 딜런의 신형이, 순식간에 화염의 파도를 뚫고 레녹의 앞에 착지.
반쯤 녹아내린 칼날을 주저 없이 내다 버리고 레녹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X발, 이거 비싼 칼인데……!!”
이를 악문 딜런이 그대로 제 머리를 레녹의 이마에 갖다 박으며 소리쳤다.
“꼭 물어내게 할 거다, 이 자식아!!”
꽈아앙!!
정면에서 박치기를 얻어맞은 레녹의 머리가 뒤로 홱 꺾였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대로 레녹의 멱살을 쥔 채로 온몸을 앞으로 밀어 상가 건물 벽에 처박았다.
드드드득!!
“하아아아압!!”
딜런이 벽을 발로 밟고 솟구치며 폐건물 벽과 창문 사이로 레녹의 몸을 끌고 그대로 옥상 위로 던져 버렸다.
온몸의 관절을 부수고 목을 꺾어 의식째로 잃게 하려는 과격한 충돌.
하지만 직전에 목 뒤에 양손을 끼워 넣은 레녹이 한 발로 딜런의 배를 걷어찼다.
뻐억!!
“……!!”
호리호리한 체격에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각력. 충격을 타고 몸 안을 불태우는 강렬한 열기에 딜런의 표정이 뒤틀린다.
마치 온몸의 마력이 육체의 움직임에 호응하지 못하고, 열기에 눌어붙는 듯한 기분 나쁜 감각.
멱살을 움켜쥔 딜런의 악력이 느슨하게 변한 순간, 레녹이 튕기듯이 떨어져 옥상 위에 내려섰다.
그대로 옥상 바닥을 미끄러지다 넘어졌다,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레녹의 모습.
“쿨럭, 쿨럭!!”
“…….”
숨이 모자란 것처럼 기침을 토해내는 레녹을 보며, 딜런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무언가 변했다.
방금 그 발차기. 방금 딜런의 폐부를 찌른 반격.
지금까지 저 마법사에게서 느껴지던 위험이, 조금 더 다른 식으로 변질된 것 같은 기묘한 위화감.
“너, 이름이 뭐라고 했지? 수배령에 에반이라고 적혀 있었냐?”
“알고 있는데 왜 묻는 거냐.”
“……아니.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 것 같아서.”
딜런이 힐끔 옥상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르륵!!
건물 주변에 타오르는 불길이, 넘실거리며 지면과 아스팔트를 가리지 않고 불태운다.
두 사람이 올라탄 옥상 주변을 제외하곤 이미 발 디딜 틈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
이 처참한 풍경을 만드는데 저 마법사가 사용한 마법은 고작 두 가지뿐.
발아래 넘실대는 불길을 바라보던 딜런이, 이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반을 상대하던 멍청이들이 이런 기분이었나 싶군.”
“…….”
“네가 왜 강한지 전혀 모르겠다. 왜 사용하는 마법마다 그렇게 무식하게 위력이 뻥튀기 되어 있는지도 그렇고, 체술을 할 줄 알면서도 맷집이 약한 것도 그렇고.”
가볍게 숨을 내쉰 딜런이 남아 있는 마력을 모조리 끌어올리며 옥상 끝에 발을 걸쳤다.
“후우, 좋아…… 네가 옛날의 반과 비슷한 마법사라면, 다른 멍청이들처럼 병신같이 죽지 않으려면-”
탁!
아직 멀쩡한 장병기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 손에 묶고 조이며 딜런이 말했다.
“나도 목숨을 걸어야겠지.”
염열마법에 불타오른 피부와 근육은 이미 재생이 끝났지만, 아직도 그 화상의 잔상이 남아 지끈거린다.
하지만 고통으로 인한 경직조차 무시하고, 아직 남아 있는 장병기들을 하나씩 움켜쥐었다.
‘체술에 조예가 없는 건 아니야. 다만 단련자는 아니다……!!’
마법사답지 않게 몸을 움직이는 일에 꽤 익숙해 보이지만, 육체능력에서 딜런과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그랬다면 애초에 처음 잡혔을 때 굳이 구속구에 잡힐 일도 없이 그대로 딜런을 때려눕혔을 터.
놈의 화염이 제아무리 뜨겁고 광대하다 해도, 이 정도 거리에서는 술자도 피해를 입는 것을 첫 번째 충돌에서 확인했다.
피치 못하게 거리가 좁아진 이 옥상에선, 사실상 누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티느냐의 싸움일 뿐.
‘감각과는 별개로 맷집 싸움으로 가면 이쪽에 승산이 있어. 호흡량까지 고려해서 공방을 강제하면 이길 수 있다.’
실시간으로 불타 사라지는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그대로 숨을 참으며 자세를 낮췄다.
손가락으로 움켜쥔 단검 세 자루를 머리 위로 던지고, 허벅지에 매달린 손도끼를 한 손으로 움켜쥔다.
‘간다……!’
턱!!
후끈하게 달아올라 가라앉은 공기를 옆으로 밀어내는 것과 동시에 간극을 파고들었다.
지근거리에 접근한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온몸의 축을 비틀면서 손에 잡히는 단검을 휘둘렀다.
무릎 위로 손도끼를 내려찍고, 배 위로 곡도를 찔러 누르며, 어깨 위로 직검의 칼날을 미끄러뜨렸다.
카가가가각!!
무기를 휘두르는 것과 눈앞에서 새빨갛게 비산하는 화염의 폭발.
그 잠깐 사이에 염열마법을 영창해 딜런의 공격을 받아치고 있는 것인가.
감탄 비스무리한 감상은 잠시, 이윽고 딜런의 모든 정신이 온전히 제 몸을 통제하는 일에 집중한다.
‘힘줄을 끊는다. 목숨을 살려둬야……!!’
딜런이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호흡마다, 세 가지 이상의 무기를 동시에 움켜쥐고 휘두르며 돌진했다.
머리로 이해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경험과 연습 끝에 체화의 경지에 이른 합격.
온몸의 남아 있는 기력과 마력을 폭발하듯 앞으로 내뻗으며, 상대에게 대처할 여지를 없애는 강공이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폭발적인 신체가속을 따라, 십수 개의 날붙이가 허공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지며 공간을 점유하고 간극을 빼앗는다.
몰아치는 화염의 숨결 사이를 갈라낸 딜런의 직검 사이로, 날카로운 창날이 미끄러지듯이 레녹의 복부 위로 내리쏘아진 찰나.
레녹의 등허리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화염이 그 몸을 강제로 옆으로 밀어버렸다.
쿠화악!!
“피해?!”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여, 강제로 위치를 이동시키는 자폭기.
하지만 그것으로 딜런이 마지막으로 쏘아낸 창날이 아슬아슬하게 옷을 찢고 레녹의 옆구리를 스쳐 지나간 찰나.
“이그니션 챕터.”
화륵!!
레녹의 손등과 팔꿈치 위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왼팔을 중심으로 피어오른 다섯 갈래 불길이, 그 출력과 방향을 달리해가며 순식간에 레녹의 팔을 가속시켰다.
팟!!
피부 위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불꽃의 점화를 반동으로 삼아 추진제처럼 레녹의 신체를 밀어올린다.
딜런의 몸에 두른 칼날과 장병기가 즉시 그 동선을 포착해 가로막지만, 휘감긴 화염이 건틀렛처럼 팔을 보호하고 모든 방벽을 돌파했다.
“이건……!!”
공방을 보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모든 기저심리를 예측해 시작부터 찍어누르는 일방적인 수싸움.
그 압도적인 무력감에서 희미한 위화감을 느낀 딜런이 고개를 퍼뜩 치켜든 그 순간.
레녹이 폭발적으로 가속시킨 로켓펀치가 딜런의 턱 위에 맞닿았다.
[화염인(火炎印)] [천붕(闡崩)]뻐어어억!!
팔 전체를 추진제로 삼아 그대로 하관을 쪼개버리는 강렬한 붕권.
레녹의 몸이 가속해 앞으로 굴러 미끄러지는 것과 함께, 딜런의 목이 그 자리에서 절반쯤 꺾여 버렸다.
“으겍…….”
두 눈이 핑핑 돌면서,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는 딜런의 모습.
“머, 머리가아…….”
뇌를 진탕시키는 충격에 직격당하고도, 어떻게든 균형을 유지하고 두 발로 서 버티기 시작한다.
옥상 끄트머리에 넘어져 있던 레녹이 그런 딜런을 질린 듯이 돌아보았다.
“맷집 하나만큼은 괴물이 따로 없군. 뇌를 망치로 직접 두들겨도 방금 그것보단 약했을 텐데.”
딜런을 죽이지 않는 선에서 싸움을 끝내기 위해, 견뢰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육탄전을 골라 승부를 봤건만.
5중첩 부스터로 가속한 붕권에 두들겨 맞은 뒤에도 딜런은 여전히 기절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거기 서라…… 이 자식아…….”
“됐으니까 자라.”
“바, 반한테…… 가면…….”
콸콸콸!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딜런에게 다가가 그 입에 독한 양주를 한 병 통째로 들이붓는다.
그렇게 좋아하는 술냄새를 맡고도 필사적으로 버티려던 딜런은, 레녹이 목구멍에 양주병을 거꾸로 쑤셔 박고 수면마법을 걸어 넣고 나서야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후우…….”
뇌를 두들기고 알코올에 절어진 뒤에 수면마법을 걸어 넣어야 겨우 기절이라도 시킬 수 있는 건가.
딜런의 실력이나 재생능력의 성장을 레녹이 도와준 것과는 별개로, 적으로 상대했을 때 이 정도일 줄이야.
오히려 레녹에게 허를 찔려 치명적인 급소를 허용하고도 이렇게까지 버틴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기절한 딜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녹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들겨주고 돌아섰다.
“고생했다.”
딜런과 함께 샬로테의 화장품 공장에 잠입해 크로켄과 마주쳤다 죽을 뻔했던 그 날.
모든 일이 끝나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나눠 피우던 연초가 아직도 기억난다.
딜런이 굳이 자처해서 반을 돕기 위해 움직인 것 역시, 비슷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레녹은 그렇기에 딜런의 행동을 마냥 성가시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 그럼…….”
옥상 아래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길을 향해 손을 뻗자, 타오르던 화염이 느릿하게 레녹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
기묘한 진동과 함께, 레녹의 손안에서 검붉은 구체의 형태로 응축되기 시작하는 격렬한 화염의 정수.
레녹은 작은 구체의 형태로 줄어든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대로 머리 위로 던지듯이 띄워 올렸다.
외해의 마력으로 통제되지 않는 염열마법은 극히 위험해서, 이런 곳에 방치하고 가면 쓸데없는 피해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이미 예열이 끝난 불꽃을 기껏 꺼트릴 이유도 없으니, 레녹은 이것을 직접 소지하고 다닐 생각이었던 것.
우우웅!!
레녹의 손목 위로 휘감긴 화염의 구체가, 마치 큼지막한 염주처럼 등 뒤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술자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행성처럼 일정한 궤도를 그리며 회전하는 압축된 화염을 바라보던 레녹이 어깨를 으쓱였다.
“갈까.”
불이 완전히 꺼지고, 불타 잿더미가 된 거리에 내려선 레녹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딜런과 싸우며 나누었던 대화들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본심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에반 마르티네스. 청의 눈에 협력하는 염열마법사.
발칸에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애초에 레녹은 이 신분의 무위를 그렇게 낮게 잡아놓은 적이 없었다.
청의 눈과 함께 싸우며 에반의 이름으로 세운 큼지막한 전공만 해도 북대륙을 떨치고도 남지 않았던가.
아직 이 이름이 견뢰에 비견될 수 없다고 거대도시가 믿고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에반의 이름으로 다시금 발칸 음지에 떨어진 레녹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결국 레녹 자신이 정할 일이었으니까.
* * *
귀가 아플 만큼 고요한 침묵.
어둠이 내려앉은 적막한 흑요석 공동.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천둥처럼 요란하게 울릴 것 같아, 움직일 수가 없다.
라피스는 자신이 눈을 뜨고 처음으로 마주한 이 공간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두운 듯 어둡지 않은 이 공동에는 어딘가 따스한 공기가 감돌고 있다.
숨결처럼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면서도, 한편으론 일체의 간섭조차 용납하지 않는 차가운 배타성이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의 마음이 바라는 이상향을, 실재하는 풍경으로 형상화해 놓은 듯한 차분한 공간.
“일어났군.”
“…….”
싸늘하다 못해 냉혹하게까지 느껴지는 흑발의 청년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