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47
약먹는 천재마법사 947화
금제(2)
“중앙도시의 금기병장이라고?”
인간을 제물로 바쳐서 가공해 만들어낸 금단의 무구.
아르스노바의 금기병장이 아나테마의 자택에 봉인되어 있다는 슬레인의 말에, 좌중의 분위기가 순간 무겁게 변했다.
금기병장을 주로 사용하는 교단도 아닌, 중앙도시에서 만들어진 장비가 발칸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
주변의 반응을 보면 다른 초인들 중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자들은 많지 않은 듯했다.
“그런 위험한 병기가 하필 발칸 근처에 있단 말인가.”
“아르스노바에서 만들어진 무구나 아티팩트 대부분은 소실되었을 텐데…….”
“아나테마가 그런 무구를 숨겨두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자리에서 처음 듣는군.”
“그럴 테지. 내전이 끝날 무렵 극소수의 관계자들만이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니까.”
슬레인이 대답했다.
“아나테마 본인이 중앙에서 가지고 나온 유물로 추측된다. 생전 그와 교류하던 이들 사이에서 알려져 있을 뿐이었지.”
“……인신공양으로 만들어진 무구라는 점이 걸리는걸.”
팔짱을 낀 채 삐딱하게 슬레인을 노려보던 이벨린이 물었다.
“금기병장의 소유권을 반에게 넘기고, 그 사실을 약점으로 삼으려는 건 아니겠지?”
“약점이라고?”
슬레인이 이벨린의 말을 듣자마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견뢰만큼 유별난 악명을 지닌 마법사에게, 금기병장을 쥐여주는 것이 어떻게 약점이 될 수 있지?”
“…….”
“세간의 평판에서 그만큼 자유로운 고위 마법사는 흔치 않다. 오히려 그에게는 전혀 손해볼 것 없는 제안임이 틀림없을 텐데.”
이벨린조차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릴 만큼 논리정연한 반박.
“아나테마의 자택은 내전 이후 매장되어 수십 년 넘게 방치되어 있다. 하방 좌표기록이 없다면 위치조차 제대로 찾기 어렵겠지.”
슬레인이 손을 들어 올리자, 날개가 퍼덕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레녹의 머리 위에서 검은 깃털이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저택에 걸린 보안과 봉인결계에 대한 정보를 그곳에 기록해두었다.”
“……기록이라.”
평범한 새의 깃털이 아니라, 특정한 의념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든 매개체겠지.
머리 위에서 나풀거리는 깃털을, 헛손질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쥔 그 순간.
[마법사. 내색하지 말고 들어라.]슬레인의 전성이 레녹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레녹이 침묵하는 사이, 슬레인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가 당장 이 안건을 정해두려는 것은, 이 사실을 원로원에게 굳이 알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나테마의 현신이 끝난 직후 사도화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빨랐었지. 현신 의식에 참가한 누군가 손을 쓴 결과다.]육성으로 다른 참석자들에게 이유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전성으로 레녹에게 다른 말을 이어나가는 슬레인의 모습.
깃털을 쥐고 그의 의념을 전해듣고 있는 게 아니었다면, 레녹조차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다.
“원로원에게 알릴 이유가 없다고?”
“카이세의 프로젝트가 실패한 뒤에도 원로원은 움직임을 자제하고 있지. 그건 그들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금제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단의 신녀가 직접 나섰다 해도 8레벨 전원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슬레인이 대답했다.
“그렇기에 아나테마가 사망한 시점에서 원로원이 아나테마의 인과를 취하려 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
[도시 밖에서 사도들을 상대하며 내통자를 찾으려 했지만, 신녀의 견제가 치밀했다. 그녀도 내가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그렇군.”
슬레인의 의도를 깨달은 하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나테마의 시체와 자산을 견뢰에게 넘겨서, 원로원의 개입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냐?”
“견뢰는 발칸의 유일무이한 마탑주. 시의회 상원에게 직접 마탑 설립 권한을 내려받은 특수한 입장이다.”
[사도를 직접 살해한 너 하나를 제외하면 전원이 어느 정도 심증이 있는 상황이다. 나조차도 당장 용의선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레녹을 빤히 바라보던 슬레인이 말했다.
“그가 이 도시에서 행해온 일을 감안하면, 어느 쪽이든지 견뢰의 결정에 섣불리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하겠지.”
[하지만 나에게 단서가 있다.]“…….”
레녹이 견뢰로서 쌓아온 악명과 특수한 입지를 감안하면, 원로원 측에서도 섣불리 움직이지는 않을 터.
슬레인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가정하고 아나테마의 명의로 된 모든 자산을 레녹에게 모조리 넘겨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원로원의 손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차선책으로 레녹을 선택할 만큼 이 문제가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라는 말일까.
생각에 잠긴 레녹을 보며 슬레인이 말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거절해도 좋다. 그 사실에 대해서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
“…….”
“조금 있으면 유지군이 도착할 거야.”
손목을 힐끗 내려다본 이벨린이 말했다.
“슬레인 오닉스와 레이지 미스트라는 이대로 중앙지구까지 압송한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회담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를 이 자리에서 결론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말해두지.”
슬레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참석자들을 차분하게 마주했다.
“아나테마의 변절과 타락을 예상할 수 없었듯이, 이다음의 일 역시 자의적인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
“이번 회담에서 벌어진 교단의 개입을 외면했든, 동참했든, 심지어는 방관했더라도…… 그 모든 책임은 내가 시정부와 거래해 수습하도록 하지.”
붉은 눈동자를 들어 올린 슬레인이 나직하게 말했다.
“다만, 차후 이능과 논공의 분배를 위해서라도 여기 모인 이들은 전원 회담에 다시 참석해 줘야겠다.”
회담 시작부터 문제가 생기면서 일이 어긋나기는 했지만, 아직 수습하지 못한 일이 여럿 남아 있다.
교단의 습격과 위성도시의 반파, 아나테마의 죽음.
아나테마의 현신을 통해 참석자들에게 주어져야 했던 팔괘의 선천이능.
본래 회담에서 논의되어야 했던 장막의 재현에 대해서도 다시 협상이 필요할 터.
다른 참석자들 역시 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는지, 슬레인의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수습이 끝나고 시기가 정해지면 그때 다시 장소를 이르도록 하지.”
슬레인이 망설임 없이 이벨린을 향해 돌아섰다.
“가자.”
“…….”
레이지와 슬레인의 뒤에 서 팔짱을 낀 이벨린이 레녹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저 멀리 백모래 사막 지평선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는 유지군의 대열.
묵묵히 폐허를 걸어 지나치는 슬레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레녹이 말했다.
“장막의 재현에 대해 제안을 해놓고도, 정작 그 일에 누구보다도 집착하지 않는군.”
“…….”
“원한다면 지금 당장 결론지어도 될 일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미루고 있어.”
가라앉은 레녹의 눈동자가, 슬레인의 무표정한 얼굴을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넌 발칸을 보호할 수단을 원하는게 아니야. 구실을 원하는 것뿐이지.”
레녹이 물었다.
“이제 와서 교단에 대항하는 저지선이라도 구축하고 싶은 건가?”
“교단이 인신공양을 남발하는 사이, 영계와 물질계의 구분이 없어진 지는 오래되었지.”
[팔굉성채의 삼영가주.]펄럭!!
슬레인이 시선이 레녹이 쥔 깃털을 잠시 훑고 지나갔다.
“둥지를 떠난 새는 둥지를 돌아보지 않는 법. 어느 편에 서야 할지는 결정했다.”
[기다리고 있겠다.]“…….”
해야 할 말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겼을까.
슬레인은 레녹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이벨린의 안내를 따라 유지군에게 호송당하는 슬레인의 뒷모습을 레녹이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레녹의 옆으로 다가온 척뇌, 올리닉이 입을 열었다.
“…….”
[슬레인이 언급한 차후 회담이란 바로 그 자리를 의미하는 듯하네.]쿠구구궁……!!
도시 한 쪽 방향을 꽉 틀어막고 있던 거대한 금속구체가 회전하며, 올리닉의 앞으로 다가온다.
[교단의 사도를 직접 토벌한 자네라면 아마 틀림없이 개중에서 가장 큰 상패와 명예가 함께할 터.]스스럼없이 구체 위로 올라탄 올리닉이 레녹을 내려다보며 미묘한 웃음을 흘렸다.
[부디 그 자리에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지.]“견뢰.”
얼어붙은 칼날을 검집에 밀어 넣은 키리야가 레녹을 향해 다가오며 말했다.
“아나테마의 시신을 가져가도 난 상관없어. 어차피 회담에 참가한 목적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
“다만 아나테마의 이름이 가지는 가치를 생각하면 시의회나 다른 이들은 납득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그녀의 얼음장 같은 눈동자가 레녹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신경 쓰고 있는 게 좋을 거야. 당신만큼 강대한 마법사가 상대라면, 교단과 같은 선택을 할 이들은 널렸으니까.”
“충고 고맙군.”
레녹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부디 그쪽의 경험담이 아니길 바라지.”
“…….”
키리야는 레녹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곧바로 돌아섰다.
슬레인이 떠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초인들 역시 하나둘씩 모습을 감추기 시작한다.
레녹한테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떠나는 이들부터, 아예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채로 사라지는 이들까지.
레녹은 주변의 초인들이 먼저 떠나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도시에 남아, 고민하고 있었다.
아나테마의 변절과 죽음. 신녀의 개입과 퇴장. 중앙도시의 금기병장과 교단의 내통자까지.
위화감을 눈치채고도 묵인한 슬레인과, 끝내 상황을 지켜보는 것을 선택한 다른 8레벨들까지.
여력이 많이 남지 않았기에,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오히려 모든 것을 부딪쳐야 할 순간을 신중하게 고르고 기다리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서로 갈라진 죽음과 악연 역시, 언젠가는 다른 형태로서 마주하게 될까.
자정부터 시작된 극위능력자들 간의 소집.
아나테마의 변절로 인해 예상치 못하게 뒤틀렸던 긴 밤이 비로소 끝났다.
내리쬐는 햇빛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린 레녹이, 기다리고 있던 이들을 향해 돌아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은 끝났다. 발칸으로 돌아가지.”
* * *
해가 떠오르는 마른 사막.
아침이 찾아오는 것과 동시에 불어닥치는 모래바람 속을, 공룡을 닮은 거대한 괴수가 걷고 있다.
쿵! 쿵!!
원기둥에 가까운 두꺼운 다리로 모래를 짓밟으며 나아가는 거대괴수. 그 등 위에 세워진 화려한 형상의 간이신전.
새하얀 의자 위에 기대앉아 있던 누군가 선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떴다.
“…….”
팔걸이 위에 기댄 손을 움찔거리며, 천천히 손가락을 쥐었다 펴는 그 모습.
무표정한 얼굴이나, 핏줄이 돋아난 이마 위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녀의 옆에서 기도하고 있던 사제들이 즉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이드리 신녀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냐고?”
사제들의 말에 신녀, 우레카 나이드리가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안 괜찮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건.”
“네가 도와주면 좀 괜찮아질 것 같은데, 그렇게 해줄래?”
“원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사제가 품 안에서 단검을 꺼내 들자, 우레카가 사제의 배를 걷어찼다.
우둑!!
갈빗대가 부러지는 소리에도 사제는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우레카가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라리 그러고 있어. 그러면 좀 괜찮아질 것 같으니까.”
그렇게 말한 신녀가 다른 쪽 팔걸이에 기댄 손을 천천히 폈다.
굳게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이 펴지자, 붉게 충혈된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파직, 파직……!!
눈동자를 둘러싸고 회전하는 저릿한 뇌전이, 우레카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든 그 순간.
신녀의 팔꿈치 뒤쪽이 터져나가며 피와 살점을 흩뿌렸다.
“……!!”
팔을 타고 흐르는 뇌전이 신경을 긁어내고 불태우는 듯한 격통.
이제껏 평정을 유지하던 우레카조차 핏발선 눈으로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할 정도다.
“큽, 커헉……!!!”
우레카와 몸을 맞댄 채, 터져 나온 뇌전을 같이 받아낸 사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어졌다.
칠공에서 피를 뿜어내고, 혀끝까지 바짝 타 들어가 턱을 벌벌 떨며 발작했다.
겉으로 보이는 피부는 멀쩡하지만, 내장기관은 싹 다 불타 오그라들어 지옥 같은 고통에 시달릴 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제들 중 누군가 전율에 휩싸여 중얼거렸다.
“생명기도를 몇 번이나 중첩하고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가져가지 말라는 물건에 손을 댔으니, 이 정도 대가는 감수해야지.”
우레카가 웃으면서 피범벅이 된 팔에 손을 가져다댔다.
“하지만 정말 지독한 위력이긴 하군. 이만큼 시간이 흘렀는데 희미해지기는커녕 더 발작하기만 하다니.”
“…….”
“영창이 끝난 시점에서 술자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의념의 번개인가.”
팔을 타고 흐르는 뇌전을 바라보던 우레카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역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마음에 안들어…….”
레녹이 아나테마의 시체에 꽂아 넣은 벼락은, 신녀 같은 이들이 시신을 탈취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안배.
하지만 우레카 역시 그 순간이 아니라면 아나테마의 시체에 손을 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도한 마법사가 그분과 영접하여 현실에 잠시 간섭하지 못하는 순간이 아니었다면.
설령 우레카 본인이라 해도 아나테마의 시체를 앞으로 구경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신녀는 성역이 닫히는 순간보다 먼저 움직여, 손해를 감수하고 아나테마의 시체에 손을 댔던 것이다.
가져갈 수 있는 부위는 주요 장기가 아니라, 비교적 손대기 쉽고 휴대가 편한 눈동자 정도.
영적인 효험을 감안해서 신녀가 최소한의 성과라고 여길 수 있는 유일한 신체 부위다.
하지만 아나테마의 눈동자를 회수하는 과정에서 레녹이 남긴 전격에 노출되는 것은 필연이었고.
성력으로 몸을 보호했음에도, 신녀는 무려 한나절 넘게 레녹이 남긴 뇌전에 고통받고 있었다.
“고딘, 법구를 가져와.”
한참을 그렇게 팔을 타고 흐르는 뇌전을 노려보던 우레카가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아나테마의 유해를 버릴 수는 없지. 내 팔과 유해를 함께 봉인해야겠다.”
“나이드리 신녀님. 하지만……!!”
신녀의 선언에 다른 사제들이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반문했다.
“지금 그 상태로 봉인법구를 사용한다면, 팔을 영영 쓰지 못하게 되실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유해 보관을 저희에게 맡기시고, 치료에 집중하는 편이…….”
“운이 좋은 줄 알아, 고딘.”
우레카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방금 사제 하나를 쓸데없이 사용한 게 아니었으면, 지금 그 말대꾸로 널 죽였을 거니까.”
“…….”
“한번 설명하면 못 알아듣겠어? 이건 내가 아니면 보관할 수 없다고.”
신녀가 빙긋 웃었다.
“아니면 너희의 냄새 나는 시체에 이 귀한 물건을 방치해 두라는 거야?”
우레카의 육신을 파고드는 것은 세포를 괴사시키고, 신경을 죽여버리는 뇌전이다.
전격계 술식의 개념을 넘어서, 피격당한 상대를 극한까지 찢어발기는 파괴적인 성질.
철저하게 전투에서 위력을 높이고 상대를 죽이기 위해 성질변화를 거친 결과물이겠지.
우레카 본인조차 성력을 사용해서 겨우 팔 하나에만 억눌러 두고 있을 뿐, 다른 사제들이 눈동자를 만졌다가는 온몸의 내장이 불타 죽게 될 것이다.
“이런 기회가 금방 다시 오지는 않을 텐데, 역시 이번 일은 기대 이하였어.”
사제들이 법구를 가져오는 사이, 우레카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대의 권한을 되찾기만 했어도, 이따위로 번잡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하지만 때로는 잃었기에 새롭게 그 자리를 채우는 힘 역시 존재한다.
우레카 나이드리가 손에 넣은, 광증에 빠진 사도를 종복으로 부리는 권능은 분명 역대 신녀들 중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힘이었지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세이나 나이드리의 죽음과 함께 교단 최고 제사장의 권한이 소실되었기에 허락된 기적.
하지만, 우레카는 세이나가 잃어버린 제사장의 권한이 얼마나 치명적인 손실이었는지 실감하고 있었다.
우레카 나이드리에게 의식의 소질은 존재하지만, 의식의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교단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의식을 주관할 재능이 그녀에게 존재함에도, 그녀가 이렇게 직접 전장을 돌아다니는 이유.
그건 의식을 진행할 권한을 대체하기 위한 피와 제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니.
그렇기에 지금 손에 넣은 아나테마의 눈동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릴 수 없다.
아르스노바의 귀족이자, 대륙에서 멸망과 금제의 운명에 묶이지 않은 모순의 인과.
사도로서 영락해 죽어 순교를 완성한 아나테마의 유해는, 우레카가 그토록 찾던 권한의 대체재 중 하나였다.
“본단에 돌아가면 계시의 공능을 다시 점검해 봐야겠군. 캄로달은 뭘 하고 있지?”
“마지막으로 인형이 움직였을 때는, 두 번째 관문 근처에서 망가진 사도를 회수하고 있었습니다. 복귀 지령을 내려둘까요?”
“……아니. 됐어. 그보다 먼저 만나야 할 화신이 있으니까.”
우레카 본인이 무모하고 과격한 성정이기에, 이런 위험한 자리에 직접 나선 것이 아니다.
그분의 의지가 직접 내려앉는 위성도시는 신녀로서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극도로 특수하고 고결한 무대.
하물며 계시를 통해 소실된 권한을 되찾으리라는 언질까지 전해 들었던 상황이다.
하지만 결국 성역이 끝나고 신들의 의지가 떠나는 그 순간까지, 기대했던 목적의 절반조차 이루지 못하고 도시를 떠나고 있는 상황.
수천명의 인간들을 공양해 살점괴물로 만들어 바친 것 치고는 터무니없이 성에 차지 않는 성과였다.
“기계도시를 뒤집어 놓고 이제서야 만신전에 복귀하다니, 참 느긋하기도 하지.”
고개를 푹 숙인 우레카 나이드리의 눈동자가 어둡게 빛났다.
“공양물을 준비해. 2사도를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