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121
121. 캐스팅은 내 마음대로. (5).
피자와 치킨을 잔뜩 시켜주자 보육원의 아이들이 식당에 모여 다 같이 치킨과 피자를 먹고 있었다.
물론 보육원장은 늦은 시간에 먹는 것이 몸에 안 좋다고 마음에 걸려 했지만, 또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런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맛있냐?”
“네!”
김시우는 옆에서 닭 다리를 야무지게 뜯어먹는 이옥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도 김시우는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저…. 원장님.”
김시우는 조심스럽게 보육원장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죠?”
“다름이 아니라 옥자가 이름을 바꾸고 싶다고 해서요. 그리고 앞으로 배우 활동을 하려면 아무래도 가명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옥자도 동의하는 건가요?”
“네.”
“그러면 바꾸셔도 상관없습니다. 애초에 제가 멋대로 지어준 이름인걸요.”
“아…. 알겠습니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해주는 보육원장이었다.
“허락 맡았다.”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치킨이나 많이 먹어.”
“네!”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편해졌는지 이옥자는 더욱 열심히 닭 다리를 뜯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점차 배가 찬 아이들이 하나둘 먹는 것을 멈추어 갈 때쯤 김시우도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김시우가 보육원장에게 인사를 하고 보육원 밖으로 나오자 이옥자가 짧은 다리로 서둘러 따라 나왔다.
“가는 거예요?”
“가야지.”
“언제 또 와요?”
“너 학교는 가고 있냐?”
“네.”
“그럼 다음 주 주말에 데리러 올게.”
“정말이죠?”
이옥자가 불안한 얼굴로 김시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래, 나는 이런 거로 거짓말 안 해. 학교나 열심히 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김시우가 이옥자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마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이번엔 최도현이 김시우를 불러세웠다.
“형님, 벌써 가세요?”
“뭐가 벌써야. 그리고 너 아까부터 왜 자꾸 친한 척하는 건데.”
“에이, 뭐 어떻습니까. 그보다 옥자 잘 부탁드려요.”
“부탁은 무슨. 너나 잘 지내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이제 이쪽으로 들어와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네, 뭐…. 돌아갈 일은 없겠지만요. 또 괜찮은 배우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다음엔 꼭 술도 한잔해요.”
“그러든가.”
김시우가 떠나고 이옥자는 김시우의 손길이 아쉬운지 김시우가 사라지고서도 보육원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
월요일 아침.
이옥자는 이번 주말에 새로 지어질 이름을 기대하며 학교로 향했다.
“헤헤, 이제 나도 예쁜 이름 생긴다.”
학교에 도착한 이옥자는 친구들에게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자랑했다.
“어제 엄청나게 잘생긴 오빠가 치킨도 사주고 피자도 사주고 막 내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그랬다니까?”
“뭐? 정말? 그런데 보육원에 최도현 오빠 말고 또 있어?”
“아니, 최도현 아저씨 말고 김시우 오빠라고 있어. 작가님이래. 엄청 엄청 유명하다고 그랬어. 그리고 나 이제 영화배우로 데뷔해. 뭐였더라…. ‘무쌍 조선’이었나?”
쾅!
이옥자의 말이 끝나는 순간 양쪽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무쌍 조선’?”
“너, 지금 뭐라 그랬어? 김시우?”
“뭐야! 박소율, 홍수혁. 둘이 갑자기 왜 그래.”
박소율은 김시우가 최근 아역배우 오디션에서 뽑은 아역배우였고, 홍수혁은 바로 홍수연의 동생이었다.
공교롭게도 셋은 무려 같은 학교 같은 반 학생이었다.
“네가 우리 시우 형을 어떻게 알아!”
“우리 시우형? 시우 오빠가 왜 네 형이야!”
“우리 누나랑 결혼한다고 했거든!”
“뭐? 너희 누나?”
“그래! 우리 누나! 우리 누나 연기도 잘하고 인기도 짱 많고 예뻐서 시우 형이 되게 좋아하거든?”
“뭐?”
홍수혁과 이옥자가 서로 다투는 사이 한쪽에서 멍하니 서서 박소율이 중얼거렸다.
“설마…. 쟤도? 아닌데…. 오디션장에서는 본 적 없는데?”
박소율이 이내 홍수혁과 이옥자 사이에 끼어들었다.
“야, 너 오디션 봤었어?”
“오디션? 아니. 그냥 도현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럼 너 작가님 전화번호 알아?”
“어? 어…. 아는데? 왜?”
“전화 걸어봐.”
“지금?”
“야! 박소율. 너 뭔데 갑자기 끼어들어서 이래라저래라야!”
“너나 낄 때 안 낄 때 구분하시지?”
“뭐야?”
순식간에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뭐긴 뭐야! 선생님이지. 거기 다들 왜 모여 있어. 빨리 앉아.”
잠깐의 소동은 담임선생님의 등장으로 무마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야!”
가방을 메고 돌아가는 이옥자를 부르는 박소율이었다.
“나?”
“그래, 너. 여기 내가 부를 만한 사람이 너 말고 더 있어?”
“왜?”
이옥자가 영문을 모른다는 듯이 대답하자 박소율의 언성이 높아졌다.
“왜라니! 아까 말했던 거 사실인지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시우 오빠 얘기 말하는 거야?”
“그래, 김시우 작가님 전화번호 알고 있다며. 얼른 전화해 봐.”
“박소율 너 아직도 이옥자 괴롭히고 있냐?”
“넌 빠져. 홍수혁. 너야말로 김시우 작가님이랑 관계없잖아.”
“아니! 내가 더 친하거든?”
어느새 박소율과 홍수혁의 말싸움으로 번지자 이옥자가 피곤한 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걸게. 걸면 되잖아.”
이옥자가 스마트폰으로 저장되어있는 김시우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작은 신호음에 세 사람은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긴 신호음에도 김시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뭐야? 안 받는데? 네가 지어낸 이야기 아니야?”
“아니거든!”
“그럼 왜 안 받는데!”
“바쁜가 보지.”
“거짓말쟁이!”
“거짓말 아니야!”
박소율은 오디션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옥자가 오디션에 붙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이옥자는 김시우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자기 말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럼 나 따라와.”
“왜? 작가님이라도 보여주려고?”
“어!”
“좋아. 어디 한번 해봐. 홍수혁 너도 따라와. 너는 증인이야.”
“그래.”
세 명의 초등학생은 끝을 보기 위해 시우 필름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박소율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서 멍하니 서 있던 것이었다.
“꼬마야. 돈 없니?”
“네?”
버스 기사의 말에 박소율이 서둘러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10원 하나 나오지 않았다.
사실 박소율은 난생처음 버스를 탔다.
자신은 매번 엄마가 태워주는 차를 탔기 때문에 버스나 택시는 타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오늘 이렇게 버스를 타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뭐야? 너 버스 카드도 없어? 아…. 진짜. 민폐네. 아저씨 2명이요.”
홍수혁은 투덜거리면서 박소율의 버스비를 대신 내주었다.
“너 나중에 갚아라. 바나나 우유로 갚아.”
“고…. 고마워.”
그들은 버스를 타고 40여 분간을 이동해 시우 필름의 사무실 근처까지 도착했다.
“후우…. 거의 다 왔다.”
“여기 맞아?”
친구랑 학교에서 논다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한 박소율이 이제 와 조금씩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앞장서서 걷던 이옥자가 발걸음을 멈췄다.
“여기야!”
끝내 시우 필름 사무실 앞까지 도착한 이옥자가 건물 입구를 가리켰다.
“그럼 들어간다?”
“어? 어….”
너무나 당당한 모습에 오히려 박소율이 당황하며 대답했고, 건물 안으로 이옥자, 홍수혁, 박소율 순서로 들어갔다.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자 익숙한 모습의 사람들이 보였다.
이전에 왔을 때 자신을 반겨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전과 다르게 아주 바빠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 너는? 저번에 그 꼬마 아니야? 오늘은 무슨 일이니? 오늘은 좀 바쁜데….”
“시우 오빠 만나러 왔어요.”
“아…. 작가님? 잠시만….”
시우 필름 팀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들을 근처 책상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서 과자랑 음료수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으렴.”
“네!”
홍수혁과 이옥자, 박소율은 얼떨떨해하면서 과자를 하나씩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 사이 김시우의 집무실에 노크를 하는 시우 필름의 팀원이었다.
똑똑똑.
-들어와.
김시우의 대답에 안으로 들어가자 집무실에선 회의가 한창이었는지 박세용과 이유진, 그 외의 사람들의 시선이 팀원에게 쏠렸다.
“무슨 일이야?”
“저…. 작가님. 저번에 사무실에 찾아온 옥자라는 아이랑 그 친구들이 왔는데요?”
“뭐? 하아….”
김시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감독님. 회의는 내일 마저 해도 될까요?”
“그러지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왔나 보네요.”
“이번 영화에 출연하는 아역배우인데…. 혹시 괜찮으면 같이 만나보겠습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요. 미리 아역배우와 친해지면 촬영도 수월할 테니까요.”
“그럼 저희는 돌아가 보겠습니다.”
“넵, 수고하셨습니다.”
김시우, 박세용, 이유진을 제외한 사람들이 집무실에서 나가자 옆에 서 있던 시우 필름 팀원이 말을 건네왔다.
“그럼 데리고 올까요?”
“어. 데리고 와줄래?”
“네, 작가님.”
잠시 후 시우 필름 팀원의 뒤로 꼬마 3명이 줄줄이 들어왔다.
“옥자야…. 여긴 어? 꼬맹이 너는 왜 여기 있냐?”
이옥자를 보고 입을 열던 김시우는 뒤에 있던 익숙한 모습의 아이를 보고 더욱 당황했다.
“형! 아니, 들어봐 얘네들이 내가 형이랑 친하다고 하니까 안 믿는다니까?”
“아니, 옆에는 박소율 어린이? 셋이 어떻게 여기 같이 있는 거야?”
이후 김시우는 이옥자에게 이 사건의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우연히 셋이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과 이옥자가 학교에서 자랑을 하다가 ‘무쌍 조선’과 김시우의 이야기가 나왔고, 김시우가 전화를 받지 않아 그로 인해 3명의 아이가 이곳에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하아…. 소율이 너는 어머니께 말씀드렸어?”
“네? 아…. 그게…. 아니요.”
“홍수혁. 너는 할머니한테 말씀드렸어?”
“아뇨.”
“당당하게 대답하네? 너는 누나한테 말해야겠다.”
“형!!! 안돼. 누나는 안돼.”
홍수혁이 다급하게 외치며 김시우의 팔뚝을 붙잡았다.
홍수혁이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바로 홍수연이었다.
당연히 김시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김시우는 이참에 아이들에게 확실히 이야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찾아올 거면 어른들께 제대로 이야기는 하고 오렴. 그리고 여기는 놀러 오는 곳이 아니야. 일하는 곳이지. 오기 전에 가도 되는지 꼭 물어보도록 해. 알겠지?”
“죄송합니다.”
김시우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아…. 그래서 뭐가 궁금한 건데?”
“옥자는 오디션도 안 봤는데 정말 캐스팅된 건가요?”
“응. 개인적으로 캐스팅한 거야.”
“아….”
“그러면 얘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박소율이 홍수혁을 가리키며 말을 꺼냈다.
“꼬맹이? 얘 우리 시우 필름 배우 수연이 동생이라서 아는 사이인데?”
“그…. 수연이라는 배우가 혹시 ‘아이돌’에 나온 홍수연 배우는 아니죠?”
“맞는데?”
홍수혁이 홍수연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박소율이었다.
“이런 바보가 그 홍수연 배우의 동생이라고요? 믿을 수 없어.”
“내가 왜 바보야! 버스도 못 타는 네가 바보지.”
“그만 싸우고. 이제 궁금한 건 다 끝났니?”
박소율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아…. 맞다. 그런데 혹시 홍수연 배우님이랑 결혼하세요?”
“푸흡. 쿨럭. 그게 무슨 말이니?”
김시우가 박소율의 말에 마시던 물을 도로 내뿜었다.
“아니, 얘가 그러던데요?”
박소율이 가리킨 홍수혁은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꼬맹아, 너는 여기 좀 남아 있어야겠다. 너희 누나보고 데리고 가라고 해야겠어.”
“아…. 안 되는데.”
“그리고 소율아. 이 아저씨는 아직 여자친구도 없단다. 그럼 이제 궁금한 건 다 끝난 거지?”
“네!”
이후 김시우는 박소율의 어머니께 전화해 박소율을 먼저 돌려보낸 뒤 이옥자도 보육원에 태워다 주었다.
그리고 홍수혁.
홍수연이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김시우의 사무실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렸다.
“수혁아? 네가 왜 여기 있는지 설명 좀 해줄래?”
“누…. 누나.”
“수연아, 잠깐 앉아봐봐.”
“아! 네, 오빠.”
김시우의 말에 순식간에 화난 얼굴에서 세상 평온한 얼굴로 바뀌는 홍수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