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384
384화
마음을 다해 부르면 (6)
미스터 버터플라이를 이길 방안이라니?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너 자신을 네가 이기는 건데 무슨 방법이 있다고 그러냐?]‘형, 좀 조용히 해 봐요. 궁금하잖아요, 무슨 말을 할지.’
태주는 이중협을 조용히 시키고 오 피디에게 고개를 돌렸다.
“피디님, 그 방법이 뭡니까?”
“거참, 태주 씨가 이런 심플한 비책을 모르고 있다니요.”
재밌다는 듯한 표정의 오 피디는 목소리를 한껏 낮춰 답을 말했다.
“자신감이죠.”
“……자신감이요?”
“호랑이굴에 들어간 토끼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잖아요. 가수들도 마찬가지예요. 특히 이런 경연 프로그램은 기에서 눌리면 그게 그대로 무대까지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오 피디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이상,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해요. 원작자가 더 잘 부르느니, 나는 그 느낌을 못 살리느니, 그런 생각 따위 하지 말아요. 세상에서 내가 최고다, 내가 제일이다, 내가 이 노래의 원작자다. 이런 생각으로 무대에 임해야 한다고요.”
[뭐야, 결국 자신감을 가지란 소리잖아. 그런 얘기는 누가 못해.]이중협이 시시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지만, 태주의 표정은 진지했다.
“피디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이제껏 ‘안개비’를 연습하면서, 제 노래와 원곡을 계속 비교했었거든요.”
“어떻게 하면 원곡과 비슷하게 부를 수 있을까 해서요?”
“네. 원곡의 쓸쓸함과 처연한 느낌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싶은데, 저는 뭐랄까…….”
[네 버전은 쓸쓸한 것보다도 좀 더 처절한 느낌이지. 네 목소리가 낮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목소리에 담은 감정이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좀 더 처절한 느낌이죠.”
태주의 말에 오 피디는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딱 그 느낌을 받았어요. 원곡이 안개비를 맞으며 쓸쓸하게 젖어 드는 여자의 노래라면, 태주 씨 버전은 안개비를 맞으며 사랑을 외치는 남자의 절규죠. 좀 더 처절하고, 가슴이 저리는 느낌이랄까요.”
말을 잇던 오 피디는 눈을 찡긋했다.
“그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서 자신감 있게 노래하면 돼요. 원곡은 참고 사항일 뿐, 태주 씨가 그대로 따라 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도 태주 씨의 ‘안개비’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오 피디의 격려에 태주의 입가에 미소가 점점 퍼져나갔다.
노래는 자신감이다.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태주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는 다짐했다.
원곡도 좋지만, 그는 자신만의 노래를 완성할 것이라고.
[그런데 너, 너무 ‘태양왕’ 무대에만 치중하는 거 아니냐? ‘미스터 버터플라이’ 무대는 연습 안 해?]옆에서 불쑥 치고 들어온 이중협의 말에 태주가 피식 웃었다.
‘대비를 다 해뒀죠. 원작자 본인과 상의하려고 해요.’
[원작자라면, 브리짓 드하트? 어떻게?]* * *
“안 그래도 브리짓 드하트 전화번호는 받아 두었어. 그쪽도 AAA 소속이잖아, 그래서 쉽게 알려 주더라.”
“고마워, 형.”
“그런데 브리짓이 한국 내한 공연 준비 때문에 바빠서, 오래 통화하긴 어려울 거래.”
태주의 부탁으로 브리짓 드하트의 전화번호를 알아 온 박인우.
태주에게 문자로 번호를 넘겨준 그는 궁금하다는 눈빛을 번뜩였다.
“그런데 태주야, 너 이 사람 번호는 왜 알고 싶다는 거였냐?”
“그냥, 여쭤볼 게 있어서.”
“그냥? 한태주 인생에서 ‘그냥’은 없다는 거,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거든. 그리고 너, 그 여자랑 친하지도 않잖아.”
의심의 눈초리로 거듭해서 질문을 던지는 박인우.
“형, 용석이 형이 급히 찾는다고 하지 않았어? 가봐야 하지 않아?”
“아, 맞다!”
차 대표의 부름이 기억난 박인우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드디어 연습실에 홀로 있게 된 태주.
“지금 LA는 오후 7시일 테니…… 전화해도 괜찮겠다.”
[우리 태주가 브리짓 드하트한테 전화하는 날이 다 오고. 감회가 새롭네. 브리짓 드하트는 나 때도 슈퍼스타였는데.]핸드폰에서 얼마나 수화음이 울렸을까.
초조하게 기다리던 태주의 귓가에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헬로. 누구죠?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AAA에 소속되어 있는배우 한태주라고 합니다.”
미스터 버터플라이로는 브리짓을 만난 적 있지만, 한태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더욱 예의를 갖춰 조심스럽게 전화한 태주에게 터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태주라고? 예전에 미첼한테 귀가 따갑도록 들은 적 있어서 알아요. 루이스 모드 모델이라면서요? 그놈의 영감탱이, 날 모델로 써달라 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젊은 영계가 오니까 덥썩 쓰고 말이야.
귓가에 몰아치는 영어에 태주의 눈이 뱅글거리는 그때.
이윽고 재밌다는 듯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나한테는 무슨 볼일이죠? 혹시 나한테 관심 있는 거면, 미리 사양하겠어요. 나는 10살 이하 연하는 남자로 안 보이거든.
장난기가 가득한 브리짓의 목소리에 태주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마스크 스타에서의 엄격했던 모습과는 달리 사석에서는 이렇게 장난기가 많은 줄 몰랐다.
“사실은 제가 당신의 노래 ‘Sunny Day’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그 곡의 탄생 비화 등등의 정보를 여쭤보려고요.”
그 말에 브리짓은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Sunny Day’에 대해서? 갑자기 왜요?
태주는 혹시라도 그녀가 자신의 진짜 목적을 알아챌까 전전긍긍했다.
그녀의 별명은 영원한 여우.
나이가 들어감에도 항상 민감하고도 예민한 촉으로 트렌드를 잘 읽어 붙여진 별명이었다.
태주는 긴장을 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사실은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부를 기회가 생겨서 준비하다 보니. 이 노래를 작곡, 작사하고 직접 부른 원작자에게 설명을 들으면 더 잘 이해하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흠……. 수상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긴 한데, 내 노래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게 가상하네요.
잠시 생각하던 브리짓은 이내 답을 주었다.
-그 노래는 사연이 깊어요. 이렇게 전화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가 아니죠.
[설마 저 여자, 너더러 미국으로 넘어오라는 거 아니냐? 예전에 디에고가 미국에서 오디션 보라고 했던 것처럼?]-이번 주에 2박 3일간 콘서트가 있어서 한국 가요. 입국 당일 시간이 좀 있는데, 그때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날짜가 정확히 어떻게 되죠?”
-7월 26일.
서둘러 스케줄을 확인한 태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날 저녁때 보시죠.”
-오케이.
수화기 너머 브리짓의 목소리가 활기차게 울렸다.
-한태주가 그 곡 하나로 날 보자고 하는 것도 신기하고. 그 너머에 있을 진짜 내막도 궁금하네요.
* * *
며칠 후.
서울 모처의 백화점에서 열린 한태주 사인회.
그곳에서 태주는 열심히 팬들에게 팬서비스 중이었다.
‘루이스 모드’ 글로벌 앰배서더가 된 후 처음으로 갖는 사인회여서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이건 태주뿐만이 아닌 이곳에 찾아온 팬들도 느끼는 감정인 것 같았다.
“오빠, 완전 멋져요! 미국에 있는 친구가 그러는데, 오빠가 찍은 루이스 모드 수중 화보 있잖아요. 그거 뉴욕에도 전시되어 있대요.”
감격하며 말을 잇던 팬이 핸드폰으로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
뉴욕 빌딩의 한 광고판을 완전히 뒤덮은 루이스 모드 화보였다.
태주가 일전에 양복을 입고 물속에서 찍은 것.
국내에서는 전국 백화점 곳곳에 크게 전시한 걸 봤었다.
[태주 너 진짜……. 이제 세계적으로 노는구나! 미국에서 네 얼굴 이렇게 크게 박혔으면 끝난 거야, 임마.]태주는 정신없이 화보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오빠가 봐도, 진짜 멋있죠? 반할 것 같죠? 아, 진짜 멋있다니까요?”
팬의 호들갑에 태주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게……. 네, 멋있네요.”
멋쩍은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는 태주.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사인회는 계속됐다.
팬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역시나 ‘마스크 스타’ 출연.
다들 태주가 ‘태양왕’으로 출연해 미스터 버터플라이에게 대적하는 걸 알고 있다.
관심이 높은 만큼 팬들의 궁금증도 더더욱 컸다.
“그런데요, 오빠. 미스터 버터플라이는 미국판 마스크 스타 가왕이라 팝송으로 승부하는 것 같던데, 그럼 오빠도 팝송 부르시는 거예요?”
“글쎄요, 거기까지는 제가 말해드릴 수가 없네요.”
“진짜 궁금한데. 도대체 어떤 곡으로 대결할지.”
거듭되는 팬들의 애타는 표정에, 태주가 말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다.
“어떤 곡이 되었든, 정말 재밌는 무대가 될 건 확실해요. 팬분들 모두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태주의 덤덤한 태도에 팬들은 열화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어떻게 즐길 수가 있겠어요. 태주 오빠가 꼭 이겨야 하는 무대인데!”
“맞아요, 오만한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태주 씨를 꼭 이기겠다고 선언까지 했잖아요.”
“그러니까 오빠, 꼭 미스터 버터플라이 이겨 주세요!”
그 말에 태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네, 최선을 다할게요.”
* * *
그날 저녁.
넥스트 엔터 대표실에 마주 앉은 두 사람.
핸드폰을 보던 차용석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이야, 브리짓 드하트가 드디어 한국에서 콘서트를 하네. 나도 시간만 되면 가고 싶다.”
불멸의 슈퍼스타, 브리짓 드하트는 한국 남자들의 첫사랑이기도 했다.
섹시하면서도 청순한, 당당하면서도 달콤한 그녀에게 안 빠질 남자들은 없었다.
생각에 잠긴 그의 맞은편에서 박인우가 말을 꺼냈다.
“ABS 밴드 세션 측과의 연습은 이번 주 토요일로 잡아뒀습니다.”
차용석은 재빨리 고개를 들어 대답했다.
“그쪽이 의심하지 않게 처신을 잘해. 우리는 그냥 XTV의 대행사로, 미스터 버터플라이의 한국 활동을 돕는 협력사. 그 정도의 역할이라 설명하고.”
“안 그래도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도 아시잖아요, 박진주 피디가 얼마나 눈치가 빠른지요.”
박인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쪽에서 얼마나 캐물었는지 몰라요. 혹시 미스터 버터플라이 정체를 아냐, 한태주 씨가 AAA 소속인데 혹시 미스터 버터플라이가 그쪽 소속이라 한국 활동까지 케어해주는 거냐 등등.”
“후아, 박 피디 진짜 눈치 빠르네. 근접하게 추측해서 깜짝 놀랐어.”
차용석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시간도 이렇게 됐는데,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네, 대표님.”
“태주도 불러. 요즘에 마스크 스타 노래 연습한다고 살이 어찌나 쪽쪽 빠졌는지.”
“아, 태주 지금 진혁이랑 한남동에 나가 있어요. 누굴 만나러 간다는 것 같더라고요.”
“한남동에?”
차용석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머리를 굴렸다.
“진혁이랑 같이 나간 거 보면 데이트는 아닌 것 같고…… 도대체 무슨 일정이지?”
* * *
동 시각, 한남동.
한 고급 호텔의 로비 근처에서, 태주는 장진혁과 함께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둘은 사람들이 알아볼까 선글라스를 쓴 상태.
“그런데요, 배우님. 진짜 브리짓이 이 호텔에 묵고 있는 거 맞아요?”
“아까 브리짓 드하트 입국했다는 기사 봤잖아요.”
“그럼 도대체 언제 나온대요?”
저녁을 먹으러 나오는 사람들로 가득해진 로비.
태주는 핸드폰을 들어 브리짓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준비하고 있으니 좀만 기다려요. 곧 나가요.
그런데 그 좀만 기다리라는 게 벌써 30분째라니.
태주가 참다못해 전화를 걸려는 그때.
또각, 또각.
청량한 구두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멋들어진 금발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로비로 향했다.
“Excuse me. I am looking for 한태주. Is he here?”
그의 말에 태주는 벌컥 놀라 그쪽으로 향했다.
혹시 브리짓 드하트인지 확인했더니, 그 여자는 백발이 아닌 멋들어진 금발이었다.
“제가 한태주입니다만…… 누구신지?”
“……당신이?”
선글라스를 벗은 여자는 태주를 놀란 듯 응시했다.
화장기 하나 없는 청순한 브리짓 드하트의 모습이었다.
마스크 스타에서 본 마녀 같은 모습은 어디로 간 건지.
그녀는 태주에게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요, 태주. 전 브리짓 드하트예요.”
미국의 탑스타와 한국 탑배우 한태주의 만남.
뜻밖의 광경에 로비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누가 뭐라 할 거 없이 핸드폰의 들어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귀신 보는 배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