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host-seeing actor RAW novel - Chapter 484
484화
내가 배우가 된 이유 (1)
생각지도 못한 말에 태주는 깜짝 놀랐다.
[평생 사랑하던 여인이라뇨. 올리비아 여사님,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건…, 아닐 걸세. 워낙에 장난기가 심한 사람이라 저것도 농담일걸?]이중협은 자신의 질문에 찜찜하게 대답한 올리비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때, 마이크가 태주에게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에이, 가볍게 던진 농담인데, 왜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나! 그때 올리비아 러셀을 사랑하지 않은 남자는 없었다고? 역시 나의 개그 센스가 좀 형편없었나 보군.”
“대부님, 이번 농담은 저도 좀 놀랐어요.”
에린이 태주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님과 올리비아 러셀이 친분이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사랑하는 사이라뇨!”
“정정하지, 소울메이트로. 거참, 소울메이트도 서로를 사랑한다고 표현할 수 있잖아? 앞으로는 농담도 자제해야겠군. 다들 내 한마디에 이렇게 귀를 기울일 줄 몰랐어. 하하, 태주 군 얼굴 펴게!”
“네? 아, 네….”
태주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씩 미소를 지었다.
“올리비아 러셀 씨가 생전 마이크 씨의 소울메이트라 하셨죠. 그럼 두 분은 언제부터 친구셨던 건가요?”
“전쟁 직후에 어려운 생활 할 때 우연히 만났어. 그 친구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근근이 살고 있었고. 나는 가족을 다 잃고 혼자서 영상 쪽 일을 배우고 있었지.”
마이크가 그때를 회상하듯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정말 살기 어려운 세상이었지만, 올리비아 덕분에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네. 서로의 꿈을 격려하며 앞으로 나아갔거든. 특히 그 친구가 전쟁 전부터 꿈꿨던 발레리나의 꿈을 이뤘을 때는. 나도 그 친구 못지않게 기뻐해 줬지.”
“그런데 어떻게 배우가 되신 겁니까?”
태주의 물음에 마이크가 차분히 설명했다.
“태주 군. 자네도 알겠지만, 그때 할리우드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간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얼굴도 되고, 연기도 제법 되는 그런 배우들이 필요한 시점이었지. 그런데 올리비아가 딱 그 조건에 맞아떨어진 거야. 얼굴이 미인인 건 물론이고, 뻔뻔할 만큼이나 뛰어난 연기력도 뒷받침되었으니까.”
[알 건 다 알고 있네.]코웃음을 치는 올리비아.
태주는 그녀를 힐끗하며 다시 마이크에게 물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첫 영화부터 주연을 꿰차기란 어렵지 않습니까. 역시 올리비아 러셀은 스타성이 있었나 봅니다.”
“아, 할리우드는 모르는 비하인드를 내가 말해주지.”
술에 약간 취한 듯 붉어진 마이크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당시 발레단에서 일하던 올리비아를 할리우드로 캐스팅해 간 건 데이빗 맥팔레인이라네. 당대 최고의 스타이자, 그때는 제작자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지.”
“배우이자 제작자의 길을 개척하신 분이로군요.”
“아무튼, 맥팔레인이 자신이 주연인 영화에 올리비아를 꽂아 줬는데. 그때 할리우드에서 말이 많았다네. 맥팔레인이 젊고 아름다운 올리비아한테 빠져서 주연 자리에 그녀를 꽂아 넣었다면서.”
“그렇습니까?”
“그뿐만이 아닐세. 올리비아를 자기 집에 들여서 직접 연기 지도를 해줬지. 아마 그때부터 둘이 사귀지 않았나 싶어….”
“……”
태주는 마이크가 말을 이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줬다.
“그때부터 나는 올리비아와 연락이 자연스레 끊어지게 되었네.”
생각에 잠긴 마이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솔직히 내가 올리비아에게 실망한 게 아닌가 싶어. 아, 그녀가 잘못했다는 건 아닐세. 솔직히 할리우드에서는 파워 있는 남자 제작자나 배우를 꾀어서 주연으로 발돋움하는 여배우가 드문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발레리나로서 꿈이 확고했던 그녀가 자신의 가치관까지 버려가면서 배우의 길을 택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네.”
점점 얼굴이 굳어지는 올리비아의 눈치를 보던 태주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 영화는 대성공하지 않았습니까. ‘웨스터의 아침’은 흥행과 작품성을 둘 다 잡은 대작으로, 지금까지 배우나 영화감독 지망생이 꼽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지.”
태주와 눈이 마주친 마이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한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말게. 은퇴한 늙은이가 할 법한 시시껄렁한 이야기니까.”
* * *
식사가 끝난 후.
박인우가 AAA의 고문인 마이크와 담배 타임을 가지며 여러 가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
태주는 에린과 커피를 마시며 밖에서 잠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LA에 있는 태주 씨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여요. 자주 와서 익숙해진 건가요?”
“여러 시상식에 참석하다 보니, 이제는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능글맞은 태주의 말에 에린이 키득거렸다.
“시상식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좋은 기운 얻고 이제 우리랑 같이 광고 찍어야죠.”
“전 세계 유통 계약까지 벌써 끝내셔서, 이제 정말 광고와 뮤직비디오 찍는 것만 하면 된다면서요.”
“그렇게 됐어요.”
에린이 새침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까지 잘 풀릴 줄은 정말 몰랐어요. 이게 다 태주 씨 덕분이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녀가 조심스레 덧붙였다.
“근데 오늘 식사 자리에서 대부님 태도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좀 오버하신 감이 없지 않아 있었죠?”
“괜찮습니다. 술을 드셨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는 감정을 잘 표출하시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항상 따뜻하시고 다정하셔서, 저렇게 격하게 반응하시는 건 처음 봐요.”
“에린 씨는 대부님과 올리비아 러셀 씨가 절친한 친구, 그 이상이었다는 걸 정말 모르셨나요?”
“솔직히 살짝 짐작하기는 했죠.”
에린이 팔짱을 끼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잠깐 대부님 펜던트를 본 적 있거든요. 거기 흑백사진이 하나 끼워져 있었는데, 그게 글쎄 올리비아 러셀 씨였지 뭐예요.”
“올리비아 씨는 워낙에 유명하셨으니, 그런 펜던트가 많이 나와 있었을 텐데요. 한국에서도 그녀를 인쇄해서 책받침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고 들었거든요.”
“여자의 감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게다가 오늘 대부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자기가 사랑하던 사람이었다고.”
[사랑했다면 왜 진작에 고백하지 않았는데?]가만히 듣고 있던 올리비아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그동안 친구로 지내면서 얼마나 고백할 기회가 많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대화를 했는데! 그런데도 날 좋아한다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잖아. 아, 답답해. 저 녀석은 항상 저랬어, 항상 저렇게 답답했다고.]‘여사님, 그럼 제가 마이크 씨에게 물어봐 드릴까요?’
[아냐, 됐네. 지금 그게 중요한가. 그리고 설령 저 녀석이 날 좋아했다고 해도, 내가 이 세상에 남아있는 이유와는 털끝만큼도 영향이 없을 걸세. 저 녀석은 나한테 전혀 중요한 녀석이 아니니까!]올리비아는 그 말을 끝으로 휙 돌아서 멀어졌다.
[아, 이런! 내가 잘 달래드리고 올게.]기분이 상한 듯한 올리비아의 뒤를 이중협이 급히 따라갔다.
“아무튼 대부님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배운 건 있어요.”
에린이 태주에게 은근슬쩍 팔짱을 끼며 웃었다.
“나는 대부님처럼 뭔가를 숨기는 일 따위는 안 해요.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지.”
반짝이는 여자의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순간.
태주는 슬쩍 팔을 빼며 미소 지었다.
“솔직한 건 좋죠. 그러니 저도 솔직할게요.”
태주의 행동에 에린은 잠시 멈칫하더니,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도 그런 눈치는 있답니다.”
* * *
늦은 저녁, 푸른 장미를 사 들고 납골당에 온 한 중년의 남자.
한재경, 송혜진 부부의 납골당에 방문한 우창섭이었다.
그는 조심히 납골당 앞에 푸른 장미꽃다발을 놓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그의 절친한 친구 송혜진의 장례식에 몰래 참석한 이후, 그가 이렇게 납골당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혜진아, 이제야 와서 미안하다.”
세월이 담긴 중년의 얼굴은 친구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네가 교통사고로 죽은 게 사실은 우리 형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것도, 그것도 미안하다. 많이 늦었지만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야.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을 거야. 설령 그것이… 우리 형일지라도.”
잠시 말을 망설이던 우창섭은 젊은 날의 송혜진의 사진에 시선이 꽂혔다.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가 눈물로 젖어 들었다.
“이럴 거면 고백이라도 해 볼 걸 그랬다. 결혼하자는 그런 말 따위 말고, 솔직한 내 마음을 말이야.”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지나갔고, 지나간 시간은 어떤 방법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걸.
“거기, 지금 문 닫을 시간입니다!”
저 멀리 들려오는 경호원의 목소리에 우창섭이 서둘러 자취를 감췄다.
경호원은 키 큰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요즘 들어 한태주 씨 부모님의 납골당을 찾는 사람들이 많네.”
* * *
다음날, LA 극장.
배우조합상이 진행되는 이곳에는 수많은 파파라치와 취재진이 몰렸다.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불리는 배우조합상인 만큼 다들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이번에 경쟁이 정말 치열했다고 들었는데요. 도대체 어떤 작품이 앙상블상을 받을까요?”
배우조합상에서 제일 권위 있는 상이자, 영향력이 큰 ‘앙상블상’.
영화 아카데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들이 직접 선정하는 상인만큼, 앙상블상을 받는 작품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오죽하면 ‘아카데미 레이스의 승기를 잡는 건 배우조합상과 골든글로브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
한껏 신경을 곤두세운 취재진의 시선에 한 대의 리무진이 도착한 것이 보였다.
그곳에서 내린 건 AAA의 고문이자 할리우드의 스타 제작자인 마이크 링크와 에린 웰링턴.
그다음 등장한 건 원로배우인 데이빗 맥팔레인과 그의 친구인 엘리엇 힐.
레드카펫을 걸어가는 할리우드의 거물들에게 플래시가 쏟아지는 가운데.
이윽고 등장한 한 무리의 사람들로 인해 주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한태주랑 디에고 크루즈다!”
“앤디 피셔 감독도 있어!”
태주는 중앙에서 디에고와 앤디를 이끌며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몇 번 해봤다고 제법 익숙한 리드였다.
[크크, 태주 너 이제 할리우드 스타가 됐다 이거냐?]‘형, 놀리지 마세요. 저는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진행할 뿐이라고요.’
그렇지만 여러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는 태주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그것이 흥분해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 * *
시상식장에 들어가기 전, 태주는 레드카펫에서 각종 언론의 질문을 받았다.
[한국은 레드카펫에서 바로 시상식장으로 들어가는데, 미국은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네. 다르긴 하다.] [긴장감도 풀어주고 좋잖나.]올리비아와 이중협은 한껏 흐뭇한 표정으로 리포터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태주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맥팔레인 씨는 ‘나의 미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았는데요.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곡을 찌른 말에 태주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사람마다 다양한 감상을 할 수 있는 게 영화의 장점이라 생각하는 만큼, 맥팔레인 씨의 개인 의견을 존중합니다.”
그때, 저쪽에서 소란이 일어난 듯 웅성거렸다.
“위선자! 저런 사람이 원로배우라고 대접받다니, 말도 안 됩니다! 저 사람은 거짓말쟁이에다 위선자라고요!”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레드카펫에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때, 태주의 눈에 들어온 한 장면.
레드카펫 중앙에서 인터뷰하던 데이빗 맥팔레인에게 건장한 남자가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기도 전.
태주는 그쪽으로 달려가 맥팔레인을 감쌌다.
귀신 보는 배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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