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119
일확천금 (1)
슬슬 익숙해져가는 자각몽의 안에서, 나는 맞은편에 앉은 검정일색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에스텔.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자각몽 안에서 언제나 나를 맞이해주는 소녀.
몇번이고 얼굴을 마주해왔던 탓에, 이제는 만나지 못하면 아쉬워질 것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에스텔과 마주한 채로 체스를 두고 있으면, 갑자기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어떻게 보면 실험적인 발상에 가까운 것이기도 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기물을 움직이면서 맞은편에 있는 에스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좋은 수라도 떠올랐나보네?”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
툭.
들고 있던 퀸을 움직여 에스텔의 비숍을 쓰러뜨렸다.
에스텔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쓰러진 비숍을 체스판 밖으로 빼내었다.
이로써 내가 가진 기물의 숫자가 에스텔의 것을 조금이나마 웃돌게 되었다.
나와는 다르게 게임의 유불리에는 처음부터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것일까.
내 이야기를 들은 에스텔은 흥미로운 얼굴을 하면서 물었다.
“어떤 생각인데?”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뒤바꿀만한 생각.”
“아무나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닌 모양인걸.”
“나같은 사람이나 가능할만한 발상이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다.
그것도 게임에서 이겨야만 해소할 수 있는 종류의 호기심이었다.
마침 체스 게임에서도 내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게임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에스텔에게 머릿속에 있는 질문을 꺼낼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빙빙 돌려가며 답변하는 내 모습에, 그녀는 턱을 괴고서 손에 들고있던 말을 까딱거렸다.
“게임에서 이기면 알려줄 생각이야?”
“만약 내가 지더라도 네가 질문을 사용해 물어본다면, 어쩔 수 없이 알게 되겠지만 말이지.”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이라고 해봐야 간단했다.
눈앞의 에스텔은 내 꿈이 만들어낸 무의식의 편린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돌려주는 답변은 어디까지나 내 머릿속에서 나온 내용에 불과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물어본다면, 과연 에스텔은 어떤 대답을 돌려줄 것인가.
그때도 그녀는 정상적인 대답을 나에게 들려줄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꺼내며 얼버무리려고 할 것인가.
어느쪽이든 흥미로운 답변이 돌아올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오늘따라 짖궂은걸. 결국 게임에서 져달라는 이야기 아니야?”
들고 있던 기물을 내려놓은 에스텔이 하나 남은 룩을 붙잡으며 이야기했다.
결국 이기지 못하면 쓸모없는 아이디어임에는 틀림없었다.
나는 내심 그녀가 쉽게 져주기를 바라면서, 다음에 움직일 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져주면 좋고.”
“아쉽지만 제대로 하는 것도 규칙이라서, 마음대로 져주기는 힘들 것 같아.”
“우리 사이에 뭐 그리 까다로운 규칙들이 많은지 모르겠네.”
에스텔의 이야기에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내 머릿속의 그녀는 왜 그렇게 까다로운 것일까.
간단한 이야기 정도야 게임 없이 대화를 나누면 그만일텐데 말이다.
사소한 이야기조차 게임을 통해 나누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에스텔과 게임을 하는 것 자체는 싫어하지 않지만 말이다.
“미안해. 그래도 언젠가는 까다로운 규칙 없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을거야.”
“그래? 체크.”
“이건 단지 서로에게 익숙해져가는 과정일 뿐이니까.”
궁지에 몰린 에스텔이 킹을 뒤로 물렸다.
허나 이번에 움직인 수는 거기까지 예측하고서 내어놓은 것이었다.
툭.
준비해두었던 비숍이 움직이며 에스텔의 킹을 재차 압박했다.
스윽.
두 사람의 손이 체스판 위에 올려진 채로 번갈아 기물을 움직여나갔다.
첫번째 체크로부터 몇차례나 더 수교환이 이루어졌을까.
계속해서 에스텔을 구석으로 몰아가던 백의 기물들이 마지막 수를 내어놓았다.
“체크메이트. 이걸로 끝난 것 같은데?”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네. 아쉽게 됐는걸.”
“후··· 이겨서 다행이다.”
체크메이트를 선언하며 게임의 마지막을 장식한 나는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체스를 그리 잘두는 편은 아니어서 이길 수 있을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에스텔을 상대로 무난하게 승리를 거둔 상황이었다.
옛날에 잠깐 두었던 온라인 체스가 의외로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나른해진 몸을 깨우기 위해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고 있으면, 에스텔이 양산을 집어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 또각.
가벼운 구두소리를 내며 내 앞에 멈춰선 에스텔이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래서, 무슨 질문을 하고 싶어서 이긴거야?”
내가 게임에서 패배한 에스텔을 향해 꺼내고 싶었던 질문.
그리고 내가 알고 있지 못하면서도, 에스텔의 대답이 사실이라면 무척이나 도움이 될만한 질문.
그것은 바로 복권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재촉하는 에스텔을 향해,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정보에 대해 질문했다.
“복권 당첨번호.”
“뭐?”
“복권 당첨번호 좀 알려줘.”
“정말··· 참신한 발상이네.”
에스텔은 가늘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톡.
에스텔의 양산 끝이 자리에 앉아있던 내 발가락 위에 올라갔다.
그녀는 발가락 위에 올려놓은 양산에 상체를 숙이며 힘을 불어넣었다.
순식간에 무게가 실린 엄지 발가락에서 강력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악······!”
“미안하지만 이런 부류의 질문에 대답해주는건 이번뿐이야.”
“이번뿐이라고?”
“같은 부류의 질문에는 두 번 다시 멍청한 대답을 늘어놓지 않겠다는 소리야. 이해했어?”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린 에스텔이 그것을 내 입술에 가져다대며 물었다.
깊은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가 나를 마주한 채로 대답을 강요했다.
이런 질문이 가능한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나는 에스텔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철저한 조건 하나를 질문의 뒤에 추가해서 말이다.
“기왕이면 1등 당첨번호로 부탁한다.”
“후우··· 알았어. 알려줄게.”
바로 옆에 있던 책상에 걸터앉은 에스텔이 양산을 까딱였다.
그 직후 에스텔의 입에서 청명한 목소리가 천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2.”
“어, 그래. 2번.”
정직하게 에스텔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복권번호.
나는 에스텔의 목소리를 듣기 무섭게, 종이 한 장과 펜 하나를 테이블 위에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에스텔이 부르는 번호들을 종이에 하나씩 받아적었다.
에스텔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건데, 내가 못들었다고 이야기한들 다시 들려줄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11.”
“11번. 좋아.”
“15.”
“15번.”
“21.”
“21번. 여기까지 네개.”
순식간에 들고 있던 종이에 번호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나씩 늘어나던 번호는 어느새 다섯 개가 되었고, 에스텔의 입에서는 여섯 번째 번호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여섯 개의 복권번호가 전부 에스텔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나와 에스텔이 앉아있던 세계가 무너지며, 사방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슬슬 이 자각몽이 끝날 순간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인 모양이네.”
“그러게. 2. 11. 15. 21. 27······.”
“다음에 봤을 때는 오늘처럼 쉽게 지는 일은 없을거야.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길 바래.”
“그래. 너도 잘 지내고. 2. 11. 15. 21······.”
나는 에스텔이 말해준 복권번호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분주하게 입으로 되뇌었다.
꿈속에서의 기억은 다른 기억들보다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에스텔은 그런 나를 착잡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복권번호는 모두에게 있어서 중대사였다.
혹시나 꿈에서 얻은 번호가 진짜 당첨번호일지도 모르는 까닭이었다.
조상님이 알려주는 복권번호보다 에스텔의 번호가 더 정확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무너지는 꿈속에서 나는 에스텔이 가져다줄 행운을 기대하며 복권번호를 열심히 암기했다.
* * * * * *
에스텔이 나오는 자각몽을 꾸고 깨어난 다음 날.
나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그녀가 알려준 복권을 구매했다.
복권에 당첨되면 그날부로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소박한 꿈과 함께 말이다.
물론 내 규칙적인 생활을 책임지는 방치형 게임에게도 어느 정도 투자할 생각이 있었다.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한 천만원 정도는 과감하게 과금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에스텔이 알려준 번호가 당첨되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익숙한 기분이 들지? 내 착각인가?”
다만 복권을 구매한 이후로, 나는 복권번호가 어딘가 익숙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꿈속에서 에스텔에게 번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들었는지는 복권 추첨날이 되면 밝혀질 일이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에스텔이 알려준 번호가 당첨이기를 기대해야 할 뿐이었다.
보통 꿈속에서 얻은 복권번호가 당첨일 확률이 높다고 하지 않던가.
에스텔이 알려준 번호 역시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첨되면 뭐할지 일단 고민 좀 해봐야겠네.”
나는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끌어안은 채로, 게임이 켜져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레벨이 오른지 제법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접속하자마자 마주한 화면에는 오랜만에 보는 레벨업 메세지가 출력되어있는 상황이었다.
플레이어 레벨이 어느덧 레벨 10을 넘어서 레벨 11에 도달한 것이었다.
– 레벨 11이 되었습니다.
– 이 성장합니다.
– 이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더 명확한 시선으로 대륙을 관찰할 수 있게됩니다.
플레이어 레벨이 오르면서 이 레벨 11에 도달했다.
이 진화하면서 게임화면에도 자그마한 변화가 생겨났다.
이전보다 캐릭터의 움직임이 한층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물론 레벨업 이외에도 화면에는 온갖 종류의 메세지들이 부가적으로 출력되고 있었다.
– 경고 : 한쪽 방향으로 지나치게 편향된 카르마는 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이 기울었습니다.
– 낮은 수준의 이 발생했습니다.
– 으로 인해 [신기 : 아스칼론]이 한단계 해방되었습니다.
– 으로 인해 [신기 : 히에로글리프]가 한단계 해방되었습니다.
– 인과율 보정 진행도 : 14%
게임을 진행하면서 상승한 인과율 보정치가 14%에 도달한 것이다.
또한 그 영향으로 신기의 해방을 알리는 메세지 역시 2개나 출력되었다.
내 캐릭터들이 강해지고 있는 만큼, 게임의 보스 몬스터들 역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 자체가 한층 더 높은 스테이지로 올라간 모습이었다.
그리고 인과율에 대해 알리는 메세지의 아래에는 내가 보유한 카르마 총량이 출력되고 있었다.
화면 하단에 출력된 카르마를 확인한 나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분간 카르마는 보지 말아야겠다.”
화면에 출력되어있는 내 카르마 보유량은 이전보다 처참한 상황이었다.
누적 카르마 312.
얼마 전에 막대한 카르마를 지불해가며 다니엘을 사도로 임명한 탓이었다.
그렇다고 다니엘을 사도로 선정한 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도가 된 다니엘은 분주하게 움직이며 교단의 적을 정리하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막대한 신성공헌치를 쌓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다니엘은 여전히 잘해주고 있는 것 같고, 유테니아는··· 오랜만에 유테니아나 한 번 확인해볼까.”
스윽.
메세지 박스를 종료한 나는 화면을 옮겨 유테니아가 있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유테니아는 이전보다 크게 확장된 유토의 위에서 연금술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연금술사의 손에는 어마무시한 두께의 서적이 들려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예전에 맡겼던 [현자의 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아직까지 나는 유테니아에게 다른 임무를 내리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당분간은 커다란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현자의 돌]에 대한 내용을 유테니아에게 일임해둘 생각이었다.
– “방금 재료들 중에 하나가 성유물이라고 했나요?”
– “현자의 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영혼을 정제하기 위한 성유물이 필요하다고 하는군. 기록에 따르면 ‘아딜레아의 바늘’이라고 불리는 성유물인 모양이다.”
– “‘아딜레아의 바늘’이라··· 나침반을 이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겠네요. 그 부분은 문제 없어요.”
연금술사에게서 재료에 대한 정보를 들은 유테니아는 주머니에 들어있던 성유물을 꺼내며 말했다.
성유물을 탐색하는 것은 유테니아에게 있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일전에 내가 건네주었던 특별한 성유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마력의 사용을 억제한다면 [성유물 : 에탈리아의 나침반]을 이용해 원하는 성유물의 방향을 찾아내는게 가능했다.
플루토를 봉인한 말뚝을 찾아내는 일 이외에도, 이런식으로 성유물이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 “그 외에는 모아둔 영혼들을 안정시킬 최상급 마정석이 필요한데······.”
– “최상급 마정석이면 제국 내에도 몇개 존재하지 않는 물건 아닌가요?”
– “얻기 쉬운 물건은 아닐거다. 그래도 짐작가는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
– “짐작가는 곳이 있나요?”
이그드라실에 기댄 유테니아가 팔짱을 낀 채로 연금술사에게 물었다.
이그드라실의 위에서는 가지에 걸터앉은 페린이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유테니아의 질문에 연금술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유토를 가리키며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 나는 공작령에서 개최하는 경매에 최상급 마정석이 나온다는 소문을 들었다.”
– “경매에 최상급 마정석이 나온다고요?”
– “그래. 제국에서도 명문 귀족들만이 참석가능한 경매다. 나도 중앙마탑의 대리자 자격으로만 참석이 가능한 수준이지.”
– “그런가요.”
– “납치당한 내가 중앙마탑의 신분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 아무리 너희라도 쉽게 경매에 참여할 수는 없을거다.”
연금술사의 머리 위에 떠오른 말풍선은 대부분 타당한 이야기였다.
내가 게임에 간섭가능한 부분에는 한계가 있으며, 캐릭터들간의 관계에 대한 부분에는 일체의 관여가 불가능할테니까 말이다.
대부분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만 간섭이 가능했다.
눈에 보이는 캐릭터에게 마법을 쏘아 카르마로 변신시킨다던가 하는 일처럼 말이다.
연금술사의 이야기를 들은 유테니아는 그림자가 붙잡고 있던 그리모어를 낚아채면서 대답했다.
– “그럼 문제 없겠네요. 경매장을 습격하면 되는 일이니까요.”
– “온갖 명문귀족들의 호위가 모여있는 경매장을 습격하겠다고?”
– “일단 시도는 해봐야겠죠. 경매를 마치고 흩어지는 귀족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일보다는 편할테니까요.”
그리고 그런 연금술사의 우려에 유테니아가 낸 대답은 간단했다.
경매가 이루어지는 경매장을 습격한다.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대답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보다도 더 과격해진 유테니아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의 작전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보통 경매장 습격은 악당들이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