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43
매력을 뽐내자 (3)
“전에 예능에서 똑 부러지는 애가 나오길래 눈여겨봤는데 그게 오란 씨였어요.”
한재오 MC님이 눈여겨보다니? 어떤 예능이었는지 몰라도 능청스럽게 진행은 잘했을 거다.
“요즘 애들이 영리하다고 해도 애들은 애들이거든요. 그런데 오란 씨는 정신연령이 우리 또래 같다고 해야 하나?”
“림이 형, 그러다 테오라 팬들한테 혼나요.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애한테 또래라니.”
“정신이 어른스럽다는 뜻이에요.”
“이렇게 피해 간다고? 림이 형 처세 늘었네.”
“오란이가 먼저 한재오 MC님 라인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저는요?”
적극적인 아부 공세를 펼치던 초록 형이 서운한 척 연기를 했다.
한재오 MC님은 둘 모두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극적 타결을 이끌었다.
“오란 씨 애교가 그렇게 대단하다면서요? 뻔한 부탁이긴 한데, 이쯤에서 애교 한번 안 보고 넘어갈 순 없죠.”
홍오란은 빼지 않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다음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아래로 숙였다가 일어났다.
볼에 붙인 주먹을 꼬물꼬물 움직였다.
“테오라와 함께하는 마이 리틀 스타! 안 보면 후회한다구요!”
주먹을 베어먹는 시늉을 하곤 볼우물이 쏙 들어가게 활짝 웃었다. 민망해하지 않고 끝까지 표정을 풀지 않는 프로페셔널함.
인사처럼 당연하게 해치워서 지켜보는 시청자분들도 공감성 수치를 덜 느끼려나.
…반성해야겠다. 끝까지 뻔뻔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 오늘의 나를.
어쩌면 중간에 부끄러워한 나 때문에 덩달아 낯이 뜨거웠을지도.
다음 기회가 있다면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고 말겠다! 서혼 형한테 특훈을 받아야 할 모양이다.
“그리고 테오라의 막내, 박하 씨. 사전 조사에서 ‘박하의 셀카 강의’ 영상을 봤는데, 상당히 유용하더라고요?”
“그거 보셨어요? 내용 알차죠?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 봤어요!”
한 사람이라도 셀카 똥손에서 탈출시킬 수 있다면 뿌듯할 거라나?
우리 멤버들을 제외하고 박하의 셀카 강의를 들었다는 사람은 처음 만나는 거였다.
“셀카 정직하게 찍는다는 소리 맨날 듣거든요. 그런데 박하 씨 강의 보고 나서 셀카를 올렸는데, 다들 다른 사람이 찍어줬냐고 하더라고요!”
다른 사람 손으로 찍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실력이 급격히 향상됐다는 소리다.
박하가 셀카 강의는 유독 귀에 쏙쏙 들어오게 했었다. 귀가 따갑긴 했지만 알찬 강의였다.
“강의 듣기 전이랑 들은 후 셀카 확인해보고 싶어요!”
실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재오 MC님은 매니저에게 휴대폰을 받아 강의 영상을 보기 전, Before 버전의 셀카를 먼저 보여줬다.
“으음….”
박하가 보는 사진을 슬쩍 봤다. 사진빨을 못 받긴 했어도, 똥손 취급을 받을 만큼 최악의 실력은 아니었다.
“우리 이원이 형이랑 비슷한 증상이군요. 흠.”
심상찮은 병명을 가진 환자를 앞에 둔 의사처럼 심각한 태도에 웃음이 터지려다가 쏙 들어갔다.
거기서 왜 내 이름이 나오는데?
“일명 증명사진 각도라고 하죠! 정면에서 찍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만약 콧구멍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각도로 찍는다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다는 듯이 손으로 입술을 급히 가렸다.
…난 절대로 그 정도는 아니었다. 눈의 높이에 휴대폰 카메라를 맞췄을 뿐이다.
“이 사진이 After 버전입니다.”
“…!”
건네받은 휴대폰 화면을 응시한 박하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표정만으로도 기대감이 심어졌다.
“나도 보여줘!”
“저두, 저두!”
술술 님과 계림 님이 자기가 먼저 보겠다고 순서를 다퉜다. 결국 사이좋게 동시에 보게 된 둘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런데 입술이 씰룩거리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과감한 시도 좋았습니다! 약간, 아주 약간 과하긴 한데, 다음에 힘을 좀 빼면 더 자연스러운 사진 찍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제 추가 강의를 들으신다면요!”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은 모른 척해줘야 하는 거겠지?
어떤 사진인지 궁금증을 한껏 자극하는 바람에 나머지 멤버들도 After 셀카를 구경하게 됐다. 찰나였지만 파르르 떨리는 눈가를 눈치챘다.
내 차례가 되어서 화면 속 사진을 보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했다.
박하의 강의는 셀카 찍기 기본기에 충실하다. ‘셀카 촬영 개론학’ 강의에 개인의 특징에 맞춘 스킬이 살짝 들어가 있는 수준. 그런데 어째서 결과물이…?
한재오 MC님의 셀카는 각도만 보면 상당히 개선되어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찍은 각도도, 조명도 훌륭했다.
다만, 카메라와 밀착한 나머지 과하게 느껴졌다.
밋밋하고 무난한 셀카가 부담스러운 셀카가 됐다면 보는 사람들이 놀랄 만하다.
댓글에 줄임표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이제는 알겠다.
“테, 테오라 레전드 영상으로 넘어가 볼까요? 다들 어떤 영상인지 아시죠?”
다급히 화제를 넘겨준 계림 작곡가님 덕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예의상 하얀 거짓말을 할 수는 있지만, 어쩐지 양심이 따끔따끔 찔렸다. 셀카가 나아졌다고 확신하고 기뻐하는 한재오 MC님의 기대를 저버리기 싫어서일까.
우리에게 인지도를 가져다준 어재 님의 레전드 영상 외에도 데뷔조 평가 무대 영상도 레전드란다.
내가 모르는 새에 레전드의 의미가 달라졌나?
회사에서 정식으로 찍은 화질 좋은 테오라 멤버들의 영상이 편집되어서 업로드되긴 했다.
그날 컨디션을 망친 것 치곤 괜찮은 무대를 선보였대도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올 것 같아서 일부러 다시 보지도 않았는데.
그게 레전드…?
숙소에 들어가는 길에 각 잡고 분석이라도 해야겠다. 팬들의 시야에 내 관점을 맞출 수 있다면, 지금보다 취향을 직격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후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대화가 이어졌다. 연예인을 인터뷰하는 형태의 방송인데 인터뷰 같지 않았다.
패션 잡지 인터뷰보다 훨씬 길고 자유로웠다.
이웃집 형님들이랑 시시껄렁한 얘기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 이웃집엔 할머니, 할아버지만 계시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마이 리틀 스타.
이 프로그램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를 몸소 체감했다.
자주 만나기 힘든 연예인을 데리고 와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다.
말수가 적은 연예인도 억지로 이야기를 쥐어짜지 않아도 괜찮았다. 유머러스하지 않은 연예인도 웃겨야 한다는 부담 없이 수다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각자 소개 후에 진행자 세 분의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듣는 걸로 모자라 입이 근질근질해질 때 끼어들면 충분하다고 했다.
촬영분을 잘라내고 핵심만 뽑아내서 편집한다면 재미없는 것도 재밌게 둔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수준 높은 편집 기술이란 그런 거라고 믿는다.
테오라 멤버들이 그래도 중간은 해준 것 같으니 덜 힘드시지 않을까?
점점 대화는 무르익어갔다. 탈출해 챌린지에 관한 주제는 후반부에 나왔다.
“탈출해 챌린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볼 텐데요. 그 챌린지가 우연에서 시작됐다고요?”
이런…. 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예상이 돼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날 박하가 짧은 영상을 올리겠다고 자세를 잡았거든요. 이원이가 첫 번째 모델이었어요. 다른 멤버들은 그 뒤 순서였고요.”
서혼 형이 사근사근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다정한 형처럼.
“저희 타이틀곡 안무가 점프가 자주 들어가는데, 후렴은 계속 통통 뛰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원이가 위로 뛰려고 준비를 하는데…!”
“하는데요? 얼른 말해주세요.”
코미디언 술술 님은 잠시를 참지 못하고 재촉했다. 빙긋 미소 지은 서혼 형이 말을 이어갔다.
“이원이가 갑자기 공중제비를 도는 거예요.”
“공중제비?! 갑자기요?! 그게 가능한가요?”
“지켜보던 멤버들이 다 놀라서 후다닥 달려갔는데 정작 본인은 멀뚱멀뚱 우리를 보고 있었죠.”
“전 화면에 집중하느라고 뒤늦게 알아차렸는데 이원 형이 공중돌기를…!”
“이원 씨, 도대체 무슨 의도였습니까?”
내 앞쪽으로 내민 술술 님의 주먹은 기자의 마이크 대신인가 보다. 목을 가다듬고 적당한 대답을 떠올렸다.
서혼 형은 팬들이 사실을 알게 되면 걱정할까 봐 넘어질 뻔했다는 설명을 삭제해버린 거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여기서는 내가 잘 얼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갑자기 공중제비를 돌만 한 이유가 있긴 한가? 재빨리 둘러대야 하는데 순발력이 모자랐다.
“…뜬금없이 공중제비가 돌고 싶더라고요.”
“물론 저희가 위험하다고 잔뜩 혼냈습니다!”
초록 형이 급히 덧붙였다.
안전불감증이라고 볼 수도 있겠구나. 다시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봐 코티지들이 걱정할 수도 있고. 생각이 짧았다.
“뜬금없이 공중제비…. 이원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상당한 사차원이네요.”
“그게 아니라…!”
부인하고 싶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이미 사차원으로 결정되어버렸다.
“제가 이원이랑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거든요? 그때도 유명했어요.”
“이원 씨가요? 뭘로요? 역시 얼굴?”
“얼굴도 맞지만, 괴짜 예술가 같은 행동을 해서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천재 같았달까요?”
“자세히 듣고 싶네요.”
“클래식 쪽은 아직 보수적인 면이 있는데, 실기 곡을 즉흥적으로 편곡해버렸죠.”
“와! 선생님들 당황하셨겠는데요?”
“그럼요. 기대주가 채점 기준을 신경 쓰지도 않고 제멋대로 연주해버렸으니까요. 그것도 너무 잘해버린 거죠.”
“아하. 선생님들은 난감하셨겠는데, 듣는 저희는 짜릿하네요. 뭔가 천재적인 예술가의 어릴 적 일화 같달까!”
“나중에 이원 씨를 모델로 한 영화도 나오는 거 아니에요? 재밌겠는데?”
하…. 이미 내 이미지는 사차원 괴짜 천재 예술가로 굳어져 가고 있다….
촬영 중이란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목을 꼿꼿이 세우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점점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세트장 바닥에 이런 무늬가 있었구나….
어째서지. 어째서 갈수록 더 꼬여가지?
사람들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좋은 말만 해주니까, 포기하고 즐기는 게 최고의 방법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계속 쑥스럽지? 내가 초보라서…?
마음을 다잡고 표정 관리를 하는데 옆에 앉은 서혼 형과 박하가 여느 때처럼 등을 툭툭 두드렸다. 머리가 세팅되어 있어서 등으로 손을 이동시켰나 보다.
…그래.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팬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즐겁다니까 기꺼이 받아들이자.
쉬는 시간을 틈틈이 가지면서 녹화를 계속했다. 촬영 내내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제작진분들도 편하게 진행자분들과 사담을 나누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원래 이 프로그램 촬영이 유한 분위기 같다.
“오늘 마리스는 탈출해 챌린지로 핫한 아이돌 테오라와 함께했습니다. 신인 아이돌의 패기와 개성, 풋풋함을 엿볼 수 있었는….”
끝맺음 말을 하는 한재오 MC님과도 헤어져야 할 때가 다가왔다.
원래 미담만 잔뜩 쏟아지는 분이셨다. 잠깐 대화를 나눠본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 마리스를 본 시청자분들은 귀여운 친구들에게 빠지게 되겠죠. 여기까지 MC 한재오.”
“계림.”
“술술.”
“테오라였습니다!”
나눠서 각자의 이름을 밝히고 이 프로그램의 시그니처 인사를 하기 위해 다 함께 입을 모았다.
“마이 리틀 트윙클 스타! 본방 사수! 반짝이는 스타와 만날 다음 금요일 밤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