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65
콜라보 무대 (1)
“뭐라고요? 답답? 꼭두각시?”
“뭐. 내 말이 틀렸어, 주여주?”
아이돌을 소속사에 의해 만들어진 인형으로 보는 다크래빗 선배님의 시선에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돌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아이돌을 키우는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아이돌에게 자유를 제한해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니까.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춤과 노래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쪽엔 무지해지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꼭두각시는 너무 심한 발언이었다.
다크래빗 선배님과 주여주 선배님, 내가 함께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대로 괜찮을까.
첫인상부터 망쳤다는 것 하나는 분명했다.
일단 인사부터 해야 할 것 같아서 입술을 열었는데 돌아오는 건 인사가 아니라 타박이었다.
“쯧쯧. 아이돌한테 편견이 안 생길 수가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그저 선배님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다크래빗 선배님은 래퍼로 데뷔해서 퍼포먼스 쪽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분이었다.
작곡과 노래, 춤을 비롯한 모든 작업에 손을 대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했다.
초록 형이 주입식으로 가르쳐준 정보에 따르면, 다크래빗 선배님은 특이한 케이스였다.
데뷔한 과정도 다른 래퍼들과는 일반적이지 않았고 온갖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들었다.
현재는 힙합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래퍼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들었다.
자기 힘으로 험한 풍파를 이겨낸 사람에게 아이돌은 온실 속의 화초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다크래빗 선배님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선배님.”
“내가 뭘 함부로 말했는데? 답이 나와 있는 문제가 있는데도 소속사에 따지지 못하는 거 아니야? 내 말이 틀려?”
“…그쪽이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어요. 그러니까 닥쳐줬으면 좋겠는데?”
주여주 선배님은 기분이 상한 듯 팔짱을 끼고 다크래빗 선배님을 노려봤다. 꾹 다문 입술이 비틀렸다.
“말이 짧다? 게다가 그쪽?”
“왜? 내가 선배잖아?”
다크래빗 선배님의 나이가 더 많지만, 데뷔일 기준으로 하면 주여주 선배님의 경력이 길었다.
“웃기네, 주여주.”
두 분 사이에 살벌한 공기가 흘렀다.
이래서 멋진 콜라보 무대를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두 분 모두 프로니까 어떻게든 끝낼 수는 있겠지만, 그게 성공적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진정하세요. 저희 여기 놀러 온 거 아니니까요.”
“와, 얘 순진하게 생겨서 세네?”
“이원 씨. 초면에 시비 거는 인간 때문에 예민해졌나 봐요. 미안해요.”
“하? 놀고 있네. 답답해서 한마디 했는데 그게 무슨 시비야?”
“입 닥치죠? 만나자마자 아이돌 비하한 분이 누군데.”
방긋방긋 웃으면서 받아치는 주여주 선배님은 만만치 않았다.
다크래빗 선배님은 입으로 바람을 불어 앞머리를 넘겼다.
“하! 일 얘기나 하지? 안 바쁘냐?”
우리는 연습실 한편에 놓인 소파에 마주 앉았다.
나는 실랑이에서 살짝 빗겨나 있어서 곤란하긴 했어도 금세 차분해질 수 있었다.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던 두 분은 적당히 타협하곤 일 얘기로 넘어갔다.
“강렬한 걸로 가지? 어차피 딱 한 번하고 끝나는 무댄데 기억에 남는 게 좋지. 섹시 컨셉도 괜찮고.”
“섹시? 우리가 하는 얘기 들은 거 같은데 그 지긋지긋한 섹시 컨셉으로 가자는 소리가 나와? 또라이 아냐?!”
곡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신경전은 이어졌다. 날 선 말이 오가고 양쪽 모두 뾰족한 태도였다.
“새로운 시도를 해볼 좋은 타이밍이 아닐까요?”
소속사의 은근한 강요로 비슷비슷한 컨셉의 앨범밖에 낼 수 없었더라도 콜라보 무대까지 간섭할 것 같진 않았다.
주여주 선배님 혼자가 아니라 다크래빗 선배님과 내 의견도 들어가는 무대니만큼 한 사람의 의견만 고집할 순 없으니.
“새롭고 강렬한 무대라면 다크래빗 선배님도 만족하시겠죠?”
난 아직 무대 경험이 선배님들처럼 많진 않다. 어떤 무대를 보여주든 팬들에겐 새로운 모습일 거다.
테오라 멤버들이 아니라 다른 가수와 같이 서는 무대라는 것만으로도 색다를 테니 자유롭게 컨셉을 택할 수 있다.
“…그래. 그리고 다빗이라고 부르고.”
다크래빗은 발음도 어렵고 길고, 살짝 오글거려서 보통 다빗이라고 줄여서 부르고 있었다.
“네. 다빗 선배님. 두 분 요구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곡으로 정하면 되겠네요.”
“네 요구사항은? 우리 욕심만 차리고 어린애한테 양보하게 하는 건 쪽팔리니까 얼른 말해.”
“말해봐요. 이원 씨.”
“저는 음….”
망설이면서 내 생각을 꺼내놓자 두 선배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놀랄 만한 아이디어인가요?”
“미쳤네. 너 컴백한 지 얼마 안 된 거 내가 아는데? 와, 몸을 갈아 넣으려고 작정했나. 여기 나보다 더한 또라이가 있네?”
“이원 씨, 나 때문에 일부러 그런 얘기 꺼낸 건….”
“전부터 궁금했어요. 항상 저희 멤버들이랑만 곡 작업을 하니까 기준점이 잘 안 잡혀서요.”
다빗 선배님이 어처구니가 없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역시 무리이긴 한가….
“아까 했던 말 취소. 아이돌이 다 회사 뜻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는 아니네. 꼭두각시가 이런 미친 짓을 시도할 리가!”
“이원 씨….”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다빗 선배님을 뒤로하고 주여주 선배님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괜찮겠어요? 콜라보 무대 전체를 프로듀싱 해보고 싶다니….”
“괜찮지 않을까요? 다른 과정을 짧게 줄여주신다면요.”
곡과 컨셉 선정 같은 협의가 필요한 부분만 빨리 끝내주면 가능할 것 같다.
테오라 일정이 있어서 빠듯하겠지만, 콜라보 무대 준비로 빼둔 시간을 활용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일단 원하는 컨셉부터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거기에 맞는 곡으로 추천할게요.”
숨 쉬듯 들어왔던 수많은 음악이 이럴 땐 도움이 됐다.
어이없어하는 시선을 잠깐 받았지만, 생각보다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유명한 곡을 편곡하는 건 순식간이겠지? 너 음악 천재라며?”
저 소문은 도대체 어디까지 퍼져나간 건지 모르겠다.
힙합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는 다빗 선배님이라 알고 있는 거였으면 그나마 다행이겠는데.
“…난 우울하고 다크한 컨셉이 해보고 싶어.”
주여주 선배님의 발언에 여러 곡이 머리를 스쳐 갔다.
강렬하게 뇌리에 새겨질 수 있으면서 퍼포먼스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포텐을 가진 곡….
“이 곡 어떠신가요?”
폰에서 찾은 곡 ‘Myth’를 보여주니 두 사람의 얼굴이 애매하게 변했다.
“편곡을 한다고 해도 좀….”
“가사는 그럴듯한데, 애니 OST를? 게다가 댄스 발라드잖아, 이 곡?”
“잠시만요. 이 키보드 잠시 빌려도 될까요?”
미리 노트북을 가지고 오긴 했지만, 작곡 프로그램보단 키보드가 훨씬 편했다.
원곡의 악보는 머릿속에 있고, 편곡 방향도 명확하게 나왔다. 가볍게 들려주는 거야 아주 간단한 일이다.
“가볍게 칠 테니까 일단 이걸로 느낌만 봐주세요.”
두 손을 키보드에 올리고 숨을 들이켰다.
편곡된 느낌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노래도 얹기로 했다.
머리에 그려지는 가상의 악보대로 건반을 치고 노래해야 해서 집중하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In a miserable mystery myth, miserable mystery myth….”
이 팝송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OST로 작곡된 곡이다. 신비로운 전설을 찾아 나서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영화가 흥행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곡이기도 했다.
이 곡은 전설의 왕국이 멸망에 이르게 된 비밀이 밝혀지는 클라이맥스에 등장했다.
한동안 OST 차트 상단에 고정되다시피 했던 곡이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주 타겟층인 영화라 선지 노래의 멜로디는 밝았지만, 가사가 영어로 쓰인 탓에 그 심상이 잘 전달되지는 않았던 곡이기도 하다.
분위기를 보여주기 위한 맛보기여서 노래는 금방 끝났다.
“…이런 느낌인데요. 어떨까요?”
“와, 이 자식. 와, 진짜 이걸 뭐라고 해야 돼? 와 씨.”
“고마워요! 내 마음에 들어갔다 나온 거 같아요! 원곡만 떠올렸을 땐 반신반의했는데, 직접 들으니까 알겠어요. 이원 씨가 어떤 이미지를 그렸는지!”
“왜 아이돌이냐, 너…?”
다빗 선배님의 다른 발언보다도 지금의 발언이 더 기분 나빴다.
왜 아이돌이냐니? 아이돌을 얼마나 낮춰보는지가 고스란히 보였다.
“다빗 선배님.”
“무슨 말이 그래? 아이돌은 천재면 안 돼? 다빗 너 사고방식 진짜 올드하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먼저 주여주 선배님이 받아쳤다.
“뭐?”
“네가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아이돌은 만능이어야 성공할 수 있거든?”
아이돌로 데뷔하는 것부터 경쟁의 연속이고 거기서 살아남는 건 더 어렵다고 주여주 선배님이 자신의 경험담을 풀었다.
다빗 선배님은 그 얘기를 조용히 듣다가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렸다.
“내가 말실수한 거 같네. 미안하다. 함이원, 주여주.”
다행히도 다빗 선배님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과받겠습니다.”
나이 어린 선배인 주여주 선배님은 마음 넓게 한번 용서해주겠다면서 경고했다.
“한 번만 더 아이돌 우습게 봐라? 그러면 내가 선배 무서운 거 알게 해줄 테니까.”
“네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콜라보 무대를 위한 회의는 계속됐다.
다른 곡 후보도 제시하려고 했는데, 두 분 다 강력하게 이 곡이면 된다고 하셔서 일단 곡은 ‘Myth’로 정해졌다.
“방금 들려준 방향으로 편곡하면 메인은 아니어도 섹시 컨셉이 들어갈 수밖에 없겠는데?”
“당연히 괜찮아. 나도 청순 발랄 같은 컨셉은 나랑 드럽게 안 어울린다는 거 아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주여주 선배님은 섹시 컨셉이 싫다는 게 아니었다. 자가복제 이야기를 듣지 않기를 바라는 거였지.
“절제된 섹시함? 거기까진 나쁘지 않지. 난 대놓고 보여주는 편이었기도 하고.”
“섹시하지 않기는 어렵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여주인데.”
마냥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여주 선배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섹시하고 멋있다고 팬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곤 하니까.
“…칭찬?”
“칭찬이지. 아까 한 말, 일부러 그랬어. 솔로로 활동하는 여가수 중에 너만큼 승승장구하는 가수 없는데 쓸데없는 고민하는 게 아니꼬워서.”
“…….”
둘 사이에 오묘한 기류가 흘렀다.
아까부터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함이 둘 사이에 있었는데, 이젠 확실히 알겠다.
다크래빗과 주여주 선배님 두 분 사이에 스파크가 튀었던 게 아닐까.
썸타는 커플 틈에서 눈치 없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도 약간 소외감이 드는데….
여기 오기 전엔 텃세와 기 싸움 같은 걸 상상했는데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긴장감 넘치긴 했어도 남녀 간의 긴장감이었다.
“긴장감이라….”
무대에 서게 될 두 사람 사이의 텐션을 이용해 디테일을 살릴 방법이 떠올랐다. 꽤 까다로운 작업이 될 듯했다.
하지만 나만 빼놓고 둘만의 세계를 만든 두 선배님은 내 심술을 받아줘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