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236
콜라보레이션 (2)
일단 초록 형의 아이디어를 듣고 나서 판단하기로 했다. 그럴듯한 방법이라면 응용해볼 수도 있으니까.
“나도 궁금해! 뭔데? 뭔데?”
“로티플로보다 더 막 나가는 거. 막장엔 막장이 먹히는 법 아니겠어?”
“…막 나가라고?”
어떻게 해야 막 나가는 걸까? 평범하게 살아와서 그런지 상상도 잘되지 않았다.
예상외의 행동을 계속 보여줘야 하는 걸까?
“예를 들자면, 충동적으로 불쑥불쑥 튀어 나가. 행위 예술처럼 아무 데서나 춤추고 노래 불러. 아니, 이런 건 너무 약하다. 좋은 아이디어 없어?”
“애착 인형을 꼭 껴안고 만나는 건 어때? 그 인형이랑 대화하면 더 좋고! 그쪽에서도 한눈에 알아보지 않겠어? 이원 형이 보통은 아니겠다고!”
…인형을? 이 나이에? 시커먼 사내자식이?
“그건 아니야….”
“극단적인 기분파처럼 행동하는 건 모범생 이원이가 시도하기엔 너무 어려운데?”
“아니야, 서혼 형. 함이원이 사람 가려서 그렇지. 얘도 만만찮은 괴짜야.”
“내가 왜?”
어리둥절했다. 내가 괴짜라니. 그럴만한 일이 없는데…. 애먼 사람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나가던 길에 작업실에 들렀더니 함이원이 한창 집중하고 있더라고. 바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의자에서 일어나서 대형 스피커를 분해하더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스피커를?”
“분해하는 시늉만 하는 게 아니라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더니 상쾌한 소리가 난다나 뭐라나.”
“…진짜로 그랬어? 이원아.”
“작업 막히면 가끔 하는 일인데. 이상해?”
꽤 오래된 습관이다. 어릴 적엔 스피커를 분해했다가 고장 낸 적도 많았다. 그 덕인지 이제는 거의 전문가가 됐다.
“이원 형! 진짜로 상쾌한 소리가 나?”
“응.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악기를 깨끗이 닦는 것처럼, 스피커도 분해해서 내부 구석구석 청소해서 나쁠 건 없다. 난 좀 자주 하는 편이긴 해도….
“천재다운 기행 같기도 하고?”
“그뿐이면 다행이게? 저번엔 나한테 어떤 곡 들려줬는지 알아? 무려 변비 탈출 송이라더라.”
“아하하, 이원아. 그런 곡은 언제 만들었어?”
“팬카페 들어갔다가 어떤 분이 변비로 고통받고 있다길래….”
“누구신지 당사자가 알면 수치사 당하겠는데?”
“왜 수치스러워?”
“함이원 넌 모르는 채로 있어. 그게 도와주는 거니까.”
“…?”
“어쨌거나 핵심은 그 또라이가 뭔가 저지르기 전에 이원이 네가 선수 쳐야 한다는 거지.”
의미는 이해했는데 과연 그걸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을까?
“로티플로가 의외로 얌전하고 예의 바를 수도 있잖아.”
“생각을 다 하기도 전에 내키는 대로 행동부터 하고 보는 스타일이던데 잘도 얌전하겠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지.”
나도 큰 기대를 하고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착잡하지? 콜라보 작업물만 잘 나오면 다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미리 걱정부터 한다고 해결돼? 어떻게든 될 거야! 케세라세라!”
“정 힘들다 싶으면 SOS 요청해. 우리가 가서 혼내줄게. 우리 이원이 괴롭히지 말라고.”
“나도 불러. 재밌을 거 같으니까.”
6대1이면 감당 못 할 상대가 있을까!
17대1로 싸워서 이긴다는 얘기는 전설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적으로는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는 엔딩을 맞이할 거다.
멤버들이 뒤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당장 로티플로가 온대도 하나도 겁나지 않을 것 같았다.
멤버들에게 약속을 받아낸 후에 다시 로티플로 채널에 들어갔다.
일상을 담은 영상을 보다가 이게 연출 없는 진짜인가 놀라기도 했다. 감당 못 할 괴물은 아니어도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돌이킬 수 없으니 초록 형이 알려준 비법이라도 진짜 써야 하나?
* * *
로티플로의 공항 도착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가거나 하진 않았다. 정확히는 마중 나가지 못했다. 비행 시간을 상의 없이 예정보다 당기는 바람에 내 스케줄이랑 겹쳐버린 탓이었다.
“왜 비행 시간을 당겼는지 들으셨어요?”
“그게, 한국으로 바로 못 오게 했더니 갑자기 50년 전통의 타코야끼를 먹어야겠다면서 일본으로 갔대요. 원래는 어제저녁까지 있다가 오는 일정이었는데, 놀러 갔다가 사슴한테 테러당했다나?”
“네? 테러요? 괜찮은 거 맞아요?”
“매니저님한테 그렇게만 전달받아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요. ”
로티플로가 도착하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슬쩍 물어봐야 할듯싶다.
“매니저님이 다 안쓰럽다니까요. 막무가내로 나오면 말리기도 쉽지 않으실 텐데….”
미국에선 매니저가 아니라 법적 계약이나 비즈니스 관련된 사항을 대행하는 에이전트가 더 일반적. 그렇지만 로티플로는 특이하게 에이전트가 아니라 전담 매니저를 두고 있었다. 사람들이 로티플로의 매니저를 ‘보모’라는 별칭으로 부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일정이 살짝 당겨지긴 했어도 꼬이지 않은 게 어디예요. 오늘 우리는 로티플로한테 서울 구경 제대로 시켜주기만 하면 돼요.”
우리는 로티플로가 숙소로 잡은 별 다섯 개짜리 그랜드 하옛트 호텔 로비로 향하는 중이었다. 일부러 오전 11시로 느긋하게 약속 시간을 잡아뒀다.
오늘 서울 투어는 로드 매니저인 두열 형이 운전을 해주기로 해서 편안하게 다닐 수 있을 듯했다.
“재희 누나. 미리 연락해보는 게 어떨까요?”
편견이라고 하면 편견이겠지만 로티플로는 시간을 잘 지킬 타입은 아닐 것 같았다.
“약속 펑크 나면 안 되니까 미리 전화해볼까요? 잠시만요.”
로티플로의 매니저와 영어로 통화하는 재희 누나의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졌다. 그리고 몇 번이고 반복되는 되물음과 어처구니없다는 한숨. 뭔가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하게 했다.
[…You have no objection, right?]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며 통화를 끝낸 재희 누나는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에요?”
“술병 나서 도저히 움직일 컨디션이 아니라네요. 오늘 서울 투어는 취소예요.”
“술병이요…? 제가 제대로 들은 거죠?”
준비 다 해서 약속 장소에 거의 다 도착해가는데 갑자기 파투라니. 기분 상할 일이긴 한데 올 게 왔다는 느낌이다.
“어제 치맥 시켜서 축구 경기 보다가 폭음했대요. 평소엔 이렇게 안 마신다면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치킨이 너무 맛있어서 그런 거래요.”
“…치킨이 맛있긴 하죠.”
치킨은 이미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에서 먹어보고 가야 할 음식으로 손꼽힌다.
바삭한 후라이드와 종류를 셀 수 없는 다양한 소스가 묻은 양념치킨을 누가 싫어할까. 그게 미국에서 온 변덕스러운 아티스트라고 해도 예외는 없었다.
치킨 맛에 홀려 폭음해서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린다는 건 프로답지 못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술병 난 사람을 데리고 서울 투어를 해봤자 차 안에 구토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테니까.
재희 누나가 나중에 콜라보 작업 끝나고도 여유가 나면 같이 하루 놀아도 될 거라고 귀띔해주셨다.
“내일 작업실에서 어색할 수도 있는데 이원 씨 믿어봐도 돼죠? 이원 씨랑 달리 함 프로듀서님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분이라고 들었으니까요.”
회사에 도대체 무슨 소문이 도는 걸까. 프로듀싱할 때 아주 약간 엄격할 뿐인데 허무맹랑한 이미지가 생성된 것 같다.
“돌아갈 때 맛있는 거나 사갈까요? 스트레스 풀 겸.”
“당연히 좋아요.”
“숨겨진 찜닭 맛집 있는데 특별히 이원 씨한테만 소개할게요!”
금방 기운을 차린 재희 누나를 따라 맛있는 점심을 포장해서 연습실에 깜짝 방문했다. 멤버들이 나보다 내 손에 들린 찜닭을 더 반기긴 했어도 괜찮은 하루였다.
내일 로티플로와 제대로 만나게 되면 본때를 보여줘야지.
* * *
로티플로와 처음 대면하는 장소는 회사지만, 콜라보 작업을 주로 하게 될 장소는 바로 내 작업실이었다.
회사 안에도 작업할만한 공간이 있지만, 내 작업실을 골랐다. 익숙한 공간에서 일하면 능률이 오를 것 같아서.
내 작업실은 날이 갈수록 장비가 업그레이드돼서 마스터링 작업만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곡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음원 수익을 전부 작업실에 쏟아부었다는 걸 알게 된 멤버들이 기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미래를 위한 투자. 음악의 퀄리티가 높아진다는데 망설일 리가 없었다.
“같이 점심 먹으면서 안면 트고 커피 마신 다음 작업실 가면 되겠네요. 그쪽에서 많이 치댈 텐데, 적당히 받아주세요.”
내가 사교적이진 않아서 친화력 끝판왕 강아지처럼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스타일이 오히려 편하다. 부담감이 없다고 할까.
“…재희 누나, 이따가 제가 평소답지 않더라도 눈 감아 주실래요?”
“얼마든지요! 그런 일을 예고하고 양해 구하는 게 귀여우니까 비밀 엄수할게요. 로티플로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자세한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지도 않았건만 무슨 연유에서 나온 계획인지 감을 잡으신 듯했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역지사지가 답이죠. 하루가 멀다고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데 본인도 당해봐야죠.”
재희 누나는 어제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투 낸 원한을 잊지 않고 나를 응원해줬다. 기선 제압을 위한 작전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복수가 되어버렸다.
괜한 책임감을 느끼며 로티플로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로비 오른쪽에 자리 잡은 카페에는 손님 몇 분이 우리를 힐끔댔다.
“참, 이원 씨. 로티플로랑 하눌 엔터랑 협업한다고 벌써 기사 나간 거 아세요?”
아직 나랑 같이 협업해서 테오라 곡을 만든다는 구체적인 사항까지 알려지진 않았단다.
“아뇨. 그랬어요?”
“누가 유명 인사 아니랄까 봐 입국할 때부터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왔어요. 이원 씨랑 만나는 게 알려지면 어차피 드러날 일이라 회사에서 먼저 기사 냈어요.”
현명한 선택이었다. 로티플로는 축구공 같은 사람이라 ‘몰래’나 ‘조용히’ 같은 단어와는 거리가 머니까.
“반응은 어때요?”
“주로 결과물이 기대된다는 분위기이고, 누구랑 협업하는지 몰라도 명복을 빈다고….”
“…….”
원래의 로티플로가 어떤 인간인지 아는 사람들에겐 내가 희생양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이원 씨나 테오라랑 협업한다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아니길 바란다네요. 아하하….”
내가 내 무덤을 팠나…?
“열심히 말릴 걸 그랬나요? 그치만 하눌의 제1원칙 아시잖아요. 아티스트 의견 존중.”
“말렸어도 고집부렸을 거예요.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돌이킬 수 없으니 열심히 해봐야겠다. 대비책도 마련해뒀으니 어떻게든 될 거다.
“아, 저기 오네요.”
정문에 선 SUV에서 비니를 쓴 젊은 남자가 내렸다. 익살스러운 웃음과 함께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로티플로의 첫인상은 ‘장난꾸러기 같다’였다.
비니로 가려지지 않은 곱슬머리와 눈 주위의 주근깨가 익살스러움을 더했다.
[Hola! 함함은 실제로 보니까 애송이 같네!]악의가 있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거슬리는 것투성이였다. 특히 ‘함함’이라는 의아한 호칭.
[이원이라고 불러요. 그렇게 부르면 대답할 일 없을 테니까.] [귀엽잖아, 함함! 한국에는 함함하다는 예쁜 단어도 있다고 들었는데? 왜 싫어해?]굴러가는 영어 발음에도 능청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말투에도 자유분방한 성격이 드러났다.
지금이 내가 괴짜를 연기해야 할 타이밍이려나?
자, 그럼….
[안 싫어해요. 나한테 그보다 멋있는 별명이 어울려서 그렇지. 로로, 밥이나 먹어요.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 스타일로. 이의 없죠?] [로로? 내 애칭이구나! 이의? 그런 건 원래 없어!]이의가 없다면 생기게 만들어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