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176
176. 불길한 징조
우문한도는 그 길로 자기 방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무위도장이 그처럼 황급히 떠나
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워낙 용의주도한 인물이므로 그런 말은 소영에게 비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며칠 동안은 소영에게 있어서는 무공치 발전을 기할 수 있는 중요한 휴식시간이
기 때문에 조금도 그의 머리 속에 잡념을 불어넣어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문한도는 자신이 품고 있는 의혹을 조금도 소영에게 나타내지 않았다.
이틀 후에 백리빙은 이미 이혈신공을 터득했다. 이번에는 소영이 그 경문에 적힌 무공에 호기심
을 느껴 연마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우문한도는 마문비를 반나절 동안이나 설복시켜 다시 소영의 부모를 은밀한 곳에 모셨
다. 그래서 그들 부자의 상면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하여 소영으로 하여금 조용한 마음으로 경문에 적힌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러 이 개월이란 세월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때는 이미 소슬한 금풍
이 부는 늦가을이 지나 쌀쌀한 초겨울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소영은 무공을 연마하느라 두 달이란 세월이 언제 흘러갔는지도 몰랐지만 우문한도만은
하루가 일 년처럼 지루함을 느꼈다.
그는 그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풀어 놓아 강호의 동정을 살피게 했으며 삼 일마다 강호의 동태
를 보고하도록 했다.
또 한편으로는 소영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서 전력을 다했던 것이다. 다행히 마문비, 당원
기, 육괴장, 초곤산, 사마건 등 열한 명의 고수들이 남아서 그의 부담을 많이 덜어주긴 했지만, 우
문한도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각 방면으로부터의 보고를 종합 검토 하여 강호에서 바야흐로 큰 변
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예측했다.
그러나 각대문파의 고수들이 연합하여 백화산장의 잔당을 색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목풍의
소식만은 여전히 들을 수 없었다.
우문한도는 이처럼 과도한 정신적인 부담을 혼자 감당해 나가면서도 강호에서 곧 일어나게 될
회오리바람을 남에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가 일단 그런 말을 입 밖에 낸다면 곧 소영의 귀에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
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갑자기 서북풍이 휘몰아치더니 잿빛 구름이 몰려왔다. 대낮인데도 캄캄할
정도로 먹구름이 손 천지를 덮었다.
한바탕 큰비라도 쏟아질 모양이었다. 이 때 전엽청이 불쑥 나타났다.
우문한도는 곧 전엽청을 밀실로 안내했다. 전엽청은 손수건을 꺼내 얼굴에 흐르는 땀방을을 훔
치면서 말했다.
“소대협이 이 곳에 있습니까?”
전엽청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런 말을 끄집어 내는 것을 보니 매우 급한 사정이 있어 보였다.
우문한도는 가볍게 헛기침을 몇 번 한 다음 입을 열었다.
“소대협은 지금 한창 두 가지의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중이므로 방해를 해서는 안 되오. 그러니
무슨 일이든 내게 먼저 가르쳐주시오.”
전엽청이 곧 말을 이었다.
“우문선생께서는 그 동안에 이 마가장(馬家莊)에서 한 번도 떠나시지 않았던가요?”
우문한도는 말했다.
“자금도(資金刀) 마장주께서는 이 정원을 천하영웅들이 모일 장소로 제공한 뒤 어디론지 이사를
가 버렸소. 그리고 소대협이 구궁산에서 돌아온 후 몇가지 무공을 연마하는 바람에 나와 마문비,
초곤사 등은 계속 이곳에 남아 있었지요.”
이 때 전엽청은 옆에 서 있던 시동에게 손짓을 했다.
“너는 나가 있거라.”
시동은 곧 대답을 한 다음 물러났다.
전엽청은 그제야 마음 놓고 입을 열었다.
“초노선배님은 어디 계십니까?”
우문한도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모두들 소대협이 무공을 연마하는 것을 보자 흥이 나서 매일 뒷뜰에 모여 서로의 절기를 겨루
며 무공연습을 하고 있다오.”
전엽청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문선생, 저는 사형의 명령을 받들고 왔습니다. 급히 전할 말씀이 있어서요.”
우문한도가 반문했다.
“심목풍에 관한 소식이오?”
전엽청은 약간 놀라는 기색이었다.
“우문선생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던가요?”
“그저 짐작해 봤을 뿐이오.”
전엽청이 말을 이었다.
“심목풍은 죽지 않았습니다.”
“영사형께서 그를 보셨단 말이오?”
전엽청이 고개를 끄닌였다.
“네, 봤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심목풍은 사형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우문한도가 다시 물었다.
“심목풍은 지금 어디에 있다는 거요?”
“설봉산에 있다고 합니다. 사형이 본 바로는 그는 매우 건강한 걸음걸이에 상세가 다 나은 것
같더랍니다.”
우문한도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면 백화산장읜 잔당들을 죽이러 간 각대문파의 고수들도 모두 설봉산에 있소?”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무당파를 제외하고는 설봉산에는 다른 문파의 사람들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문한도가 낮은 목소리로 전엽청에게 말했다.
“제 사형의 생각은 우문선생과 꼭 반대가 되는 격이군요.”
우문한도가 반문했다.
“무위도장께서는 무슨 고견을 말씀하셨는지요?”
전엽청이 말을 이었다.
“저의 사형의 의견은 심목풍이 이제 막 상세가 회복되어 뿔뿔이 흩어진 자기의 부하들을 불러
모으려 하고 있으므로, 이 순간에 빨리 손을 써서 그를 죽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천하 고수
중에 오직 소대협만이 그에게 심리적인 위협을 가할 수가 있으므로 소대협이 설봉산에 나타나기
만 한다면, 실은 우리 무당파가 전력을 기울여 심목풍을 물리칠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우문한도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영사형의 견해에도 확실히 일리가 있소만, 나의 견해는 조금 다르오.”
전엽청은 적이 의아스런 모양이었다.
“우문선생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내 생각으로는 심목풍이 상처도 완치되었고 하니 소대협이 아주 무공 연마를 완수한 다음 정식
으로 심목풍을 찾아 가서 결판을 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소.”
전엽청은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이곳에 명을 받들고 올 적에 사형께서는 재삼 저에게 당부하기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소
대협과 같이 오라고 했는데 우문선생의 생각이 또한 그러하다니 심히 난처하게 됐군요.”
우문한도는 담담하게 웃었다.
“그렇다면 전대협의 의견은 어떻소?”
“저는 우문선생의 지략에 일찌기 존경해 온 터지만 사형의 명령이 또한 그러하오니 어떻게 해서
든 소대협과 함께 갔으면 합니다.”
우문한도가 반문했다.
“사형께서는 전대협을 이곳으로 보낼 적에 나와 상의해 보라는 말은 하지 않았소?”
전엽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습니다. 사형께서는 우문선생을 만나서 잘 의논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문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소이다. 영사형께서 나와 의논해 보라고 한 뜻은 나의 의견을 중시하라는 말이기도 하
오.”
전엽청이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선생께서는 지금 소대협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반대하십니까?”
우문한도는 적이 불쾌한 빛을 보이며 말했다.
“영사형께서는 전대협을 이곳으로 보낼 때 나의 뜻이야 어떻든 간에 소대협을 데리고 오라고 하
셨소?”
전엽청이 대답했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어쨌든 소대협과 함께 오라고 했습니다.”
우문한도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전대협, 나는 여러 가지를 신중하게 생각해 봤소이다. 지금 만일 소대협이 설봉산으로 가게 되
면 소대협이 지금 연마하고 있는 무공의 성취에 영향을 끼친 뿐만 아니라 특히 금후의 무림 대국
이 극히 불리하게 되기 쉽지요.”
전엽청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적이 무방비 상태하에 있을 적에 일거에 무찔러 버리는데 저희들에게 무슨 불리한 영향이 미치
게 된다는 겁니까?”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소대협이 지금 무슨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로는 반드시 심
오한 무공을 연마하고 있는 것 같소이다. 근 두 달 동안치나 전 신경을 쏟아서 이미 무아지경에
달해 있소이다. 이런 경우는 무공의 연마에 있어서 극히 찾아 보기 힘드는 망아지경이라는 것인
데, 만일 지금 심목풍의 소식을 알린다면 그는 틀림 없이 그 망아의 경지에서 깨어나 마음의 안
정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무공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맙니다.”
전엽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의 뜻은 결국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우문한도는 담담하게 웃었다.
“잠깐만 참자는 것이오. 전대협이 돌아 가거든 영사형에게 내 말을 전해 주시오. 될수 있는 대로
그 심목풍과 충돌이 없도록 참고, 그저 몰래 그의 행동만을 감시하라고…”
우문한도는 말을 잠시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만일 내 추측이 틀림 없다면 심목풍은 반드시 설봉산에 은신처를 마련해 놓고 있을 거외다. 심
목풍의 위인으로 볼 때 그가 백화산장이란 조직 하나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거요.”
전엽청은 그 말을 듣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문선생의 말씀이 옳습니다.”
“또 한 가지 더 있소이다. 이 말을 들으면 전대협은 소대협을 설봉산으로 데리고 가려는 고집이
풀릴 것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소대협의 칼에 상처를 입었으며 동시에 소대협에게도 부상을 입힌 그 화상이 심목풍과 함께 있
을 거라는 점이외다.”
전엽청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그 화상도 상세가 회복되어 함께 있다면 소대협이 당장 쫓아간다고 하더라도 그들 두 사
람의 적수는 될 수가 없을 테니 소용 없는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바로 그 점이오. 그러나 잠시 동안만 더 참아 소대협이 무공의 연마를 성취한 다음이면 더 이
상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오.”
우문한도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내가 몇 마디 물어선 안 될 말인 줄 알면서도 물어 보고 싶은 게 있소. 이다. 전대힙이 대답을
안해도 좋소이다. 대답을 해 준다면야 더욱 좋겠지만…”
전엽청이 곧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영사형께서 당신네 무당 고수들을 데리고 설봉산으로 달려간 것은 누구의 부름을 받고 간 것이
오?”
전엽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무림의 선배라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사형께서는 언제든지
어떠한 계획이라도 전부 저에게 알려 주셨는데 이번 일만은 이상하게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우문한도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다시 물었다.
“당신네들도 그 무림의 고인을 만나 보았소이까?”
전엽청은 역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우문한도가 다그쳐 물었다.
“당신네들이 그곳에가 있는 시간이 퍽 오래되었잖습니까?”
전엽청의 대답,
“그렇습니다. 사형은 한 장소를 지정해 두고 우리들에게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 달 동안 줄곧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우문한도가 말을 이었다.
“영사형께서 그러시는 걸 보면 반드시 무슨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오. 그러니 전대협은 먼
저 돌아가기 바라오. 소대협의 무공이 근일 내로 그 성취를 보게 될 테니 과 때가 되면 내가 틀
림없이 소대협과 함께 달려가겠소이다.”
전엽청은 망설이는 빛이었다.
“제가 돌아가서 사형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솔직이 말씀 드리시오. 내 말을 그대로 전해 주기 바라오.”
전엽청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매우 난처하다는 표정이었다.
우문한도는 담담하게 웃었다.
“전대협,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전대협이 사실대로 영사형에게 말씀 드리면 틀림없이
양해해 주실 겁니다.”
전엽청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선생의 뜻이 정 그러시다니 어쩔 수가 없군요. 그렇지만 한 가지 선생께서 시간을 약
속해 주십시오. 언제쯤 오시겠다고…”
“그건 저로서는 대답하기 곤란합니다. 소대협의 무공 연마가 언제 성공할지 장담할 수가 없으니
까요.”
우문한도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허지만 제가 보기로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소. 길어야 한 달 정도겠지요.”
전엽청은 깜짝 놀랐다.
“한 달 후라고요?”
우문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내 생각에는 앞으로 한 달을 더 넘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엽청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너무 시일이 긴데요.”
우문한도는 말을 받았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오. 어쩌면 며칠만에 끝날지도 모를 일이고… 그 무공이 언제쯤 성취되리
라는 것을 한 마디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엽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보니 우문선생께서는 기한을 정할 수가 없다는 얘기군요?”
우문한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보아하니 무위도장이 단단히 일러 보낸 것 같구나. 만일 기한을 정해 주지 않으면 추근거리고
졸라댈 테니 차라리 기한을 정해 주는 것이 좋겠다.’
“마음 푹 놓고 떠나시오. 반달 내에 내가 그리로 갈 테니 전대협이 만날 장소를 알려 주시오. 그
리고 내가 한 말을 영사형에게 잘 전하시오.”
전엽청은 천천히 품속에서 봉투 한 장을 꺼내서 우문한도에게 건네 주었다.
“사형께서는 이미 설봉산의 근거지를 지도로 작성하여 이 봉투에 넣어 두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이 도형을 따라 찾으시면 우리들의 위치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문한도는 봉투를 받아 품속에 넣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대협, 빨리 떠나시오. 영사형께서는 당신이 돌아오기를 무척 고대하고 있을 거요.”
전엽청은 포권을 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전엽청은 말을 마치자 곧 성큼성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우문한도는 대문 밖까지 따라 나섰다.
“전대협, 편안히 가시오. 멀리 나가지 않겠소이다.”
전엽청은 그대로 걸음을 재촉했다. 우문한도는 전엽청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
가 한바탕 긴 한숨을 내쉰 다음 발길을 돌렸다.
원래 침착하기 짝이없는 우문한도는 한 가지 근심이 더 늘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시커멓게 먹
구름이 내리덮인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우문한도가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객실 안의 나무 의자에 소영이 언제 왔는지 앉아 있었다.
“소대협, 이곳에 온 지 오래됐소.”
“이제 막 들어오는 길입니다.”
우문한도는 그제야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군,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꼼짝없이 전엽청과 마주칠 뻔했군.’
우문한도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의자 위에 앉았다.
“소대협, 무공의 연마는 완성시켰소.”
소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전부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보름 이상은 더 걸려야 될 것 같습니다.”
우문한도는 속으로 매우 초조한 생각이 들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소대협, 마음 푹 놓고 무공을 연마하시오. 지금 강호는 평정돼 있으니 소대혐은 염려하지 않아
도 됩니다.”
소영이 입을 열었다.
“오늘도 심목풍에 관한 소식은 없습니까?”
우문한도는 말을 이었다.
“소대협은 무공을 연마하는 동안 절대로 마음을 딴 데 쓰지 마시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노선배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행방이 묘연하오. 여태껏 아무 소식이 없소이다.”
소영이 다시 말했다.
“조금 전에 제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마음 놓고 무공 연마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문한도가 반문했다.
“무슨 일입니까?”
소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손노선배님께서 떠나실 때 분명히 우문형에게 어디 가신다는 얘기를 했을 텐데…”
우문한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했소이다.”
“악낭자를 찾으러 떠났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개방의 근거지로 돌아가서 네 명의 개방고수들을 데리고 악낭자의 행
방을 찾아 떠났습니다.”
“아직도 못 찾았는지요?”
“거기에 관해선 나도 아직 소식을 못들었습니다. 아무튼 개방의 예민한 이목으로도 악낭자를 찾
지 못한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 악낭자를 찾을 만한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소영이 되물었다.
“손노선배님께서는 이미 악낭자를 찾으신 게 아닐까요?”
우문한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만일 그 악낭자를 찾으셨다면 벌써 소식을 전해 왔을 겁니다.”
소영이 말을 받았다.
“만일 그 소식이 들려오거든 곧 제게 알려 주십시오.”
“좋습니다. 소식이 있는 대로 곧 소대협에게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우문한도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강호에 이처럼 평온한 세월이 있기란 힘드는 일이니, 소대협은 그 동안에 몇 가지 무공을 연마
하기 바랍니다.”
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뚠한도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로는 강호가 이처럼 조용한 것은 한바탕 대폭풍이 휘몰아쳐 올 조짐이라고 생각합니
다. 머지 않아 더욱 큰 무림의 분쟁이 곧 강호에 펼쳐질 것 같습니다.”
“그것은 심목풍이 일으킬 폭풍이란 말이지요?”
“저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아직 확실한 대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과연 누가 그
폭풍을 휘몰아 올지…”
소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우문형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숨기는 것 같습니다.”
우문한도는 곧 말을 받았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하지만 사소한 일들로 소대협의 마음을 어지럽힐 생각은 없습니다.”
소영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무공을 연마하러 가야겠군요.”
소영은 말을 마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우문한도는 소영이 걸어 가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
음을 옮겨 방안으로 들어갔다.
우문한도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후 일 주일을 넘겼다. 이 일 주일 동안이 우문한도에게는 일 년
처럼 느껴졌다.
항상 지모가 샘솟듯 솟아 나오는 우문한도도 이 때의 심정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는 깊은 고민에 싸여 있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마문비 등의 군호들은 모두 서로의 무공을 소개해 가며 기분이 들떠 있었으므로 우문한도의 이
와 같은 침통한 심정을 알아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란 쉴새없이 흐르는 것이다.
그리고는 일 주일이 또 어느새 지나갔다.
우문한도와 무위도장이 만나기로 약속한 날짜는 바로 내일로 다가왔던 것이다.
우문한도는 오늘 밤에 길을 떠나야만 내일 약속한 시간에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
히 후원을 향해 걸어 갔다.
이 때 초곤산이 마침 자기가 그것으로 인해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자모철담(子母鐵聃)을 군호
들에게 시험해 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의 절기를 교환해서 가르쳐 주는 일로 말미암아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은 피차 서로
의 절기를 배을 수가 있게 되었구나. 초곤산의 자모철담만 보더라도 무림 내에서 초곤산을 제외
하고는 그것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모철담을 사용할 수 있는 고수들
이 상당히 많아지겠구나.’
우문한도는 상팔의 앞으로 다가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상형!”
상팔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더니 곧 벌떡 일어섰다.
“우문형!”
우문한도는 나직이 말했다.
“우리 다른 사람의 무공 연마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한쪽으로 가서 얘기합시다.”
상팔은 우문한도의 뒤를 따라 화원의 한 모퉁이까지 왔다.
“우문형, 무슨 분부라도 계시는지요? 우리들은 각자의 절기를 남에게 가르쳐 주기도 하며 또한
다른 사람의 절기를 배우기도 하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그 바람에 우문형에게 한 번 문안도 못
드렸군요.”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원 별말씀을…”
우문한도는 가벼운 헛기침을 몇 번 한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볼 일이 좀 있어 오늘 저녁에 이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상팔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나타내며 우문한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로챘다.
“우문형께서 가시다니요.”
우문한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잠시 며칠 동안 다녀 올 데가 있어서 그러는데… 오래 걸려 봤자 나흘 후면 다시 돌아올 수 있
을 것이오.”
상팔은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우문한도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께서는 어딜 가시렵니까?”
‘이 중주이고는 소영을 속이지 않는 사람들이므로 내가 만일 사실대로 얘기해 준다면 곧 소영에
게 알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몇 마디 거짓말을 해야겠구나.’
우문한도는 곧 입을 열었다.
“오래 전에 헤어졌던 친구를 만나러 가야겠습니다. 지금 강호는 조용하기 이를 데 없으니 제가
잠시 없더라도 별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간다고 하더라도 결코 일주일을 넘기지는 않
을 것입니다.”
상팔이 말을 이었다.
“선생께서는 우리 큰형님에게 말씀 드렸겠지요.”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소대협께선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무공 연습에 열중하고 있으므로 괜히 방해라도 될까
싶어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상팔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의 결정이시니 어련하시겠습니까만 강호의 대국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으니 우리
형님께서 선생의 절세적인 재능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선생은 약속대로 꼭 돌아와 주셔야 합니
다.”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내 나이 이미 환갑에 접어들었으나, 소대협께서는 아직 무림의 정의를 위하여 전력을 기울이고
있거늘, 내 전력을 기울여 죽을 때까지 소대협을 보좌할 테니 상형께서는 마음 놓으시기 바랍니
다.”
우문한도는 긴 한숨을 내쉰 다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가 간 뒤에는 상형과 두형이 좀 수고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우문한도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 강호는 평정돼 있고 이곳 마가장은 더욱 조용하지만 우리는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떠난 후 상형께서는 소대협의 신변을 보살펴 주기 바랍니다. 이 마가장이 주위에는 삼십 리
밖에 제가 매복을 해놓았지만 만약 일류 고수들이 쳐들어 온다면 그들의 능력으로는 발견해 내지
못할 우려가 많습니다.”
상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습니다. 선생께서는 안심하십시오. 하지만 속히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제가 이
무거운 중책을 벗어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돌아 오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 말씀은 제가 이곳을 떠났다는 사실
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마시고 비밀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상팔은 그 말을 듣자 의아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문형은 정말 옛친구를 만나러 가시는 겁니까?”
“상세한 얘기는 제가 갔다 와서 상형에게 자세히 일러 드리겠습니다.”
우문한도는 말을 마치자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 간단한 행장을 차린 다음 길을 떠나기로 했다. 밤을 새워 걸어 가야만 내일의 약속 시
간에 늦지 앉을 것 같았다.
우문한도가 채 십 리도 가기 전에 해는 이미 서산에 기울어졌다.
우문한도는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펴 보았다.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없었다.
그는 그제야 비로소 큰나무 밑에 가서 앉으떠 품속에서 전엽청이 준 봉투를 꺼냈다.
우문한도가 봉투를 뜯어 보니 그 안에는 간단히, 란 일곱
글자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우문한도는 다 읽고 난 다음 곧 편지를 태웠다.
이 때였다. 갑자기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나무 위에서 번개같이 내리덮쳐 타고 있는 편지
를 낚아 채는 것이 아닌가?
우문한도는 깜짝 놀라서 왼쪽 팔을 들어 일장을 쳐내고 오른손으로 재빨리 타고 있는 편지를 날
려 버렸다.
그러자 덮쳐 온 사람은 몸을 가눈 다음 뒤로 오 보 정도 물러났다.
“우문선생!”
우문한도는 어리둥절하며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우문한도는 순간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그 사람은 백리빙이었다.
백리빙은 생긋 웃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안에 무슨 비밀이 적혀 있길래 선생께서는 그다지 신중히 다루시나요.”
우문한도는 묻는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오히려 반문했다.
“낭자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지요?”
백리빙이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선생님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고…”
우문한도가 다그쳐 물었다.
“누구의 명령을 받았단 말이오?”
“그야 물론 소오빠의 명령이지요.”
우문한도는 약간 언성을 높여 말했다.
“소대협께서는 정말 저를 감시하라고 하셨습니까?”
백리빙은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제가 말을 너무 빨리 하느라고 빗나가고 말았어요. 선생을 감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을
보호하라고 하셨어요…”
우문한도는 말을 가로챘다.
“감시든 보호든 간에 그것은 말이 다를 뿐이고 어쨌든 대협께서는 나를 못 믿는다는 게 아닙니
까?”
백리빙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우문선생, 절대로 오해하지 마세요. 소오빠께서는 선생에 대한 신임이 두터울 뿐만 아니라 선생
에게 더 없는 관심을 갖고 계시답니다. 그리고 오빠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은
지금 여러 가지 고민을 간직하고 있으시면서 혹시 오빠의 무공연마에 지장을 줄까 싶어서 그 일
들을 오빠에게 얘기를 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우문한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빙그레 웃었다.
“소대협의 관찰력은 정말 대단하군…”
백리빙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빠는 선생님의 거동을 주의해 보라고 했는데 과연 오빠의 짐작이 들어 맞았군요.”
우문한도는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대협이 그토록 저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시니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돌아
가셔서 소대협에게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제가 옛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길면 칠일 짧으면 나흘
안에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백리빙은 그 말을 듣자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오빠는 선생 혼자서 모험을 하시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나는 단지 옛친구를 만나러 갈 뿐인데 모험은 무슨 모험입니까? 낭자는 가서 과렇게 말을 전해
주십시오.”
백리빙은 단번에 거절했다.
“안 돼요. 저 혼자서 따라 가는 것도 아닌데요.”
우문한도는 어리둥절했다.
“또 누가 왔단 말이오?”
백리빙은 여전히 생글거리며 말했다.
“선생께서는 모든 일을 귀신같이 알아 맞추시는데 이번에도 제가 누구와 같이 왔는지 한 번 알
아 맞춰 보세요.”
우문한도는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겼다.
“소대협께서 친히 오셨습니까?”
백리빙은 나무 위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빠, 내려 오세요. 우문선생께서 이미 알고 계시니…”
사람의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무성한 나뭇잎 속에서 소영이 뛰어 내려 왔다.
“저는 우문선생께서 무엇인가 저를 속이고 있다고 짐작을 생각했는데 과연 내 추측이 들어 맞았
군요.”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소대협의 생각도 점점 더 세밀해지는군요.”
이 때 백리빙이 불쑥 말참견을 했다.
“우문선생께서 이토록 혼자서 비밀리에 떠나시는 것을 보니 반드시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는
것 같군요?”
우문한도는 소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대협께서 이미 제가 볼일이 있어서 이곳을 떠난다는 것을 알아 맞춰으니 또한 제가 무슨 일
때문에 간다는 것까지 알아 맞춰 보십시오.”
소영이 말을 받았다.
“소제는 아직 우문선생과 같은 선견지명이 없습니다.”
“틀려도 상관 없으니 한 번 알아 맞춰 보시지요?”
소영은 잠시 무슨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무위도장께서 무슨 소식을 주었나 보지요.”
우문한도는 그제야 하하하 하고 너털웃음을 웃어젖혔다.
“잘 알아 맞추셨습니다. 제가 바로 그 무위도장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무위도장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설봉산에…”
소영이 말을 이었다.
“그분이 사람을 보내 선생을 모시러 왔습니까?”
“그분은 애당초 사람을 보내 소대협을 모시러 왔습니다. 그러나 소대협께서는 한창 무공을 연마
하고 있는 중이라 혹시 방해라도 될까 싶어 제가 보름 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돌려 보냈습니
다. 그런데 그 날짜가 되었으므로 제가 가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신의를 어길 수는 없
는 거니까요…”
“무위도장께서 제게 사람을 보낼 때는 반드시 중요한 일이 있어서일 텐데요…”
우문한도가 말을 이었다.
“그보다도 제가 먼저 소대협에게 한 가지 물어 볼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소대협께서 제게 솔직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연마하던 무공은 완전히 터득했습니까?”
소영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비록 정통하지는 못했지만 적을 맞아서 사용할 수는 있을 정도는 됩니다.”
우문한도는 말을 이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당시 소대협께서는 이십 일 가량 더 걸려야 된다고 했는데 이제 겨우 십사
일밖에 되지 않았잖습니까?”
“그러니 아직도 능란하게 사용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그런 무공은 터득만 해 두면 언제 어디서
라도 숙달이 되도록 연습은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꼭 마가장 내에 붙어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
습니다.”
우문한도가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저도 더 이상 속이지 않겠습니다. 심목풍이 설봉산에 나타난 것을 보았다고 합
니다.”
소영은 그 말을 듣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전엽청이 저에게 알려 준 얘기론 심목풍의 상처가 완전히 다 나았다고 하더군요.”
소영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우문선생께서는 어쩌시려는 겁니까?”
“솔직이 말해서 심목풍이 완치되어 설봉산에 나타난 데는 많은 내막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우문선생께서 우선 가서 정세를 살펴 보겠다는 겁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선생 혼자서 가신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닐까요?”
우문한도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위도장께서도 도와 주실 거고 또한 이번에 제가 그리로 가서 적을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혜로써 대항하지 절대로 힘으로 대항하지는 않을 겁니다.”
소영은 미소를 지었다.
“우문선생께서는 우리 두 사람을 데리고 가시면 안 됩니까?”
우문한도가 대답했다.
“소대협께서 만일 이 길로 마가장을 떠나시게 되면 그곳에는 영소하는 사람이 없어졌으므로 만
일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는 일대 혼란이 빚어지지 않겠소이까?”
소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떠나 오면서 이미 서신 한 장을 남겨 놓았습니다. 만일 무슨 변고가 일어났을 때는 마총
타주에게 사건의 수습을 부탁해 놓았으며 또한 초곤산 선배님과 사마건형이 옆에서 도와 주도록
모든 안배를 해 놓았습니다.”
“소대협께서 이미 여기까지 오셨으니 다시 돌아가라고 권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단지 선생께서는 저의 무공연마에 방해가 될까봐 저를 속여 오셨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점에 대
해서는 제가 이미 상관이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니 만약 그 일 말고도 또 다근 이유가 있
다면 저는 굳이 동행하겠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문한도는 담담하게 웃었다.
“단지 소대협께서 저의 응낙이 있기 전에는 출수하지 않겠다는 대답만 해주시면 됩니다.”
소영이 말을 받았다.
“좋습니다. 그것만이라면 약속해 드리지요.”
우문한도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이미 전엽청과 암호로써 연락해 두었기 때문에 모든 일을 암암리에 행해야 합니다. 곧 변
장을 하고 가면을 써야 합니다. 하지만 소대협께서는 무림 동도들에게 천하 영웅이란 추앙을 받
고 있는 터에 변장이란 좀 어울리지 않겠지만…”
소영이 말을 받았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정의의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그까짓 건 상관할 것도 없습니다.”
우문한도가 말을 받았다.
“백족지충(百足去蟲)은 쉽게 죽지는 않는 법, 더구나 심목풍은 완전히 죽지 않았으며 전엽청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모든 행동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
서는 지금부터라도 변장을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소영이 힘차게 말했다.
“좋습니다. 모든 것은 우문선생의 계획대로 진행하지요.”
세 사람은 변장을 했다. 그리고 두 패로 갈라져서 갔다.
두문한도는 정체를 감추기 위해 그 아까운 수염을 반이나 잘라 버리고, 돈 많은 상인의 차림을
했다.
소영은 시골뜨기로 가장하여 우문한도와 십 장의 거리를 유지하며 걸어 갔다.
백리빙은 우문한도와 동행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제아무리 뛰어난 기지를 가진 심목풍이라 하더
라도 얼른 알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세 사람은 이렇게 감쪽같이 변장을 하고는 보통 걸음으로 걸어 갔다. 혹시 너무 빨리 달리다가
는 눈치라도 채일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밤이 되자 이들은 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은 밤새껏 달려 오경 무렵에야 한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우문한도가 길 옆에 있는 밀림을 가리키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
“칠성당은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으니 우리는 정오쯤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
다. 그런데 만약 심목풍이 정말 이 칠성당 부근에 있다면 우리들은 앞으필 거동에 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문선생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밀림 속에 들어가서 잠시 쉬었다.
그러나 날이 밝자 곧 일어서서 칠성당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세 사람이 부지런히 달려서 십
여 리쯤 갔을 때 길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
이들은 다시 오 리 가량 더 달려가서 낮은 산봉우리 밑에 이르렀다.
거기 봉우리 밑의 넓은 풀밭에는 수십 대의 마차와 근 백 필이나 되는 말들이 있었다.
알고 보니 칠성당으로 올라 가자면 마차와 말은 더 이상 올라 갈 수가 없었으므로 모두가 여기
서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백리빙은 낮은 목소리로 우문한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 여기는 퍽 복잡한 곳이네요.”
우문한도는 길을 걸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소. 이곳이 사람들의 눈에 발견된 지는 이미 백 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그러나 정작 사람들
이 모여들게 된 것은 십여 년 전부터의 일이지요. 게다가 산으로 큰길이 트인 후로부터는 사람들
의 왕래가 급격히 불어났지요. 저는 십 년 전에 이곳에 한 번 와 본 일이 있지만 그 때 보다도
지금은 몇 배나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진 것 같소.”
이들은 어느새 봉우리 위에 올라 섰다.
갑자기 눈앞의 경치가 달라졌다.
봉우리 뒤에는 넓은 분지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수천 명에 이르는 인파가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칠성당은 북두칠성마냥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모두가 한 줄기의 개울로 연결되어 있
었다.
우문한도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백리낭자, 조심하시오. 될 수 있는 한 말을 피하고…”
우문한도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백리빙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암암리에 진기를 끌어 올려 우문한도의 뒤를 바짝 따랐다. 칠
성당이 점점 가까와졌다. 푸른 못물이 보였다. 한 개의 성담(星潭)이 오무(백오십 평) 이상의 넓이
를 가졌으며 일곱 개의 성담을 연결하는 개울에는 푸른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북쪽에 있는 성담의 한쪽에 절벽이 높이 솟아 있는데 그 절벽 위에는 푸른 소나무
가 빽빽이 서 있었다.
그뿐더러 성담 위에는 무수한 조각배가 떠 있었으며 간간이 작은 놀잇배가 성담을 열결하는 계
류를 왕래하기도 했다.
우문한도는 못 가에 서서 잠시 무슨 생각에 잠겼다가 곧 손을 흔들어 작은 배 한 척을 불렀다.
“우리 이 배 좀 빌립시다.”
그는 한 꾸러미의 은자(銀子)를 내밀었다.
사공은 매우 기뻐했다. 그 돈이면 새 배를 사고도 돈이 남는 것이다.
사공은 연방 싱글벙글 웃으며 배에서 내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백리빙도 곧 배 위에 올라 탔다.
우문한도가 말했다.
“배를 저어 칠성담을 한 바퀴 돕시다.”
백리빙은 잠자코 노를 저었다. 배는 천천히 계류 위로 미끄러져 갔다.
이 칠성담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이 천연의 계류에 있었다. 이 계류는 비단 같이 떨어져 있는
일곱 개의 성담을 연결해 줄 뿐만 아니라 그 굴곡이 더욱 신비스러웠다.
이들이 두 개의 성담을 지나가자 계류는 갑자기 정북방의 절벽이 있는 곳으로 구부러져 들어갔
다.
백리빙은 쉬지 않고 배를 저었다. 그리고 우문한도는 연방 주위의 풍경을 살피고 있었다.
“저쪽 가에 배를 대시오.”
백리빙은 우문한도가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니 두 그루의 잣나무가 못 가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 개의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우문한도가 나직이 말했다.
“제가 부르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낭자께서는 못둑으로 올라오지 마시오.”
백리빙은 무슨 영분인지 알 수 없어 궁금하기 짝이없었지만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여 응낙했
다.
우문한도는 곧 배에서 내려 천천히 못둑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