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628
628. 지원금 액수가 얼마나 돼요?
2020년 3월 4일, 유니콘 타워 168층 회장실.
문을 열고 넓은 회장실 안으로 들어온 재성은 코트를 벗어 정효정 차장에게 건넸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걸로 하나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정효정 차장이 머리를 숙이고 나가자마자 손에 든 스마트폰이 울렸다.
뉴욕에 있는 데이비드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재성은 책상 의자에 앉으며 스마트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나예요.”
[어제 시장 결과를 확인해 보셨습니까?]재성은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 의자에 앉았다.
“또 크게 폭락했더군요.”
[S&P500이 2.81%, 나스닥이 2.99% 급락했습니다. 기대했던 연준의 빅컷(Big cut)도 좀처럼 약발이 안 먹히는 모습입니다.]전혀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충격에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17일 정기 회의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긴급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금융시장에 퍼진 공포를 가라앉히기고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한꺼번에 종전 대비 50bp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통상적으로 금리를 한번 바꿀 때마다 25bp씩 움직이던 걸 깨고 두 배나 내려 버린 이른바 빅컷(Big cut)을 실행한 거였다.
‘그만큼 연준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는 거겠지.’
과감한 금리 인하로 주가 반등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데이비드가 이야기했듯이 좋지 않았다.
“연준이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뒷북을 치지 않고 선제적으로 움직인 건 다행이지만 시장은 그걸 오히려 위험 시그널로 인식한 걸 거예요.”
[서둘러 대폭 금리를 인하할 정도로 충격이 예상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부추겼다는 말씀이군요.]“연준이 구원자가 아니라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되어버린 거죠.”
땅속에서 광물을 캐는 광부들에게 제일 위험한 건 갱도 붕괴 사고와 함께 벽에서 스며 나오는 유독가스였다.
무색무취의 일산화탄소에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산화탄소에 사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나리아를 함께 탄광 속으로 데려가 일종의 경보기 역할을 하도록 했다.
바로 그 카나리아처럼 연준의 금리인하가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들에게 코로나19 확산이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무엇보다 오웬 연준의장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다른 정책 수단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못을 박은 것이 시장에 실망감을 줬을 거예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다들 연준이 다시 양적완화에 나설 수도 있다고 기대를 품었을 테니까요.]“오웬 의장 입장에서 또다시 연준이 돈풀기에 나서는 것이 꺼려졌겠지만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됐어요.”
데이비드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말을 받았다.
[오늘 시장의 반응을 보고 오웬 의장도 아차 싶었을 겁니다.]“하지만 주워 담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죠.”
[연준에서 금리인하 발표가 나오자마자 애런 아서 대통령이 SNS에 올린 글을 보셨습니까?]“연준이 금리를 내렸지만 그 이상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적은 거요?”
[그렇습니다.]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온 정효정 차장이 통화 중인 걸 보고는 잠깐 발을 멈춰 세웠다.
재성이 괜찮다며 손짓하자 정효정 차장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이며 원두커피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고마워요.”
정효정 차장이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회장실을 나가는 것을 쳐다보는 동안 스마트폰 너머에서는 여전히 데이비드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통령이 대놓고 압박을 해대고 있으니 바닥을 찾지 못하고 시장이 계속 무너진다면 오너께서 말씀하신 대로 연준도 더 버티지 못하고 양적완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스마트폰을 고쳐 쥐고는 재성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막 팬데믹 초입에 들어선 것에 불과해요. 증시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한다면 애런 아서 대통령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연준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될 거예요.”
[그때가 포지션을 바꿀 타이밍이겠군요.]“맞아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재성이 말을 이었다.
“그사이 잠깐 반등이 나오더라도 데드 캣 바운스에 불과하니까. 신경 쓰지 말고 포지션을 유지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재성은 통화를 끝냈다.
그러고는 책상에 설치된 컴퓨터로 조금 전 열린 국내 증시 상황을 확인했다.
“회장님.”
똑똑 문을 두드리며 정효정 차장이 얼굴을 내밀었다.
“도대웅 사장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요.”
이윽고 정효정 차장이 옆으로 비켜서자 도대웅 사장이 권혁재 실장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들 와요.”
책상 앞에서 소파 쪽으로 자리를 옮기며 재성이 정효정 차장을 향해 말했다.
“따듯한 걸로 차 한 잔씩 부탁해요.”
“네.”
재성은 두 사람과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소파 상석에 앉았다.
그러곤 왼편에 앉은 권혁재 실장에게 먼저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룹 연수원을 생활치료 센터로 제공하는 건 어떻게 됐어요?”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며 병상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유니콘 그룹은 기업들 가운데 제일 먼저 생활치료 센터와 격리 시설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지시하신 대로 대구와 경기 이천, 그리고 부산 연수원을 생활치료와 격리 시설로 제공하기로 하고 오늘부터 운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제주 연수원은 빠졌네요?”
“바다를 건너야 되는 불편함이 있고 무엇보다 제주도는 아직 확진자 숫자가 많지 않아 일단 제외됐습니다.”
설명을 들은 재성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확진자와 격리자를 굳이 제주도까지 보내는 건 확실히 낭비겠죠.”
“맞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언제든지 보건당국에 시설을 제공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정효정 차장이 찻잔 3개를 쟁반에 올려서 들고 돌아왔다.
방금 전 재성이 커피를 마신 걸 배려했는지 이번엔 깔끔한 맛이 나는 레몬 녹차였다.
민트 잎이 띄워져 있어 시원한 향까지 솔솔 풍겼다.
재성은 차로 목을 축인 뒤 이번엔 도대웅 사장에게 물었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어때요. 잘 진행되고 있어요?”
“예. 비상 체제로 가용한 모든 인력과 자원을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쏟아붓고 있는 상태입니다.”
도대웅 사장은 희망적인 기세로 대답했다.
“가장 빨리 백신 개발에 나선 덕분에 후보물질인 BNT162를 만들어내서 곧 전임상 확증시험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럼 이제 곧 임상 실험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전임상 확증시험이 긍정적으로 완료될 경우 바로 임상 1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전임상 확증시험이란 후보 물질이 사람에게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전에 먼저 동물을 대상으로 독성이나 효과를 확인하는 걸 말했다.
여기서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끝나야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상당히 진척이 빠르네요.”
“기존 방식보다 개발이 용이한 mRNA 방식을 사용하고 집중적인 투자가 이루어진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례적으로 속도가 빠른 건 사실입니다.”
빠른 백신 개발에는 [일해라 노예야!] 패치가 효과를 발휘하게 있는 게 컸다.
‘패치 하나로 이 정도 효과인데 남은 패치 두 개를 한꺼번에 다 써버리면 효율이 두 배로 늘어나지 않을까?’
재빨리 머리를 굴려 그런 생각을 했으나 덥석 실행하자니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만약 중첩이 안 될 경우 귀한 패치를 그냥 날려 버리는 꼴밖에 안 될 거고, 무엇보다 지금도 연일 과로 중인 연구원들이 먼저 못 견디고 쓰러질까 봐 걱정됐다.
‘뭐든지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야.’
재성은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백신을 빨리 만들어내는 것만큼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거에도 신경을 쓰도록 해요.”
“명심하겠습니다.”
도대웅 사장은 고개를 숙여 대답하고는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한 가지 드릴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해봐요.”
“한국과 미국 정부에서 코로나 백신을 개발 중인 제약사에 지원금을 주기로 한 걸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이에요.”
사실상 팬더믹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폭증하자 각국 정부에서 백신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거액의 지원금을 제약사에 긴급 지원하고 있었다.
“저희도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가장 앞서 나가고 있는 곳이 바로 유니콘 제약이었으니 지원 대상에 들어가는 건 당연했다.
“지원금 액수가 얼마나 돼요?”
“한국 정부는 15억 원, 그리고 미국은 2억 달러를 지급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화이자를 흡수합병했지만 여전히 현지 법인을 계속 두고 미국에서 공장과 연구 시설, 그리고 영업망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미국 정부 지원금 대상에 유니콘 제약도 포함된 거였다.
“미국은 2억 달러나 되는데 15억 원이라니 너무 차이가 나네요.”
“지원금 총액 규모가 10억 달러나 되는 미국과 달리 한국 정부는 60억 원뿐이라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도대웅 사장의 이야기에 재성은 머리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백신 개발에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걸 한국 정부도 모르지 않을 텐데. 예산을 고작 60억 원밖에 편성해 주지 않다니. 말 그대로 생색내기밖에 안 되네요.”
재성이 백신 개발에 이미 10억 달러를 집어넣은 걸 생각하면 정말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도대웅 사장 역시 같은 생각인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받았다.
“아마도 다른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해 코로나 백신을 먼저 개발하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현실적인 격차를 생각하면 아주 틀린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국내 제약사들의 R&D 기반이 약한 걸 알면 더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줘야죠.”
재성은 불만족스럽다는 듯 대꾸했다.
“설사 백신 개발에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경험을 얻어 제약사들의 능력을 끌어 올리는 밑바탕이 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몸을 뒤로 기댄 재성이 흠 하며 말했다.
“지원 금액을 다 합치면 2천억 원이 조금 넘네요.”
“그렇습니다.”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한 재성이 이내 입을 열었다.
“양쪽 다 지원금을 받지 않기로 하죠.”
“예?”
아무리 기대한 액수에 못 미친다 해도 나라에서 준다는 돈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다시 되돌려 줘야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는 듯 도대웅 사장이 쳐다보았다.
“지원금을 받게 되면 나중에 간섭할 여지를 줄 수도 있으니까 그래요.”
재성은 한쪽 입술을 비죽이며 말했다.
“괜히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백신 생산과 판매에 이런저런 말을 해댈 구실을 주느니 차라리 안 받는 게 나아요.”
백 퍼센트 자기 힘으로 해내는 것과 조금이라도 외부 도움을 받는 건 큰 차이였다.
특히 나중에 백신 공급을 두고 각국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걸 알았기에 그때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2천억 원이 넘는 돈을 그냥 쿨하게 까버리기로 했다.
“아니, 그게…….진척이 빠르기는 하지만 아직 백신이 완성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앞으로 임상에 들어가면 개발비가 크게 늘어날 테니 지원금을 받는 게 좋지 않을까요?”
실제로 백신과 신약 개발은 진행이 진척되어 갈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였다.
그리고 임상에 들어가더라도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더 높았기에 지원금을 받아 위험부담을 줄이는 것이 이득이었다.
하지만 재성은 여전히 심드렁한 태도였다.
“지원금을 받지 않아도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쯤이야 충분히 조달할 수 있어요.”
재성은 말 나온 김에 생각났다는 것처럼 말했다.
“임상을 대비해서 20억 달러를 추가로 넣어줄 테니까 도 사장은 최대한 많은 인원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해서 백신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것에만 신경 써요.”
“20억 달러라고 하셨습니까!”
“부족해요?”
“서, 설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도대웅 사장은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앞으로 남은 개발 스케줄을 계산해도 20억 달러면 차고 넘치는 돈이었다.
오히려 돈을 너무 콸콸 들이부으니 보이지 않는 압박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럼 그렇게 알고 지시한 대로 움직여요.”
“예. 알겠습니다.”
재성이 내민 20억 달러에 비하면 정부 지원금 따위 애들 용돈만도 못했다.
덕분에 도대웅 사장은 더 이상 정부 지원금에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입을 딱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