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Gaming RAW novel - Chapter 921
밥만 먹고 레벨업 922화
밴의 얼굴이 새하얗게 물들고 입술이 파리해졌다.
그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무릎을 꿇고 원두를 갈고 있었다.
“…….”
팔라든이 분노한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밴이 섬기는 사람.
어느 날 사라졌던 귀신창 밴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작은 영지의 영주를 섬기기로 했다고.
왕이 된 그와 함께하게 되었으며, 오로지 그를 위한 ‘창신’이 되었다고 들었다.
어째서인가, 차라리 극강팔인을 위해 그렇게 살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을 위해 그렇게 살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쿨럭-!”
급히 몸을 돌려 피를 뱉어낸 밴의 숨소리가 거칠다.
“하아하아.”
곱게 그것들을 갈아내는 밴을 보며 팔라든이 말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죽는 순간에도 고작 한 잔의 커피를 그대의 황제에게 대접하겠다는 건가?”
밴은 팔라든이 알고 있는 이 중 가장 자존심 강한 자였다.
그 누구에게도 굽힐 줄을 몰랐고 물러서는 것을 몰랐다.
그런 밴이 죽는 순간에 한다는 일이, 자신이 모시는 이에게 한 잔의 커피를 대접한다는 것뿐인가?
그 물음에 밴은 아주 작은 웃음을 지으며 그분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밴 자신이 그분을 선택한 이유였다.
“나는…….”
* * *
[성장의 강물에 2일 동안 몸을 담그고 계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 하셨습니다.] [레벨업…….]총 6레벨업. 성장의 강물에서 빠져나오는 민혁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맴돌았다.
[로아크 왕국의 전설이 있는 곳에서 성장의 강물을 이용해 성장하셨습니다.] [본래 있던 곳으로 워프됩니다.]민혁이 다시 나타났을 때, 그는 피 묻은 열쇠를 꽉 쥐고 있었던 성벽 위에 나타나 있었다.
성벽 위에 선 민혁은 익숙한 풍경을 보며 누군가 떠올랐다.
‘밴 어르신은 아직 안 돌아오셨나?’
그가 만개의 꽃 사이에서 피어난다는 원두를 얻기 위해 떠났던 날, 민혁은 이 자리에 그대로 서서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봤었다.
‘꽤 고된 여정이 되셨을 테니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드리자.’
민혁은 밴만 생각하면 웃음이 났다.
이틀 동안 고생했을 밴에게 자신도 맛있는 음식으로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다 민혁이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잊혀진 군주의 투구의 ‘가신의 목소리’가 발동됩니다.] [당신의 가신 밴이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뭐?”
민혁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창신 밴, 그는 현재 아테네에서 함부로 할 수 있는 자가 없는 강자였다.
설령, 그것이 루브앙 제국이라고 할지라도 밴을 잡기 위해선 최소 제1의 신의 검 세 명 이상은 모여야 했다.
그러나 밴을 설령 죽음까지 몰고 간다 해도 신의 검들도 성치 않을 것임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민혁은 지금 본인이 들은 알림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 것보다 가신의 목소리를 통해, 현재 밴의 현황을 확인해야만 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다급하게 헤이즈가 들어섰다.
그녀는 웬 정체 모를 어린 소녀와 함께 나타났다.
“폐하! 밴 어르신이 위험에 빠졌다고 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녀, 그리고 민혁과 다르게 ‘가신의 목소리’를 보유하지 않은 헤이즈의 말에 알아챌 수 있었다.
소녀는, 밴이 보낸 이다.
그러나 소녀는 자신을 소개할 시간이 없음을 알았다.
“파, 팔라든이라고 했어요, 팔라든이라는 사람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팔라든……?”
민혁은 곧 그 이름의 당사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극강팔인 팔라든?”
사실, 민혁도 밴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과거, 민혁은 이 이야기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것은 밴과 민혁이 가슴 속 이야기를 모두 터놓고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에 밴은 씁쓸하게 웃으며 답했다.
-허허, 소인이 지은 죄가 많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폐하.
민혁은 그 대답에 깊게 추궁하지 않았다.
단지, 이제까지 자신이 보았던 밴을 믿었다.
그가 원했기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 거라고.
곧 헤이즈가 말했다.
“폐하, 과거의 극강팔인들은 몸에 ‘극강의 낙인’을 새겼습니다. 그 낙인을 새겨준 자는 특별한 힘을 가진 팔라든이었습니다. 팔라든의 그 낙인에는 극강팔인들이 지켜야 할 여러 규칙들이 존재합니다.”
민혁은 묵묵히 들었다.
“첫째, 극강팔인을 배신하지 말 것. 둘째. 다른 왕국 혹은 제국에 속하지 말 것이며, 반경 50m 내에 들어갈 시 이 극강의 낙인이 발동할 수 있다 알려집니다. 또한, 이 극강의 낙인은 1시간 정도에 걸쳐 천천히 그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고 합니다.”
“당장 가야겠어.”
민혁은 다급했다. 자신을 위해 원두를 얻으러 가셨던 밴이다.
그러나 헤이즈가 만류했다.
“폐하께선 가신의 목소리를 통해 현 상황을 듣거나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실이었다.
“지금 폐하가 가서 극강팔인들을 위협한다면, 정확히는 ‘팔라든’을 위협한다면 그자가 밴의 낙인을 없애줄 거라 생각하십니까.”
“…….”
쿵쾅쿵쾅 뛰던 민혁의 심장이 헤이즈의 말에 차분해진다.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나 팔라든은 분명히 밴에 의해 ‘딸’을 잃었다.
그러한 팔라든이 민혁의 위협에 밴의 낙인을 거두어준다?
아니, 더 안 좋은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민혁은 헤이즈의 말처럼 하기로 했다.
가신의 목소리를 통해, 현 상황을 확인한다.
눈을 감은 민혁에게 그곳의 상황이 보였다.
움찔-!
민혁의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입가엔 피를 흘리고 있는 밴이 잘 갈린 원두를 거름망에 옮겨 담고 있다.
그리고 팔라든으로 추정되는 자가 말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죽는 순간에도 고작 한 잔의 커피를 그대의 황제에게 대접하겠다는 건가?]“…….”
민혁의 가슴이 지끈거렸다.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렇다. 밴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런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이 얻은 그 원두로, 자신을 위한 커피를 내리려 하고 있다.
그때, 팔라든을 보며 씁쓸히 웃는 밴이 운을 뗐다.
[나는, 죽고 싶었네.]민혁의 가슴이 지끈거렸다.
[아들을 잃고서야 비로소 알았네, 누군가를 잃는 슬픔을.]밴이 거름망에 담긴 곱게 갈린 원두를 커피기에 담는다.
그리고 끓인 따뜻한 물을 천천히 부었다.
[나는 정말 많은 자들을 그런 슬픔에 빠뜨린 거지. 그래서 죽고 싶었네. 자네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도.]팔라든이라는 자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런데 곧 밴이 작게 웃었다.
[그런데 나는…….]한참이나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밴이 말했다.
[다시 살고 싶어졌네.]“…….”
민혁이 그의 작은 미소를 눈에 담는다.
[그분을 처음 뵈었을 때, 뭐 이런 놈이 있나 했네. 먹을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더군. 그런데 나는 그날 간만에 크게 웃었네.] [그분이 나를 대신해 아들의 복수를 해주었다네, 그런데 씁쓸했어. 내 마지막 원동력이 그렇게 사라졌기에, ‘아, 이제 죽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잠깐 했네. 그런데.]밴이 그때를 기억하며 웃는다.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던 그분이 나를 보며 따뜻하게 웃으시더군.]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어르신. 그렇게 몇 번이고 말했지. 난 귀신에 홀린 것 같았네. 아들의 원수를 갚으면 죽고자 했던 내가 그를 따라갔다네.] [그가 맛있는 걸 먹으며 웃을 때, 나 또한 웃었고.] [그가 절망에 빠져 슬퍼할 때 함께 슬펐네.] [그러다 문득 그분과 함께 웃다가, 그분을 한참이나 바라봤네.] [정말이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고, 며칠이 지나 왕이 되신 그분의 곁에 서서 백성들을 함께 내려다보다 또다시 그분을 옆에서 바라봤어.] [그때, 나는 알게 되었지.]잠시 밴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아련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살고 싶다.] [그분의 곁에서 오래도록 살고 싶다.] [그분이 원하는 것을 거머쥐게 해드리고 싶다.]그에 팔라든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그는 이방인일세. 강한 자를 곁에 두고자 하는 자에 불과해, 단지 자네는 기댈 곳이 필요했던 것뿐이야! 그저 조금 돈독했던 신하와 황제에 불과해!] [나는 한 번도 그분을 ‘영주’, ‘왕’, ‘황제’라 생각하여 모신 적이 없다네.] [……!]밴이 천천히 붓는 뜨거운 물에 의해 따뜻한 커피가 차오른다.
그 커피는 세상에서 그 어떤 커피보다 귀하고 값진 커피였다.
[쪼르르르륵-]천천히 떨어지던 커피가 방울이 되어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방울이 떨어졌을 때, 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로 웃어 보였다.
[아들이라 생각했거든.]“…….”
민혁의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자신과 밴은 단 한 번도 황제와 신하 관계라 생각한 적이 없다.
민혁은 밴을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여겼고, 밴은 그런 민혁을 아들처럼 여겼다.
서로가 서로를 위한 이유는, 밴에겐 민혁이 아들이었고, 민혁에겐 밴이 할아버지와 같았기 때문이다.
서로를 위함에 무언가를 해주겠다고 생각한 적 없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한 것이기에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고 지켜주고 싶었을 뿐이다.
“가야 해.”
“무슨 방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헤이즈의 물음에 민혁은 답하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을 하려 할 뿐이라는 말은 삼켰다.
그런데 그때.
[……발동됩니다!]민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곧바로 그가 밴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 *
“팔라든 님, 어째서 저 노인을 당장 죽이지 않으시는 겁니까.”
극강팔인 중 두 번째 로아의 물음이었다. 로아의 말처럼 이 자리의 극강팔인들은 모두 다급했다.
자신들, 그리고 제자들이 루브앙 제국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창신 밴을 죽이고 루브앙 제국으로 향해야만 했다.
그런데, 왜 팔라든은 그를 기다려 주는가?
또 어째서 딸을 죽인 그를 그리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는가.
사실 팔라든은 이 자리의 극강팔인들과 다르게, 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였다.
암모어에 의해 그 모든 일이 벌어졌음도 눈치챘다.
단지, 팔라든이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밴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황제를 위하냐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아들을 잃고 죄책감에 빠져 살다, 의지할 자가 생겨 의존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금이라도 팔라든은 밴과 함께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모든 게 잘못된 것을 알기에.
그러나 지금의 밴은 자신의 황제만을 운운하고 있다.
“팔라든 님이 하시지 않겠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이젠 우리도 위험합니다. 천외제국 황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지 않습니까.”
로아가 날카로운 단도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밴은 자신이 추출한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있었다.
팔라든은 차마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
로아가 뒷걸음질 쳤다.
“천외제국의 황제?”
제자들의 웅성거림에 팔라든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천외제국의 황제라는 자가, 밴의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폐하…….”
이미 밴은 거의 죽음에 이르고 있었다. 쇳소리가 흘러나오는 목소리로 밴이 그를 부른다.
슬픈 표정으로 민혁이 그를 돌아봤다.
팔라든, 그가 차갑게 말했다.
“이미 늦었소, 설령 그대가 나를 죽인다 해도 그의 몸에 새겨진 낙인은 사라지지 않지.”
낙인을 없앨 수 있는 건 오로지 팔라든뿐이었다.
그리고, 팔라든은 황제 민혁이 이런 행동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힘으로 풀게 하겠다.’
자신들을 제압하여 풀게 할 것이다.
그러나 팔라든은, 자신이 죽음에 이른다고 할지라도 밴에게 새겨진 낙인을 풀지 않을 것이었다.
그때, 밴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황제.
믿어 의심치 않는 황제가 고개를 숙였다.
“부탁입니다. 밴 어르신을 살려주십시오. 차라리 그 죗값. 원한다면 제가 받겠습니다.”
“……!”
“……!”
“……!”
극강팔인들이 웅성거렸다.
황제란 자고로 콧대 높은 자이며 제국을 대표하는 자다.
수백만 이상의 백성과 백만 이상의 군사력을 이끌며, 여러 개의 왕국이 모여야만 제국의 힘을 낼 수 있다.
천외제국의 황제를 죽이면 설령 밴을 죽이지 못한다 해도, 루브앙이 자신들을 살려주고 큰 보상을 내릴 터.
로아가 말했다.
“그럼 대신 죽든가.”
그것은 가식 된 황제에게 보내는 조롱이요, 비난이다.
그대의 신하는 당신을 위해 어떤 것도 할 수 있으나, 그대는 큰 것을 잃고 싶지 않겠지.
또한 천외제국의 황제는 죽어도 살아나는 이방인이란 불사의 존재다.
하나, 자신들 손에 의한 죽음이 루브앙 제국에 의해 죽었다고 알려질 것이며, 그것은 떠오르는 신흥 제국의 추락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인지 천외제국의 황제가 고개 숙인 채 답하지 않았다.
‘밴, 고작 저런 자를 위해…….’
팔라든은 밴의 최후가 참으로 비참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고개를 든 천외제국의 황제가 팔라든을 보며 답했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