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대륙 북부 전선, 프로비언트 성.
“아인 바이에르가 무너졌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오!”
프로비언트의 성주 헤론은 갑작스러운 비보와 함께 피난민들의 행렬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4천에 달하는 인구가 프로비언트로 몰려들었다.
저 많은 인구를 모두 받아들이기에는 프로비언트의 성은 너무나도 비좁았다.
헤론이 그들의 처분을 고민하고 있자, 행렬의 선두에 있던 알란이 앞으로 나섰다.
“브릴런트의 2왕자, 알란 헤르티아입니다. 헤론 성주와 이야기가 하고 싶습니다만.”
처음부터 보지 못했다면 모를까 이미 두 번이나 프로비언트에 머물렀던 그를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헤론은 어쩔 수 없이 몇 명의 사람만 성 내부로 불러들였고 나머지 피난민들은 잠시 성벽 바깥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성의 응접실에는 알란과 올리브만이 들어올 수 있었고 내부의 분위기는 매우 딱딱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기사들이 헤론 옆을 철저히 지키고 있고 알란과 올리브는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지난날의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해야 했다.
“……정말 아인 바이에르가 무너진 거요? 지원군이 곧 이곳으로 올 텐데 그걸 버티지 못하고 말이오?”
“헤론 경! 지금까지 이야기를 뭘 들은-.”
테이블을 쾅 치고 일어선 올리브의 목에 기사가 검을 갖다 댔다.
이를 악문 올리브가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피난민들을 받아주시죠. 저들은 매서운 추위를 버티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분명 프로비언트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프로비언트에는 그들 전부를 받아줄 여유가 없소.”
“왕국에서 북부인들의 희생을 무시하진 않을 겁니다. 곧 소식을 들으면 그에 대한 보상을 내려주시겠죠.”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오?”
헤론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둘을 노려보았다.
그 불쾌한 눈빛에 올리브가 다시 발작하려다 알란의 손길에 간신히 참았다.
“프로비언트에 꿍꿍이를 벌일 게 뭐 있습니까?”
“모르지 않소. 가령 제국의 제안을 받아 이곳 프로비언트를 흡수하려고 한다거나…….”
쾅!
참다못한 올리브가 다시 일어섰다.
“지금 우리 북부 전사들의 명예를 모욕하는 겁니까!”
옆에 있던 기사가 검을 휘두르려다 헤론의 제지에 멈췄다.
“그렇다면 말해보시오.”
헤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알란에게 물었다.
“북부의 군대는 어디로 간 거요?”
알란의 잔잔한 눈동자와 고개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오?”
“실종됐다는 소립니다. 저희들을 살리기 위해 괴수를 온몸으로 막으면서 말이죠. 어쩌면……, 전부 죽었을지도 모르겠군요.”
* * *
로자리아 왕국의 여왕, 멜리사 엘리엇은 북부의 소식에 침음을 삼켰다.
“시기가 참으로 공교롭구나.”
그녀의 옆에 있던 보좌관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 왕국뿐만이 아닙니다. 바란에서는 흑해가 요동치고 브릴런트에서는 차기 국왕을 놓고 살육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내 아들 녀석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은?”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그녀가 권좌의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린 채 자신의 입술을 쓸었다.
“마법병단이 얼마나 갔지?”
“12인으로 구성된 2개의 중대와 그들의 보조로 장미 기사단이 편성됐습니다.”
“2개 중대를 더 붙여 1개 전대로 합치고 4성 마법사를 전대장으로 임명해라. 그리고 1개의 정예 기사단을 더 추가하도록 하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왕실 쪽 병력이 크게 줄어듭니다. 폐하.”
“북부가 무너지면 결국 대륙 전체에 전란이 일어날 것이다. 고작 왕자의 쿠데타가 무서워 지원을 하지 말라는 것인가?”
멜리사의 싸늘한 목소리에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렌 아르젠, 카리나가 관심 있어 하는 그 기사가 북부의 군대와 함께 실종되었다지?”
“예.”
“카리나를 부르거라. 이야기를 좀 해봐야겠구나.”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나가고 잠시 후 카리나 엘리엇이 들어왔다.
“왔느냐.”
“위대하신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카리나가 치마를 틀고 허리와 고개를 살짝 숙여 예를 취했다.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멜리사가 카리나의 복장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복장이 그렇지?”
“왜 그러십니까, 폐하.”
“지금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카리나의 속내가 훤히 보인다는 듯 웃음을 흘리는 멜리사.
그녀의 그 표정에 인상을 굳힌 카리나가 대답했다.
“저를 부른 이유를 말씀해 주시죠.”
“아인 바이에르가 무너졌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렌 아르젠이 실종된 것도 알고 있느냐.”
“…….”
카리나가 순간 표정 관리를 못 하고는 동공을 떨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여왕 폐하가 자신과 렌 아르젠의 관계를 아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귀여운 맛이 다 사라진 줄 알았거늘.”
멜리사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큰 빚을 졌다지?”
“……예. 폐하.”
지난 아비트라리의 암시장에서 렌에게 목숨을 구함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것 역시 그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카리나는 렌이 자신을 구해줄 때까지 기다렸고 그는 목숨을 걸고 미치광이와 싸워 자신을 구해주었다.
어찌 되었든 도움을 받은 것은 맞았다.
“렌 아르젠이 북부의 영웅이라 불리더구나.”
“예.”
“트롤 대족장을 죽였다고 하던데, 그리 강하더냐?”
카리나는 멜리사가 렌 아르젠의 자격을 묻는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자신의 정약 상대로 말이다.
“그런 이가 아닙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하거라.”
“……강합니다. 그 심지와 정신력만큼은 충분히.”
“실력은 별 볼 일 없다는 걸로 들리는군. 트롤 대족장이 별것 없는 괴수였던가.”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들이 보내온 트롤 대족장의 머리에는 분명 수십 일이 지났음에도 명백한 투기가 남아 있었으니 말입니다.”
“너의 눈이 높아진 건지, 아니면 들려오는 소문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구나. 참 신기한 기사군.”
그녀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왠지 절대 안 죽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저도 그렇습니다.”
“북부를 탈환할 연합군을 모집할 생각이다. 로자리아뿐 아니라 바란과 브릴런트, 자유 용병까지. 아! 신성 왕국도 이번엔 북부에 사제를 보내준다고 하더군.”
“북부에서 사제들을 잃었던 신성 왕국조차 지원을 한다니, 정말 심각한 사안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꼭 찾아오거라.”
그녀가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예? 그게 무슨?”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냐. 북부의 아인 바이에르를 찾아오란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연히 연합군에 참가할 게 아니더냐?”
“맞습니다. 그 렌 아르젠 때문이 아니라, 로자리아를 위해서 가는 겁니다.”
“그래, 네가 간다면 연합군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지. 가서 북부를 다시 되돌려 놓거라.”
“알겠습니다. 폐하.”
* * *
북부의 상황은 빠르게 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아인 바이에르의 몰락은 대륙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거 들었어? 북부의 요새가 무너졌다지 뭐야?”
“북부에 거대한 괴수가 나타났다던데…….”
“그래도 우리는 동쪽에 있는데 북부가 무너져도 상관없지 않아?”
바란 제국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아인 바이에르의 몰락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제국 가장 서쪽 국경에 위치한 ‘포전드’라는 도시의 시민들은 마냥 가볍게 들을 수 없었다.
“제기랄! 프로비언트가 무너지면 얼마나 많은 괴수들이 여기까지 올지 몰라! 그 정예병으로 가득한 북부를 무너뜨릴 정도의 괴수가 오면 재앙이다.”
포전드의 성주는 연합군의 모집을 보고 재빨리 황제에게 공문을 써서 보냈고 그것은 곧 승인되어 내려왔다.
북부를 탈환하기 위한 연합군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바란 제국뿐 아니라 신성 왕국과 브릴런트에서도 지원군이 왔다.
프로비언트는 모여드는 연합군과 몰려온 피난민들에게 숙소와 일거리, 먹을 것을 제공하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브릴런트의 지원군은 이게 끝이오?”
헤론은 생각보다도 더 적은 브릴런트의 지원군 수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네.”
반쯤 백발로 변색 된 코헨 트레비스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사 다섯만 오는 건 조금…….”
“뭔 말이 이렇게 많아? 지원을 와줘도 지랄이네?”
“뭐, 뭐? 지…랄?”
“칼리. 예의를 차려라. 여기서도 네 멋대로 행동할 거면 돌아가거라.”
“쯧쯧, 천박하기는.”
케이트 트레비스가 칼리를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칼리 아르젠이네. 원체 입이 거친 녀석이니 이해해주게.”
“아…르젠? 그럼 렌 아르젠의 동생이오?”
“지랄, 그런 녀석 오빠로 둔 적 없거든?”
“또, 또 지랄이라고…….”
“너무 걱정 말게. 이들 모두 정예이니. 너희도 인사하거라.”
코헨이 뒤에 뻘쭘하게 서 있는 두 기사를 앞으로 불렀다.
“잭슨 카르입니다.”
“로니 카르입니다.”
렌에 의해 폭삭 망한 카르 가문의 둘째, 셋째가 그들을 따라 지원군으로 왔다.
“카르 가문의 자제들은 아주 예의가 바른 것 같소.”
평범한 인사였지만, 앞선 칼리 아르젠의 효과로 카르 가문의 두 형제는 헤론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다들 왔군.”
그때 지원군을 향해 걸어오는 한 남자.
멋들어진 붉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알란 헤르티아가 그들을 맞이했다.
“2왕자 전하를 뵙습니다.”
코헨이 인사하자 뒤에 있던 이들도 덩달아 인사했다.
칼리 아르젠만 제외하고.
“아르젠에서도 올 줄은 몰랐군. 렌과의 사이가 좋았던가?”
“누굴 구하러 와? 난 그 강하다는 괴수와 싸워보고 싶어서 왔을 뿐이야.”
칼리 아르젠은 알란의 신분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뱉었다.
알란은 조금 기분이 나빴지만, 겉으로는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브릴런트의 상황이 매우 안 좋은가 보군.”
알란의 물음에 코헨이 표정을 굳혔다.
“예.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알란이 그들의 면면을 살피고는 따라오라 손짓했다.
다섯은 알란을 따라 연합군의 집결지로 향했다.
“브릴런트가 가장 인원도 적은데 가장 늦었네.”
알란이 코헨을 향해 약간의 핀잔을 주었다.
“죄송합니다. 근데……, 엄청나군요.”
집결지에 모인 세 국가 병사들의 규모가 생각 이상이었다.
연합군이 모이기 위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거의 1만에 가까운 군사가 모였다.
그중 정예병만 하더라도 500은 되었고.
“이 정도라면 아인 바이에르를 점거한 괴수들을 그대로 밀어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코헨의 물음에 알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건 모르겠군.”
그들은 알란이 왜 저리 대답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알란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아챘지만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북부로 올라가면 자연스레 알게 될 테니.
“근데 렌 아르젠에 관해서는 왜 묻지 않나? 궁금해할 것 같았는데 말이야.”
“아, 주…, 렌 말입니까?”
코헨이 가볍게 웃었다.
“렌이라면 저 북부의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을 테니 말입니다. 딱히 걱정은 안 되는군요.”
“믿음이 대단하군.”
이번엔 알란이 피식 웃었다.
“저 북부의 괴물들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올지는 봐야 알겠지만 말이야.”
* * *
연합군이 드디어 북부를 향해 움직였다.
로자리아 왕국에서 모은 이번 연합군의 사령관은 카리나 엘리엇.
로자리아 왕국의 차기 국왕으로 점찍어져 있는 왕녀였다.
선두에서 고고히 걸어가던 엘리엇이 우뚝 멈춰 섰다.
북부의 경계를 넘어가며 마차고 말이고 모두 놓고 온 상황에서 좁은 길이 이어졌다.
연합군의 행렬이 길게 늘어진 상황.
그리고 그녀의 마력 감지에 무더기로 잡히는 괴수들의 기척.
“습격이다! 모두 경계 태세를 취하라!”
그녀의 말과 함께 뒤쪽에 있던 기사들이 따라 외쳤다.
“습격이다! 모두 경계 태세를 취하라!”
“습격이다! 모두 경계 태세를 취하라!”
괴수들의 기척이 엄청난 속도로 선두를 지나 뒤쪽으로 멀어진다.
‘이런……!’
쌔애애애애애액!!
한줄기의 강렬한 섬광이 사제의 목을 꿰뚫고 지나갔다.
이후 언덕 지형에서 날아오는 수십 발의 화살 세례.
갑작스러운 기습에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저기! 괴수가 저기 있다!”
언덕 위쪽 나무에 꼬리를 걸고 매달린 점박이의 괴수.
입에는 도를 물고 한 손에는 궁을 든 채 화살의 시위를 걸고 있었다.
“좌궁우도다! 네임드가 나타났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도 쇄도하는 괴수들의 무리.
검 네 자루를 든 인간이 오크들과 함께 비탈길을 내려와 병사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검귀다! 상급 기사가 아니면 싸움을 피하라!”
병사들 사이 사이에 있던 지휘관들이 소리쳤으나, 전장이 너무 불리했다.
한순간에 아비규환이 된 연합군.
괴수들의 습격에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던 그때.
뿌우우우우우우우우―.
들려오는 뿔피리 소리.
“이 새끼들 어디로 움직이나 했더니 연합군 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저 멀리, 나무 사이에서 새하얀 늑대들을 탄 일단의 무리가 맹렬하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이번엔 내가 더 많이 죽일 거다! 앤드류!”
“웃기는 소리! 금사자 기사단의 최고 기사는 내 거야! 부단장으로 만족해라!”
브릴런트에서 온 다섯은 그들의 모습이 굉장히 낯익었고.
‘저 사람은……!’
카리나 엘리엇은 가장 큰 백랑에 올라타 선두에서 기사들을 이끄는 잿빛 머리칼의 남자를 보며 탄성을 흘렸다.
“아마란스보다 못 죽이면 너희 오늘 다 각오해라!”
선두에서 초혼을 번쩍 든 렌 아르젠이 소리쳤다.
그들의 반대편 언덕에도 일단의 무리가 백랑을 타고 괴수들을 습격하기 위해 내달리고 있었다.
“북부의 기상을 보여라! 잠시라도 검을 멈추지 마라!”
전 아인 바이에르 북부의 사령관이었던 스테판이 거침없이 괴수들을 베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