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58
제158화
황량한 어둠 속을 비추는 횃불들.
음침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지하 공동의 딱딱한 바닥을 걷던 오실리아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멈춰 섰다.
“성하…….”
목이 없는 몸이 앞으로 고꾸라져 있고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한 듯 눈을 부릅뜬 교황의 머리가 벽에 기대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쿵.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오실리아가 떨리는 호흡을 내뱉으며 교황의 머리를 붙잡았다.
“도대, 체……, 흡. 하아아…….”
붉어진 눈시울과 가늘게 떨리는 손끝. 쉽사리 말을 내뱉지 못하던 그녀가 두카스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당신, 이기에…, 참았어요. 그런 사람이 아닌 걸 알면서도…….”
끝내 눈물을 흘린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잘못이에요. 내가, 내가…, 막았어야 했는데. 당신은 강하니까, 언제고 스스로 돌아올 거라 믿었던 내가 바보였어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크게 심호흡한 그녀가 눈물을 닦아내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표독한 눈빛을 드러냈다.
“콜 로스…….”
바닥에 뚜렷하게 새겨진 이름. 마치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싶다는 듯 새겨진 그 이름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지하 공동을 벗어났다.
* * *
교황의 죽음이 명백해지고 그의 시신이 판테아의 지하 무덤으로 옮겨졌다.
바스티안 전체에 퍼진 교황의 죽음. 그뿐만 아니라 신성 왕국의 다른 도시들과 브릴런트, 로자리아, 바란에까지 그 소식이 전해졌다.
그와 함께 널리 퍼지기 시작한 ‘콜 로스’라는 이름.
교황을 암살하고 홀연히 사라진 콜 로스라는 암살자가 대륙 전체에 수배되었고 그자를 찾아서 잡아 오면 그 어떤 보상이라도 내리겠다는 성국의 선언이 대륙 곳곳에 퍼졌다.
로자리아 왕국의 알현실.
왕좌에 앉은 멜리사 엘리엇 여왕이 팔걸이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지루한 표정으로 신하들의 보고를 듣고 있다.
“그래서 이번 원정의-.”
끼이익-
갑자기 열리는 커다란 대문. 왕실 수석 집사가 허겁지겁 들어와 예를 취하고는 고개를 숙인다.
“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폐하. 긴급한 소식이 도착하여 지체 없이 전하고자 이 같은 무례를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이지?”
따분함을 숨기지 않던 멜리사 여왕이 흥미가 생긴 눈빛으로 고개를 들며 물었다.
“성국의 교황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폐하.”
수석 집사의 말에 멜리사뿐만 아니라, 양옆에 도열해 있던 귀족들 모두가 여왕 앞이라는 것도 잊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확실한 건가?”
“그렇습니다. 폐하. 방금 성국의 오실리아 추기경께서 직접 통신으로 이야기하셨습니다.”
“원인은?”
“‘콜 로스’라는 암살자에 의한 암살이라고 합니다.”
“……암살이라고?”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단순히 성국의 교황이 죽었다는 사실보다도 멜리사는 그가 암살을 당했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성국의 교황, 프로코피우스 두카스는 그저 교황으로만 치부할 인간이 아니었다.
거의 괴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인물. 교황에 오른 초기를 제외하고 직접 본 지 꽤 되었지만, 그때의 두카스를 생각하면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 강해졌을 터.
그런 두카스를 죽인 암살자라면…….
“재상.”
“예, 폐하.”
멜리사가 가장 상석에 서 있던 수염이 길게 난 노인에게 묻는다.
“그 대부호 영감이 ‘암황’에게 죽었다는 정보가 자꾸 떠오르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저 또한 그렇습니다. 폐하.”
“그럼 코벳 레이먼드를 죽이고 성국의 교황도 ‘암황’이 죽였다?”
“‘비틀린 시간의 목걸이’가 이번 대의 암황에게 넘어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 사료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충분히 그리 의심할 만했으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서 두카스의 진면목을 아는 이는 멜리사를 제외하곤 없었다.
‘이제 막 암황에 칭호를 얻은 애송이가 아무리 전대 암황의 유물을 얻었다고 해도 불가능할 텐데…….’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그녀가 가볍게 머리를 털며 생각을 정리했다.
“재상은 암황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에 더 집중해봐.”
“알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카리나.”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왕의 딸인 카리나가 대답한다.
“예.”
“자꾸 다른 데로 보내서 미안한데, 네가 직접 사절단으로 갔다 오려무나. 직접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는 법이니.”
“알겠습니다. 폐하.”
카리나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취하자 가볍게 미소 짓는 멜리사. 이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고는 말한다.
“가는 김에 브릴런트에도 한 번 들리고 말이야. 내가 친히 서신을 보냈는데, 아직 소식 한 통 없는 게 썩 기분이 좋지는 않구나.”
“……알겠습니다.”
“돌아오는 김에 우리 ‘예비 사위’도 같이 데려왔으면 좋겠구나.”
“……폐하.”
말을 내뱉던 카리나가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한들 자신의 어머니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 뻔히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성국의 변화로 인한 대륙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다들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보도록.”
* * *
로자리아 왕국뿐 아니라 바란 제국, 브릴런트 왕국 그 외 작은 자유 도시의 영주들까지 전부 사절단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특히나 권세 높은 가문들과 신성 왕국의 교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유력 가문들은 모두 가문의 직계들이 직접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르젠 가문도 포함되었다.
“교황의 죽음이 뭐라고, 내가 가야 하는 거야?”
“아르한. 아버지의 명이다.”
“칫, 그것만 아니었으면 안 갔어. 그 재미없는 곳을 가야 한다니…….”
아르젠 가문의 다섯째, 리안 아르젠과 여섯째 아르한 아르젠이 이번 사절단의 책임자로서 움직였다.
“세상 구경을 해야 네 식견도 넓어지는 거다.”
“참나, 검만 잘 쓰면 되지. 아니 형, 진짜 그 소문 때문에 그렇게 선뜻 간다고 한 거야?”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는 법이다.”
“무슨 소리야? 직접 봤잖아? 천재? 그것도 궁술, 검술 심지어 쌍검술까지 쓸 줄 아는 세기의 천재라고? 하!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아르한은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리안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다.
“만약 진짜라면?”
“뭐?”
“진짜로 렌이 천재였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냐?”
리안의 진지한 물음에 미간을 좁힌 아르한이 머리를 털며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아 몰라. 그럴 일이 없는데 머리 아프게 그런 걸 왜 고민해?”
“……대비는 해두어야 하니까.”
리안이 벽에 기대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렌 아르젠의 소문들을 떠올렸다.
‘궁술, 쌍검술, 검술……. 심지어는 마스터급이라고?’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마스터가 아무나 될 수 있는 경지도 아닐뿐더러 렌이 그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면 진작에 가문에서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의 상황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다.
헛소문이라기엔 대륙을 떠도는 소문의 여파가 생각보다 강했을뿐더러,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퍼진 소문이 더욱 기괴했다.
보통은 음지에서 소수만이 알고 있는 정보가 더 정확한 법. 근데 렌에 관한 소문은 음지에서 더 과장되어 있었다.
소문의 반만 따라가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게으르게 누워 있지 말고 훈련이나 해라. 네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너보다 뛰어난 놈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니까.”
“흥, 나보다 뛰어난 놈들이 어디에나 있다고? 아무리 형이 말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심한 개소리인걸? 큭.”
리안의 말은 귓등으로 듣지 않은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누워서 휴식을 만끽한다.
“준비나 잘해놔라. 내일이면 출발할 테니.”
“알았다고. 잔소리는.”
한편, 시간이 제법 흐르고 차츰 안정되어가던 브릴런트의 왕실에서도 성국에 사절단으로 누구를 보낼지 의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왕국의 회의실.
거대한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왕실의 새로운 간부들이 하나 같이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다.
지난 흑성의 습격 이후 하루도 편히 쉴 날이 없이 업무를 수행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다.
얼마나 왕실의 내부가 썩어 있었던지 썰려 나간 귀족들이 절반이 넘었고 그 나머지 업무를 새로운 인재들과 남은 인원이 모두 해결해야 했기에 여유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상석에 앉아 있던 알란 헤르티아가 먼저 서두를 던졌다.
“교황의 서거는 중대한 사항입니다. 대륙의 이름난 이들은 모두 모일 테니 적어도 그들에게 모자라지 않은 인물이 간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죠.”
1왕녀 제인 헤르티아가 의문을 제기했다.
“문제는 성국에 갈 만큼 다들 여유가 없다는 것이죠.”
“시간이야 내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새로 부임한 행정부의 합의관이 제인의 말을 반박하듯 말했다.
몇몇 이들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만, 입 밖으로 불만을 내뱉지는 않았다.
이번 브릴런트의 개편 이후로 이런 회의에서 왕족이라고 무조건적인 예우나 존중은 사라졌다.
그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고 조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체계.
왕권이 사라진 건 아니었으나, 왕의 자식들에게까지 그 권한이 주어지진 않았다.
“그 시간만큼 다른 이들은 배로 고생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볍게 꺼낼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군요.”
합의관의 의견에 다시 반박하는 이는 군부를 총괄하고 있는 루이즈 헤르티아.
그 말에 침음을 삼킨 합의관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회의실 속 기묘하게 갈라진 공기. 루이즈와 알란을 중심으로 파벌이 나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견제하느라 왕실의 미래를 망치는 일은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스스로를 발전해나갈 뿐. 그들의 공동의 목적은 결국 브릴런트의 발전이었으니.
그러한 동기가 지금 브릴런트의 성장 동력이 되고 있었다.
“…….”
“…….”
한참이나 이어진 회의 끝에 내려진 결론.
“역시 그자밖에 없겠습니다.”
“예. 아무래도…….”
“하긴, 지금 대륙에 가장 잘 알려진 게 그 녀석 아닌가?”
알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동의합니다.”
의전장관 테리 번스가 간략히 의견에 동조하고.
“제가 생각해도 렌 경만 한 사람이 없네요.”
“주군이라면 어느 기사가 와도 왕국의 체면에 먹칠할 일은 없을 걸세.”
제인과 코헨도 그 의견에 수긍했다.
“하지만 렌의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루이즈는 그 무엇보다 렌이 사절단의 대표로 나서려고 할지가 가장 의문이었다.
“……그만한 보상을 줘야겠지.”
“동감이에요. 그냥 가라고 하면 그 사람은 핑계를 대면서 안 가려 할 테니까요.”
제인이 그간 렌의 성격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뭘 줘야 할지를 정해야겠군.”
그들의 고민이 다시 깊어졌다.
한편, 판테아 궁전에서는 한창 추기경 회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이들은 오실리아, 저스틴 외 5명.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는 추기경들 중 3명의 추기경이 얼마 전에 바스티안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교황의 선출을 위해 ‘콘클라베’를 열 거야. 추기경 전체에 공지해. 모든 임무와 업무를 중단하고 한 달 안으로 돌아오라고 말이야.”
오실리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벌컥 열리는 회의실의 대문.
정신을 잃은 렘과 아라드가 온몸이 묶인 채로 바닥에 철퍼덕 엎어진다.
그를 따라 들어온 애스턴. 그가 각종 서류와 유통 증거의 명패, 화폐, 마약 등을 테이블 위에 쏟아부었다.
“애스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교황과 렘, 아라드가 그간 저지른 비리와 부패의 증거물이다.”
“……뭐?”
“흑성과 거래했더군. 성국의 아이들과 성인들을 흑성에 갖다 바치고 그 대가로 티배코와 금품을 받았다. 그리고 렘과 아라드는 그것과 연루되어 있었고.”
추기경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교황이 뒤에서 마약을 한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저 눈감고 넘어갔을 뿐.
근데 아이들을 흑성에 팔아넘긴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흑성 남부 지부에서 가져온 거래 내역과 렘과 아라드의 비밀 거처에서 가져온 장부다. 확인해봐라.”
표정을 굳힌 그들이 증거들을 보았다. 흑성의 지부에서 가져온 장부까지 완벽하게 일치했다. 조작할 수도 없는 명백한 증거였다.
“허…….”
“성하가 이런 짓까지 하고 계셨을 줄은.”
추기경들이 연신 탄식을 흘리며 복잡한 얼굴을 한다.
“그래서 이걸 공론화라도 하자는 거야?”
오실리아가 애스턴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
“의외인데. 애스턴 너라면 거품을 물고 온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저스틴이 게슴츠레 그를 바라보며 말한다.
“뒤에서 누가 시켰나? 뭐, 렌 아르젠 같은?”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추기경들이 일제히 저스틴에게 의문의 시선을 던지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애스턴이 가볍게 웃으며 뒤를 돌아봤다.
“들어오십시오.”
그 말과 함께 열리는 대문.
“그래서 참고인으로 불렀다.”
단정하게 정리된 잿빛 머리칼과 깔끔한 정복. 날카로운 기세를 차분하게 정돈한 기사가 회의실로 들어온다.
“렌 아르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