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79
제179화
‘허,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거였나?’
신이 말했던 단말의 연결. 그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영웅들을 찾아 단말을 연결해야 한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도, 카리나라면 충분히 영웅의 자격이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아직은 역시 부족했던가.
‘선대의 유산…….’
“왜 그러지?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것이냐?”
“아, 아니야. 로레즈가 지난번에 의심스러운 놈들을 봤었다고 내게 언질을 줬었어. 그래서 검은 빛기둥이 펼쳐질 때도 찾았던 거고. 그때 로레즈가 흑성의 잔당과 싸워서 부상을 입었길래 안부 차 온 거야.”
카리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대충 둘러대긴 했는데, 딱히 의심은 안 하는 눈치다.
“이제 곧 사절단이 떠난다.”
“알고 있어. 브릴런트도 슬슬 갈 생각이니까.”
“내가 지난번에 말한 것. 기억하느냐?”
“로자리아에 오라고 했던 거?”
“그래. 폐하께서 너를 보고 싶어 하신다고 말했었지.”
“맞아. 꼭 간다고 전해드려.”
“그것 말고도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부탁?”
“네가 묘지기이지 않으냐.”
“맞지.”
“얼마 전에 로자리아에서 선대 마법사들의 무덤을 발견했다.”
이래서 내게 서브 퀘스트가 나타났던 건가?
지금까지의 서브 퀘스트들은 모두 묘지의 망령들과 관련된 경우에 나타나곤 했었다.
메인 퀘스트와 더불어서 아마 이것도 그러한 경우이지 않을까.
“왕국의 조사단이 조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네게 도움을 구하고 싶다.”
“그래도 되겠어? 선대의 무덤인데?”
“너라면 믿을 수 있다. 렌.”
“좋아. 도와줄게.”
“고맙구나. 난 네게 매번 도움만 받는 것 같다. 아비트라리에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말이다.”
아비트라리에서 카리나가 공시아라는 가명을 쓰고 정체를 숨기지 않았다면, 아마 내 도움 따위는 필요도 없었겠지.
사실, 마지막에 플레이크와의 싸움에서도 카리나가 나서려는 걸 내가 막았기에 그 상황까지 갔던 것이지. 아마 카리나가 싸웠다면 플레이크는 제대로 힘을 쓰지도 못했을 거다.
“아비트라리 때는 내 오지랖이 넓었지.”
“아니다.”
카리나가 대뜸 다가와 나를 안았다.
“어?”
갑작스러운 상황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굳었다.
“고맙다. 지금까지 네가 해준 모든 것이. 그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 말한 카리나가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살짝 고개 숙인 그녀의 뺨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지금 내 얼굴도 그럴까?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어……. 그래.”
“……이만 가자꾸나.”
“…그래, 그래야지.”
나는 그대로 브릴런트의 사절단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의 얼굴이 다들 잔뜩 상기되어 있다.
“도미닉. 돌아가는 게 그리 좋으냐?”
“어우! 대장군님. 이제 브릴런트 밖은 지긋지긋합니다.”
“쯧쯧. 부단장이라는 놈이 그리 약해 빠져서는. 금사자 기사단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지 않습니까? 대장군님?”
옆에 있던 앤드류가 한마디 거든다.
“그래. 맞다. 제프먼 너도 상당히 기분 좋아 보이는데?”
“어머니를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긴. 돌아가면 나도 한 번 뵈러 가지.”
“언제든지 오십시오. 제대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대장군님.”
제프먼이 이를 악물고 결연한 눈빛으로 말한다. 무슨 전쟁이라도 나가나.
‘성국의 콘클라베가 끝날 때까지는 있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지.’
콘클라베에서 교황의 선출이 진행된다.
이견 조율이 되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콘클라베가 얼마나 길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왕국의 사절단도 움직이지 못하기에 별수 없이 먼저 돌아가기로 했다.
‘애스턴이 교황에 올라가야 할 텐데.’
콘클라베를 뒤집어엎을 수도 없고 이번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한 내가 애스턴을 지지했으니 그 영향은 제법 클 것이다.
더구나 신의 계시도 들먹였으니, 무시할 수는 없을 테지.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
애스턴이 알아서 잘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 * *
넓은 돔 형태의 공간. 어둠과 음산한 분위기가 공간을 감싸고 있다. 벽면에 박힌 바위와 조개껍데기.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모래 먼지가 부드럽게 떨어져 내린다.
가운데에 놓인 크리스탈로 이루어진 거대한 원형 탁자와 검고 푸른색의 의자들.
총 일곱 개의 의자가 놓여 있지만, 자리에 앉은 이들은 여섯뿐이다.
이 공간의 어둠을 밀어내는 유일한 빛은 탁자 중앙의 초승달 모양 캔들뿐.
벨벳 소재의 검은 드레스를 입은 마리타 바니디가 짜증을 부리며 입을 연다.
“또! 또! 그 죽음의 씨앗이 일을 방해했어! 내가 말했지? 러스트 그 자식한테만 맡기면 안 된다고.”
“못남. 러스트. 이겼다. 나였으면.”
검은 실크 옷을 입은 베니암이 그곳에서 가장 큰 의자에 몸을 푹 누이고 말한다.
“닥쳐! 그 뒤룩뒤룩 찐 살 속에 파묻혀서 움직이지도 않았을 놈이.”
“계획은, 한다.”
“마리타, 화낼 필요 없다. 이번엔 그 변수가 너무 컸으니.”
어깨에 뿔이 달리고 가슴팍에 황금색의 장식이 박힌 가죽 옷을 입은 ‘스노비쉬’가 나지막하게 말한다.
“룬어를 사용했다지? 사라진 줄 알았던 신성 마법을 렌 아르젠이 썼다. 미리 알았다면 모르겠지만, 몰랐던 이상 우리 중 누가 갔더라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흥! 내 예언이었다면 그리 허무하게 당하진 않았어.”
“러스트…, 아니지. 레티나 님까지 그 신성 마법에 당했다. 그냥 죽은 것도 아닌 존재가 소멸당했지. 이건 어쩔 수 없는 변수였다.”
스노비쉬의 말에 그랜트와 아이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대로 보고만 있자는 거냐!”
테이블을 쾅 내리치며 벌떡 일어서는 붉은 머리의 남자.
흑색의 갑옷을 입은 그가 분노와 증오가 공존하는 표정으로 소리친다.
“놈한테 벌써 몇 번째 쳐 당하는 거지? 내가 가서 놈을 당장 죽여버리겠다!!”
“진정해라, 레이지.”
창백하고 붉은 피부의 뾰족한 인상의 아이손이 날카롭게 말한다.
“너처럼 막무가내로 가면 되려 당한다.”
“흥! 아이손 네놈이 북부에서 까마귀로 헛짓거리한 것보다는 낫겠지.”
“둘 다 그만해라.”
스노비쉬의 만류에 두 사람이 이를 악물고는 말을 멈췄다.
“렌 아르젠이 곧 제국으로 떠난다더군.”
“그럼 그때 브릴런트를 치자고?”
마리타의 물음에 레이지가 크게 웃으며 다시 일어선다.
“크하하하!! 내가! 내가 가지! 브릴런트를 아주 박살 내주겠다.”
“아니, 우리는 브릴런트를 치지 않는다.”
“무슨 소리야? 렌 아르젠이 없을 때 놈의 본진을 치자는 거 아니었어?”
“그게 본진이라고 생각하나? 브릴런트는 그저 놈이 살아온 곳일 뿐이다. 멀리 봐라. 브릴런트가 없어진다고 한들 렌 아르젠의 분노는 살 수 있을지언정 대륙을 정복하는 건 힘들어진다.”
“그럼 어디를 치자고?”
“성국의 포지티리움을 친다.”
스노비쉬의 말에 간부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의견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마리타가 다시 물었다.
“그럴거면 차라리 바스티안을 치지?”
“곧 성국에 새 교황이 선출된다. 그 전 교황인 두카스만큼은 아니어도 교황이 선출된다면 한동안 성국 전체에 신의 축복이 씌워지겠지.”
“그까짓 거, 우리 힘으로 깨면-.”
“렌 아르젠이 성물의 힘을 개방해놓았다. 라만의 창의 위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만약 새로 선출된 교황이 라만의 창을 쓰게 되면 또 일이 틀어질 가능성이 생긴다.”
“하긴…….”
마리타도 듣다 보니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포지티리움에 성국의 세 번째 유물이 숨겨져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뭐? 정말이야?”
“그래.”
“그럼 이번에도 성물 탈취인가?”
“아니, 이번엔 조금 다르다.”
스노비쉬의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담긴다.
“범죄자들의 감옥, 포지티리움. 그곳에 갇힌 성자를 이용할 생각이다.”
* * *
추모를 위해 왔던 사절단의 사람들이 다들 돌아갔다.
브릴런트 역시 마찬가지.
왕국으로 돌아간 사절단은 오히려 한동안 더 바쁘게 움직였다.
성국에서 있던 일들의 보고와 이후의 일 처리 때문.
특히나 성국의 교황 추모를 위해 사절단 대표로 갔던 렌은 성국의 멸망을 막아낸 대영웅이 되어 돌아왔다.
왕성의 회의실에 모인 2왕자와 3왕자 그리고 왕실의 고위 간부들이 모두 모여 성국에서의 전말을 모두 렌에게 들었다.
“허…….”
“흑성에서 또 악마를…….”
“렌, 정말로…, 정말로 신의 계시를 받은 건가?”
루이즈가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묻는다.
“아무래도 흑성이 본격적으로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렌이 이렇게 왕실의 고위 귀족들을 모은 이유는 브릴런트에도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성국조차 흑성의 계략에 당할 뻔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브릴런트라면 언제든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
성국의 위기는 렌이 교황을 죽임으로써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결국은 겪게 될 문제였다.
이미 교황의 상태는 매우 나빠져 있었으니.
“브릴런트의 전력을 빠르게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력의 강화는 나도 동의하는 바지만, 지금 당장 군부의 지원을 늘리는 건 안 돼.”
알란이 나서며 고개를 저었다.
“국군의 전력 강화는 중요한 일이지만, 그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아니지. 하물며 억지로 병사를 징집하고 군사력에 힘을 쏟다 보면 결국 왕국이 무너지게 될 테니까.”
“루이즈에게 힘이 쏠리는 걸 견제하는 건 아니고요?”
1왕녀 제인 헤르티아가 코웃음을 치며 알란의 말에 반박했다.
“그게 무슨 말이오! 2왕자 전하의 의도를 왜곡하지 마시오!”
“맞습니다. 아무리 왕녀님이라도 그런 발언은 참을 수 없습니다.”
알란 쪽 귀족들이 노발대발하며 일어선다.
“그럼 그게 아닙니까? 지금 상황에서 군부에 힘을 실어야지! 정말 내정에 힘을 쏟을 때라 생각하는 겁니까?”
“누가 내정에 힘을 싣는다고 했소? 무작정 군부에 힘을 싣는 건 좋지 않다고 분명 2왕자 전하가…….”
“그만하십시오.”
렌이 미간을 좁힌 채 테이블을 쾅 쳤다.
한순간에 벙어리가 되어버린 귀족들이 렌의 눈치를 보며 다시 자리에 앉는다.
렌의 단 한 마디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루이즈도, 알란도, 의전 장관도 모두. 렌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린다.
뚜렷하게 인식하지는 못해도 그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렌의 결정이 곧 이번 회의의 최종 결정의 방향과 비슷할 것이라는 것을.
그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매번 달라지는 그의 위상. 이제는 아득하게만 높아져 버린 렌의 명성과 그 영향력은 아무리 브릴런트의 정통한 후계자들조차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알란 왕자님의 말도 일리는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내부에서 이렇게 싸울 때가 아닙니다.”
이들이 대륙의 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악마를 마주한 이와 아닌 이들이 느끼는 체감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아마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성국에 갔다 왔다면 이러한 태도를 취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성국이 멸망할 뻔했습니다. 지난 브릴런트의 습격 사태를 생각하십시오. 만약 그 계획이 브릴런트에서 벌어졌다면 십 중 십의 확률로 왕국의 모든 이들이 죽었을 겁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렌은 잔뜩 실망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는 말을 이어갔다.
“마법병단을 만들어볼 계획입니다.”
“마법…병단?”
루이즈와 알란이 놀란 눈으로 렌을 본다. 브릴런트에 마법병단이라니. 마법사도 거의 씨가 말랐고 가르쳐줄 이도 없는데 말이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마법병단.
브릴런트의 복귀 이후 데케인에 들르자마자 렌이 고민했던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