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19
제19화
원정대가 전선을 밀어내며 전진했다.
루이즈의 공격대는 뒤에서 기회를 엿보며 열심히 싸우고 있었고 나는 병사들 틈에 껴서 적당히 괴수들을 죽이며 시간을 때웠다.
첫 번째 공격에선 괴수들의 우두머리가 보이지 않았다.
모여든 사막 괴수들의 종 분포도를 확인한 결과, 이번 웨이브의 보스는 뱀이나 지렁이 종류라 추정되고 있는 상황.
하지만 여태 그에 상응하는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드럽게 덥네.”
“괜찮나?”
“어억!”
나는 깜짝 놀라 물을 먹다 말고 뱉어버렸다.
혼자 욕하면서 중얼거리는데 뒤에서 로벤이 튀어나온 탓이었다.
아니 기사들은 다 저기 있는데 왜 혼자 여기 있는 거야?
“상부에 보고를 드리고 오는 길이네.”
내 속마음을 읽는 건가?
“아, 네. 이번에는 어떤 것 같습니까?”
“뭐, 허탕이지. 애초에 이번 공격에 보스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중간 보스급의 괴수 소탕 정도가 목표라네.”
“그렇군요.”
괜히 따라왔나 싶었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땀이 주르륵 흐르고 체력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불쾌감이 매 순간 최대치를 찍고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검을 잘 쓰는데?”
로벤이 무슨 신기한 동물 보듯 나를 보았다.
그럴 만도 한 게, 늑대 말도 할 줄 알아, 사막 부족의 야바위 게임도 잘해, 묘지기가 검도 잘 써…….
나 같아도 정체가 뭔지 궁금할 것 같았다.
[하벤베르크 검술 – 초급]
하벤베르크 아르젠의 모든 정수가 집약된 검술입니다. 숙련도가 증가할수록 검에 대한 이해도가 증가합니다.
– 숙련도 41.8475%
# 검을 휘두를 때마다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벌써 숙련도가 50%를 향해 가고 있다.
괴수들을 죽이며 숙련도를 많이 올렸다.
“제가 어릴 때 한창 검술 연습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제는 안 하고?”
“가끔 취미로 휘두르긴 합니다.”
“아쉽군. 검 쓰는 걸 보니 재능이 꽤 있어 보이는데 말이야.”
그가 진심으로 아쉬운 얼굴을 하고 나를 보았다.
정말 나를 기사로 만들기라도 하려는 건가.
휴식이 끝나고 원정대는 다시 사막 지대 안쪽으로 움직였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괴수들이 나타나는 주기가 짧아지고 더 강력한 괴수들이 나타났다.
“크윽……!”
땅바닥에서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독침이 내 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콰직!!
곧장 검으로 땅을 찔러 모래 안에 숨어 있던 전갈을 죽였다.
아무래도 모래 밑에 숨어 있는 괴수를 앞쪽 전선의 병사들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듯싶었다.
이래서 갑옷은 안 입어도 신발은 단단한 걸로 신으라고 사막 부족이 당부한 건가.
‘방심했어.’
뒤쪽이라 안전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조심성이 떨어진 듯했다.
다행히 이 정도 독은 사제에 의해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묘지기님이 자원해서 전장에 참여하셨다 들었어요. 그 성품에 감탄했답니다.”
나를 치료해준 사제가 미소 지으며 내 발을 치료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한 번 더 하며 간이 막사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저쪽에 루이즈의 공격대가 몸을 푸는 모습이 보였다.
‘뭐지?’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곧장 알 수 있었다.
소란이 일었다.
그리고 위로 치솟는 뜨거운 모래가 병사들에게 흩뿌려졌다.
‘돌연변이 검은 등 전갈……!’
낙타 10마리는 합쳐 놓은 듯한 거대한 덩치의 괴수였다.
등은 시커먼 반면에 나머지 부분은 모래와 같은 색이었다.
“가자!”
루이즈의 힘찬 음성이 들린다.
전투 낙타 위에 올라탄 이들이 빠른 속도로 전갈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콰직! 콰드득!! 서걱-!
이전에는 설렁설렁 검을 휘두르며 참여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사막에서 나보다 덩치가 두 배는 더 큰 괴수를 마주쳤을 때도 이렇게 떨리진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분명 루이즈는 이번 원정에서 무사히 돌아간다.
이건 변함없는 진실이고, 사실이어야만 했다.
근데 왜 내 심장은 고장 난 것처럼 마구 뛰냔 말이야.
이를 악문 나는 순식간에 병사들 틈에 끼어들었다.
모래가 허공을 수놓으며 여기저기 튀어 오르고 있을 때, 그 안개 같은 모래 사이로 루이즈가 검은 등 전갈의 갑각에 검을 내지르는 게 보였다.
갑각은 두껍지만, 그 틈 사이는 연하다.
그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루이즈의 검이 그 사이로 들어갔다.
촤악―!
노란 물이 그 사이로 튀어 올랐다.
역시,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거였나?
루이즈의 공격대는 날렵하게 전갈의 공격을 피하며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루이즈는 끈질기게 갑각의 틈을 노려 유효타를 먹였다.
‘재능 하나는 알아줘야겠네.’
검을 기깔나게 잘 썼다.
그리고 그것엔 이유가 있었다.
[루이즈 헤르티아]
– 특성: 검재(劍才)
– 기술: 브릴런트 왕국 검술 중급, 헤르티아 검술 초급
– 힘: 10.8
– 민첩: 12.1
– 체력: 13.6
– 감각: 9.7
– 기력: 5.1
가진 능력치만 보자면 기사급보다 조금 떨어지는 정도였지만 그에겐 검재(劍才)라는 특성이 있었다.
[검재(劍才)]
검을 다루는 재주가 있습니다.
# 검을 익히는 속도가 평범한 이들보다 빠릅니다.
이것 때문에 그의 검술 숙련도가 빠르게 늘어나는 듯했다.
가르치는 스승의 차이도 있겠지만.
‘근데 헤르티아 검술? 헤르티아 왕족이 검술도 가지고 있었나?’
이건 과거의 나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브릴런트 왕국의 왕족인 헤르티아의 성을 가진 이들 중에 검을 제대로 다루는 사람은 루이즈 말고는 없었다.
루이즈가 대성을 이룬 검술도 그냥 브릴런트 왕국 검술이었다고 들었는데…….
‘뭐지?’
우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상황이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루이즈의 공격대가 곧 돌연변이 검은 등 전갈을 잡을 것 같았다.
쿵, 쿵, 쿵, 쿵…….
심장박동 소리가 더욱 빨라진다.
전장이 마치 하늘에서 들여다본 것처럼 상세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보았다.
여전히 전장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내 온몸의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빠르게 움직이던 내 동공에 무언가 이질적인 장면이 잡혔다.
저 먼 곳에서부터 순간 바닥이 들썩이는 것이 보였다.
내가 어떻게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미 내 몸은 루이즈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사막의 모래가 솟구친다.
모래폭풍이 일어난 것마냥 허공에 모래가 비산하고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전갈의 목에 검을 박아 넣으려던 루이즈가 당황한 얼굴로 내 쪽을 보았다.
발밑에서부터 땅이 들어 올려지며 모래가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덩달아 같이 들어 올려진 나는 무언가에 미끄러져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윽!”
곧바로 일어나 루이즈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며 뒤를 보았다.
묵빛의 거대한 지렁이가 땅 밑에서 튀어나와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순간 아마 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직감했을 것이다.
저놈이 이번 웨이브를 일으킨 괴수들의 우두머리라고.
* * *
이번 원정대에 참가한 스칼렛 아르젠은 나름 이번 원정을 기대하며 따라나섰다.
남부 사막 괴수들의 우두머리와 싸우면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루이즈 왕자는 브릴런트 왕족 중에서도 제법 검술 재능이 있어 보여 흥미가 생긴 왕자였다.
그래서 오는 길에 대화도 좀 하고 나중에 대련도 한 번 하기로 했다.
나름 호감 가는 녀석이기에 스칼렛은 그를 좀 봐주며 위험에 처하면 지켜주려 했었다.
이번 원정에서 그나마 흥미가 가는 인물은 루이즈뿐이라 생각했으니.
근데 의외의 인물이 관심에 들어왔다.
렌 아르젠.
가주의 혼외 자식이자, 염치없이 가문에 들어왔다가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놈이었다.
브릴런트에 정착하여 묘지기 일이나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자꾸만 그 녀석의 이름이 들려왔다.
– 렌 아르젠이라고 아십니까?
루이즈 왕자가 물어보질 않나.
– 이번에 렌 아르젠이라는 묘지기가 검은 늑대들을 유인해서 병사들을 지켰답니다.
기사들이 이상한 헛소리를 하며 그 녀석에 대해 이야기하질 않나.
– 이런 개 같은 새끼! 렌 아르젠? 그 묘지기 놈 가만두지 않겠어. 감히 우리를 물 먹여?
바란 제국의 기사들이 일개 묘지기에게 물먹었다며 화를 버럭 내기도 했다.
반복되어 들려오는 이름에 렌 아르젠이라는 놈에게 관심이 조금 생겼다.
놈은 사막에 와서 병사들의 시체를 수습하며 정말 시체를 옮기고 묻어주는 일만 반복했다.
그런 녀석을 관찰하다 보니 신기한 게 보였다.
‘……뭐야?’
인간들에게 딱히 관심을 주지 않는 부족장 알바이가 그에게 심상치 않은 눈길을 보내는 것이었다.
거기다 자신보다 약하거나 아랫것들을 무시하는 게 특성인 기사 놈들도 그놈을 매우 좋아했다.
용병들은 이미 그를 따르고 있었고.
볼수록 신기한 놈이었다.
그러던 놈이 갑자기 전장에 합류했다.
스칼렛은 흥미로운 눈으로 그놈을 관찰했다.
일선에 나서서 괴수들을 죽이지는 않았으나, 뒤쪽으로 흘러나오는 괴수들을 깔끔하게 죽이기 시작했다.
과거에 알던 렌 아르젠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렌이라……. 웃긴 녀석이네?’
뒤로 튀어나오는 괴수들을 죽이는 놈의 태도가 웃겼다.
마치 훈련이라도 하는 듯, 검이 깔끔하게 휘둘러지지 않을 땐 표정이 안 좋고, 괜찮게 휘둘러질 땐 티 나게 웃음을 지었다.
‘그 차이를 알다니…….’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눈에서부터 티가 난다.
이게 제대로 된 검술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눈.
렌 아르젠이라는 저 녀석은 그걸 가지고 있었다.
‘저런 놈이 왜……그리 바보같이 쫓겨난 거지?’
지금 보이는 능력만 보아도 가문의 웬만한 머저리들보다 나아 보였다.
대륙 최고의 검가(劍家)라 불리는 아르젠 가문이라도 병신들은 많았다.
어쩔 땐 그냥 그 팔을 잘라버리고 가문에서 내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그때, 렌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보았다.
루이즈의 공격대가 돌연변이를 잡고 있었다.
문제는 없어 보인다.
무난히 전갈을 잡고 돌아오겠지.
하지만 렌은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설마 루이즈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스칼렛의 렌에 대한 평가가 떨어지려고 할 때.
렌이 어딘가를 멍하니 보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가 달리기 시작했다.
‘왜 저러…….’
스칼렛이 눈을 부릅떴다.
심상치 않은 힘이 땅바닥을 기어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눈치를 못 채다니……!’
렌에게 너무 정신이 팔려있었나?
녀석은 이미 루이즈를 향해 움직였고 땅 밑에서 느껴지는 이 거대한 지렁이는 그들과 본대의 사이를 가로지른 상태였다.
쿠구구구구구구구―!
모래가 나부끼며 비산했다.
거대한 지렁이가 길을 막아 루이즈의 공격대와 렌의 모습이 가려졌다.
스칼렛이 땅을 박차고 뛰었다.
검에 기를 담아 허공에 흩뿌렸다.
동시에 놈의 꼬리가 요동치더니 모래의 파도를 이쪽으로 쏟아냈다.
“크윽……!”
검기가 모래를 가르고 지렁이에게 날아갔지만 지렁이의 몸에 얕은 상처만 내고 스쳐 지나갔다.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벌써 괴수들의 우두머리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저 묵빛 지렁이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위협적이다.
원래라면 후퇴해서 전열을 가다듬고 병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지만, 스칼렛은 그런 생각 따위 하지 않았다.
‘재밌네……!’
그저 강한 괴수와의 만남이 그녀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강한 놈과의 싸움을 위해서였으니.
하지만 그 기대와 다르게 모래에 거대한 몸을 몇 번 비비던 지렁이는 모래와 먼지 안개 속에서 땅을 파고 모습을 감췄다.
“칫, 지렁이 새끼 튀었네.”
그녀가 아쉬움에 침을 땅에 퉤 뱉고는 루이즈와 렌을 떠올렸다.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을 아무리 살펴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