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edigger of the Fallen Kingdom RAW novel - Chapter 30
제30화
스칼렛 아르젠이 떠나고, 나는 데케인에 누워 그녀가 남기고 간 종이를 구기며 바닥을 굴렀다.
– 쯧. 그만 염병 떨거라.
조상님이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오! 왜 그딴 걸 가르쳐 달라고 해가지고!”
렌은 종이를 펼쳐 윗부분을 양손으로 잡았다가 멈칫하고는 다시 구겨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종이에는 다음 만날 장소와 약속 시간이 적혀 있었다.
– 어차피 그 녀석이 월격을 배우려면 한참 멀었다. 걱정 말거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 여자를 계속 봐야 하는 게 문제지.”
차라리 아르젠의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그녀의 특성인 광인(狂人).
그 대상이 내게로 향하면 상당히 골치 아파지리라는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광인(狂人)]
무언가에 광적으로 집착합니다.
# 집착 대상에 대한 집중력이 매우 강해집니다.
아르젠 가문의 직계인 넷째 딸, 스칼렛 아르젠.
그녀는 어릴 때부터 검술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고 그와 동시에 상대를 때려눕히고 이기고 죽이는 것에 광적인 쾌감을 느꼈다.
그 결과 남들보다 빠르게 강해져 벌써 상급 기사급의 실력을 얻었다.
‘그게 저 특성 때문이었군.’
가문에 있을 때도 최대한 엮이지 않으려 했던 미치광이가 저 여자다.
근데 지금 도망갈 수 없는 덫에 빠져 버렸다.
– 너에게는 나쁘지만도 않은 일이지.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 상급 기사와의 훈련이 흔한 줄 아느냐. 하물며 아르젠의 검사라면 말 다 했지. 네놈은 지금 고작 기사급도 되지 않는다.
“그게 훈련입니까? 제가 저 여자를 가르쳐야 하는데?”
– 가르치면서 배우는 게 더 큰 법이다. 가르치는 것을 그저 봉사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가르치면서…배운다…….”
나는 조상님의 말을 곱씹으면서 턱을 매만졌다.
“그럼 조상님도 저를 가르치면서 무언가를 배우셨습니까?”
– 내가? 네놈은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면서 보법을 배우느냐?
“제가 그 정도는-.”
– 아니지. 너는 아기 수준도 아니다. 처음에는 아주 인간만도 못한 쓰레기였지.
괜히 말을 꺼냈다.
결국 귀결되는 것은 나에 대한 타박일 텐데 말이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열심히 하는 거 가지고…….
힘든 몸을 이끌고 억지로 검을 들었다.
– 검을 잡은 자세가 왜 이리…….
검에 모든 것을 집중하자, 뒤쪽에서 조잘대는 조상님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배경음악처럼 아늑하게 들려온다.
내가 드디어 이러한 경지에 올랐구나.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뿌듯함을 뒤로한 채, 나는 그날 밤이 다 지나가도록 검을 휘둘렀다.
* * *
코르미르.
브릴런트 왕령 중에서도 가장 많은 무구들이 공급되는 도시이다.
트레비스 가에서 관리하는 영지로, 그들이 관할하는 지역에 깊은 철광이 존재해 철의 수급이 매우 원활했다.
때문에 대장간의 발전이 더욱 빨라졌고 결국 브릴런트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여긴가.”
많은 사람들이 도심지를 거닐고 있다.
양쪽으로 나열해 있는 건물들의 가판대에는 제법 괜찮은 품질의 무기와 장비들이 걸려 있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거리의 온도가 더욱 뜨거워졌다.
내가 멈춰 선 곳은 여러 대장간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야장이 운영하고 있다는 ‘용의 화로’라는 대장간.
다른 대장간과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거대하고 뜨겁다.
온갖 화로들이 활활 타오르며 불을 뿜고 있었고 반복되는 망치질 소리가 그 무엇보다 청명하게 들려왔다.
캉!
안쪽에 들어서니, 시원하다 못해 맑게까지 들리는 이 망치질 소리에 주의를 빼앗겼다.
멍하니 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시선을 돌리고 그곳을 따라 걸었다.
캉!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앞에서 한 근육질의 남성이 망치를 휘두르고 있다.
캉!
마치 기계처럼 일정한 움직임에 맞춰 근육이 꿈틀거리고 팔이 움직인다.
캉!
‘저 사람이…….’
코르미르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인 ‘칼렙’이 분명했다.
용의 화로를 운영하는 주인이자, 최고의 야금술을 가지고 있는 명장(名匠).
캉!
나는 그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칼렙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그의 단조를 구경했다.
‘뛰어난 실력자야. 이쪽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다른 대장장이들과 다르다 느껴질 정도로.’
뚝. 뚝. 뚝.
어느새 콧등을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칼렙은 망치질을 멈춘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쇼?”
나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렌 아르젠이라고 합니다.”
“아, 영주님이 부탁한 그 사람이로구먼. 칼렙일세.”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손아귀로 느껴지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느껴지는 뜨겁고 거친 피부는 그가 얼마나 망치를 오랫동안 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처럼 느껴졌다.
“그래, 무기를 원한다고? 생각해둔 게 있나? 원하는 형태라든지 어떠한 특성을 바란다든지 하는 거 말일세.”
“아직 정확히 떠오르는 건 없네요.”
“흠……, 그런가.”
칼렙은 이마에 난 땀을 훔치고는 몸을 돌려 걸었다.
“따라오게.”
“하던 작업은…….”
“상관없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희미한 감정은 분명 씁쓸함에서 오는 것이었다.
‘뭐지? 맘에 들지 않았었나?’
그렇다기에는 내가 들은 그 망치질 소리는 너무나 훌륭했다.
뭐, 내가 야금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니 무언가 잘못된 게 있을지도 모르지.
“자, 그간 내가 만든 작업물이네. 한 번 보고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여기서 가져가도 좋네.”
여기저기 걸린 검과 갑옷, 방패…….
대충 살펴보아도 느껴지는 장비의 질은 여타 다른 것들에 비할 바 없이 훌륭했다.
물론, 내 안목이 그리 뛰어나지 않아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거의 모든 무구들이 그냥 가져가도 좋을 만큼 충분히 훌륭했다.
“다 좋아 보입니다. 근데…….”
“뭐지?”
“확 와닿는 게 없네요. 제 인생의 동반자 같은 검을 찾고 싶었는데 말이죠. 하하하. 제가 너무 꿈 같은 소리를 했나요?”
약간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이야기했다.
툭하면 날이 빠지고 금가고 하는 그런 싸구려 검들은 이제 그만 사용하고 싶었다.
트레비스에서 이번에 제법 자신 있게 제안하길래 나름 나의 영혼의 단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이곳에 있는 검 전부 훌륭했지만, 나의 마음을 확! 끌지는 못했다.
여기서 칼렙에게 새로운 검을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 해봤자 뭐가 달라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 여기서 그냥 하나 골라가도록 하죠.”
“그러겠나?”
“예.”
굳이 칼렙이 무기 만들어줄 때까지 기다릴 필요나 있을까.
여기 있는 검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품질일 텐데.
“알겠네. 아, 그리고 자네에게 우리 스승님들의 묘를 보여주라고 하더구만. 지금 보겠나?”
“그래도 되겠습니까?”
“원래는 외부인들에게 굳이 보여주지는 않지만, 묘지기라니 뭐, 상관없겠지.”
묘지가 있는 곳으로 향하며 그에게 묘지에 대해 이것저것 들을 수 있었다.
칼렙의 스승이었던 ‘카터’도 그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용의 화로에서 배출한 역대 최고의 명장이 바로 그 카터였으며, 그의 후계자가 바로 칼렙이었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군.’
언뜻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다.
‘불안정해 보이기도 하고…….’
저 우람한 몸에 불안정한 모습이 딱히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여기일세.”
제법 많은 무덤이 여기저기 만들어져 있다.
각기 무덤에는 무기들이 하나씩 꽂혀 있었고 어떤 무덤에는 여러 개의 무기가 꽂혀 있기도 했다.
“우리 대장간은 항상 자신이 죽으면 묘비로서 꽂아놓을 무기를 만들어 놓지.”
“그렇군요.”
나는 신기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검이나 도, 도끼, 창, 할버드 등 여러 무기들이 즐비했고 그곳에는 작게 대장장이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여기 있는 무기들은 전혀 관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십 년의 세월을 겪은 무기도 있고 얼마 되지 않은 무기도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을 갖다 대면 베일 것만 같은 예리함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무기도 분명 존재했다.
“이렇게 무기가 많으면 노리는 이들도 있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럴 리가. 여기를 터느니 차라리 위쪽에 있는 대장장이들의 창고를 터는 게 더 낫지.”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요.”
대장장이들은 자신의 묘비로써 꽂힐 무기를 그들이 만든 역작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처음 묘비를 대신해 무기를 선택했다고 했을 때는 당연히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이내 곧 칼렙의 답변으로 인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들이 만든 역작은 뛰어난 기사들에게 주어 이름을 날리게 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하긴, 여기는 지하에 갇혀 썩어 있을 뿐이니까요.”
“그렇지.”
무덤을 살핀 나는 칼렙의 스승이었다던 카터의 묘 앞에 섰다.
관속에서 새하얀 망령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칼렙 만큼이나 엄청난 근육과 몸집을 자랑하는 이 노인은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칼렙을 바라보았다.
– 제자야, 이 아둔한 제자야…….
근심으로 가득 찬 그 목소리에 나는 곧바로 칼렙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아까와 별다른 것 없이 태연한 모습으로 카터의 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 왜 이 늙은 스승 때문에 그러는 것이야…….
나는 그에게 무슨 소리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칼렙이 옆에 있어 망설여졌다.
그에게 내 능력을 드러내도 될까.
[서브 퀘스트 – 카터의 진심] [전도유망했던 칼렙은 카터가 죽은 후로 급격히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방황에서 벗어나 멀쩡한 모습으로 일을 하는 듯 보였으나, 칼렙의 내면은 멀쩡해 보이지 않습니다. 카터는 그런 칼렙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해주고 싶어 합니다.] [보상 – 영원석]
그의 모습을 보자마자, 퀘스트가 나타나지 않을까 했지만 역시나.
카터의 진심을 전해주는 일이라…….
그냥 지금 당장 강령을 사용해서 카터의 진심을 그에게 전하면 되는 걸까.
하지만 직감은 그러지 말라고 나를 말리고 있었다.
‘조금 천천히 다가가 봐야겠어.’
일단 칼렙과 조금 가까워지며 이들의 사정을 들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칼렙 님.”
“왜 그러는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이건 용의 화로에 온 손님으로서가 아닌, 묘지기로서 묻는 것입니다.”
“……물어보게.”
“스승님과의 사이는 어떠셨습니까?”
“그건 왜 묻는 거지?”
“그건…….”
그때, 카터가 우리의 대화를 들은 듯 말을 이었다.
– 가족과도 같은 사이였지. 흐윽, 그래. 그래선 안 되었어. 그래서 저 녀석이 저렇게…….
가족 같은 사이었기에 문제가 생겼다.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칼렙 님의 눈빛에서 그리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카터 님의 묘를 바라보는 눈빛에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 있더군요.”
“……나와 스승님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네. 그래서 많이 의지하고 따랐지. 내 곁엔 항상 스승님이 있었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이기에 카터가 저리 반응하는 것인가.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칼렙 님의 심정에 어떤 변화가 생기셨습니까?”
“그런 거 없네. 그저 잠깐 힘들었을 뿐이지. 다 보았는가? 이제 그만 돌아가지. 화로를 너무 오래 비워두었네.”
“알겠습니다.”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가.
뒤를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이 무언가 흐트러져 보였다.
‘이대로 그냥 갈 수는 없지.’
다시 여기에 나를 들여보내 줄지도 모르겠고.
[강령 – 카터]
– 으으음……?
카터가 갑작스러운 영력의 끌어당김에 당황한 듯 신음을 뱉어내더니, 내 몸으로 들어왔다.
“이게…무슨……?”
– 제 능력입니다. 제자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제자라는 말에 그가 움찔했다.
“보고…싶구나…….”
– 그럼 아무 말 말고 따라오십시오. 몸은 제가 움직일 테니.
그래도 빨리 상황을 파악했는지, 몸을 통제하는 데에 카터의 저항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 하는가?”
“아, 예! 갑니다.”
칼렙은 도제들이 열심히 달궈놓은 화로 앞에 앉아 다시 풀무질을 시작했다.
나는 칼렙에게 양해를 구해 당분간 이곳에 있고 싶다는 허락을 받고, 뒤에 서서 그의 풀무질을 바라보았다.
칼렙은 작업에 들어가자, 금세 나라는 존재는 잊어버린 듯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에 집중력이 대단하네.’
– 저게 대단해 보이느냐?
‘대단하지 않습니까?’
– 눈이 트롤 눈깔이구나. 잘 봐라. 저 한심한 녀석이 얼마나 잡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에, 순간 뒤를 돌아 내 뒤에 둥둥 떠 있는 카터를 보았다.
그의 모습 위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착각일까.
‘아무리 봐도 잘하는구만.’
– 에헤이! 저기서 저렇게! 아이고! 에잉! 쯧쯧!
나는 칼렙의 풀무질과 단조 작업이 끝날 때까지 저 잔소리를 홀로 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