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47
* * *
대룡거검을 가리키는 것으로 의사소통이 끝났다.
그러니까 그건 이런 뜻인 셈이다.
‘다 부숴버릴 겁니다.’
엑스는 자신이 멀쩡한 몸이었다면, 마른침을 삼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성우가 재촉의 뜻으로 고갯짓을 했고, 엑스는 서둘러 통제 하에 있는 열두 대의 드론을 움직여 중력 렌즈를 둘러쌌다.
무지막지한 고중력으로 인해 상이 일그러져서 보였지만.
왜곡률을 보정해 통상적인 시각 정보로 변환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열두 대의 드론이 이내 중력 렌즈의 주변을 비행하며, 타락의 근원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눈에 띄는 장면이라,
말라디우스와 설전을 벌이던 레라지에부터가 의문을 표했다.
“음? 필멸자, 지금 뭘 하는 거냐? 어서 세뇌된 놈들을 치워버리고 주제도 모르는 기생충을 멸하러 가자고!”
기다려, 지금 놈을 찾는 중이니까.”
―푸흐흐. 군단장, 저런 정신 나간 필멸자에게 당한 건가? 믿을 수가 없군! 생명수의 뿌리가 어지럽게 뒤얽힌 이곳에서, 멀뚱멀뚱 서서 나를 찾겠다고? 이곳은 미로다! 생명수와 하나가 된 나야 잔뿌리 하나하나로 네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지할 수 있지만, 너흰 길 없는 지저에서 영원히 헤매게 될―
놈이 으스대는 소릴 언제까지 들어줘야 하나 싶어, 귀를 후비는 와중에 엑스의 대화 모듈이 그를 불렀다.
―이성우 씨, 뭔가 찾았습니다. 이쪽입니다.
엑스가 이끄는 자리에 서서 고개를 움직여 시야각을 조절하다 보니······.
중력 렌즈에 시뻘건 핏빛의 농포가 눈에 들어왔다.
세계수의 뿌리에 달라붙은 그 농포 한가운데에서, 뒤루룩.
눈알이 구르더니······.
이성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쪽이구나?”
―무, 뭐냐. 너는?
“내가 뭔지는 알 거 없고.”
이성우는 대충 대답하면서, 곁에서 부유하며 때를 기다리던 [대룡거검]을 거머쥐었다.
현재 누적된 충격량은 41%.
“대충 병충해 구제하러 나왔다고 생각해라.”
―하! 별 잡스러운 수단으로 날 찾았다고 해도, 네놈은 나를―
이성우가 놈의 말을 끊었다.
“입 닥쳐, 말라디우스.”
『미지에 감춰져 있던 고위 악마 ■■■■■의 진명이 개방됩니다!』
『이제부터 고위 악마 ‘말라디우스’의 본질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으극! 군단장, 너 내 이름을 필멸자에게 팔아 넘겼······!
“너희 악마 놈들은 하나 같이 그러더라?”
―뭐라고?
“진명을 아는 인간이 나타나도, 전혀 위기감을 느끼지를 않아. 그걸 어떻게 알았냐, 군단장 네놈이 불었냐······. 그딴 걸 따지느라 바쁘지.”
―······.
“인간에게 칼을 맞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런데 말이야, 진명이 드러난 상태에서 칼침을 맞으면······ 고위 악마도 뒈진단 말이지.”
―······인간, 너 지금 뭘 하려는······.
이성우가 대룡거검을 쥔 팔을 한껏 뒤로 젖히면서,
고개를 저었다.
“또 틀렸어. 지금은 질문을 할 게 아니라, 도망을 쳐야지. 해충아.”
―뭣들 하고 있어! 놈을 막아라!
말라디우스의 외침과 동시에 정신을 지배당한 엘프 신관들이 단검을 쥐고 몸을 날렸다.
“일족의 미래를 위해 네가 사랑하는 버저리들 곁으로 사라져라, 엘라리온!”
대신관 알미단은 두 손을 뻗어 세계수의 뿌리에 가져다 댔다.
구그극······!
엘프의 피를 머금은 세계수의 잔뿌리들이 선충(蟬蟲)처럼 움직여, 사방에서 쇄도했다.
마치 창병방진이 내세운 창날의 숲처럼 빈틈없이 쏘아져 오는 뿌리들.
‘[초감각].’
『당신의 감각이 극도로 예민하게 벼려집니다!』
『남은 시간 : 19분 59초』
하나 그 정도로는 이성우의 몸을 꿰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고개를 젖혀 왼눈을 노리는 뿌리를 피해내는 동시에 이성우의 팔이 앞으로 뻗어나갔다.
초인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려진 오감을 통해 손에 만져질 듯 선명하게 전해져왔다.
원하는 검격을 만들어내기 위한 검로와 힘의 강도, 발에서 허리를 지나 어깨로 이어지는 체간의 정렬까지.
[사수좌 문양 반지]의 ‘상급 무기 연마’ 효과가 ‘초감각’과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였다.스윽―!
평소처럼 묵직한 검격이 아닌,
자로 잰 듯한 예리하고 섬세한 일검.
그 검로의 끝에서 뿜어져 나간 대룡격변격은······.
단순히 모든 것을 갈아엎는 폭발이 아니었다.
반달.
깨끗한 호선을 이룬 검기가 되어 타락한 뿌리를 모조리 잘라내며 쏘아져 나갔다.
“······어?”
알미단을 비롯한 신관들이 허리가 잘리면서도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할 정도로 깨끗한 일격.
검기가 향하는 방향의 끝에서,
말라디우스가 비명을 질러댔다.
―젠자아앙!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당할 순 없다!
말라디우스는 자신이 파고든 세계수의 뿌리로부터 막대한 생명력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다소 무리가 되지만, 이대로 반으로 갈려 뒈질 수는 없었기에 세계수의 힘으로 버텨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어, 어째서 세계수 뿌리를?
이성우의 검격이 베어낸 건,
말라디우스의 몸이 아니라 그가 생명력을 갈취하고 있던 세계수의 뿌리였으니까.
―히이익! 어서 다른 곳으로······!
잘려 나간 뿌리에서 웬 팔뚝만 한 선충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면이 하얗고, 무수한 마디로 이루어진 벌레.
그것이 말라디우스의 본체였다.
벌레는 열심히 몸을 움직여 다시 몸을 의탁할 숙주를 찾았으나.
주변에 무성하던 세계수 뿌리가 모조리 잘려 나가, 달라붙을 곳이 없었다.
“고작 이런 꼴로 세계수를 타락시켰다고?”
“내가 말했잖냐, 필멸자. 하찮기 그지없는 놈이라고. 그나마 생명력을 빨면서 제몰 공양까지 받아 꽤 커졌구만.”
기다란 몸을 꿈틀거리던 말라디우스의 앞에,
달갑지 않은 두 존재가 다가섰다.
추적하는 군단장 레라지에와 그를 복종시킨 이성우였다.
“왜 네가 그렇게 깔봤는지 알 것도 같다.”
레라지에의 본체는 그래도 하이엘프 사냥꾼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아스타로스는 아직 눈알밖에는 마주하지 못했으나, 그 안구의 크기를 생각하면 꽤 거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을 터.
반면 눈앞의 말라디우스는 정말 기생충의 형상 그대로였다.
게다가 이게 꽤 커진 거라고?
“마음껏 비웃어라. 나는 지금껏 그런 비웃음을 숱하게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다. 조소는 내게 모욕이 되지 않는다, 필멸자.”
이것 참, 그런 소리를 내뱉으면 누가 악마인지 헷갈리잖아.
그 순간, 말라디우스가 신축성 있는 몸을 힘껏 내뻗었다.
“이봐, 놈에게 접촉 당하면······!”
레라지에는 말라디우스의 노림수를 알아채고 몸을 날렸다.
놈은 숙주가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하는 버러지.
그렇기에 눈앞의 인간에게라도 기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레라지에의 발톱보다도,
이성우의 손이 빨랐다.
중력 지배의 권능이 그의 손끝에서 펼쳐졌다.
“그으윽······.”
고위 악마는 고위 악마라는 건지 ‘위압’ 효과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숙주 없이 노출된 말라디우스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이성우는 건조한 눈빛으로 놈을 내려다보다가 잘려 나가고 남은 세계수의 뿌리를 올려다보았다.
군데군데 피를 머금은 듯 검붉은 농포로 뒤덮인 모습.
타락의 증거였다.
‘말라디우스가 떨어져 나갔는데도, 타락이 사라지지 않는다?’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엘라리온도 타락으로 물든 뿌리들을 둘러보며, 깊이 한탄했다.
“맙소사. 대체 어머니께 무슨 일이······.”
고중력장 속에서 몸을 뒤틀던 말라디우스가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큭큭, 이미 너희 어미는 뿌리부터 썩어가는 중이지. 내가 뒈지더라도 머잖아 내 뒤를 따라오게 되어 있······.
말라디우스는 말을 맺을 수 없었다.
이성우가 있는 힘껏 주먹을 거머쥐자,
너절한 체액을 흩뿌리며 터져버렸으니까.
고위 악마라는 ‘격’이 무색하게,
놈은 고작 말려놓은 해삼 내장 같은 것만 남겼을 뿐이었다.
『[말라디우스의 신경다발]을 획득했습니다.』
‘이러니 고위 악마 타이틀 달고 무시를 당하지.’
그래도 [레라지에의 사냥궁]의 선례를 생각하면, [초신성 용광로]에 넣으면 뭔가 스킬로 전환될 터다.
거기에 추가로 몇 개의 시스템 메시지가 줄줄이 떠올라, 이성우의 실망을 다소 달래주었다.
『최초로 고위 악마를 처치하여 [고위 악마 사냥꾼]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중력석 꾸러미(중) 획득!』
『업적 달성에 대한 펫의 기여도가 확인됩니다.』
『펫 상점 포인트 2,000p 획득!』
『[히든 퀘스트 – 세계수 정화]를 완료했습니다!』
엘라리온의 구원 요청으로 뜬 히든 퀘스트도 완료를 알려왔는데······.
‘뭐야, 이건 왜 보상을 안 줘?’
뜻밖에도 업적 달성 보상 외에 히든 퀘스트 보상이 지급되질 않았다.
『보상 : 엘라리온의 성의(목표 성취도 평가 중)』
퀘스트 정보를 확인하니, 보상 관련 문구가 변경되어 있긴 했다.
이성우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보았으나,
엘라리온은 심각한 눈빛으로 뿌리들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런, 사악한 기운이 침투해 어머니 나무를 좀먹거 가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
‘목표 성취도 평가라······.’
타락의 근원인 말라디우스를 제거했다곤 해도 세계수의 용태가 위태롭다는 데에 여전히 정신이 팔렸으니.
‘방법은 하나네.’
이성우는 엘라리온의 앞으로 나서면서 대룡거검을 단단히 거머쥐었다.
“물러나 있어.”
“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대룡거검과 이성우를 번갈아 보는 엘프 왕, 엘라리온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는 지금 반신반의하는 중이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이성우가 그 눈빛을 읽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썩은 뿌리는 잘라내야지.”
세계수를 숭배하는 엘프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외과 수술의 시작이었다.
* * *
땅속의 잔뿌리에서 시작한 이성우의 수술은 이내 지상의 밑동까지 이어졌다.
자연히 보는 눈이 많아졌는데, 이성우가 칼을 대는 대상이 엘프의 신목이다 보니 온 관심이 완전히 집중되었다.
“왼쪽!”
“아니, 아니! 조금 더 아래!”
이성우는 주변에서 정신없이 외쳐대는 엘프들을 흘긋 돌아보고서 혀를 찼다.
“젠장, 이건 뭐 남 등 긁어주는 것도 아니고.”
혹은 귀를 후벼주는 일이거나.
아무리 칼을 써서 도려내는 일이라고 해도, 도려내어지는 부분은 세계수의 거대한 몸체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일부분.
세계수의 입장에선 뿌리를 도려내는 거나, 귀를 후비는 일이나 본질적으론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흐흐. 필멸자 네가 자초한 일이다.”
어떻게 어머니 나무에 칼을 대느냐며 크게 반발할 줄 알았건만.
뜻밖에도 엘프들은 이성우가 거검을 휘두를 때마다 환호성을 터뜨리며 훈수를 놓아댔다.
“그게······ 신관 이외의 계층에겐 입을 다무셨던 어머니 나무께서 다시 속삭이기 시작하셔서 다들 들뜬 모양이니. 이해해주십시오. 아차차, 거기서 좀 더 깊숙이라고 하십니다.”
“······.”
그냥 훈수가 아니라, 정말로 세계수가 오염된 곳을 말해주는 거였나?
‘아무리 그래도 늬들이 어머니라 모시는 나무에 칼을 쑤셔 넣는데 긴장 좀 해라들.’
아무래도 말라디우스가 기생을 시작하면서 모종의 방법으로 세계수와 엘프 사이의 소통을 끊어놓았던 모양이지.
그게 복구된 덕에 엘프들이 이성우의 작업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뭐, 무턱해도 적대하는 것보다야 낫기는 하다만. 기분이 이상하군.’
그리 생각하며 엘라리온이 전해준 대로 좀 더 깊숙이 거검을 내질러, 껍데기 안쪽의 변재 일부를 움푹 파내자.
화아악―
세계수에게서 연녹색의 오라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이성우가 거검으로 자르고 헤집어놓은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마침내!”
“오오오······!”
놀란 게 이성우뿐만이 아닌 듯,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반응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게 엘프들이 어머니 나무라 부르고, 악마들이 생명수라 부르는 이 거대한 나무가 자랑하던 본 모습이라는 걸.
나무가 뿜어내는 막대한 생명력은, 짤막한 전투의 여파를 모조리 회복시켜줬을 정도였다.
단순히 피로가 사라지고, 상처가 회복되는 수준이 아니라.
『[초감각]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대단한데?”
‘이거 뽑아서 서울로 가져갈 순 없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성우의 머릿속으로 세계수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보답을 하긴 해야겠지만, 뽑아가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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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세계수, 기생의 악마(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