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91
* * *
콰가가가가―!
막혀 있던 댐이 터진 것처럼, 순간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마기의 폭풍.
『[대룡의 가호: 정신 방벽]이 [정신 침식]의 효과를 완전히 상쇄합니다.』
당연히 이성우에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으나,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GO, go, go!”
“레펠 강하!”
슈와아아악!
‘이런.’
수 대의 헬기에서 일제히 강하를 시작한 관리국 플레이어들은 아무런 대비도 되어 있지 않을 테니까.
저대로라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나방처럼 떨어져 죽게 될 터.
“내려오지 마십시오!”
“······어?”
신성 계열 보호막이나 정신계 버프가 필요하다고 이르기도 전에, 벌써 강하를 시작한 몇몇 플레이어가 정신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돌겠군.”
이성우가 중력을 제어해 떨어지는 이들을 받아내려는 순간.
이성우의 바로 옆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낙하하던 대원들이 현장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자리에 차례로 나타났다.
애쉬 뷰캐넌.
단거리 공간이동을 쉴 새 없이 사용해 반쯤 혼절한 이들을 전부 다 받아낸 것.
“관리국 대원들은 제가 맡을 테니까, 이성우 플레이어는 악마를 맡아주세요!”
“저 마기 폭주를 견디려면 A급 이상이거나 신성 보호막 또는 정신계 버프를 둘러야 합니다. 전하세요.”
“넵!”
애쉬가 사라지고 조금 뒤, 헬기들이 게이트 상공에서 약간 떨어진 곳으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아깝게 됐군. 이 나라의 종막을 알리는 피의 축포가 될 수 있었는데. 콰직! 하고 말이야. 크흐흐.”
이성우는 대룡거검을 회수해, 히죽거리는 벨리알을 향해 겨누었다.
“쫄보라 필멸자 몸이나 빼앗고 다니면서 큰 소리는.”
움찔.
순간이지만, 이성우는 벨리알의 눈썹이 꿈틀하는 걸 보았다.
역시, 이런 식으로 자존심을 건드리면 반응할 줄 알았지.
“지옥으로 되돌려 보내줄 테니, 나머지 구경은 집에 가서 해라.”
“크흐흐. 나도 이 몸으론 네놈을 어쩌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서두를 것 있느냐? 저 문에서 지옥의 군세가 넘실대는 모습까지만 보고 가게 해다오.”
마침, 헬 게이트에서 거세게 들이치던 마기의 폭주가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개방된 통로가 슬슬 안정된 모양.
이성우는 대룡거검을 꽉 거머쥐었다.
만일, 저기서 고위 악마가 여럿 넘어오게 되면······.
그로서도 순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었으니까.
“자, 넘어와라! 지옥의 물결이여!”
벨리알이 양팔을 펼치고 호기롭게 외치는 순간,
헬 게이트에서 시뻘건 광채가 와락 터져 나왔다.
『본 지역에 [헬 게이트]가 열렸습니다!』
『긴급 퀘스트 – 헬 게이트 봉쇄』
분류 : 긴급
난이도 : SS
클리어 조건 : 지옥의 군세를 막아내시오. (헬 게이트 지속 시간 : 2시간 59분)
보상 :
1. 전설급 액세서리 랜덤 박스(최대 기여자 한정)
2. 중력석 꾸러미(대)
심지어 흔치 않은 긴급 퀘스트까지 부여되었고.
그런데.
···
···
“······뭐야. 왜 이래?”
쿠구구구구―
헬 게이트는 거대한 짐승이 그르렁대는 듯한 진동만을 토해낼 뿐,
악마라고는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이, 이게 왜 이러지?”
벨리알은 눈에 띄게 당황해, 말까지 더듬으며 이성우의 눈치를 살폈다.
누가 봐도 엿 됐다는 표정이었다.
* * *
한편 지옥엔······ 인간계로 통하는 대형 통로가 뻥 뚫렸다는 소식이 이미 곳곳으로 전해진 뒤였다.
필멸자 지성체의 기운에 민감한 악마들이 지옥문, 헬 게이트의 존재를 그냥 놓칠 리가 없었다.
······평소라면 그랬을 것이다.
돌연 풀려난 ‘밤의 마수’.
그리고 인간계의 미국으로 넘어간 고위 악마 다수의 실종으로 지옥의 분위기가 뒤숭숭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옥에 닥친 두 개의 악재 탓에 소식을 전해 들은 대다수의 영주성에선 이런 상황이 빚어지고 있었다.
“영주님! 갑자기 인간계로 이어지는 커다란 통로가 생겼다는데요!”
“뭐? 인간계? 애들 모아라! 당장 넘어가······ 아니지, 잠깐만. 그거 설마 미국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겠지?”
“마기 파장으로 봐서는······ 네, 미국인 것 같은데요.”
“됐다, 그럼. 그리 넘어갔다가 소식이 끊어진 고위 악마가 여덟이나 된다. 여덟이나! 한국이란 나라를 노리던 놈들이 나란히 사라지더니, 이번엔 미국이야. 뭔가 심상치 않아. 괜히 들떠서 넘어가는 놈들 없게 단도리 잘해라.”
“그럼 저걸 그냥 구경만 하나요?”
“야, 이 빡대가리 새끼야! 뒈지고 싶으면 넘어가! 안 말릴 테니까!”
“아, 아니 저는 그냥 아까워서······.”
“어휴. 지금 밤의 마수 때문에 팬더모니움으로 모이라고 소집령이 떨어졌는데, 거기 신경 쓰게 생겼느냐? 괜히 군단 병력 힘빼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알았느냐?”
“예에에······.”
상황이 이러니, 지옥문은 싸늘한 외면 속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 * *
이성우 탓에 지옥의 상황이 묘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걸 알 리 없는 벨리알.
그는 눈에 띄게 당황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헬 게이트를 살폈다.
“분명히 문은 제대로 열렸는데? 어째서······.”
그 꼴을 보고 키득거리던 레라지에가 이성우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도 ‘밤의 마수’가 열심히 날뛰는 모양이군. 어느 놈 하나 건너올 여유가 없는 게야.”
하긴, 이성우도 니그라플람을 포함해 여덟 고위 악마를 불러내 죽일 때.
어느 놈도 부르는 대로 나타나질 않아 죽이는 것보다 불러내는 게 고역이었다.
“스읍, 인간계로 불러내 족치는 방식은 더는 못 써먹겠는걸.”
“그렇겠지. 아마 지옥에도 흉흉한 소문이 쫙 퍼지고 있을 거다. 인간계 넘어가면 돌아오질 못한다는 소문이. 흐흐.”
스읍.
이성우는 입맛을 다셨다.
이대로라면 헬 게이트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닫히게 된다.
그럼 힘 뺄 것 없이 보상을 먹을 수 있다는 건데······.
그것도 나쁠 거야 없지만, 눈앞에 있는 벨리알을 그냥 보내줘야 한다는 게 영 찝찝했다.
놈은 본체가 아니라 영체만 빼서 인간의 몸에 깃든 상황.
저 육체를 파괴해도, 영체는 지옥으로 돌아가 본체에서 깨어나게 된다.
즉, 본체의 힘을 쓸 수는 없어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건 피할 수 있는 상태라는 건데.
‘사디스트는 무슨. 몸 사리는 쫄보 자식이지.’
음? 잠깐만.
그걸 이용하면······.
이성우는 차갑게 웃으며, 벨리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쫄보.”
“뭐?”
벨리알이 발끈했다.
“넌 스스로 어려운 도전을 즐긴다고 하지만, 사실은 쫄보일 뿐이야. 현신이 아니라 빙의로 날뛰는 것도 몸 사리느라 하는 짓이지?”
“무슨 소리냐? 나는 필멸자로서의 제약을 떠안은 채로 세상을 망가뜨리는 성취―.”
“게임 좆밥.”
“······뭐?”
“그렇잖아. 기껏 야심차게 내놓은 헬 게이트를 봐라. 임프 한 마리, 몰락자 한 마리 기어나오지 않는데. 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 땅과 함께 죽어라’ 이딴 대사를 내뱉는 거냐?”
“······이 개자식이. 맘껏 떠들어라, 곧 지옥의 군세가 넘어와 네놈의 사지를 뜯고, 머리를 씹―.”
호오, 열 내는 걸 보니 도발이 제대로 먹혀든 모양이다.
역시, 싸움 좆밥이란 소리보다 게임 좆밥이란 이야기가 분노를 자극하는 법이다.
그게 어려운 도전을 즐기고, 거기서 성취감을 얻는 유형이라면 더더욱.
“허접.”
벨리알은 이제,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얼굴을 흉악하게 구긴 채였다.
“너 딱 기다려라. 본체로 내 군단 몰고 온다.”
콰드득!
그렇게 벨리알은, 스스로 빙의체의 목을 꺾고 지옥으로 돌아갔다.
“푸흐흐······ 고위 악마를 어린애 다루듯이 가지고 놀다니. 신성의 파편을 얻은 뒤론 더욱 능숙해진 것 같구나.”
레라지에가 이성우의 악마성에 감탄했으나, 이성우에게 벨리알의 작태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별거 아니다. 내가 살던 데엔 저런 놈이 많았거든.”
부스럭―
풀잎에 스치는 발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이성우가 섬광처럼 손을 뻗자,
그 손짓을 따라 대룡거검이 쏘아져 나갔다.
“자, 잠깐만요!”
멈칫.
애쉬의 음성이라는 걸 깨달은 이성우가 대룡거검을 멈춰 세웠고.
그 칼끝에 한 남성이 진땀을 흘리며 입술을 핥고 있었다.
“이성우 플레이어! 괜찮아요, 관리국 대원들이에요.”
거검에 목이 잘릴 뻔한 대원이 떨리는 입술을 뗐다.
“미주리 주 관리국 기동대장입니다. 조언대로 정신계 버프 걸고 왔는데······ 상황은 끝난 겁니까?”
원래대로라면 이대로 조용히 끝나는 건데,
이성우는 차마 자신이 고위 악마를 도발해 일을 키웠다곤 말할 수가 없었다.
“······아뇨,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그때, 긴급 퀘스트가 표시된 건지 기동대장의 시선이 어지러워졌다.
“헤, 헬 게이트? 이거······ 정말입니까?”
이성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라지에가 나지막이 키득거렸다.
“흐흐흐. 누구 덕에 진짜 고생문 열리게 생겼군.”
“조용히 해.”
“예?”
관리국 기동대장이 멍하니 되물었고, 이성우는 고개를 저었다.
“곧 나타날 놈들은 신성력이나 은제 무기에 취약합니다. 가능한 빨리 공수해서 장비하고 게이트에선 가능한 멀리 떨어져 계십시오.”
“네, 넵!”
기동대장은 알 수 없는 카리스마에 마치 상부의 지시를 받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아이오와 주,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밭.
거대한 수확기 한 대가 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옥수숫대마다 주렁주렁 달린 황금빛 옥수수를 게걸스럽게 거둬들이던 수확기가 돌연 멈춰선 건,
운전석에 앉은 남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관리부라······. 어째서.”
우우웅― 우우웅―
남자가 통화에 응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 신호는 끊어질 줄 모르고 계속됐다.
삑―
“······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흰 관리부 산하 그림시커 전담대응반―.”
상대가 깍듯하게 소속부터 밝혔으나, 남자는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허리를 끊었다.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죄송합니다. 미국에 위버멘쉬의 힘이 필요합니다······.”
“신중히 생각하는 게 좋을 텐데요. 기회는 단 한 번뿐이란 말이지.”
현존하는 SS급 플레이어 중에서도 최강자로 꼽히는 이 남자는, 게이트와 관련된 모든 일과 영영 결별하고 죽은 듯이 사는 대신.
단 한 번만, 미국 정부의 도움 요청에 응해주기로 약속했다.
지금, 미국이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소진하려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네, 국방장관의 승인까지 떨어진 사안입니다. S급을 한참 상회하는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는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현장에선 지옥으로 연결된 [헬 게이트]로 파악되고 있다고 합―.”
“위치 보내세요.”
“네, 네! 감사합―.”
뚝―
S급만 되어도, 자칫하다간 도시는 물론 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갈 수 있는 재난이다.
그런데 S급을 한참 상회?
자신을 불렀을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작지 않다는 걸 알 텐데도 호출을 보내올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담배를 빼물고 불을 붙인 그는······.
아주, 아주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였다.
“하아······ 괴물아, 일어나 봐라.”
그러자 돌연 그의 왼쪽 얼굴의 절반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런, 얼마 만이지?”
반쯤 열린 입에서 남자의 것과는 판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멍하니 옥수수밭 저 너머를 응시하는 오른눈과 달리, 왼눈이 카멜레온의 그것처럼 혼자서 뒤루룩 굴렀다.
“쯧쯧, 날 가둬두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나 했더니. 고작 이따위 깡촌에 처박혀 있었나? 따분하긴.”
“마지막으로 네가 날뛸 기회가 왔다.”
“크흐흐, 내가 말했지? 언젠간 정부가 내 힘을 필요로 할 날이 올 거라고.”
누군가 봤다면, 혼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미친 사람으로 여겼을 광경.
남자도 이 상황이 다시 오기를 원치는 않았다.
진짜 SS급의 힘을 가진 건, 그가 아니라······ 한 번 몸을 넘겨주면 그조차도 통제할 수 없는 두 번째 인격이었으니까.
우우웅―
메시지로 게이트의 위치가 도착했다.
남자는 왼눈이 그걸 볼 수 있게 해주면서 당부했다.
“S급을 초월한 게이트라더군. 네가 좋아하는 강한 놈이 잔뜩 있을 테니, 무고한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라.”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나? 날 믿어. 네 마누라년은 네 앞길만 막는―.”
쾅!
남자의 주먹이 트랙터 핸들을 내리쳤다.
“닥쳐. 한 번만 더 그 이야길 입에 담으면, 너의 신체 통제가 끝나자마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테니까. 애꿎은 사람을 죽여도 마찬가지야.”
“어어, 알았다고. 까칠하기는.”
왼손이 휘적휘적 움직여, 오른손을 다독였다.
“자, 그럼 신체 통제권을 완전히 넘겨. 순식간에 달려가 줄 테니까.”
“내 말, 허풍으로 듣지 마라.”
스르륵―
“하아, 따분한 새끼. 하마터면 잠들 뻔했네.”
트랙터에서 몸을 일으킨 남자······ 아니, 위버멘쉬는 땅으로 풀썩 뛰어내려 목과 어깨를 풀었다.
“S급을 뛰어넘는 게이트라고? 나참, 이렇게 재밌는 세상을 두고 옥수수나 기르고 있다니 믿기질 않네.”
제자리에서 가볍게 뜀뛰기를 한 위버멘쉬의 얼굴에 뱀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가볼까?”
쾅, 쾅, 콰가가―
가벼운 도움닫기가 폭발에 가까운 반발력을 일으켜, 주변의 옥수수를 모조리 쓰러뜨려버렸고······.
그의 몸은 믿기지 않는 속도로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성우가 기다리고 있는 헬 게이트로,
고위 악마 벨리알.
그리고 미국의 최강자 위버멘쉬가 모여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