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111
장쭤린은 갈등하고, 갈등하고 또 갈등했다.
옆에서 경악하고 있는 우쥔성과 펑더린이 보였다.
좋아.
한번 참는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이다.
애초에 오늘 이 세 사람을 초대한 목표가 이것이었지 않은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놈과 반역하는 놈을 가리기 위한 자리다.
알아내었으니 되었다.
남은 것은 뒤처리다.
단, 여기서는 아니고.
“알겠소. 헤이룽장 독군. 오늘 연회는 취임을 축하하기 위하여 내 사비로 마련한 자리이니 마음껏 즐기시오.”
꾹 참고 자리로 안내하는 도중에도 장쭝창은 뻣뻣했다.
저자세로 나가니 더욱 기고만장인 것 같았다.
한참 형인 장쭤린을 친구처럼 대해왔다.
“장쭤린, 이제 어쩔 거냐? 한때는 펑톈의 지배자였지만, 세력이 한참 쪼그라들었지. 잘 때는 악몽을 꾸며 잠꼬대를 한다며? ‘무망한치(毋忘韓恥, 한신에게 받은 치욕을 잊지 않고 복수하겠다는 의미)’ 네글자를 계속 중얼거린다지.”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길가의 꼬맹이들도 죄다 떠드는데!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나 낙서질을 하니 모를 수가 있나. 흐흐.”
장쭤린은 상대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돌렸지만.
이어지는 장쭝창의 말은 솔깃하여,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다.
“한신에게 복수하고 싶다면 방법이 있다. 들어볼 테냐?”
펑톈을 지배하는 자, 누구인가?2
장백산(長白山,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계곡물을 따라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전나무들이 무리지어 서 있다.
뾰족한 잎사귀들은 사철 푸르른 기운을 내뿜고.
배경이 되어주는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청명하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무릉도원일 수도 있겠으나.
장쭝창에게는 전혀 그런 곳이 아니었다.
피와 폭력을 사랑하여.
인간의 펄떡이는 심장을 떠올리면 흥분이 되는.
학대와 고통을 즐기며.
누군가를 증오하는 동시에, 누군가로부터 증오를 받아야 희열을 느끼는.
그런 자신을 장쭤린은 지린성 남부의 아무것도 없는 고원으로 귀양을 보냈다.
찢어발겨도 시원찮을 자식!
2년씩이나 벽지에 처박혀 있는 동안.
장쭝창은 장쭤린에 대한 분노를 장백산 높이만큼 쌓고 또 쌓았다.
원래부터 장쭤린에게 마음으로 충성을 바쳤던 건 아니었다.
아무한테나 고개야 넙죽넙죽 잘도 숙였지만,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따라본 적은 없는 장쭝창이었으니까.
2년이라는 긴 유폐의 시간 동안 그는 무수히 복수의 칼날을 벼렸다.
자신이 헤이룽장성의 독군으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장쭝창은 장백산맥이 울리도록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사나이가 그냥 죽으란 법은 없지. 삼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인생 아니더냐!”
장쭝창에게 온 첫 번째 기회는 신해혁명이었다.
그는 원래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활동하는 떠돌이 마적이었으나.
하늘 같던 청조가 무너지고 세상이 하루 아침에 바뀌자.
대세를 따라 재빨리 혁명 대열에 동참하였다.
혁명군 천치메이 밑에서 활동하며 사람 죽이는 일을 하다 보니 그 일이 장쭝창에게 아주 잘 맞았다.
하지만 천치메이가 불의의 암살을 당한 후.
그는 끈 떨어진 뒤웅박 마냥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두 번째 기회는 장쭤린으로부터 왔다.
마적 출신에 소문이 별로 좋지 않은 장쭝창을 어느 군벌도 기용하려 들지 않았으나.
통큰 장쭤린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그를 환대했다.
“마적이 어때서! 나도 마찬가지야! 너나 나나 모두 녹림대학 마적학과 출신이라고!”
장쭤린의 밑에서 부하로 지내는 생활은 비교적 평탄했다.
그러나 장쭝창은 호위대장 직위 따위로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한참 장쭤린의 신임을 얻고 있을 무렵, 은밀히 접근해온 자가 있었다.
“당신이 펑톈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계책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안후이파의 쉬수정은 용의주도한 자였다.
기존의 계획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성공할 것 같았지만.
장쭝창을 섭외하려는 건, 이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려는 속셈에서였다.
“계책은 간단하오. 펑톈군이 수가 많다고 하나 기본이 안된 어중이떠중이들을 긁어모은 군대에 불과하오. 그들을 한데 뭉치게 하는 힘은 장쭤린이 쥐고 있으니. 그자만 없애면 펑톈군은 금방 사분오열될 거요. 당신은 그 혼란기를 움켜쥐시오.”
마창의 연회에 장쭤린을 초대하여 그대로 목을 긋는다.
깔끔하고 단순한 방법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장쭝창은 쉬수정의 작전에 동참하기로 밀약하였다.
장쭤린만 없으면 단번에 그의 직속부대를 장악하고.
자신이 펑톈의 지배자로 올라설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했고.
장쭝창은 자신이 쉬수정과 공모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을 모조리 쳐 죽이느라 수습에 애를 먹었다.
위기를 겨우 넘겼으나.
진짜 위기는 그 다음이었다.
자신의 배신을 알고 있는 쉬수정의 부하들까지 죽이느라 몇날 며칠을 미친 도살자처럼 도끼를 휘둘러댔더니.
장쭤린은 아주 흡족해 하며 장쭝창에게 쉬수정 토벌 임무를 맡겼다.
따지고 보면 나름 출세할 기회였으나.
어릴 때부터 익힌 거라고는 암습과 배신, 개싸움뿐이었던 장쭝창은 정식으로 일본육사를 졸업한 쉬수정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군에서 쫓겨나 지린성에 갇힌 지 어언 2년.
그리고 세 번째 기회가 왔다.
독군이라니, 엄청나다. 지금껏 왔던 어느 기회보다 크다.
물론 헤이룽장성은 동북3성에서도 낙후된 지역이긴 하다.
겨울엔 영하 40도에 육박하는 기온에.
국경 인근은 거친 러시아 마적들로 치안이 어지러워 다들 부임하기 꺼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러시아 용병들과 부대끼며 러시아어에 능통했던 장쭝창에게 그런 부분들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헤이룽장성은 오히려 그의 구미에 딱 맞는 지역.
크게 도약할 기회였다.
그러나 가장 걸림돌이 되는 자는 장쭤린.
펑톈에서 그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으니.
장쭤린을 그대로 두고서는 전진할 수 없었다.
장쭝창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자신 있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 방법이란 암살!
쉬수정처럼 허술하게 대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작한 이상 무조건 끝장을 볼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장쭤린을 처치하되 배후로 지목되면 안 된다는 것.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장쭝창은 꾀를 내었다.
가장 좋은 각본은 적대 세력이 장쭤린을 암살하도록 만들고, 이후에 장쭝창이 그 적대세력을 토벌하며 펑톈의 지배자로 올라서는 거였다.
그리고 장쭝창이 맡은 헤이룽장성에는 그 영웅적인 각본에 너무도 적합한 세력이 암약하고 있었으니.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후, 소련을 피해 도망 온 백계 러시아인들이었다.
장쭝창은 그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으나.
늘 그래 왔듯, 이용할 건덕지가 있을 때 빠르게 단물을 빼먹고 버릴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장대한 계획이 세워졌다.
선양의 고급 요리점에서 만난 장쭤린은 그를 옛날처럼 대했으나.
장쭝창은 이미 장쭤린이 알던 그 똘마니가 아니었다.
장쭤린 밑에서 호위대장으로 있으며 수백, 수천 번 마음속에서 근질거리던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나자.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마음이 후련해졌다.
한신을 무찌를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계획대로 슬쩍 미끼를 던지자, 장쭤린은 당장 혹하여 귀를 기울였다.
“우리 동북3성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저력을 십분의 일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누구의 통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닥치고 한신에게 복수할 방법이나 빨리 말해.”
“흐흐, 화났냐? 러시아제국은 200년간이나 이어져 온 대제국이다. 그 세력이 불과 몇 년 만에 사라질 리 만무하지.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에는 많은 러시아 백군 잔당들이 들어와 있다. 그 수가 수천에 달한다구.”
눈치 하나는 비상한 자였다.
몇 마디 던졌을 뿐인데 장쭤린은 곧바로 의미를 알아들었다.
“만주에 들어온 러시아인들을 용병으로 활용하자는 거냐?”
“바로 그거야!”
“소련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얼씨구, 우리 장쭤린이가 언제부터 빨갱이들의 눈치를 봤어?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것이 네 삶의 방식 아니었냐?”
장쭤린은 갑자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러시아 털북숭이 놈들에게 이상하게 집착하는구나. 뭔가 이유라도 있느냐, 장쭝창?”
장쭝창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들통난 건 아니겠지?
이 계획은 눈치 따위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어디서 자꾸 독군의 성함을 함부로 부르냐! 말투 제대로 하지 못해?”
딴지를 걸며 트집을 잡았지만.
어느새 장쭤린은 처음과 달리 완전히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더니, 거드름을 피우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됐어. 예전에 같이 멱도 감은 사이이니, 자질구레한 예절 따위는 집어치우자고. 생각해보니 자네가 집착하는 이유가 있군. 어릴 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았다지? 러시아어도 잘하잖아.”
“···그래.”
“좋아, 아군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장쭝창, 네가 흰둥이들과 친분이 있으니 작업을 맡아라.”
갑작스러운 장쭤린의 태세 변화.
장쭝창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음에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었다.
“장쭤린···. 갑자기 대장처럼 구는 이유가 뭐지? 아직도 네가 내 두목인 줄 아나?”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역시 펑톈에는 내가 필요해. 이 동북왕은 아직 살아 심장이 뛰고 있다고···!”
“동북왕이라니 무슨 소리냐? 독군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작정이냐?”
“인정해, 인정한다고. 하늘 같으신 대총통 각하께서 내린 명을 어찌 거부하겠나. 다만···.”
장쭤린은 펑톈 독군 우쥔성과 지린 독군 펑더린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쭝창은 급히 물었다.
“다만, 뭐?”
“만주는 특별한 지역이라 중원과 같은 규칙을 적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새로운 직위를 하나 생각해 보았어. ‘동북3성 보안총사령관’ 이거 어떤가? 아무래도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이 많으니, 보안총사령관을 두어 군권을 다루게 하는 거야.”
“군권은 독군의 권한일 텐데?”
“음···. 만주에서는 아니라고 해두지.”
얘긴 즉슨, 장쭤린이 예전에 휘두르던 동북3성 독군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제안.
장쭝창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으나.
당장 장쭤린을 치는 건 무리였다.
당초 계획대로 러시아 백군을 끌어들여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맞았다.
장쭝창은 술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이만 헤이룽장성으로 가겠다. 러시아인들을 고용하는 문제로 업무가 바빠질 테니.”
다소 이른 시간에 연회장을 뛰쳐나간 장쭝창.
그가 사라지고 난 후, 주점에서 오간 얘기에 대해선 알 턱이 없었다.
***
“어떻게 생각하오, 우 형?”
장쭤린이 묻자 우쥔성은 눈가의 주름을 어그러뜨리며 말했다.
“죽여야 합니다.”
장쭤린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펑 형의 생각은?”
“끔찍한 놈입니다. 러시아군을 끌어들여 자기 세력을 불릴 궁리나 하고 있지. 펑톈의 발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을 겁니다.”
“흠, 세력 불리기라···.”
비록 문자에는 무식한 장쭤린이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만은 천부적인 감각을 지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좀 전에 장쭝창에게 저자세로 나가다가 어느 순간 태세 전환을 꾀한 것은.
장쭝창이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원하는 것을 들킨 순간 갑을 관계가 새롭게 정립된다.
역시나 장쭤린의 생각대로 안하무인이던 장쭝창은 켕기는 것이 있는지 꼬리를 말고 빠르게 도망쳤다.
단순한 세력 불리기가 아니다.
그 뒤에 무언가 노리는 게 있다.
뭘까?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장쭝창의 말대로 러시아 백군 잔당들은 쓸모가 많은 전력이다.
특히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제정을 지지하는 만큼, 귀족 출신이 많아 펑톈에는 거의 없는 고급 인력들이다.
그들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터.
“당장 죽이기는 아깝고, 조금만 지켜보지.”
우쥔성과 펑더린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으나.
이어지는 장쭤린의 말에 금방 편안해졌다.
“어차피 장쭝창은 적이 많은 녀석이오. 말하고 보니 기억나는군. 일전에 장쭝창이 죽인 군벌의 아들놈과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당시 나는 복수를 만류했었지. 하지만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그 친구를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소. 장쭝창 밑에서 일을 하도록 시키는 것도 괜찮겠지. 그 녀석이 적당한 때에 콱! 하고 일을 저질러 줄 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