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16
“예.”
“그 사실 때문에 동맹회에서 제법 말이 나오더군. 조선인에게 중화민국의 관직을 맡길 수 있냐는 얘기인데, 나는 괘념치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조선은 중국의 오랜 속국이었지. 나는 총참모와 같은 조선인들을 집 떠난 아들 보는 심정으로 생각하고 있소. 지금은 잠시 일본이라는 다른 스승을 모시고 있지만. 중화민국이 부강해지면 조선도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겠소?”
“?”
역시는 역시인가.
쑨원, 당신은 저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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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에 찬 정치병자
중화를 강조하는 쑨원의 발언에 회담의 분위기는 묘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슬쩍 심기가 불편한 티를 내었으나 쑨원은 아랑곳 않고 떠들어대기에 바빴다.
“오다 보니 우창에는 아직도 철혈십팔성기를 내걸었더구려.”
“예.”
“임시로 급히 수립된 군정부이니 이해하오. 다만 이제는 서서히 국기도 바꾸어야 하지 않겠소?”
“뭐로 바꾼다는 겁니까?”
“당연히 중화를 상징하는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를 말함이오.”
청천백일만지홍기는 쑨원이 제작한 중국동맹회의 기였다.
혁명 세력 전체를 동맹회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쑨원의 심보가 보였다.
“신중국의 기를 무얼로 할지는 좀 더 큰 자리에서 논의해야지요. 여기서 다룰 게 아닙니다.”
“그렇다 하여도 철혈십팔성기는 중국 남부의 십팔개 성만을 상징하는 기. 몽골과 티벳, 만주 등을 포괄하지 못하오. 신해년의 혁명은 중화의 이름 아래 하나로 묶여야 하는 법이오.”
회담을 하러 왔으면 모름지기 양보하는 것이 있고 그에 따라 이런저런 조건도 생겨나는 법인데.
이건 뭐 처음부터 끝까지 고압적인 통보뿐이다.
“총리님. 저 화북 북양군의 군세는 막강하여 혁명군의 역량을 한데 집중하여도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 그런 북양군을 후베이성 군정부는 지난 몇 달간 젊은이들의 피와 땀으로 완벽하게 막아내었습니다. 그 공헌에 대한 보답은 없는 겁니까? 지금껏 말씀이 너무 서운하군요.”
“보답이라니! 혁명에 모욕적인 용어요. 우리는 모두 흥한의 대의를 위하여 희생하고 노력하는 같은 처지인데 어찌 후베이성만 보답을 바란단 말이오.”
“그렇군요. 총리님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턱을 괴던 리위안훙이 깜짝 놀라 탁자에 부딪혔다.
“날이 늦었으니 회담은 이쯤 하지요. 내일도 이곳저곳 시찰 일정이 잡혀 있지 않으십니까?”
“그렇소. 그럼 이만 가보겠소. 오늘 우창의 용 두 분을 만나 뵈어 이 사람, 크게 개안하였소.”
“예.”
“조만간 난징에서 각 성의 대표들을 모아 전체 회의가 열릴 것이니 그때 다시 뵙도록 하오.”
아니, 전체 회의라니. 우리 그런 거 합의한 적 없잖아.
게다가 그놈의 점령도 못 한 난징 타령은 참.
쑨원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문을 활짝 열고 사라졌다.
조용한 가운데 리위안훙이 중얼거렸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하도 말이 많으니 중간부터 내용의 흐름을 잃었네. 동맹회 상하이 정부에서 고위인사가 온다길래 잔뜩 긴장했더만, 회담이 어떻게 돌아갔는지도 모르겠군. 마무리는 된 건가?”
“마무리 안 됐습니다.”
“쑨원은 가버렸는데?”
“다른 자와 마무리해야지요.”
쑨원이 지껄이는 헛소리가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후베이성 군정부가 임시정부에 불과하단 것은 맞다.
휘하 군대의 지휘는 여전히 불안하고 통치를 위한 행정 체계는 애초에 구성한 적조차 없다.
어디까지나 진압군을 막기 위한 관문으로서의 군정부.
장기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통합 정부는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장차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청조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고.
쑨원을 위시한 혁명파는 한창 기세는 좋으나 실속이 없다.
동맹회가 집결한 상하이는 기회주의자들의 잔치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협은 위안스카이의 존재와 그 휘하에 있는 15만의 정예군.
당장은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북양군벌들의 반목을 부추겨 그들의 힘을 약화하든, 내가 자리를 잡고 세력을 키우든.
어느 쪽이든 단시일 내에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그 외에도 량치차오와 차이어로 대표되는 입헌파나.
산시성의 옌시산과 같은 자들은 독자적인 길을 가려 한다.
개막하고야 만 대군벌 시대.
난세에 필요한 것은 동맹이다.
어디부터 시작할까.
나는 전보를 쳤다.
수신자는 상하이의 쑹자오런이었다.
***
쑹자오런이 저 멀리서 걸어오는데 혼자가 아니었다.
익숙한 인영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혁명의 첫발을 디딘 것을 축하하오! 도쿄에 들려오는 소식은 하나같이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소. 특히 한커우의 기적은 뭐라 이름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더군. 내 일전에 비꼬는 투로 귀하를 전쟁의 신이라 칭했었는데, 그 말을 증명해 보이다니. 나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오.”
일본에서 날아온 기타 잇키는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사업은 어쩌고 여길 왔습니까?”
“동맹회의 본부를 옮겼소. 도쿄에서 상하이로 말이오. 게다가 사업이라니, 그깟 하찮은 이야기는 하지 마시오.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는데 대장부가 되어서 어찌 외면한단 말이오.”
“전쟁은 보급입니다. 도쿄의 사업은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난 잘 모르오. 귀하의 친구가 그럭저럭 경영하는 거 같던데. 얼마 전에 교토(京都)에 새 업장을 열었다고 얼핏 들은 것이 기억나는군.”
파칭코 사업을 맡겨놓고 온 삼합회의 두징쯔는 수완이 좋았다.
단지 유지하는 걸 넘어 사업을 계속 확장해냈다.
무엇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사사로운 욕심이 들 만도 한데 나를 총관리자로 대우하며 꾸준히 사업 보고를 해왔다.
쑹자오런과 기타 잇키,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자의국 건물의 비밀스러운 독방에 착석했다.
“바로 본론을 여쭙지요. 참모장님께서 절 찾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쑹자오런이 바로 물어왔다.
어휴. 속 시원해.
쑨원과 대화하다 앉은 화딱지가 아무는 느낌이다.
“총무님이 바라는 신중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일부러 쑨원과 같은 질문을 쑹자오런에게 던졌다.
그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답했다.
“민주공화국입니다.”
“그게 뭡니까?”
“후후. 민주공화국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사실 무수히 많은 말들이 있습니다. 저는 세계의 다양한 정치제도를 연구하며 개념을 가다듬었지요. 미국과 영국의 의회부터, 일본의 헌법, 독일의 공무원제, 러시아의 제정까지 다양하게 공부하였습니다. 제가 바라는 민주공화국은 세 가지 개념으로 압축됩니다.”
“말씀해주시지요.”
쑹자오런은 기타 잇키를 슬쩍 보더니 말을 이었다.
“첫째, 황제의 권위를 뛰어넘는 절대 권력을 지닌 헌법이 통치의 최상위층에서 만인의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그 헌법은 누가 만듭니까?”
“국민 의회를 구성합니다. 의회의 구성원은 외부 간섭을 철저히 배제한 채 어떤 은밀한 동기도 지니지 않은 사람들로 각 지방 선거를 통해 선출하고요.”
이론은 좋다만. 정말 말 그대로 이론일 뿐이다.
외부 간섭을 어떻게 배제하냐고.
사람이 어떻게 동기가 없겠냐고.
무엇보다 문제는.
“산은 높고 황제는 먼 중국에서 공정한 선거가 가능하겠습니까?”
“어렵겠지요. 그래도 시도해야 합니다. 저는 공정 선거를 가능케 할 방안으로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를 나누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앙과 지방이 서로를 견제하며 또 지방 정부끼리도 견제하는 거지요. 이게 민주공화국의 두 번째 개념입니다.”
일종의 연방제인가?
이상은 높지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다.
“세 번째는 무엇인지요.”
“저번에 말씀드린 의원내각제입니다. 내각제는 대통령이나 총리 한 사람의 능력과 성품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대신 대통령의 직무와 권한을 제약하고 제도화하지요. 저는 가장 이상적인 정부의 형태는 입법부가 행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 의회가 폭주할 수도 있잖습니까.”
“중국은 이미 수천년간 황제 한 사람과 그에 기생하는 구시대적 관료제로 폭주해왔습니다. 의원내각제의 폐해가 있다 하여도 그 수준은 전제정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쑹자오런은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한 수재.
이제 막 서른 살이었으니, 쑨원에게서 느꼈던 꼰대스러움이 없었다.
나는 까다로운 질문을 해보았다.
“그렇다면 민족의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만족과 한족이 융합하여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묻는 거라면. 먼저 정치적으로 완전한 평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또한 민족자결(民族自決)을 보장해야겠지요.”
“그렇다면 만주족이 독립을 요구할지도 모릅니다. 동북3성의 광활한 영토를 잃게 될 텐데요.”
“감수해야지요. 애초에 우리는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을 하는 겁니다. 혁명의 최우선 목표는 어디까지나 전제정을 타파하고 책임 내각을 구성하는 데 있습니다. 영토 따위를 욕심내다가는 영영 내실을 다질 수 없을 겁니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지 않는 중국인. 이거 귀하다.
쑹자오런, 저와 함께 갑시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쑹자오런이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제가 시험에 통과했습니까?”
“시험이라니요.”
“얼마 전 쑨 선생과 대담을 나눈 사실을 압니다. 참모장님처럼 총명하신 분이면 아마 상당한 답답함을 느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어케 알았누.
내가 대답 없이 묵묵히 있자 쑹자오런이 다시 말했다.
“봉기 이래 상하이 정부와 우한 정부는 지난한 대결을 벌이고 있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쑨 선생이 귀국하고 동맹회의 본부가 상하이로 옮겨지며 무게 중심은 상하이 쪽으로 실리고 있습니다.”
“압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동맹회는 쑨원의 조직이지요. 하지만 그 안에 제 파벌도 만만치 않습니다. 저, 쑹자오런이 우한 정부를 지지하겠습니다.”
“대가로 뭘 원하십니까?”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요. 저는 정치적 동지는 많지만, 군사적 지지기반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참모장님께 어떤 군사적인 행동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겁니다. 다만 참모장님이 절 지지한다면 앞으로 정치권에서 제가 무슨 짓을 하고 다녀도 함부로 적들이 총구를 들이민다거나 하는 낭패는 겪지 않겠지요.”
동맹 제안이다.
“뭔 짓을 할 작정이길래 네 개 여단의 지지가 필요합니까?”
“제 목표는 신중국의 초대 총리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정적(政敵)들과 싸우게 될 겁니다.”
쑹자오런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쑨원과는 확연히 드러나는 차이점이 보였으니.
야망이었다.
그저 맑은 눈을 하고 민족이니, 민권이니 추상적인 이야기를 떠드는 쑨원과 달리 쑹자오런에게는 분명한 야심과 그걸 실행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다.
재밌는 것은 그 야심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는 거였다.
그의 눈은 언제나 이글이글 불타오르며 탐욕과 야망에 가득 차 있었다.
탐욕은 위험하지만 강력한 동기가 된다.
개인의 부를 불리는 것이 아닌, 정치로 체제를 바꾸겠다는 야망은 쓰기에 따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여러 개의 중국과 같은 것을.
“좋습니다. 동맹입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기타 잇키가 말했다.
“그런데 우한 정부의 도독은 따로 있잖나. 그자 없이 이런 결정을 내려도 되는 건가?”
쑹자오런과 나는 맞춘 것도 아닌데 동시에 대답했다.
“괜찮아.”
“괜찮습니다.”
아직 해가 중천이니 리위안훙은 자고 있을 터.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서 밤새 술 마시고 노는 게 그의 일과다.
기타 잇키가 잘 되었다는 듯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쑹자오런이 이야기를 마쳤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겠소.”
“뭐 할 말 있습니까?”
“당연하지! 그것 때문에 바다를 건너왔는데.”
“뭡니까.”
“우리의 혁명을 잊었소? 분명 신일본을 건국하기로 했잖소!”
아아. 그 얘기.
나중에 하면 안 될까.
“일본의 혁명은 일단 신중국을 건설하면 그다음에 생각하지요.”
“기한을 둘 거요.”
“언제까지?”
내가 불안한 듯 쳐다보자 기타가 문득 씨익 웃었다.
“장난을 쳐봤소. 내가 그리 모진 사람으로 보이오? 한창 바쁜데 일본의 일까지 요구하진 않소.”
“다행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장난으로만 받아들이면 곤란하지만.”
기타의 의뭉스러운 웃음.
언젠가는 일본에서도 혁명 한번 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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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
위안스카이는 전신거울 앞에 선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땅딸막한 키.
뺨에 물든 홍조.
천진난만한 눈동자.
벌써 지천명을 옛 저녁에 넘은 나이인데도 어린애 같은 용모다.
위안스카이는 자신의 외모를 좋아한 적 없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데 순진무구해 보이는 외모가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오래 참았어. 그렇지?”
거울 속의 자신에게 말을 걸어본다.
한동안 물끄러미 거울을 들여다보던 위안스카이는 의복을 갖춘 후 집을 나섰다.
자금성의 정문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돤치루이가 따라붙었다.
호사가들은 떠든다.
북양3걸 가운데서도 돤치루이가 제일이라고.
자신의 최측근이자 북양군의 절반 이상을 통제하는 군사령관이 돤치루이였다.
“각하, 오셨습니까.”
“오냐. 저번에 시킨 일은 어떻게 됐느냐?”
돤치루이가 뒤편에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부하들이 여러 부의 신문들을 가져왔다.
“좋아. 이거면 되겠어.”
위안스카이는 신문을 챙기고 황성 안쪽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한때 드높았던 자금성의 문턱은 오늘날 뒷간 변소처럼 하찮기 그지없다.
청조에 광서제(光緖帝)나 서태후(西太后)와 같은 영웅은 이제 없다.
위안스카이는 확신했다.
청 황실에 자신에 맞설만한 인물은 아무도 없다고.
과연 황제 푸이의 어머니 융유태후(隆裕太后)는 오들오들 몸부터 떨었다.
지난 몇 달간 자신이 올 때마다 좋지 않은 소식이 함께였다는 사실을 학습한 결과였다.
예를 올린 위안스카이는 대뜸 꺼이꺼이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부터는 꺼져가는 청조의 등불을 비통해하는 총리대신을 연기할 셈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총리대신, 왜 그러시죠···?”
“아이고, 마마! 이, 분하고 슬픈 마음을 어찌 다스려야 합니까. 이 신문의 사설들을 보십시오. 온 천하가 황실의 퇴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흉험한 재앙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것 같아 그저 비통할 따름입니다.”
“휴, 흉험한 일이라니요···?”
“저 유럽의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을 아십니까? 루이 16세는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 왕조의 군주였으나 프랑스 혁명 당시 군중들에게 끌려 나와 광장에서 단두대에 처형당했습니다.”
“그, 그럴 수가···!”
“청 황실에도 같은 일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저는 하지 못합니다.”
융유태후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 하지만! 사람들이 떠들길 총리대신이 거느린 군대는 막강하여 금방 반란을 진압할 거라고···.”
“태후 마마.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는 온 중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특히 우한의 군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번성하여 베이징으로 진격해올 기세이니, 저로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마마.”
“···어떤 선택지가 있는 거죠?”
위안스카이는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빙그레 웃었으나, 겉으로는 여전히 비분강개의 총리대신을 연기하였다.
“끝까지 버티며 베이징에서 혁명군을 맞이하던가···. 그게 아니라면 공화의 길입니다.”
“공화? 그 길을 가면 저와 황제는 어떻게 되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화의 길이 곧 황실을 지키는 길입니다. 국가의 정체를 바꾼다고 어찌 황제가 하루아침에 황제가 아니게 될 수 있겠습니까? 황실은 자금성에 그대로 남을 것이며 존칭과 예 또한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잃는 것은···.”
“통치권이지요. 다만 좋게 보면 통치의 의무에서 해방되어 편히 여생을 보내는 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융유태후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는 위안스카이는 실룩이는 입꼬리를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황제만 없으면 자신의 위에 아무도 없는 날이 온다.
황제만 없으면!
융유태후와 함께 문을 열고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던 돤치루이가 눈빛을 보내왔다.
위안스카이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돤치루이가 은밀히 미소 지었다.
위안스카이는 태후를 앞세웠다.
돤치루이를 포함하여 북양군의 수십명 지휘관들과 함께 조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전회의장에 가까워지자 떠드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이미 남방의 십칠개 성을 잃었소. 군대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고 지금은 버틴다 하여도 장기적으로 혁명군의 기세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소.”
“위안스카이는 뭘 하는 건가! 북양군은 청국 최강이라더니, 그깟 변변한 성벽 하나 없는 한커우를 점령 못 해서 이리 전투가 지연된단 말인가!”
“그자는 믿을 수 없습니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세상에 도둑이 든다고 호랑이를 마당에 두는 집이 어디 있냐는 말입니다.”
“한커우 전투도 일부러 패배하였음이 분명하네.”
저 만족 놈들.
내가 조선과 북방에서 구르며 청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아편에 쩔어서 첩이나 끼고 시시덕거리던 돼지 새끼들이 감히 날 비난해?
위안스카이는 속에서 차오르는 증오감을 삭혔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태후 마마 납시오!”
어전회의에 참여한 대신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태후에게 예를 표하다 뒤따라 들어오는 자신을 보고 인상을 구기는 놈들이 보였다.
흐흐. 어쩔 거냐? 최후의 승자는 나다.
“태후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그것이···. 총리대신께서 대신 말씀해주세요.”
헛기침을 하며 위안스카이는 앞으로 나갔다.
“태후께서 고심 끝에 큰 결정을 내리셨소. 황실의 보존을 위해서 공화 체제로의 이행밖에 길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소이다.”
“마마, 그게 정말입니까?”
융유태후는 그저 고개를 푹 숙였다.
대신들이 술렁였다.
위안스카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본관은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태후 마마의 말씀을 받들어 따르고자 하오.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공화정 이후에도 황실의 대우가 지금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오. 황제 폐하는 그대로 자금성에 머무시고 황실의 종친들도 적절히 합의된 지위를 보장받아야 하오.”
만족 대신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이미 뇌물을 먹인 몇 명은 잠잠했지만, 상당수는 거세게 반발하였다.
“위안스카이! 감히 네놈 따위가 태후 마마를 앞세워 폐하의 퇴위를 요구하는 거냐!”
“그럴 리가 있소. 본관은 그저 황실의 안위를 염려할 뿐이오.”
“흥! 네깟 놈의 헛소리는 듣지 않는다! 게다가 군대를 지휘하고 있어야 할 저 장수들과 함께 나타난 저의는 뭐란 말이냐! 조정에 무력 시위라도 하겠다는 거냐?”
염정대신(鹽政大臣)이 삿대질을 했다.
위안스카이는 반박하려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린 음성이 그를 비호하고 나섰다.
“정말이에요, 지금은 떳떳한 듯 참고 있지만 총리대신은 제 앞에서 눈물까지 흘렸는걸요. 그의 황실을 위한 마음은 진실이에요. 그러니 우리 여기서는 서로 비난하지 말고 장차 폐하를 위한 최선의 앞날을 논의해 봐요.”
융유태후의 말에 대신들도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위안스카이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속여넘겼을 줄이야.
군 지휘관들이 동석한 채 어전회의가 계속되었다.
위안스카이는 돤치루이가 가져온 신문들을 꺼내 보였다.
“이걸 보시오. 상하이의 외국인 상인들이 건의문을 올렸소. 구미의 열강들도 모두 황제의 퇴위를 원하고 있소. 황실의 편은 어디에도 없는 거요.”
물론 열강의 의견 따윈 모른다. 죄다 뇌물을 뿌려 만든 건의문이다.
하지만 베이징의 자금성에 틀어박혀 평생 나태하게 살아온 만주의 귀족들.
이상한 점을 알아차릴 식견 따윈 없다.
조금씩 회의가 진전되었다.
처음에는 절대로 항전뿐이라 떠들다가.
은근슬쩍 만약을 가정하고 공화정이 되었을 경우 상황을 예측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넘어갔다.
그러다 종래에는 어느새 공화정은 기정사실로 되고 어떻게 하면 만족의 이권을 더 챙겨올 수 있을지에 관한 논의가 되었다.
위안스카이는 철저히 굽실댔다.
아무리 화가 차올라도 참고 또 참았다.
그 덕에 어전회의를 나왔을 때 그는 혁명 정부와의 협상 책임자가 되어 있었다.
황제의 퇴위는 결정되었다.
남은 것은 혁명 정부와 이견을 조율하는 것뿐.
이제 청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공화국이 들어설 것이다.
행동을 같이하던 지휘관들도 각자 위치로 돌아가고 둘만 남게 되자 돤치루이가 속삭였다.
“한고비는 넘겼지만, 또 한고비가 남았군요. 혁명파는 워낙 난폭한 놈들이니 협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뭘 모르는구나.”
“예? 무슨?”
“협상은 이미 끝났다. 조건도 거진 맞추었지. 도장만 찍으면 끝나는 상황이다.”
“아니, 언제 끝내신 겁니까? 저도 몰랐는데.”
위안스카이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네가 한커우에서 고생할 때 진행된 사안이니 몰랐을 거다. 난징의 쑨원과 꽤나 많은 필담을 나누었지.”
“쑨원이 뭐랍니까?”
“간단하다. 서로 조건을 하나씩 요구했고 이해 사항이 맞아떨어졌지. 이로써 나는 중화민국의 대총통이 될 거다.”
“그게 각하의 요구조건이었군요. 쑨원의 조건은 뭐였습니까?”
“난징을 수도로 해달라더군.”
돤치루이가 깨달았다는 듯이 경호성을 질렀다.
“그럼 난징에서 일부러 병력을 철수하라고 하셨던 것도···. 병력이 빠지자마자 혁명군이 곧바로 난징을 점령하였던 것도···.”
“그래. 합의한 사항이다.”
“난징이 수도가 된다면 우리에게는 좋지 않겠군요.”
“북양군의 지지기반이 베이징이니 그 힘을 약화하려는 수작이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일단 대총통 자리에 오르고 나면. 수도 이전 따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대충 뭉개면 그만이야.”
“과연 현명하십니다.”
위안스카이는 천천히 자금성을 뒤돌아봤다.
타들어 가는 석양이 찬란한 금빛 지붕에 부서지며 황홀하도록 아름다웠다.
머지않았다. 곧 자신의 것이 된다.
***
쑹자오런이 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왔을 때, 나는 이미 소식을 받아본 뒤였다.
“황제가 퇴위한다고 합니다!”
“들었습니다.”
“분명 기쁜 소식입니다만, 저는 용납할 수 없군요. 쑨 선생은 동맹회에도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감행했습니다. 아마 만족 황실에 상당한 이권을 보장하는 조약을 체결했을 테지요. 이건 이제 막 태어난 혁명 정부에 시작부터 오점을 남기는 행위입니다.”
“문제는 황실이 아닙니다.”
“그럼?”
“위안스카이.”
지금 시점에서 황제의 퇴위는 혁명 정부의 시작이 아니다.
위안스카이를 영수로 한 북양 정부의 시작이다.
“상당한 수준의 야합이 있었을 겁니다. 애초에 난징을 그리 쉽게 공략했을 때부터 수상했으니. 진정으로 이권을 보장받은 것은 황실이 아닌 위안스카이입니다.”
“서, 설마.”
“곧 알게 되겠지요. 동맹회가 위안스카이를 중화민국의 초대 대총통으로 민다면 무조건입니다.”
“어렵게 되었군. 쑨 선생의 난징 정부가 청조와 결탁하여 중화민국 정부를 수립한다면 우리로서는 막을 명분이 없습니다.”
두 갈래 길이 있다.
첫 번째는 후베이성 정부를 끝까지 유지하며 군벌 세력화하는 방법.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은 너무 섣부르다.
중요한 것은 명분.
혁명의 구호는 멸만흥한이었다.
만조가 사라지고 통일 정부가 들어서는데 거기서 독자행동을 했다가는 전 중국을 적으로 돌리게 될 터.
여기서는 두 번째 길이다.
일단 협력하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친다.
나는 쑹자오런을 보고 말했다.
“우리도 합류하지요. 중화민국 정부에.”
“그럴 수는 없습니다! 참모장께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밀실 야합으로 세워진 정부라고. 저는 갈 수 없습니다.”
“그 정부를 우리가 집어삼키면 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돌아가는 꼴을 보니 대총통은 이미 위안스카이로 내정된 듯한데.”
“대총통은 주지요. 우리는 총리를 노립니다.”
머리 좋은 쑹자오런이 눈을 번쩍 떴다.
“그 말은 중화민국의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로 만들자는 거군요.”
“위안스카이는 눈치가 빠르고 영악한 자이지만 법률 공부를 한 적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중화민국의 임시 헌법 제정권을 손에 넣어 의회를 조직하고 위안스카이를 식물 대총통으로 만드는 겁니다.”
“좋아, 좋습니다! 정치공세만으로 대적을 패퇴시킨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군요. 그건 제가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저만 믿으세요.”
쑹자오런은 당장 임시 헌법 초안을 작성하겠다며 사라졌다.
확실히 이 일에 있어 그보다 잘 해낼 사람은 없다.
문제는,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정치 공세는 그저 날 죽여 줍쇼 하고 날뛰는 꼴일 뿐이라는 거지.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 쑹자오런은 그렇게 죽었다. 바로 다음 해에.
창문 너머로 바삐 뛰어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 말라고, 친구.
이번에는 죽게 놔두지 않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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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2 (수정)
자금성의 태화전.
넓디넓은 광장이 오늘은 문무백관으로 가득 차 있다.
샛노란 금빛의 황룡기(黃龍旗)가 펄럭이고 갖가지 복색을 입은 고관대작이 정중히 허리를 숙인다.
모르는 서양인이 보았더라면 대단한 경사가 있나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광장의 외곽에서는 서양식 의복을 차려입은 자들이 무질서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기이한 광경.
광장의 중앙에는 변발한 관리들이 머리를 땅바닥에 박아대며 대성통곡을 하는데.
가장자리에서는 팔짱을 낀 양복쟁이들이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희희낙락한다.
나는 광장의 외곽에 속해있었다.
혁명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한데 모인 자리였다.
중국동맹회의 삼인방인 쑨원, 황싱, 쑹자오런부터 해서 리위안훙과 같은 지방 군정부의 도독들, 지휘관들까지 모두 모여 황제의 폐위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황제 폐하 납시오!”
융유태후가 황제를 안고 등장했다.
청조의 관료들이 일제히 무릎 꿇었다.
광장에 비통한 울음소리가 넘쳐흘렀다.
그 가장 앞에 위안스카이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목놓아 우는 그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가슴이 절절해질 정도였다.
여섯 살배기 꼬마 황제 푸이.
자신의 앞에서 슬프게 울어대는 노인들에는 아무 관심 없다.
대신 귀뚜라미통을 만지작거리며 태후에게 칭얼댈 뿐이다.
한바탕 울음바다가 그쳤다.
위안스카이가 주섬주섬 조서를 꺼냈다.
조금 전까지 꺼이꺼이 우는소리를 하던 관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위안스카이의 움직임에 시선을 집중했다.
방금의 눈물은 일종의 관례였던 걸까.
한 나라가 망국할 때 이 정도의 통곡이면 족하다 여긴 모양이다.
“본관은 청나라의 내각총리대신으로 오늘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으나 결코 회피하거나 도망치지 않는다. 오늘을 통해 중국은 한 마리 용이 되어 비상할 수 있음이니, 구차한 언어는 그만두고 조서를 읽겠다.”
위안스카이가 느릿느릿 퇴위 조서를 낭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