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hinese warlord from Joseon RAW novel - chapter 324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군인에게조차도 그것은 버거운 일이다.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오직 적을 죽여야 한다는 일념뿐.
죽지 않기 위하여 적을 죽이던 군인들이 전투가 지속될수록 점차 변화한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난 물집이 터지다 못해 피가 나든 말든 상관없이 맹렬히 사격을 거듭한다.
마침내는 죽지 않기 위하여라는 생존의 몸부림에서 벗어난다.
그때 남는 것은 증오다.
설사 자신이 죽더라도 적을 없애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태양처럼 이글거린다.
우페이푸가 그런 진리를 깨달은 것은 난생 처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였다.
참여 않고 있다기보다 못하고 있었다.
독가스에 당한 몸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져 부축이 없으면 걸을 수조차 없었으니.
그래서 중원대전이 막 벌어졌을 때 우페이푸는 지닝시의 성곽에서 부목을 댄 채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결코 메워질 수 없을 것 같던 화베이평원의 끝도 없는 대지.
지금은 비좁아 보일 정도로 병사들이 득시글거린다.
으레 전쟁의 숭고함과 인간 정신의 위대함으로 가슴이 들끓어야 마땅하건만.
어째 지켜보는 속마음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수십 만 군대의 난타전은 평생을 전장에서 보내온 우페이푸도 처음 보는 광경.
그들이 다 같은 중국인이라는 점이 어느 때보다 뼈아프게 다가왔다.
전황은 한눈에 보아도 유리하였다.
연이은 독가스 공격으로 공화군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으리라 여겼던 것일까.
새벽부터 반한연합군이 총공세를 펼쳤다.
야포를 동원하여 성벽을 부수며, 참호를 넘기 위한 일제 돌격을 감행해왔다.
공화군이 독가스로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투 불능의 상태에 빠진 군사는 우페이푸를 포함하여 기껏 수백 명에 불과하였다.
상대적으로 약하게 당한 대부분의 병사들은 휙휙 털고 일어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전투에 참전하였다.
예상 외의 강력한 반격에 반한연합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우페이푸는 우회 공격을 위해 야전에 나가 있는 기갑부대에 연락을 취하였다.
지금이 공격의 적기라고.
전차는 마치 중기병과 같이 적 진영에 충격을 가하였다.
공세에 집중하던 적군은 허둥대기에 바빴다.
원래라면 우페이푸도 저 대열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지닝의 방비는 다른 장군에게 맡기고 직접 차량에 탑승하여 전선에서 맹렬히 지휘하였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땠을까.
오만함에 빠져 껄껄 웃으며 적병을 수도 없이 학살하였겠지.
승리의 짜릿함을 만끽하며 한 놈이라도 더 죽이려 안달이었겠지.
그런데 이렇게 전장의 한복판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니, 참으로 소슬한 기분에 우페이푸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나이가 들긴 한 모양이다.
적에게 동정심이 들다니···.
그러다 어느 순간.
우페이푸는 몸서리를 치며 주저앉았다.
의무병이 황급히 다가왔으나 만류하며 겨우 부목을 딛고 일어섰다.
항상 이해가 가지 않았다.
중국 최정예 공화군을 거느리고 있으면서 어째서 한신은 뭇 군벌들을 죄다 참살하지 않는가?
자신이라면 현무의 엔진이 식을 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요하유전의 석유를 다 퍼마실 때까지 온 중국을 종횡하며 파괴하고 부수고 평정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듯 공화군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문득 다가오는 깨달음.
이 풍경은 한신이 늘 보던 풍경이다.
오로지 승전으로만 이어져 온 한신의 행보.
그는 이 같은 학살극을 보고 또 보며 지금껏 버텨왔을 것이다.
한때 한신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자라고 불리곤 했다.
그만큼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탁월했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지금은 우페이푸도 공화군이라는 거인의 등에 업혀있던 셈.
비로소 한신이 보는 풍경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제 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알겠어, 한신···. 전쟁을 그만두고 싶은 거지···?”
이 전투를 통해 옌시산과 장쉐량은 끝이 난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길은 자기들 소굴로 달아나는 것뿐.
그래봤자 이곳 중원에 끌고 온 그들의 군사력이 한계치에 달해 있기에, 명줄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산시성이나, 펑톈성이나 지금과 같은 기세라면 단숨에 탈환할 수 있을 거다.
지닝시 앞마당에서 펼쳐진 중원대전.
며칠 간격으로 네 번의 전투가 더 일어났다.
랴오청시에 꾸려져 있던 적군 사령부를 소탕한 뒤.
우페이푸는 승리를 선언하였다.
금세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 중원대전의 승자는 공화군···!
– 산둥과 안휘가 완전히 공화군의 영역으로 들어가다.
– 우레와 같은 기세로 토벌군을 섬멸한 우페이푸.
우페이푸는 개안이라도 한 듯, 전쟁을 보는 눈이 새롭게 열린 것이 느껴졌다.
원래라면 전공에 눈이 돌아가 달아나는 옌시산과 장쉐량을 쫓았을 것이다.
특히 옌시산은 반한연합군의 총사령관인 만큼 대뜸 산시성으로 전차를 몰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한전쟁은 옌시산과 장쉐량 두 군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총사령관이 옌시산이라고는 하지만, 진정한 실권은 국민정부의 장제스에 있다는 것을 천하인 중 모르는 사람이 없다.
오직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는 남부전선이다.
거기에 기갑사단이 추가된다면 방어선 밖에서 기동전을 수행할 전력을 얻는 것이므로 전략을 짤 때 더할 나위 없는 이점이 된다.
중원대전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더 큰 규모의 전투가 남방에서 벌어질 조짐이 보이고 았다
우페이푸는 추격군을 꾸리는 대신 귀환 준비를 하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래서 우페이푸는 다소 방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대규모 군대가 동원된다 하여도 결국 중국인들 간의 내전.
어차피 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하는 전쟁 아닌가.
전황이 한쪽으로 기울면 어느 정도는 대장부답게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할 걸로 생각하였다.
옌시산이 여러 차례 신문을 통해 발표한 사설에서 받은 영향도 컸다.
그는 계속해서 내전의 중지를 요청하며 자신과 한신의 동반 하야를 주장하였다.
물론 앞에서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뒤로는 독가스 무기를 사용했다는 점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우페이푸는 믿었던 것이다.
중국에는 협(俠)···, 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터무니없는 오판이었다.
***
뜻밖에도 수화기 너머 장제스의 음성은 평온하였다.
옌시산은 저도 모르게 다 털어놓아 버렸다.
“적어도 산둥 방면은 이제 끝났소···. 제1군과 제3군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 대다수가 사살당하거나 포로로 잡혔소. 그나마 제2군은 멀쩡하지만, 역시 사기가 땅에 떨어져 근시일내에 공격적인 작전을 수립하는 것은 무리요.”
원래라면 피해를 축소하고 허장성세를 늘어놓았겠지만.
이번 전투로 입은 피해가 너무나 뼈아팠다.
남방에는 아직도 100만이 넘는 반한연합군이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받고 싶었다.
“일단 급히 산시성과 즈리성에 새로운 방어선을 형성하고는 있소. 만일을 대비하여 베이징과 톈진의 방비도 신경을 쓰고 있소.”
“잘하셨습니다.”
“···그게 끝이오?”
“더 원하는 게 있으신지?”
옌시산은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이번 반한연합군의 총사령관 자리를 어떻게 얻었는가.
다섯 군벌이 뭉쳤기에 병력의 수야 부족할 것이 없지만, 무패의 현무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한다면 전황은 어려워질 것이 분명.
옌시산은 대전차전을 말하며, 전략 수립을 위해 자신이 총사령관이 되겠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산시식 전차를 믿었기 때문이지만, 결과가 이리 되고 말았다.
쓸까 말까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독가스를 사용하고도 패배하고 나니,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가.
참고 감내하는 일이라면 천하 제일인 토거북 옌시산이 아닌가.
“광저우에 국민군 예비부대가 있는 것으로 아오.”
“있지요.”
“그 군대를 빌려주시오. 해로를 통해 톈진으로 건너오면 될 것이오.”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요구지만 옌시산은 철판을 깔았다.
대면이 아닌 유선상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우페이푸가 비록 큰 승리를 거뒀다고는 하나, 산시성과 즈리성을 방어하지 못할 만큼 몰려 계신단 말입니까? 우리의 전략을 잊으신 건 아니겠지요. 북부전선의 전략목표는 현무를 붙잡아두는 겁니다. 동북군이 몇 명이 죽든 전차가 남부전선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목적은 달성입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온화하던 장제스의 음성이 점차 거칠어졌다.
“역사에 남을 패배를 당하셨는데, 제가 어째서 놀라지 않는지 아십니까?”
“···어째서요?”
“총사령관께서는 공화군의 기갑부대를 처리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하셨지만, 솔직히 국민군에서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패배쯤은 예상한 바입니다. 그래서 덤덤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치욕이 있나.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해···!
“물론 방어에 전념한다면 현무가 베이징에 나타나는 일은 없을 거요. 단지 나는 우페이푸가 이대로 군사를 돌려 남방으로 향할 것을 걱정하고 있소.”
“우페이푸는 성정이 급하고 전투를 좋아하는 위인이라, 승전을 발판 삼아 공격을 계속할 겁니다.”
“그렇지 않소. 지난번 대전 이후 전선은 소강상태요. 이미 첩보가 들어오고 있소. 우페이푸군이 남하를 준비한다는 첩보요.”
“확실합니까?”
“확실하오.”
장제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우페이푸는 잠시 얼토당토않았던 원군 요청이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제스의 입에서 전혀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황하의 수위를 보셨습니까?”
“뭐요?”
“황하의 수위 말입니다.”
“보긴 봤소만.”
“어땠습니까?”
“지금이 8월이고 우기이긴 하지만, 비가 잦지 않아 아주 높은 건 아니오. 그런데 이 대화를 갑자기 왜 하고 있는 거요?”
장제스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잊지 마십시오. 북부 방면군의 목표는 현무의 남하 저지입니다.”
“알고 있소. 그러니 원군이 필요···.”
“남하를 막기 위해 꼭 병사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막강한 자연의 힘이 우군이 되어주기도 하지요.”
“자연이라고?”
의아하여 중얼거리던 옌시산은 문득 황하의 수위를 묻는 장제스의 저의를 깨달았다.
설마 그거겠어? 라는 예감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황하의 제방을 터뜨리십시오. 그리하면 지대가 낮은 동남부가 수몰됩니다. 현무가 제아무리 날래다 해도 날개가 있는 것이 아니니, 공화군은 산둥성에서 고립될 겁니다.”
옌시산은 묵묵히 되물었다.
“황하제방 폭파? 진심인가? 수백만의 수재민이 발생할 거요.”
“한신이 승리한다면, 중국은 또다시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될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계속하여 난색을 표하는데, 돌연 장제스가 소리쳤다.
“옌시산! 그러고도 총사령의 자격이 있는가?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시킬 각오가 네겐 없단 말인가? 승리가 이미 우리 손에 가까이 왔다! 우한을 세 방면에서 포위해 들어간 국민군이 한신을 쓰러뜨리기 일보 직전이다! 여기에 전차가 끼어든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희생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단 말이다!”
터져 나오는 벽력같은 외침에 옌시산은 고막이 얼얼하였다.
“중원에서 죽어간 네 병사들을 떠올려라! 그들의 헌신을 헛되이 만들 셈이냐! 결정해라! 멍청한 사령관의 명에 휘둘려 어이없이 목숨을 버린 개죽음으로 만들 것인지, 중화의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바친 충렬영령으로 만들 것인지를!”
입안이 텁텁해 왔다.
독가스를 잘못 쐬었나, 머리도 어질어질한 것 같다.
그럼에도 장제스의 음성에 진실한 뚝심이 담겨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옌시산은 몽롱해진 채로 물었다.
“현무를 산둥에 붙잡아두면, 남방은 승리할 수 있나?”
“그렇다. 승전이다.”
승전!
온몸이 패배에 짓눌린 옌시산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마약이다.
“정말 가능하겠나? 한신군을 이길 수 있겠어?”
“있다. 자신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옌시산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속삭였다.
“알겠소. 황하 제방 폭파를 준비하겠소···.”
***
특수부대가 꾸려졌다.
적 부대와의 전투가 아닌 자연과의 대결을 위한 공병대였다.
고성능 폭약이 잔뜩 동원되었다.
면밀한 계산 없이 폭약만 터뜨려서는 원하는 경로로 물길을 잡지 못한다.
그러므로 굴착 작업이 필수로 선행되었다.
하루를 꼬박 할애했음에도 작업은 더뎠다.
설상가상으로 우페이푸군의 일부 부대가 지닝을 출발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옌시산은 마음이 급해져 직접 현장을 참관하였다.